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 하늘에 계신 아버지/윤 용 혁 아들 삼형제의 대학 등록금을 대시려니 허리가 휘청 거리셨어요. 박봉인 선생님 월급으로 삼형제를 가르치시려니.. 아랫마을 신 서방네서 매번 돈을 빌리셨어요. 그리고 다음 달에 월급을 타 일부를 갚으시고.. 그런 식으로 큰 아들인 형을 대학까지 졸업을 시켰는데 취직은 안하고 고시공부에 매달리니 아버지의 시름은 언제 끝날지 깜깜하셨죠. 매일 들고 학교에 출근하시는 아버지의 가방은 낡아 보잘 것 없었어요. 점점 말라 엉덩이가 뾰족하시던 아버지는 터미널에서 떨어트린 동전마저 아쉬워하셨다는군요. 그러던 중 제가 운 좋게 대학에서 장학금을 받아왔어요. 아버지의 눈에서 눈물이 핑 도시더군요. 그간 고생한 보람이 잠시나마 위로가 되셨을까요? 어렵던 차 공무원 자녀들에게 학자금 대출제도도 생겨났어요. 한시름을 더신 것이죠. 그렇게 길고 긴 아버지의 교편생활도 어느덧 시간이 흘러 아버지는 정년퇴임을 맞으셨어요. 정확히 44년 10개월의 교직을 마감하시는 날이 되었습니다. 회고사를 하시는 아버지의 어깨가 그날따라 유난히 흔들리셨어요. 형은 뒷좌석에서 연신 눈가를 두 손으로 훔치고 있더군요. 다음날도 아버지는 평소대로 일어나 가방을 챙기셨다는군요. 어머니가 놀라 “여보, 어디 가시려고요?” 아버지는 쑥스러워 하시며 낡고 낡은 가방을 힘없이 내려 놓으셨다는군요. 습관처럼 움직이시다 정신을 차리시고 회한의 그 가방을 물끄러미 쳐다보셨겠지요. 이제 가방을 드시고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요. 그리고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내려오지 못하는 자식들을 용내뜰 다리에서 하염없이 기다리고 계셨다는 말씀을 동네 분들에게 전해 듣고 마음이 걸려 거의 매주 아버지를 찾아뵈었어요. 그러던 차 (육이오 전쟁 통에 학교에 태극기를 올리시다가 인민군에게 붙들려 사지에 내몰렸던 남편을 기지를 발휘해 구해내셨다는) 강건하신 어머니가 추운 겨울날 새벽기도를 위해 성당에 가신다고 집을 나섰다가 길을 잃으신 것이에요. 평생을 자식과 남편만을 위해 살아오신 분인데.. 시골동네가 발칵 뒤집혔죠. 어머니가 치매에 걸리신 거예요. 그날 이후로부터 아버지는 어머니의 병 치료에 온갖 정성을 다 쏟아 부우셨죠. 평소 쑥스럽다며 어머니와 손잡고 걸으시지도 않던 분이 다소 곳 손을 잡고 동행이 되셨습니다. 좋을만하니 치매에 걸리신 당신이 사랑하는 아내의 병수발을 자처하고 나서셨어요. 그리고 점차 기억을 잃어가는 어머니를 아버지는 무척이나 안타까워하셨죠. 어느 날은 골방에서 어머니를 위해 울며 기도도 하셨다는군요. 자식들에게 짐이 되기 싫어 시골 성당에서 사제회장으로 제단을 지키다 어머니와 같이 가시겠노라는 굳은 결심도 자식들의 간곡한 청에 못 이겨 정든 고향집 대문에 자물쇠를 굳게 물리고 어쩔 수 없이 누님 댁 옆으로 오시게 되었어요. 누님과 아버지의 정성스러운 보살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치매로 인한 식사거부증이 발생하자 아버지도 별도리가 없으신지 용단을 내려 요양병원에 어머니를 보내게 되셨죠. 어머니가 요양병원에 가시던 날 어머니 손을 놓으시며 그렁그렁 눈물을 보이시더군요.. 중간에 학교를 그만 두시고 낯선 인천에 와 어머니를 그토록 고생시킨 것과 복직 후 선생의 아내로 평생 농사일을 떠맡겨 그 더운 여름날 어머니가 아버지를 대신해 수천 평 논에 독한 농약을 치시다 쓰러져 그 후유증으로 해소천식을 늘 달고 사셨던 것이 자책감으로 남으셨던지.. . 그런데 어머니를 요양병원에 보내신 뒤로는 외로움이신지 어찌된 영문인지 건강하시던 아버지께서도 시름시름 기력을 잃어가고 계셨어요. 결국 아버지마저 어머니가 계신 요양병원 같은 병실에 입원하게 되셨죠. 처음 일주일은 잘 적응하시는 것 같더니 급기야 급성폐렴에 패혈증까지 겹쳐 아버지는 죽음과의 사투를 벌이며 너무나 힘들어 하셨어요. 가물거리는 촛불처럼 빈맥에 가쁜 숨을 몰아쉬시면서.. 지켜보는 저희로서는 무척이나 마음 아팠어요. 그날 저녁은 유난히도 아버지 곁을 지키고 싶었어요. 목이 몹시 타시는지 간절히 물을 달라 하시더군요. 찻숟가락으로 네 모금을 떠 드렸어요. “꼴깍꼴깍” 그렇게도 맛있게 물을 드시는 모습에 혹시나 기력을 되찾지 않으실까 막연한 기대감을 가질 때 이상스럽게 아버지는 저에게 고맙다고 하시더군요. 밤이 너무 깊어 “아버지, 내일 아침에 또 올게요.”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시던 아버지와 이것이 마지막 대화가 될 줄은... 아버지는 다음날 새벽에 돌아가셨어요. 황급히 달려간 자식들이 도착하기 바로 직전에.. 병원에 입원하신지 13일 만에 지켜보는 자식들 하나 없이 어머니 곁에서 조용히 숨을 거두셨어요. 당신이 사랑하시던 아내와 임종을 못 지킨 불효자들만을 남겨두고.. 치매의 어머니는 아무것도 모르신체 누워만 계셨고.. 영면하신 아버지는 아주 평온하게 주무시는 것 같았어요. 온기는 그대로 남아 계셨고요. 아버지를 부르면 금세 일어나실 것 같았죠. “아버지!”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 울음을 삼키려니 제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좀 더 자주 찾아뵙고 잘해드리지 못한 것이 후회로 남아 밀려오고... 그렇게 아버지는 속절없이 하늘나라로 가셨어요. 어머니를 극진히 보살피며 혹시 치료에 도움이 될까 그 옛날 선생님으로 돌아가시어 어머니께 덧셈 뺄셈 산수 숙제를 내시던 아버지.. 어떻게든 병든 아내를 부둥켜안고 가시려던 아버지.. 좀 더 일찍 어머니를 내려놓으시고 요양원에 보내셨더라면 아버지라도 오래 사셨을 것을.. 가족회의 끝에 어쩔 수 없이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내드리기로 했을 때 막상 요양원의 차가 어머니를 모시러오면 몇 번을 망설이시다가 차를 되돌려 보내시던 아버지.. 초등학교에 입학한지 얼마 안 돼 봄비가 내리던 날 비바람에 길가 갈아엎은 논이랑에 쓰러진 저를 일으켜 업어 등교시켜주시던 아버지.. 그 따스하시던 당신의 등짝이 오늘따라 더없이 그립습니다. 공부가 뭔지 전근가신 아버지를 따라간 학교 사택에서 어린 것이 제 어미와 떨어져 생활하는 처지가 애처롭다고 생각하셨는지 수저를 드시다가 눈물을 보이시던 아버지, 아버지가 우시는 모습을 저는 태어나 그날 처음 보았습니다. 시커먼 눈썹과 우렁찬 목소리를 물려주신 아버지, 어린 저에게 운동회 날 달리기의 요령을 친히 알려 주시던 아버지, 여름밤이면 밀거적에서 팔씨름을 할 때 일부러 져주시던 아버지, 근검절약과 정직과 사랑이 뭔지를 몸소 실천해 보이셨던 스승이자 아버지, 때론 엄격히 회초리를 드시다가도 자율을 강조하며 민주주의적 사고방식을 전수해주신 아버지가 보고 싶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저 지금 울고 있어요. 형제간의 우애를 강조하시고 누구보다 삶의 애착을 보이시던 분이 이렇게 허망하게 가시다니요? 아버지 살아생전 효를 못 다한 이 불효자를 용서하세요. 어제는 요양원에 계신 어머니를 찾아뵈었어요. 그러실 때 마다 아버지 복지관에 바둑 두시라 가셨다고 그냥 둘러댔어요. 억장이 무너져 내립니다. 그러나 아버지, 어머니 걱정 마시고 부디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세요. 아버지! 사랑합니다.
< 밤하늘의 트럼펫/아버지를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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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나??? 저자신을 점검하는 시간에 들어갔습니다...
날마다 알수없지만 명쾌하지 않은 꿈들을 하나씩 꾸던 1주일...
그제밤에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현실처럼 살아계신 어머니와 함께
늘 기도제목인 남동생을 위한 걱정에 함께하시고~~~
하나씩... 다시 점검하며 비스듬히 서있는 나를 바로 세워봅니다...
조금씩... 바로 세워지는듯... 어제는 마음이 한결 가벼웠습니다...
비로소 어제밤에는 지난 일주일간의 힘든 꿈속에서 희망의메시지가
전해집니다...
아~~~ 감사 감사드립니다...
그 어느꽃도 아픔없이 피어나지 않음을...
그 미미한 식물도 자신의 본분을 다하기위해 자신을 희생하거늘...
윤용혁님...
우린 소중한걸 소중한줄 알고 살때가 가장 행복한거 같아여...
오랜만에 인일동산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귀한 말씀을 주시는군요.
소중함을 깨달아 행복한 삶을 영위하라는..
허인애님의 신실하신 믿음이
온전히 내면에서 우러나니
그 온유함이 얼굴표정에 그대로 나타나지요.
또한 남동생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봅니다.
가까운 동시대를 호흡한 님에게 제가 아끼던 시를 낭송해 드릴께요.
여여하세요.
어머니의 강/윤 용 혁
탯줄을 자른
씨앗 하나
여울을 돌아들 때
어머니는 강 하나를
가슴 한 복판에 내셨다
물줄기를 주어
서덜을 덮고
명개에 다다른 씨앗
뿌리 내려
새싹 키울 때
어머니는 강 하나를
가슴 한 복판에 내셨다
용기와 희망을
양손에 져주어
동그라미 그리며
나뭇잎 배 띄어 가라고
강물 따라 흘러
너른 바다 이르니
구름발치 어머니의 강
보이지 않아
마음아파
깨금발 둘러보니
어머니는 강 하나를
가슴 한 복판에서 지우고 계셨다
???윤용혁님!!!
처음 댓글을 답니다.
아버님을 향한 절절한 그리움의 글을 읽고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꼈습니다.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은 이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드라구요.
이세상에서 아무 조건없이 무한한 사랑을 주신분!!!!
나를 가장 아껴주고 잘되기를 바라셨던 분!!!!
용혁님!!!
우리 모두 우리 자식에게 그런 무조건 적인 사랑을 주고
절절한 그리움으로 기억 되어지는 그런 삶을 살았을까요?
반성하며 나를 뒤돌아 보게 됩니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아버님은 참 인생을 잘 사신 분이니 좋은 곳으로 가셔서
평안하시리라 믿습니다.
저도 2년전 아버지를 보내드렸지요
그리고
아직도 구구절절이 생각을 합니다
잊혀져야 하는데
이번 어버이날도 전화를 해봤습니다
신호는 가는데 아마 걸음이 느리셔서(생전에도 한참 만에 받으셔서)
기다려봐도 대답이 없었습니다
하루만 아니 한시간만 다시 살아 돌아오신다면은 해드리고 싶은 일이 무척 많은데...
너무나 그리워 가끔 새가되어 우리집 앞 백목련 나무에 잠깐 다녀가셔요 기도도 해봅니다
다행이 돌아가시기 직전 귀에다 " 아버지 사랑해요 하고 처음으로 말씀도 드리고
임종도 지켰지만 그래서 더더욱 그리운것 같습니다
오랜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우리는 그래서 떠나 보내고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살아야 할것같습니다
힘내시고 건강하십시오
김정숙 선배님,
가슴이 뭉클합니다.
받지 못하실 번호로 전화를 거셨다는 말씀에..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치시기에 그리셨겠지요..
그 심정 이해가 되고 충분히 헤아려봅니다.
후회없는 삶을 살라는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다행히 임종을 지키셨군요.
저는 지키지 못한...
내일 형님과 고향 강화 선산에 모신 아버지 산소에
다녀올까 합니다.
하루 아니 단 한 시간만이라도 아버지가 살아 돌아오신다면
해드리고 싶은 일이 무척 많다시는 지극하신 효심을 공유코자
"부모"라는 시와 그리고 노래를 서투나마 펫으로 연주해 드립니다.
점심 시간 막간을 이용해 부는데 손가락을 베인 환자가
갑자기 들어왔군요.
부모/윤 용 혁
마음의 우산 펼쳐
어린 잎 다칠세라
호되게 작달비 나무라고
등 굽은 호미로 흙을 돋아
어린 나무 보듬어
밑거름 주시고
논틀밭틀 헤매시다
바른길 가라
등짝을 내밀어
디딤돌 놓아 주시던
그 희생
그 갸륵한 정성
누리의 등불
윤작가님..윤약사님...약사회에서 뵙다가...여고 홈피에서 뵈니 더욱 반갑네요...
어머니 아프시다구 걱정하셨다가..어머니 보살피시던 아버님이 먼저 돌아 가셔서...황망해 하시던 모습에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시를 읽노라니 저두 엄마 보다 먼저 가신 우리 아빠가 무척이나 보고프네염...아빠하고 시집간다고 어리광도 많이 부렸었는데...ㅠㅠ
용혁님, 집안 사정은 약간 다르지만 우리 시부모님하고 부모님 상황이 같네요. 너무도 안타까운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다만 우린 반대로 아버님이 치매, 어머님 소천.
어머니께서 치매 걸리신 아버님을 돌보시다가 할 수 없이 요양 병원에 모셨는데 그 충격으로 어머님도 입원하시어 같은 병원 아래,위층에 계셨어요.
그러다가 무거운 병환을 발견했는데 진단 받으신지 보름만에 돌아가셨지요.
환갑이 낼 모레인, 머리가 허연 우리 남편은 저녁마다 그리운 어머니 생각에 눈물짓습니다.
준비할 사이도 없이 갑자기 가시니 지난 모든 세월 중에 불효한 것만 생각난데요.
저는 친정부모님이 모두 몇년전에 돌아가셨지요. 그 때 생각한 것이 부모님 살아계실 때 한 일들은 이래도 후회, 저래도 후회.
그러니 살아계실 때 해드린 좋은 것만 생각하세요.
조병섭님,
부군께서 저녁마다 그리운 어머니 생각으로 눈물지으신다는 말씀에
가슴이 뭉클하며 제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그 절절하신 마음을 깊이 헤아려보고요.
저도 가끔 아버지가 보고싶어 아버지 사진을 꺼내본답니다.
저에게 주신 책에 크게 써주신 아버지의 시원한 글씨체에
자꾸 마음과 함께 눈길이 갑니다.
이 때는 정말 건강하셨고 살아계셨는데..
온전한 정신으로 돌아오신 어머니께서 아버지를 찾으실 때가
정말 곤혹스럽군요.
울컥하고요.
네.그리하겠습니다.
생전에 잘해드린 것만 생각하기로..
위로 감사합니다.
아버지 곁에 피어난 할미꽃이랍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아마 저도 윤용혁 선생님도 막내 쪽이니...... 제 경험상 반년 이상 고생하실 겁니다. 정말 혀는 모래같고, 마음은 스산하지요.
그래도 산 자는 살아야 하니, 어쩝니까. 치매의 장점은....... 자신이 죽어감을 모른 다는 것, 이건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