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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8월 1일 inil.or.kr을 오픈 후 10년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우리가 꿈이나 꾸었겠습니까?

그러나 세월은 흘러 2013년 8월 1일 정확히 10년이 지났고
총동창회에서는 홈피 10주년 기념행사를 주관해 홈피를 사랑하고 참여하는 동문들이 모여 그 날을 기념하였습니다.

전국에서 홈피 생일을 해마다 기억하고 10주년행사까지 하는 동창회 있으면 어디 나와보라며

우리 각자가 자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은 금전적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우리 동창회 무형의 재산입니다.

 

많은 분들이 홈피에 참여하고 떠나고를 반복하며 흘러온 세월동안

각자의 감회도 클 것입니다만

저 역시  개인적으로 느끼는 소회가 남다름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가 없네요.

10주년 행사를 치루는 총동창회가 고맙고 정말 고마웠습니다.

 

처음엔 사진, 글등 홈피에 봉사를 많이 한 분들에게 고마운 마음으로 공로상을 수여하기로 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저 이름이 거론되며 공로상이라는 거한 상을 준다며 흘러다니는 풍문을 듣고 사실 좀 부담이 되더군요.

저는 홈피와 총동창회의 발전에 기여한 점을 인정받아 2005년 제 1회 인일의 밤을 치룰 때 300 여명이 모인 자리에서

이미 공로상을 받는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10주년이라는 이름때문에

저를 기억하여 초심을 기억하는 분들에 의한 추천이 있었던 듯합니다.

 

학자들의 명언을 굳이 빌어 보자면

영국 역사학자 E.H.Carr는 " 역사란 무엇인가" 라는 저서에서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 라고 했고

Anold Toinbee는  역사는 반복된다. 즉 역사는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거울이다,

즉 과거 현재 미래는 하나다 라고 했습니다.

 

2003년은 불과 10년 전의 과거이지만 2013년 현재와 소통하면서 또한 10년 후 미래의 우리 모습을 떠오르게 합니다.

여러가지 어려움도 있었지만 지금 현재를 보건대  인일홈피는 과거처럼, 현재처럼

분명 미래에도 글로벌하고 아름다운 공간이 될 것입니다.

 

부모없이 자식이 있을 수 없으며

시작이 없이 현재가 있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시작점인 그 시절 저와 함께 출산의 진통과 황무지에서 유를 창조하기 위해 고생을 했던 분들을

이 자리를 빌어 기억하고 제가 받은 공로상을 그분들과 함께 나누고저 합니다.

 

공로상에 대한 부분은 저에게 직접 전화나 구두로 전달받는 바가 없고 풍문으로만 들었기에

전날에야 비로소 초대의 연락을 메세지로 받고 갔던 터라 두서없이 몇마디 마이크를 잡고 이야기  했었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글을 쓸 기회가 없을 듯하여

이 자리를 빌어 고마우신 분들을 한분한분 떠 올려봅니다.

 

박광선 당시 총동창회장님, 당시 인일여고 교장 허회숙선배님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시작을 했기에

제가 어찌 두분 선배님을 잊을 수 있을까요. 박광선총동창회장님을 보필하여 홈피를 만들고 기초를 닸았다면

뒤를 이은 정외숙총동창회장님을 보필할 당시 미디어를 최대로 활용하여 디지털 동창회시대를 열며

처음으로 인일의 밤이라는 행사도 치루었고 확실히 커가는 홈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게시물이 별로 많지 않던 시절

컬럼란에 주옥같은 글로 게시물을 올려주었던 11. 강명희

저를 도와 알콩달콩 유머와 재치로 게시물을 만들던 안광희

14기 후배들 든든한 참여와 제고 21회들도 많이 참여했죠.

제고 인고 동산 등 타 학교 남학생들의 적극적인 inil.or.kr 참여와 홍보.

특히 제고 10회 남학생분들은 인일홈에서 젊은 오빠였지요.

해외동문들이 이때부터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해 글로벌 홈피가 되기 시작했구요.

3.송미선선배님은 당시로선 홈피의 대선배님으로서 큰 언니 역활을 든든히 해주셨습니다.

14.조인숙후배는  홈피때문에 목디스크 걸렸다 들었고, 누군 행주 태우기 일수고

홈피 보는 재미에 환자가 오는 것도 귀찮았다던 산부인과 전문의 *선배님 ㅋㅋ

아침에 눈 뜨면 PC 켜는 일이 우선시 했던 분들.. 아우 정말 즐거웠었던 시절이예요.

 

제가 잠시 2년간 홈피를 떠나 있긴했으나

김영주정보원장님의 등장으로 2008년부터 홈피는 제2의 변화기를 맞이했습니다.

컴퓨터교육의 정례화, 홈피 생일파티의 정례화, 신나는 댄스파티 등 기존에 경험하지 못한 신나는 일들이

이 때를 기준으로 많이 생겨났으니 기획력과 추진력 뛰어난

김영주전임정보위원장님이 공로상을 정작 받으셔야 했습니다.

 

원형교사에서 첫 컴퓨터교육을 싯점으로

서순하, 전초현. 이명연, 김자미 선배님처럼 기라성같은 감독님(^^)들이 많이 탄생하였고

교육 후 디카와 컴퓨터를 잘 활용하는 동문님들의 대거 등장으로 이분들 중 기수 게시판지기가 되어 활동하는 분들도 생겼습니다.

김은희, 한선민, 김성자, 임경선, 박화림, 김신애, 김자미, 방순옥, 김영희, 유선애 최인옥... (존칭 생략)

각 기수 회장은 임기가 되면 떠나가지만 게시판지기들의 무한봉사 바탕 위에 우리는 서 있습니다.

 

다소 늦게  참여였지만 오스트리아 김옥인선배님, 미국의 김혜경선배님은

예술 문화적으로 홈피를 레벨업 시켜주셨어요.

홈피를 기반으로 자동으로 결성된 소모임 봄날의 김순호선배님은

홈피에서 거의 상주하다싶이 하며 봄날회원들과 중년여성들의 삶의 진솔함을 많이 보여주셨습니다.

컴퓨터 활용에 괄목할만한 발전을 보이며 음악 미술 등 문화적 게시물을 올려주신 2.김은희선배님께서도

오랜 시간을 통해 우리를 레벨업시켜주셨으니 사람이 밥으로만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충족시켜주신 분들입니다.

2005년에 게시판지기가 되었던 한선민선배님은 오래 봉사를 했다하여   이번 행사에서 공로상을 받으셨고요.

있는 듯 없는 듯 2006년부터 게시판 지기가 되어 오래도록 4기게시판을 지켜주시고

그 어떤 사심없이 태그마당 게시판에 이미지를 꾸준히 올려주신 김성자선배님

 10주년을 맞이하여 모두모두 공로상 받으실 분들입니다.

 

미주동창회가 홈피를 통해 그 활약상이 공개되는 과정에서 10.김영자선배님 공이 컸습니다.

미주 행사  비디오 테이프를 태평양을 건너  공수하여  제가 그것을 편집하여 홈피에 올릴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한 김영자선배님께 감사하지요.

이후 집에서 편안히 앉아 미국의 이모저모를 실시간으로 볼 수있게 해준 김춘자,허부영선배님.

브라질 계실때 홈피에 등장하여 일약 스타가 되고,

그 기세를 몰아 미국으로 이주하여 미주동창회장님까지 된 조영희선배님.

미주 동창회 덕분에 인일홈은 럭셔리하고 글로벌한  세계적인 강남스타일 공간처럼 되었지요.

 

기억나는대로 호명하긴 했지만 빠진 분들 너무도 많을 것입니다.

2008년부터 자게판에 주옥같은 글을 올려주시는 도산학선배님을 비롯

최근들어 새로이 등장한 선후배 동문님들의 눈부신 활약을 보며

이제는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또 다른 홈피의 미래가 우리들 앞에 다가오고 있는 것이지요.

 

혹자는 그럽니다.

홈피를 누가 만들던 그게 뭐 그리 중요하냐고 다소 폄하성 말을 합니다.

저는 홈피를 만들었다는 인물로 기억되기 보다는

그 공간을 키워나가기 위해 발바닥 부르트게 뛰어다니며

초창기 3년의 시공간 속에 갇혀 있었던 아무개라는 한명의 동문으로

여러분들에게 기억되어지길  바래봅니다.

 

10주년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허회숙선배님, 박광선회장님 정외숙 회장님께서

행사에 함께 했으면 행사가 더 빛나고 더 좋았겠다 싶은 아쉬움이 살짝 있지만

꽃같은 시절 49세에 발 디딘 홈피에서 이제 59세의 초로의 여인이 되어

언젠가 우리 그렇게 모일날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미래를 꿈꾸어봅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이어주는 끊임없는 대화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