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본향을 찾는 사람들

히브리서 11:11-16

 관찰본문

[사라의 믿음]

11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12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

11 By faith Abraham, even though he was past age--and Sarah herself was barren--was enabled to become a father because he considered him faithful who had made the promise. 12 And so from this one man, and he as good as dead, came descendants as numerous as the stars in the sky and as countless as the sand on the seashore.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는 믿음의 사람들]

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14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15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13 All these people were still living by faith when they died. They did not receive the things promised; they only saw them and welcomed them from a distance. And they admitted that they were aliens and strangers on earth. 14 People who say such things show that they are looking for a country of their own. 15 If they had been thinking of the country they had left, they would have had opportunity to return. 16 Instead, they were longing for a better country--a heavenly one. Therefore God is not ashamed to be called their God, for he has prepared a city for them. 

 

 

 

 해석도움

[사라의 믿음]

저자는 아브라함에 이어 사라의 믿음에 대해 소개합니다. 사라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였고, 나이가 많아서 단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하나님의 미쁘심을 아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잉태할 힘을 얻었습니다(11). 사실 사라는 한때 자신이 잉태하리라는 말을 웃음으로 넘겨버렸던 적이 있었습니다(창 18:13). 하지만 그녀는 곧 아브라함의 믿음에 동의했고, 그 믿음의 힘에 자신을 맡겼습니다. 본문에 나타난 ‘사라 자신도’라는 표현은 이 같은 변화를 증명합니다. 그리하여 죽은 자처럼 되었던 아브라함 부부는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와 같이 셀 수 없이 많은 후손들의 조상이 되었습니다(12). 의심에서 온전한 믿음으로 전환한 사라의 모습은 신앙에서 쉽게 불신앙으로 되돌아가는 우리에게 도전을 줍니다.   

*오늘도 온전한 믿음을 사모하며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시겠습니까?

 


[본향을 찾는 사람들]

가나안 땅에 도착했던 아브라함 부부와 이삭과 야곱은 모두 현실적으로는 약속의 실현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 약속의 성취는 일차적으로 가나안 땅을 유업으로 얻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나 보다 근본적인 것은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성취된 구원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그들의 믿음은 수그러들지 않았고, 도리어 임종의 시간이 다가올수록 더욱 뚜렷이 보고 환영했습니다. ‘환영’이란 반가움에 환성을 지르며 품에 끌어안는 것을 말합니다. 가나안 땅에 도착한 아브라함(창 23:4), 이삭(창 28:4), 야곱(창 47:9)은 평생 자신을 외국인과 나그네라고 자칭하고 살았습니다. 이것은 자신들이 도착한 가나안 땅을 고향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렇다고 이 말이 그들이 떠나온 갈대아를 고향으로 생각했다는 말은 더더구나 아닙니다. 만약 그들이 갈대아를 고향으로 생각했다면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생각한 목적지는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이처럼 믿음의 조상은 본향을 갈망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을 가리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출 3:6,15-16)이라고 일컬음 받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본향을 사모하는 자들의 하나님으로 일컬음을 받으십니다. 그리고 그들의 기대를 부끄럽게 하지 않으시고 그들을 위해 처소를 예비하십니다.

*나의 영원한 본향인 하늘나라를 갈망하며 오늘도 기쁨과 소망으로 살기로 결정하시겠습니까?

 

 

 

<중보기도>

[미전도종족] 인도, 구르가온시의 다누크족

샤히나는 이웃집의 대문을 쳐다보기 위해 멈춰 섰습니다. 그곳은 악령을 쫓기 위한 대추나무 가지와 버려진 신발들로 난장판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녀는 중얼거렸습니다. “아기가 태어났군! 산모가 아들을 낳은 것이 틀림없어. 아기가 행운을 얻도록 숫염소로 희생 제사를 드리고 아기에게 주문을 외워줘야겠어.”

샤히나는 힌두교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전통 신앙인 마술과 악령을 다루는 주문 등을 믿습니다. 그녀는 자신을 사랑하는 구세주에 대한 지식이 없으며 그녀에게 복음을 전해줄 그리스도인 이웃도 없습니다. 어린이 노동, 가난, 문맹 그리고 남자들에게 있는 알코올 중독이 그녀의 희망 없는 세계의 전부입니다. 복음이 전파될 때 이들의 마음이 복음의 약속에 열리도록 기도합시다.
본향을 찾는 사람들

히브리서 11:11-16

 관찰본문

[사라의 믿음]

11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12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

11 By faith Abraham, even though he was past age--and Sarah herself was barren--was enabled to become a father because he considered him faithful who had made the promise. 12 And so from this one man, and he as good as dead, came descendants as numerous as the stars in the sky and as countless as the sand on the seashore.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는 믿음의 사람들]

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14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15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13 All these people were still living by faith when they died. They did not receive the things promised; they only saw them and welcomed them from a distance. And they admitted that they were aliens and strangers on earth. 14 People who say such things show that they are looking for a country of their own. 15 If they had been thinking of the country they had left, they would have had opportunity to return. 16 Instead, they were longing for a better country--a heavenly one. Therefore God is not ashamed to be called their God, for he has prepared a city for them. 

 

 

 

 해석도움

[사라의 믿음]

저자는 아브라함에 이어 사라의 믿음에 대해 소개합니다. 사라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였고, 나이가 많아서 단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하나님의 미쁘심을 아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잉태할 힘을 얻었습니다(11). 사실 사라는 한때 자신이 잉태하리라는 말을 웃음으로 넘겨버렸던 적이 있었습니다(창 18:13). 하지만 그녀는 곧 아브라함의 믿음에 동의했고, 그 믿음의 힘에 자신을 맡겼습니다. 본문에 나타난 ‘사라 자신도’라는 표현은 이 같은 변화를 증명합니다. 그리하여 죽은 자처럼 되었던 아브라함 부부는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와 같이 셀 수 없이 많은 후손들의 조상이 되었습니다(12). 의심에서 온전한 믿음으로 전환한 사라의 모습은 신앙에서 쉽게 불신앙으로 되돌아가는 우리에게 도전을 줍니다.   

*오늘도 온전한 믿음을 사모하며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시겠습니까?

 


[본향을 찾는 사람들]

가나안 땅에 도착했던 아브라함 부부와 이삭과 야곱은 모두 현실적으로는 약속의 실현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 약속의 성취는 일차적으로 가나안 땅을 유업으로 얻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나 보다 근본적인 것은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성취된 구원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그들의 믿음은 수그러들지 않았고, 도리어 임종의 시간이 다가올수록 더욱 뚜렷이 보고 환영했습니다. ‘환영’이란 반가움에 환성을 지르며 품에 끌어안는 것을 말합니다. 가나안 땅에 도착한 아브라함(창 23:4), 이삭(창 28:4), 야곱(창 47:9)은 평생 자신을 외국인과 나그네라고 자칭하고 살았습니다. 이것은 자신들이 도착한 가나안 땅을 고향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렇다고 이 말이 그들이 떠나온 갈대아를 고향으로 생각했다는 말은 더더구나 아닙니다. 만약 그들이 갈대아를 고향으로 생각했다면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생각한 목적지는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이처럼 믿음의 조상은 본향을 갈망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을 가리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출 3:6,15-16)이라고 일컬음 받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본향을 사모하는 자들의 하나님으로 일컬음을 받으십니다. 그리고 그들의 기대를 부끄럽게 하지 않으시고 그들을 위해 처소를 예비하십니다.

*나의 영원한 본향인 하늘나라를 갈망하며 오늘도 기쁨과 소망으로 살기로 결정하시겠습니까?

 

 

 

<중보기도>

[미전도종족] 인도, 구르가온시의 다누크족

샤히나는 이웃집의 대문을 쳐다보기 위해 멈춰 섰습니다. 그곳은 악령을 쫓기 위한 대추나무 가지와 버려진 신발들로 난장판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녀는 중얼거렸습니다. “아기가 태어났군! 산모가 아들을 낳은 것이 틀림없어. 아기가 행운을 얻도록 숫염소로 희생 제사를 드리고 아기에게 주문을 외워줘야겠어.”

샤히나는 힌두교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전통 신앙인 마술과 악령을 다루는 주문 등을 믿습니다. 그녀는 자신을 사랑하는 구세주에 대한 지식이 없으며 그녀에게 복음을 전해줄 그리스도인 이웃도 없습니다. 어린이 노동, 가난, 문맹 그리고 남자들에게 있는 알코올 중독이 그녀의 희망 없는 세계의 전부입니다. 복음이 전파될 때 이들의 마음이 복음의 약속에 열리도록 기도합시다.
본향을 찾는 사람들

히브리서 11:11-16

 관찰본문

[사라의 믿음]

11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12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

11 By faith Abraham, even though he was past age--and Sarah herself was barren--was enabled to become a father because he considered him faithful who had made the promise. 12 And so from this one man, and he as good as dead, came descendants as numerous as the stars in the sky and as countless as the sand on the seashore.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는 믿음의 사람들]

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14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15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13 All these people were still living by faith when they died. They did not receive the things promised; they only saw them and welcomed them from a distance. And they admitted that they were aliens and strangers on earth. 14 People who say such things show that they are looking for a country of their own. 15 If they had been thinking of the country they had left, they would have had opportunity to return. 16 Instead, they were longing for a better country--a heavenly one. Therefore God is not ashamed to be called their God, for he has prepared a city for them. 

 

 

 

 해석도움

[사라의 믿음]

저자는 아브라함에 이어 사라의 믿음에 대해 소개합니다. 사라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였고, 나이가 많아서 단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하나님의 미쁘심을 아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잉태할 힘을 얻었습니다(11). 사실 사라는 한때 자신이 잉태하리라는 말을 웃음으로 넘겨버렸던 적이 있었습니다(창 18:13). 하지만 그녀는 곧 아브라함의 믿음에 동의했고, 그 믿음의 힘에 자신을 맡겼습니다. 본문에 나타난 ‘사라 자신도’라는 표현은 이 같은 변화를 증명합니다. 그리하여 죽은 자처럼 되었던 아브라함 부부는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와 같이 셀 수 없이 많은 후손들의 조상이 되었습니다(12). 의심에서 온전한 믿음으로 전환한 사라의 모습은 신앙에서 쉽게 불신앙으로 되돌아가는 우리에게 도전을 줍니다.   

*오늘도 온전한 믿음을 사모하며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시겠습니까?

 


[본향을 찾는 사람들]

가나안 땅에 도착했던 아브라함 부부와 이삭과 야곱은 모두 현실적으로는 약속의 실현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 약속의 성취는 일차적으로 가나안 땅을 유업으로 얻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나 보다 근본적인 것은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성취된 구원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그들의 믿음은 수그러들지 않았고, 도리어 임종의 시간이 다가올수록 더욱 뚜렷이 보고 환영했습니다. ‘환영’이란 반가움에 환성을 지르며 품에 끌어안는 것을 말합니다. 가나안 땅에 도착한 아브라함(창 23:4), 이삭(창 28:4), 야곱(창 47:9)은 평생 자신을 외국인과 나그네라고 자칭하고 살았습니다. 이것은 자신들이 도착한 가나안 땅을 고향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렇다고 이 말이 그들이 떠나온 갈대아를 고향으로 생각했다는 말은 더더구나 아닙니다. 만약 그들이 갈대아를 고향으로 생각했다면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생각한 목적지는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이처럼 믿음의 조상은 본향을 갈망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을 가리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출 3:6,15-16)이라고 일컬음 받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본향을 사모하는 자들의 하나님으로 일컬음을 받으십니다. 그리고 그들의 기대를 부끄럽게 하지 않으시고 그들을 위해 처소를 예비하십니다.

*나의 영원한 본향인 하늘나라를 갈망하며 오늘도 기쁨과 소망으로 살기로 결정하시겠습니까?

 

 

 

<중보기도>

[미전도종족] 인도, 구르가온시의 다누크족

샤히나는 이웃집의 대문을 쳐다보기 위해 멈춰 섰습니다. 그곳은 악령을 쫓기 위한 대추나무 가지와 버려진 신발들로 난장판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녀는 중얼거렸습니다. “아기가 태어났군! 산모가 아들을 낳은 것이 틀림없어. 아기가 행운을 얻도록 숫염소로 희생 제사를 드리고 아기에게 주문을 외워줘야겠어.”

샤히나는 힌두교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전통 신앙인 마술과 악령을 다루는 주문 등을 믿습니다. 그녀는 자신을 사랑하는 구세주에 대한 지식이 없으며 그녀에게 복음을 전해줄 그리스도인 이웃도 없습니다. 어린이 노동, 가난, 문맹 그리고 남자들에게 있는 알코올 중독이 그녀의 희망 없는 세계의 전부입니다. 복음이 전파될 때 이들의 마음이 복음의 약속에 열리도록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