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났다.
가정의 달인 5월 이런저런 일로 받기도 하고 주기도 하니 그냥 그렇게 돈이 다 나가더라 하며 수다가 이어졌다.
그랬더니 한 친구가 ''나는 엄마한테 난생 처음으로 편지를 받았다 " 한다.
 '우리 엄마 학교를 못다녀 한글을 몰랐는데 교회에서 배워서 나에게 이번에 편지를 썼잖니. "
우리는 다들 놀라며 뭐라고 쓰셨냐 물었다.

 

사랑하는 내 딸아!
네가 있어서 한평생을 살 수 있었다.
너의 아버지와 헤어져 너하나 키우면서 모진 세월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내 딸 때문이었지.
다른 집 아이들 처럼 배불리 먹이지도 못하고 키웠지만 너는 대학에도 들어가고 나의 자랑이고 보람으로 커 주었다.
그리고 결혼을 해서도 줄곧 손주들을 키우며 같이 사니 엄마는 열 아들이 부럽지 않았다.
그 아이들이 또 결혼을 하고 제 애미보다도 할머니인 나를 더 따랐으니 이렇게 고마울 수가.....
그리고 나를 친엄마처럼 따르고 잘 해 준 사위에게도 나의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
.....
.....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같이 울었다.

아들 밥은 앉아서 받아 먹고

사위 밥은 서서 받아 먹는다 라는 속담이 있건만

친구의 엄마는 그래도 고맙기만 하다 하시니 가슴이 찢어진다.
우리는  어릴 적 부터 흉허물 없이 지냈으므로 친구의 엄마가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너무 잘 알고 있다.
심지어 지금은 미국을 드나들면서 손주들을 돌보며  영어를 우리보다 잘 구사하니 누가 무학인 줄 생각이나 할까?

 

과연 우리는 친구의 엄마처럼 자식에게 편지를 쓴 적이 있을까?
지식만 있고 지혜는 없는 요즈음 우리네들
지혜로운 엄마만이 자식을 반듯하게 키울 수 있음을 오늘 또 새삼 느끼고 반성을 한다.

 

5월 12일 일요일엔 전라도에 있는 내소사를 찾았다.
내소사 뒤쪽 병풍처럼 들러친 관음봉 등산이다.
4시간을 달려 도착하니 관광버스가 주차장에 벌써 가득이다.
벌써 봄이 간다.
가는 봄이  아쉬운지 꽃비가 바람에 흩날린다.
내소사 대법당 앞뜰에 오래된 느티나무가 꽃비를 맞으며 천년을 서 있다.
전나무 둘레길도 장관인데 오늘따라 가족들의 나들이가 눈에 많이 뛴다.
나는 왜 이렇게 좋은 곳에 한번도 부모님을 모시고 올 생각을 하지 못 한 것일까 ?

오늘 우리 산악회에서는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우리와 매번 함께 하시는 86세의 선생님께 작은 정성을 담아 금일봉을 전했다.

선생님을 모시고 다니면 자칫 흐뜨러지기 쉬운 행동을 자제할 수도 있고

좋은 이야기도 많이 들으니 좋다고들 제자들이 말한다.

이럴 경우 선생님이 훌륭할까 제자들이 훌륭한 것일까?


산에서 내려와
이태백이 강에 비춘 달이 너무 아름다와 달을 따라 들어갔다는 중국의 채석강과 비슷하다해서 지어진 채석강 바닷길을 걸으며
다음엔 꼭 부모님을 모시고 와야지 다짐해본다

소설가 박범신의 "소금"이라는 책이 요즈음 화제다.
아버지의 등골에 빨대를 꽂고 땀 한방울까지 파먹는 자식들...
이 시대 서러운 아버지들의 자화상이다.

 

5월은

가장 화려하게 우리를 스치고 가지만

가정의 달이라  이런저런 이유로 가슴이 아픈 달이기도 하다.

꽃비속에 5월이 속절없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