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르르 쾅
우르르 쾅....
멀리서 들리는 듯 싶더니 바로 코앞에서 소리가 벼락치듯 떨어진다.
섬광이 번쩍인다.
다행히 바람은 잦아들었는지 가만가만  비가 소리도 없이 계속 나린다.
벌써 며칠째인가?
이왕에 올려거든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쏟아 부었으면 가슴이 뻥 뚫린텐데 하며 혼자 중얼거린다.
창문을 빗금치며 나리는 빗속으로 거리도 쓸어낸듯 깨끗하다.
무언지 답답하게 조여오는 내 마음도 저렇게 쓸어낼 수는 없는 일인가

 

어제
비가 오니 커피나 한잔 하자는 전화를 받고 나갔다.
꽃과 나무들에 둘러싸인 예쁜 찻집에 앉아 자연스레 40년전 학창시절로 돌아가 "그 때는 그랬었지" 를 주제삼아 수다를 떨었다.
대학시절 첫미팅이며
누구는 누구를 좋아했고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등 그저 그런 이야기가 끝도없이 이어진다.
그리고 많이 변한 우리의 모습에 실소한다.
만약 오늘같이  비가 오는 날이면
우리가 커피잔을 앞에 두고 앉아 있겠니,
당연히 술잔을 앞에 두고 앉아 있었겠지?
커피집 바로 길건너 나이트클럽 불빛을 보며 무심코 나온 말이다.

 

내가 사는 동네는 한국관이니 백악관이니 유난히 술집이 많다.
심지어 바로 앞 건물은 지하는 한국관 2층은 봉봉 카바레 3층은 콜라텍이 들어서 있다.
20년 이상을 이곳에 살면서 참 많은 것을 보았다.
몇년 전에는 같은 아파트에 살고있는  꼴망파 두목이 자기 소유의 한국관에서 부하에게 돈 삼백만원 때문에 칼침을 맞고 비명횡사하는 사건이 있었다.
신문지상에서 떠들썩했던 그 사건의 주인공이 실은 초등학교 동창이라 더 놀랐다.
그 후 사람은 가고 없어도 여전히 인천의 명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 유명한 술집을 한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으니 참으로 나도 많이 변했다.
백악관은 인천에서 손님이 제일 많다 하는 곳인데
그 주인이 우리 모임의 한 사람인 영순씨의 큰오빠라 초대받아 간 적이 있다.
2 층 룸에 들어갔더니 온갖 술이랑 피로회복제가 얼음 속에 채워져 2명의 웨이터가 들고 들어오는데 깜짝 놀랐다.
안주도 이것저것 예쁘게 담겨서 나오고
특히 여자들이 들어오는데 우리 남편들 입이 딱 벌어졌다.
너무 예쁘고 젊어서 좋으니 그럴 수 밖에....
우리 여자들은 그런 남자들을 보면서 재미있게 놀라고 1층으로 내려와 우리끼리 놀았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우리를 찾는 남편이 없었음은 물론이다.
그 날 정수라같은 가수가 나온 기억이 잊혀지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 백악관도 그날 딱 한번으로 갈 수가 없었으니
우리 아이들이 커져 그곳에 다녀서이다.
만약에 갔다가 아이들 친구라도 만난다면 얼마나 끔찍한 일일까?

20여년 동안

이런 대형 나이트크럽을 겨우 두번 뿐이 못 갔다니 나도 참 많이 변했다.

 

벌써 장마가 일주일째로

보일러를  켜고 끄기를 반복하며 눅진 집안을 몰아내고 있지만

마음의 습기는 무엇으로 몰아낼까?

이런저런 쓰잘데 없는 생각에 빠져드는 것은

마음속으로 술 한잔이 간절해서는 아닐까?

때마침 심수봉의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이 청승맞게 짙은 커피향과 함께 찻집에 울려 퍼진다.

그래 결국은 그 사람이 더 그리워지는 날이 이런 날이지.........하며 다들 웃는다.

애잔하고 안쓰럽다며 보듬어주던 그 설레이던 나날들이 다시 그립고

넘치게 따라주던 그 술잔도 오늘은 그립다. 


                                                                                                                                           
                        ....                  도산학  
 
                                                        
                        처음으로 
                        한 잔의 술을 올립니다.
                        빤히 쳐다보는 시선에 놀라 술잔이 넘칩니다.
                        이 술은 술이 아니고 넘치는 유혹입니다.
                        차마 못 했던 말들을 깜쪽같이 숨기고      
                        사랑하고 사랑마는 법을 배우라 하셨지요.
                        당신이 따라주는 술 한잔을 목숨처럼 마십니다.
                        이 술은 독한 술이 아니고 눈물입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동안             
                        조그만 몸에 눈물은 왜 그리도 많았을까요?
                        나는 눈물때문에 
                        당신 밖에 세상을 보지 못 했습니다.
                        갈 길은 멀고
                        해는 저무는데
                        꿈인줄 알면서도 버리지 못하는 꿈은 무슨 罪일까요?
                        아닙니다.
                        그 때는 눈멀고 귀멀어 미처 생각지를 못 했습니다.
                        사랑이 형벌이었음을 말입니다.
                        당신 손을 잡고 울고싶었던 날들
                        술은 
                        달기도 하고 쓰기도 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