?

히브리서 13:7-13 /

관찰본문

[참된 지도자들을 본받고 무엇보다 예수를 본받으라]
7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일러 주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
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7 Remember your leaders, who spoke the word of God to you. Consider the outcome of their way of life and imitate their faith. 8 Jesus Christ is the same yesterday and today and forever.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9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음식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음식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
9 Do not be carried away by all kinds of strange teachings. It is good for our hearts to be strengthened by grace, not by ceremonial foods, which are of no value to those who eat them.   

 [속죄의 공로가 미치지 못하는 유대교]
10 우리에게 제단이 있는데 장막에서 섬기는 자들은 그 제단에서 먹을 권한이 없나니
11 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라
10 We have an altar from which those who minister at the tabernacle have no right to eat. 11 The high priest carries the blood of animals into the Most Holy Place as a sin offering, but the bodies are burned outside the camp. 

 [영문 밖으로 나아가자 ]
12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13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12 And so Jesus also suffered outside the city gate to make the people holy through his own blood. 13 Let us, then, go to him outside the camp, bearing the disgrace he bore.  

 
 해석도움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님 ]

오늘 본문에는 성도가 본받을 두 가지 대상이 나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를 가르치고, 우리의 영혼을 돌보는 목자들입니다. 특별히 본이 되는 목자는 아름다운 행실의 결말이 있는 분들입니다. ‘행실의 결말’은 죽음과 순교에 대한 완곡한 표현입니다. 곧 순교자의 최후는 우리의 신앙에 담력을 주며,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는 모습은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해줍니다. 우리는 이 같은 본을 보일 수 있는 목자를 달라고 겸손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도 다른 성도들에게 행실의 결말로 본이 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딤전 1:16). 그러나 영적 지도자에게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어제나 오늘이나 우리가 절대적으로 본받아야 할 분입니다. 이어서 기자는 수신자들에게 다른 교훈에 빠지지 말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다른 교훈’이란 ‘정결한 식물’에 대한 규례로 대표되는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받는다는  가르침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을 지키는 자기 공로로는 결코 마음을 굳세게 할 수 없습니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할 뿐이고(롬 3:20), 죄가 있을 때 마음은 낙심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시 40:12). 참으로 우리의 마음을 굳건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의지하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같은 겸손을 가장 아름답게 보십니다.

*나는 참된 영적 지도자와 영원토록 변함없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영문 밖으로 나아가자] 

예수님이 영문 밖에서 십자가를 지셨다는 사실은 히브리인 신자들에게 커다란 의미와 충격을 주는 사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막을 중심으로 형성된 진영에서 기거했습니다. 그들에게 영문 안은 안전을 보장해 줄 뿐 아니라 종교적인 성결을 제공해 주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영문 밖으로 나가는 것은 커다란 두려움과 수치였습니다. 이 같은 영문 안 중심의 생활은 유대교인들에게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구원관을 형성시켰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신자도 영문 안 중심의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교회는 개인적인 안녕과 배타적인 선민사상으로 뭉쳐진 기득권층의 공동체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영문 안이 아니라 버림받고 추방당한 자들이 사는 영문 밖에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좇는 신약 성도는 이기주의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세상으로 나아가 나눔과 섬김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히 13:16).

*나는 영문 밖으로 나아가는 신앙생활을 하기로 결정합니까?

 

<중보기도>

[미전도종족] 인도, 구르가온시의 줄라하족
구르가온에 사는 한 줄라하족 남성이 자신이 당한 일을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줄라하족이라는 이유로 제 딸이 파혼을 당해서 눈물 흘리며 가슴 아파하는 일을 결코 잊지 않을 겁니다. 제가 높은 위치에 있는 무슬림으로 실크를 생산하는 사업을 하며 줄라하인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저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낮은 카스트 무슬림에 대한 높은 카스트의 차별에 대해 전쟁을 선포하고자 단체를 설립했습니다. 그리고 이슬람 내에 차별은 없다고 하는 다른 무슬림들에게 공격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이슬람에 카스트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인도 무슬림에 카스트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수차례 차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크리스천들이 줄라하 무슬림들과 친구가 되어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을 보여주게 되도록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