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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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8월 1일 inil.or.kr을 오픈 후 10년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우리가 꿈이나 꾸었겠습니까?
그러나 세월은 흘러 2013년 8월 1일 정확히 10년이 지났고
총동창회에서는 홈피 10주년 기념행사를 주관해 홈피를 사랑하고 참여하는 동문들이 모여 그 날을 기념하였습니다.전국에서 홈피 생일을 해마다 기억하고 10주년행사까지 하는 동창회 있으면 어디 나와보라며
우리 각자가 자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은 금전적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우리 동창회 무형의 재산입니다.
많은 분들이 홈피에 참여하고 떠나고를 반복하며 흘러온 세월동안
각자의 감회도 클 것입니다만
저 역시 개인적으로 느끼는 소회가 남다름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가 없네요.
10주년 행사를 치루는 총동창회가 고맙고 정말 고마웠습니다.
처음엔 사진, 글등 홈피에 봉사를 많이 한 분들에게 고마운 마음으로 공로상을 수여하기로 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저 이름이 거론되며 공로상이라는 거한 상을 준다며 흘러다니는 풍문을 듣고 사실 좀 부담이 되더군요.
저는 홈피와 총동창회의 발전에 기여한 점을 인정받아 2005년 제 1회 인일의 밤을 치룰 때 300 여명이 모인 자리에서
이미 공로상을 받는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10주년이라는 이름때문에
저를 기억하여 초심을 기억하는 분들에 의한 추천이 있었던 듯합니다.
학자들의 명언을 굳이 빌어 보자면
영국 역사학자 E.H.Carr는 " 역사란 무엇인가" 라는 저서에서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 라고 했고
Anold Toinbee는 역사는 반복된다. 즉 역사는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거울이다,
즉 과거 현재 미래는 하나다 라고 했습니다.
2003년은 불과 10년 전의 과거이지만 2013년 현재와 소통하면서 또한 10년 후 미래의 우리 모습을 떠오르게 합니다.
여러가지 어려움도 있었지만 지금 현재를 보건대 인일홈피는 과거처럼, 현재처럼
분명 미래에도 글로벌하고 아름다운 공간이 될 것입니다.
부모없이 자식이 있을 수 없으며
시작이 없이 현재가 있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시작점인 그 시절 저와 함께 출산의 진통과 황무지에서 유를 창조하기 위해 고생을 했던 분들을
이 자리를 빌어 기억하고 제가 받은 공로상을 그분들과 함께 나누고저 합니다.
공로상에 대한 부분은 저에게 직접 전화나 구두로 전달받는 바가 없고 풍문으로만 들었기에
전날에야 비로소 초대의 연락을 메세지로 받고 갔던 터라 두서없이 몇마디 마이크를 잡고 이야기 했었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글을 쓸 기회가 없을 듯하여
이 자리를 빌어 고마우신 분들을 한분한분 떠 올려봅니다.
박광선 당시 총동창회장님, 당시 인일여고 교장 허회숙선배님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시작을 했기에
제가 어찌 두분 선배님을 잊을 수 있을까요. 박광선총동창회장님을 보필하여 홈피를 만들고 기초를 닸았다면
뒤를 이은 정외숙총동창회장님을 보필할 당시 미디어를 최대로 활용하여 디지털 동창회시대를 열며
처음으로 인일의 밤이라는 행사도 치루었고 확실히 커가는 홈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게시물이 별로 많지 않던 시절
컬럼란에 주옥같은 글로 게시물을 올려주었던 11. 강명희
저를 도와 알콩달콩 유머와 재치로 게시물을 만들던 안광희
14기 후배들 든든한 참여와 제고 21회들도 많이 참여했죠.
제고 인고 동산 등 타 학교 남학생들의 적극적인 inil.or.kr 참여와 홍보.
특히 제고 10회 남학생분들은 인일홈에서 젊은 오빠였지요.
해외동문들이 이때부터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해 글로벌 홈피가 되기 시작했구요.
3.송미선선배님은 당시로선 홈피의 대선배님으로서 큰 언니 역활을 든든히 해주셨습니다.
14.조인숙후배는 홈피때문에 목디스크 걸렸다 들었고, 누군 행주 태우기 일수고
홈피 보는 재미에 환자가 오는 것도 귀찮았다던 산부인과 전문의 *선배님 ㅋㅋ
아침에 눈 뜨면 PC 켜는 일이 우선시 했던 분들.. 아우 정말 즐거웠었던 시절이예요.
제가 잠시 2년간 홈피를 떠나 있긴했으나
김영주정보원장님의 등장으로 2008년부터 홈피는 제2의 변화기를 맞이했습니다.
컴퓨터교육의 정례화, 홈피 생일파티의 정례화, 신나는 댄스파티 등 기존에 경험하지 못한 신나는 일들이
이 때를 기준으로 많이 생겨났으니 기획력과 추진력 뛰어난
김영주전임정보위원장님이 공로상을 정작 받으셔야 했습니다.
원형교사에서 첫 컴퓨터교육을 싯점으로
서순하, 전초현. 이명연, 김자미 선배님처럼 기라성같은 감독님(^^)들이 많이 탄생하였고
교육 후 디카와 컴퓨터를 잘 활용하는 동문님들의 대거 등장으로 이분들 중 기수 게시판지기가 되어 활동하는 분들도 생겼습니다.
김은희, 한선민, 김성자, 임경선, 박화림, 김신애, 김자미, 방순옥, 김영희, 유선애 최인옥... (존칭 생략)
각 기수 회장은 임기가 되면 떠나가지만 게시판지기들의 무한봉사 바탕 위에 우리는 서 있습니다.
다소 늦게 참여였지만 오스트리아 김옥인선배님, 미국의 김혜경선배님은
예술 문화적으로 홈피를 레벨업 시켜주셨어요.
홈피를 기반으로 자동으로 결성된 소모임 봄날의 김순호선배님은
홈피에서 거의 상주하다싶이 하며 봄날회원들과 중년여성들의 삶의 진솔함을 많이 보여주셨습니다.
컴퓨터 활용에 괄목할만한 발전을 보이며 음악 미술 등 문화적 게시물을 올려주신 2.김은희선배님께서도
오랜 시간을 통해 우리를 레벨업시켜주셨으니 사람이 밥으로만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충족시켜주신 분들입니다.
2005년에 게시판지기가 되었던 한선민선배님은 오래 봉사를 했다하여 이번 행사에서 공로상을 받으셨고요.
있는 듯 없는 듯 2006년부터 게시판 지기가 되어 오래도록 4기게시판을 지켜주시고
그 어떤 사심없이 태그마당 게시판에 이미지를 꾸준히 올려주신 김성자선배님
10주년을 맞이하여 모두모두 공로상 받으실 분들입니다.
미주동창회가 홈피를 통해 그 활약상이 공개되는 과정에서 10.김영자선배님 공이 컸습니다.
미주 행사 비디오 테이프를 태평양을 건너 공수하여 제가 그것을 편집하여 홈피에 올릴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한 김영자선배님께 감사하지요.
이후 집에서 편안히 앉아 미국의 이모저모를 실시간으로 볼 수있게 해준 김춘자,허부영선배님.
브라질 계실때 홈피에 등장하여 일약 스타가 되고,
그 기세를 몰아 미국으로 이주하여 미주동창회장님까지 된 조영희선배님.
미주 동창회 덕분에 인일홈은 럭셔리하고 글로벌한 세계적인 강남스타일 공간처럼 되었지요.
기억나는대로 호명하긴 했지만 빠진 분들 너무도 많을 것입니다.
2008년부터 자게판에 주옥같은 글을 올려주시는 도산학선배님을 비롯
최근들어 새로이 등장한 선후배 동문님들의 눈부신 활약을 보며
이제는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또 다른 홈피의 미래가 우리들 앞에 다가오고 있는 것이지요.
혹자는 그럽니다.
홈피를 누가 만들던 그게 뭐 그리 중요하냐고 다소 폄하성 말을 합니다.
저는 홈피를 만들었다는 인물로 기억되기 보다는
그 공간을 키워나가기 위해 발바닥 부르트게 뛰어다니며
초창기 3년의 시공간 속에 갇혀 있었던 아무개라는 한명의 동문으로
여러분들에게 기억되어지길 바래봅니다.
10주년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허회숙선배님, 박광선회장님 정외숙 회장님께서
행사에 함께 했으면 행사가 더 빛나고 더 좋았겠다 싶은 아쉬움이 살짝 있지만
꽃같은 시절 49세에 발 디딘 홈피에서 이제 59세의 초로의 여인이 되어
언젠가 우리 그렇게 모일날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미래를 꿈꾸어봅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이어주는 끊임없는 대화이니까요
영희 후배!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어떤 종류의 상이든 영민한 영희 후배의 실력과 공로를 인정 받았다고 생각되니
그 의미가 크다고 느껴집니다.
언제나 추억할 수 있는 내용물이 남아 있고
마음에 아무 건더기가 없어진 것 같다는 영희 후배의 맑은 스피치에
덩달아 내 마음도 행복해 지는 것 같습니다.
거듭 축하하며 앞으로도 홈피를 위해 많은 도움을 주리라 기대합니다.
.
엊그제 첨부파일이 안 올라간다고
저에게 메일로 보내주신 6. 김신애선배님께서 촬영하신 사진 두 장을 본문에 넣었습니다.
김신애선배님께서 사진을 화사하게 잘 찍어주셨네요
기념으로 잘 간직하겠습니다.
<자랑스런 11전영희 후배>, Lisa온, 전싸부께~
사이버 공간에 이토록 멋진 <인일의 광장>을 건축해 주셔서
참으로 남달리 행복하게 지냅니다.
자랑스럽기도 합니다. 늘- 감사합니다.
전영희님!
10년이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다닌 세월입니다.
그 세월이 어찌 짧다 할 수 있을까요?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수많은 일을 겪으며 그렇게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참으로 일을 많이 한 전영희 후배는 남들보다 몇 배의 삶을 살았다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열심히 산 전영희 후배......
고맙습니다.
축하합니다.
영원한 싸부 전영희후배!!
진심으로 공로패 받음을 추카드려요.
세월이 유수같다더니만 ~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하지않아요?
정말 빠르군요. 어제일같더니만~
추카추카!!! 드려요.
?전영희 후배야 말로
공로상 받을만 하지요.
축하 합니다.
사진에 모습에서 어제본듯 하네요.방가?♥
내가 게시판지기한 년도도
기억하네요.ㅋㅋ쌩유~~!!
뜨거운 여름 맘도몸도 건강하세요.바이~~!!
?영원한 인일홈피위원장전영희님,,,,,,,
인일홈피를 통해서
모든 인일들에게 기억될것입니다.
홈피를 낳고, 기르고, 당당히 올려놓으신 분!
당신으로 인해 우리 인일들이 얼마나 업!됬는지를,
당신으로 인해 우리 인일의 과거-현재-미래가
하나가 될수 있는지를,,,,,,,,
당신으로 인해 온 세계에 흩어졌던 인일들이
맨나둑 홈피라는 한자리에서 대화를
할수 있다는것을,,,
인일 모두가 한자리에서 대화할수 있는
이 홈피가 얼마나 귀한 황금알들을 마니
낳으며 인일의 역사를 만들어갈지를,,,,,,,,,,,,
우리 모두 기억할것입니다!!!
전영희 후배가 내 후배라는 게 자랑스럽다.
무엇이든 시작이 중요한 거라는데, 전 후배가 첫 삽을 뜨지 않았던들 이리 멋진 동창회 홈피가 탄생할 수 있었을까 싶네.
홈피를 자주 들어와 보는 편은 아니지만 들어올적마다 전영희 후배를 생각하지.
* 전영희의 가치를 인정하여 감사패를 수여한 집행부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오랫만에 들어온 김에 <컬럼>란에 수필 하나 놓고 감.
인일홈피 공로에관하여는 세월과 시간과 기록이 역사라는 긴시간속에
있다해도 당연 전영희 빠질수가없지요 ~~축하 합니다~~~
사람은 공로상이요 ~~그 공로 수상자의 글은 또다른 대상감입니다.
진작 받았어야 할 공로상이건만 10주년을 맞아서 받는 그 공로상이 더 빛나리라 믿어요.
인일 홈피탄생을 갖게해 줌에 늘 감사하고 있어요.
국내는 물론 해외의 동문들까지 만날 수 있게됨에 다시 감사하다는 인사하고 싶어요.
컴맹에서 탈피할 수도 있었고
컴 앞에서의 시간이 늘어나기 시작한지 몇 해가 되었군요.
인일 홈피하면 전영희후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는 걸 알고 남지요.
공로상 수상을 다시 한 번 더 축하해요.
홈피하면
전영희위원장, 김영주위원장이 제겐 눈 감고도 떠 오릅니다.
우리 손녀딸 꽃순이가 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부터 시작 했으니
그 놈이 초딩 2학년 9살이니 10년이 꼭 맞습니다.
처음에는 컴에 빠져 빨래 삶는 것도 좀 태우고
눈뜨면 컴 틀어 놓고 하도 재미있어서 컴 중독이 되었고
(제가 원래 읽는 것 을 좀 좋아하다 보니).
인일여고 4행시를 읽다가 하도
똑똑한 후배가 많아 그 남편들은 참 골 좀 아프겠다.
울 가장에게 당신은 아주 평범한 나를 만난 것을 아주 큰 복으로 아슈!
하다가 누가 나더러 그런 걱정하랬남?
워드만 치다 이모티콘, 사진올리고, 나의 불러그 만들고 실력이 늘었고..
문화쎈타에서 몇 개월 배웠는데
한선민씨는 가끔 결석도 잘 하면서도 어쩜 그리 총명하시네요?
그런 소리도 들어봤고
다 전샘 제자라서 그랬습니다.
10주년 공로상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좋은 벗 하나 열 형제 보다 낫다는 소리가 있습니다.
홈피로 인하여
훌륭한 선배 후배 전샘에게 생긴 벗들~
얼마나 소중합니까?
발로 뛰고 고생한 보람도 있고...
더욱 축하드립니다.
3기에서는 박광선선배님, 조영희선배님, 송미선선배님이 2003년에 회원가입을 하셨었습니다
그 때는 회원이 많지 않던 시절이라 한분 한분이 소중했었죠.
초창기이기 때문에 회원가입한 년도까지 기억나네요
특히 세분 선배님은 2003년~ 2004년 제가 홈피를 이끌어가는데 큰 힘을 주셨던 분들입니다
정말 오랜 세월 3기 선배님들과의 인연입니다.
송미선선배님의 유려한 글 솜씨, 박광선선배님의 유머있는 글로 인해 3기는 늘 제고선배님들이 많이 오셨었죠.
그로부터 1년 후
어느정도 홈피가 궤도에 오르고 무르익을 무렵
2004년에 말에 한선민선배님이 회원가입을 하셨고요.
송미선선배님과 함께 힘을 합쳐 3기 게시판을 잘 이끌어주셨던 것 늘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송미선선배님과 밤늦게까지 전화통화하며 여러가지 홈피 운영에 대해 어려움을 이야기하던 것이 바로 엊그제 일 같습니다
2005년부터 게시판지기를 맡으시어
매번 힘들다 힘들다 하시면서도
긴 세월 게시판지기 하시느라 고생 많으셨는데
이번에 수상을 하셨으니 축하드립니다.
제가 성격이 알콩달콩하지 못하여 표현이 서툴지만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건강을 이유로 저도 되도록 컴퓨터를 멀리 하고 있습니다
선배님께서도 연세가 있으시니 건강을 생각하시고 너무 무리 하지 마시어요.
주말 삼일간의 손주와의 씨름이 끝나고 홈피도 열어봅니다.
상단에 있는 "시작없는 현재와 미래는 없다" 로 눈길이 갑니다.
그간 십년의 인일홈피의 역사를 정리해 주는듯 간략하게나마 쓴 글을 읽어내려 가노라니
내 이름도 거명을 했네요.
송구하네요 전영희후배.........................좋게 봐주니..............
개인적으로도
그동안 9년여 동문홈피로 인해 이런저런 많은 일들이 있었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다 사람사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이곳 홈피에서도 역시 일어나는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좋은일로는 첫번째로는 모르던 동문들 중에 개인적으로 인연이 맺어져서 마음 한편에
오랜동안 항상 변함없이 자리를 잡고있는 소중한 사람을 알게되었다는 일입니다
만날땐 살을 베어 줄듯 하다가도 등 돌릴땐 칼 바람이 나게 돌아서는일이 다반사인 가운데서도
그저 잔잔하게 오가는 정을 알게 해준 인연이 귀중하다는 것을 알도록 해주었지요
실은 오늘 좀 일찍 영희후배글에 글을 쓰려는데 미국사는 친구가 전화를 주어서 이제서야 다시 컴앞에 앉았읍니다.
내가 홈피에 흔적을 안 남기면 아픈가 걱정이 된다는 내용과 더불어 집안식구들 건강 염려와
이런 저런 사는 이야기로 끝이 안납니다.
그러니 어느때는 홈피에서 그동안 잘 지냈으니 이 정도면 그만 둘 때도 되었다 하다가도
다시 핑계삼아 홈피에 흔적을 남기게됩니다........홈피 중독!!!...ㅎㅎㅎ
두번째로 좋은일은
내가 좋아하는일을 나도 공부할겸 겸사겸사 한 일들인데 좋아해주는 친구들과 후배들 격려에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는것입니다.
그리고 전 영희 후배가 시작한 홈피가 있어 김 은희라는 이름으로 소모임에서 후배들과 좋은 시간도 오래도록 가졌으니
그 일 하나만이라도 행복했던 시간이였읍니다.
십주년기념을 기해 영희후배가 마음 가벼워 졌다니 무엇보다 잘 된일이고 고마운일입니다.
나 또한 아주 편한 마음으로 지낼것 같아 앞으로 더 행복할것같습니다.
좋았던 일만 기억하도록 영희후배 우리 노력해요.
그리고 다시 명심해야 할 이 말 잊지말자구요.
기본적으로
친구를 선택하는
기준은 어디에 두어야 할까?
성실한 사람이다.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거나
혹은 다른 사람을
따돌리거나
이용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다.
김은희선배님 안녕하세요? 더운 날씨에 어찌 지내셨는지요.
선배님의 마지막 글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가끔은 동창회에서 정치권의 행태와 비슷한 부분을 경험했었죠.
예전이나 지금이나 자신의 이익과 편리를 위해 집권자를 쫒아 철새처럼 흘러다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몸이 힘들었던 순간보다
이러한 사람에 대한 실망감이 더 컸던 순간들이 있습니다.
16세 여고시절 그 때 그마음으로 홈피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즐거웠던 시절이었지만
사이트가 점점 발전하고 커지니 결국 패거리가 형성되더라구요.
그러면서 홈피를 떠나는 사람들도 많아졌었죠.
정말 아쉬운 부분이라 아니할 수 없어요.
댓글이나 본문 글을 보면 글 쓴 사람의 의도를 대충은 맞히는 정도까지 되었는데
우스개 소리로 남산에 돗자리 깔고 앉아도 되겠다는 소리도 들었죠.
글과 사람의 인성이 다름을 많이 보면서
순수성을 잃어가는 홈피에 안타까움도 있었지만
위와 같은 문제는 누가 걱정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그저 인간세상에서 일어나는 각종 인간적인 문제들과 다름이 없음을 인정하면 마음이 편해질 거 같아요
인일에 대한 정의는 그 누구도 함부로 정의내려서는 안된다는 생각입니다.
모두가 다름이 있기 때문이죠.
그런면에서 어떤 종류의 사심없이
선배님이 올려주시는 각종 글 음악 등 우리를 풍성하게 해주시는 내용들을 좋아하는 팬들이 많으신 거 같아요.
2기 게시판지기 오래하셨는데
선배님이야 말로 진정 공로상받으실 분이셔요.
사람들 모두 알고 있어요.
선배님...
공로상 수상을 엄~~~~~~청 축하드립니다..
감회도 많으시고.. 추억거리도 많으시겠지요~~
입문한지 얼마 안되는 저로서는
그 많은 선배님들의 활동,,, 열의.... 뭐라 다 말을 못하지요~~^^
그저 한아름 꽃다발을 드리고 싶습니다~~~~
홈피가 있어서 참 좋습니다~~~
inil.or.kr 10주년에 즈음하여 (2)도 나오나요~~~~??
??나의 영원한 저녀니 리자 샘~~~~~
공로상 수상을 축하 합니다!!
천방 지축 세상물정 모르고
인터넷 정보 바다에 무식의 극치를 이루던 저는
리자샘이 인일 홈피를 만든 초창기에
하룻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늦게 배운 도둑 날새는 줄 모르면서
오로지 열정 하나먼으로 밤 낮 없이 덤벼든 시절이 얻그제 같은데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네요!
인일 홈피를 통해 만난 천사 같은 선후배와 동문애를 나누며
어느새 살붙이 보다도 더 진한 사랑을 나누게 된 정을
오로지 리자 샘 덕이라 생각합니다.
늘 전 감사한 마음을 리자샘에게 갖고 있다는것을
다시 한번 전하고 싶습니다.
초창기의 열정은 세월과 더불어 삭아진듯 하지만
인일 홈피 사랑은 여전 하다고 고백합니다.
리자 샘~~~
사랑합니다.!~~
이렇듯 홈피에서 고참 선배님들이 쏙쏙 등장하시니 기분이 좋네요
예전에 홈피 등장하는 모든 선후배들이 한가족이었죠
11.강명희도 컬럼란에 다시 왔던데 예전같은 으쌰~ 분위기가 아니라 서먹한가봐요.
요즘은 사람이 많아지다보니
아무래도 그룹그룹 나누어지게 된 것은 참 아쉬운 부분이예요.
홈피가족 전체가 으쌰으쌰 몰려다디던 때가 전성기였죠.
정말 사연도 많고 탈도 많던 순간순간
큰 의지가 되어주졌던거 감사드립니다.
3기는 송미선선배님 덕분에 활성화되었죠
여러차례의 "광" 번개를 주선해주신 것도 바로 선배님이셨어요
그 때 에너지를 팍팍 얻어 더 뛰어다녔죠.
박광선선배님께서도 축하의 메일을 주셨습니다
정말 고마우신 3기선배님들이세요
사업 잘 되시고 항상 건강하시구요
동인천 지나는 길이 있을 때 들릴께요
선배님이야말로 10주년에 공로상을 받으셔야 했습니다.
전영희 선배님,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제 축하가 혹시 어색하지는 않으시죠?
제 신명이 베드로 입니다.
베드로는 반석이라 하지요.
각 나라가 건국 신화를 중시하듯
홈피탄생의 산파역이자 개국공신인 전선배님의 수상이
늦은 감이 있으나 당근 그리고 마땅히 받을 자격이
필요충분이시지요.
선후배님들을 배려하는 주축돌이 되셨습니다.
이웃 사촌이 놀러와 네티즌의 에티켓을 잘 몰라
사진을 도용하는등 좌충우돌 천방지축일 때 조용히
쪽지로 불러 혼도 났지만
그게 가르치심이요 깨달음이었죠.
다시 한 번 수상을 축하드리며
리사누나,(공식적인 자리에서 처음 불러봄, 그만큼 간이 커졌다는 이야기?)
수상 기념으로 자연의 친구, 생명의 친구인 동그라미를 그리려
어느 좋은 날에 라이딩을 같이 하시죠.
아름다운 날의 곡차와 안주는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휴우 더운날~
트럼펫부는 약사로 페이스북에선 이미 유명인사인 윤후배가 축하해 주니 기쁨이 두배가 되네요.
우리 페이스북에서 매일 만나는데 여기서 요래오래 만나니 반가움이 더 큽니다.
윤후배 덕분에 인일홈을 거쳐간 남학생들 이름을 한분한분 머리 속에 떠 올립니다.
홈피 만들고 각 학교동창회에 홍보를 시작하자 마자
인일인보다 더 들떠서 인일홈을 드나들던 많은 남학생들,
인일홈의 발전엔 그분들의 공도 무척 큽니다.
무진장 많아서 일일이 거명하기 뭣하지만 윤후배의 축하를 받으며
그 남학생들도 모두 인일홈에서 느꼈던 크고작은 기억을 소중히 간직하길 바래봅니다.
언제든 불러주면
동그라미도 접수하고
곡차와 안주도 접수하고요
제가 존경하는 선배님 중 한분이 축하 메일을 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홈피 20주년 때 꼭 만나자고. ㅋㅎㅋㅎ
20주년이면 저는 69세가 되고 그 선배님은 70세 후반이 되실겁니다.
우리모두 그 때까지 생존해 있다면,
그리고 홈피 생일이 크든 작든 매년 치루어진다면
불가능하지도 못할 일이지요.
상상과 희망은 늘 즐겁고 행복하며
미래도 분명 시작점처럼 행복한 시간이 될 것입니다.
홈피에 축하의 댓글 주신 분들,
카톡 국제전화 주신분들
국내에서 전화주신분들
문자 메세지 주신 분들
모두모두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정말 20주년 때는 위의 분들 모두 만날 수 있는
흥겨운 홈피 생일파티를 기대해 봅니다.
리자온니 ~!
내가 홈피에 상주하는것 오찌 아셨대?ㅋㅋ
(나는 그때 직장은 때려치우고 늘 빨리 집에 오고 싶었답니다.
빨리 홈에 들어오고 싶어서리....ㅎ)
그간 애 많이 썼어요.
뭐니뭐니해도 리자온니 덕분에 우리는
화려한 50대와 60대를 보내고 있지요.
오늘도 눌러 앉아 사사조를 읽는데
너무도 그때 생각이 간절해 눈물이 나려 합디다.
우리 <봄날>은 순전히 리자온니 덕분에
이만큼 큰것이지요.
태동부터 지켜주고 북쳐주고 장구쳐주고....
모르는것 있으면 시도 때도 없이 쪽지 보내면
한번도 귀찮아 하지않고 늘 친절하게 알려주신 우리 샘~!
그간의 노고에 감사하고 앞으로도 부족한것 있으면
계속 옆에서 지켜주시며 알켜주세요~~~~딸랑딸랑
요즘처럼 스마트폰이 있어서 외부에서도 게시물을 볼 수있는 시절이 아니라 집에 와서 컴을 켜야만 했기에
어떤 후배는 남편이 집에서 게시판 보고 전화로 아내에게 실시간 전달을 하는 추억어린 사연도 있었지요
한손에는 마우스를 , 한손에는 빵을 !
5봄녀의 가출처럼 그 때 우리 모두는 홈피에 완전 중독되었던 시절이었던 생각이 생생합니다.
밤이고 낮이고 시도 때도 없이 모두가 들락거렸던 시절이었죠
사실 고백컨데 어떻게든 사람들을 홈피에 상주시키기 위해 꼼수를 생각던차
마침 봄날이 으쌰으쌰 하길래 봄날 게시판 만들어 드렸던거예요.
각종 소모임을 만들게 하려고 했더니 저절로 여사모나, 골프클럽도 신청을 해오더군요.
그 팀들도 이것저것 쫒아다니며 사진도 찍어주고 도와드렸죠.
오로지 일념은 홈피에 게시물이 많아야 사람들이 많이 들어오는고로 그거 하나만 생각하고 뛰어다녔던 시절입니다.
그 때는 댄사모등 각종 소모임 만들려고 사람들 소스를 찾아다녔는데
이상하게 당시 이후는 IICC만들어진 것 외에는 모두들 몸을 사리더라구요.
다른 소모임은 사진 올리기는 것 외에는 오프라인 위주로 모이기 때문에
진정 봄날의 위대한 탄생은 홈피의 커뮤니티 발전에 눈부시게 기여를 했습니다.
한영애의 봄날은 간다~ 의 봄날보다 보다 인일의 봄날이 진정 오리지날 같습니다.
요즘 봄날 회장직무를 내려 놓으시니 날개를 다신 듯 보여요.
그래도 봄날 태동의 산파이신 선배님(대장님)이 있어야
봄날은 영원 할 것입니다.
사사조 시작하던때가 눈물나게 생각나지요
오프라인의 일상 대화도 사사조로 할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지금까지 봄날의 초심을 기억하는 회원들에 의해
사사조 그 명목을 이어가주니 정말로 고맙습니다.
요리보고 조리봐도 봄날하면 순호대장
가는세월 어쩌겠소 초심으로 웃어보세
문득그대 생각나면 사사조로 추억하고
문득리자 생각커든 나즈막히 불러줘요
진심다해 감사하여 눈물나게 그립니다.
공로상은 마땅지사 봄날에게 주어야죠
전영희 전 정보위원장님!
오늘은 이렇게 전 이라는 단어를 앞세워 예전의 칭호로 불러드리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과연 어느 누가 이리 지난 10년의 역사를 바로 어제 얘기인냥 술술 쓰겠어요.
위에서 글을 죽 내려오며 찬찬히 읽다보니 제가 가입하기전 일들이 동영상이상으로 펼쳐지는군요.
그리하여 담당할때 직위로 불러지네요^^
제가 2009년 5월에 가입하였으니 어연 4년하고도 3개월째에요.
저도 처음에 가입해서는 거히 올인하다시피했었는데... ㅎㅎ
2년전 부터 어느 순간 회의가 생기면서 주춤해지며 점점 뜸해지더라구요.
그러나 항상 관심은 두고 있어요.
요즘은 출타중에도 눈팅은 되잖아요?
조금만 성의가 있으면 단문으로 댓글도 달수도 있고요 ^^
정말 올려주신 글을 읽으면서 노스탈지에 젖어봅니다. 감사해요.
그리고 윗사진에서 웃는 환한모습이
정말 마음이 날아 갈듯 편한 모습이네요.
축하드립니다.
막바지 더위가 기승을 부리네요
불러주시고 축하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김옥인선배님,
2009년이후에 등장하신 선배님들 중 눈부시게 홈피를 꾸려주신 분들 몇분 중 으뜸이시지요.
가보지도 않은 오스트리아가 바로 옆집처럼 가까이 느끼도록 해주셨으니 말예요.
사진이 예쁘다 해주시니 저도 다시한번 마우스로 올라가 제 얼굴을 보았답니다.
어느 세월이 되면 선배님과 둘이 찍은 사진이 있을라나요
제가 오스트리아로 가던지 아님 선배님이 한국에 오시던지.
아님 사진을 짤라서 합성을 한다면? ㅋㅌㅋㅌㅋㅌ
흑해에서 시작해 다뉴브강을 따라 쭈욱 4개국을 거쳐 여행하는 크르즈유람선을 TV에서 보았어요.
물론 선배님을 떠올리면서요.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것은 분명 축복일겁니다.
앞으로도 자주 홈피에서 뵈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IICC에서나 등장하니 종종 놀러오시구요.
감사합니다
하이고마 눈물나게 그리워라 우리봄날
첫상면에 이리뛰고 저리뛰며 중계방송
해주시던 리자온니 정성속에 아홉살이
되었다오 바람불면 꺼질세라 비내리면
쓰러질라 지켜주던 그대정성 뉘모를까
우리자칭 무수리들 집합체라 입맞추며
이리저리 몰려가서 흥미진진 수다풀때
고래등짝 기와집에 문패달아 등기내줘
우린지금 이방저방 별채꾸며 한바퀴를
돌으려면 치마꼬리 휘감고서 어화둥둥
한나절이 걸린다네 윗쪽으론 언니들에
아래로는 동생들에 동문사랑 어디가리
리자온니 염려마오 그대정성 생각하여
우리서로 끌어안고 봄날내내 지키리다.
아이코! 짧게 써야지 했는데 쓰다보니 글이 길어졌어요
호명한다고 했는데 혹시 빠져 섭섭한 분들 계실지도 모르는데 죄송합니다.
혹시 내용 중에 잘 못 기술된 부분이 있을 수도 있으나
제 관점에서 쓴 것이므로 이해를 구합니다.
과거사를 보건대
화장실 들어갔다가 웬지 뒤를 깨끗이 닦지 않고 나왔을 때 찜찜했던 것처럼
여러 우여곡절 탓인지
제 마음 속 한 구석엔 홈피를 생각하면 그러한 부분이 늘 존재했던 것 같아요.
세월 이기는 장사 없다고
40대 말 50대 초,중반의 젊은 혈기는 온데간데 없고
10주년이라는 방점을 찍으며
마음 속에 응어리들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게 사라져 버리네요.
이런 감정 뭐지?
이 부분은 공로상이라는 것과는 전혀 별개의 것으로
이런 현상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며
결국 세월의 힘이라는 결론에 이르러 봅니다.
원든 원하지 않았던 49세에 인일 총동피와 맺었던 인연은
제 인생 중 부정할 수 없는 한토막이 되었고
이제는 방랑 김삿갓처럼 지팡이 하나 짚고 훨훨 갈지라도
아쉬움, 원망, 분노, 기타 안 좋은 기억보다는
남자들이 군대갔다온 이야기만 나오면 침튀기면 이야기 하듯
그래도 제 인생에 추억할 수 있는 내용물 하나는 남겼다는 사실로 만족하는 거죠
어쩌면
마음이 편안해졌다기 보다는
마음에 아무 건더기가 없어졌다는 게 맞을 겁니다
어쩌면 조기 치매가 왔는지도...^^
아무 생각이 나질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