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13일(토요일)  산악회의 정기산행 날


몇번을 불참한 게으름을 이 날 톡톡히 치루었다.
6시 40분 부평역 소방서 앞에 집결임에도 불구하고 눈을 뜨니 창문이 훤하다.
시간은 5시 50분.
분명 알람을 5시에 해놓고 9시도 안 돼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는데
이것이 무슨 조화란 말인가?
갈까 말까?
그래도 꼭 가마고 약속을 했는데 약속은 지켜야지 하며 대충 옷을 챙겨입고 나서자마자 택시를 잡는다.
"아저씨, 40분까지 부평역 될까요?"
택시는 쏜살같이 달려 아슬아슬 1분전에 버스앞에 나를 내려 놓는다. 
고마운 아저씨에게 팁까지 주고 내린다.

 

오늘의 산행은 포천의 금주산!
금주산은 벌써 몇번째이지만 다른 산은 산불예방기간이라 들어가지를 못하니 선택의 여지가 없다.
금주산의 가파른 계단과 사람을 질리게하는  너덜지대가 눈에 선하다.
오늘은 한시간만 하고 그냥 내려와야지.
다행히 나와 뜻을 같이 하는 사람이 6명이나 되니 안심이다.
등산객은 우리 뿐으로
오늘 이 금주산은 온전히 우리 몫이다.

좁은 길을 버스는 못 오르고
처음부터 가파른 길을 오르다보니 금룡사라는 절 입구다.

이 절마당엔 된장 고추장 항아리가  가득이다.
30년 묵은 된장이며 갓 담은 고추장도 달다.
청국장가루 메밀가루 도토리가루는 물론 직접 농사한 서리태 메주덩어리가 즐비하다.


51 년 전 어느 보살에 의해 세워진 이 절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오늘의 큰 절이 되었단다.
사는 것이 힘들어 절을 버리고 도망을 하였으나 결국 경봉 큰스님을 만나 다시 돌아와 원을 세우고 절집을 지켰으나
그래도 힘들자 꿈에 메주덩어리가 쏟아지는 꿈을 꾸고 된장을 만들어 팔아 불같이 일어났다는 금룡사....
된장, 고추장이 일품이다.

 

오늘은

일찍 내려와 지장전에 들어가 참배를 하고 나오는데

이 절의 주인인 할머니 보살이 나를 보고는 다시 들어오란다.

꼭 주고싶은 것이 있다며.....

금방 텔레비죤에서 김구선생님의 일대기를  특집으로 방영을  했는데

독립자금을 대서 집안이 거덜이 난  자기 아버님이 생각나 눈물을 흘리고 나오니 법당에서 한 여자가 나오는데

그냥 돌려보내면 안 될 것 같아 불러세웠다고.

현재 76세인 보살님은 이곳이 51년째이고 여자 몸으로 이만큼 일궈낸 여자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냥 곱게 늙은 할머니같은데 이렇게 대단한 일을 했다니 믿기지가 않는다.

'''어머나, 저희 아버님이 김구선생님 제자이셨어요" 하니

"어쩐지 마음이 쓰이더라" 하며

이것도 인연이라 하신다.

 

본의아니게

우리 일행은 그 날 할머니와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었다.

돌아오는 길, 그 분은 나에게 내 키만큼의 종이에 힘차게 먹으로 쓴 龍 자를 선물로 주셨다.

龍이란 물이 없으면 못 사는데 

물이 많아도 탈이고

물이 없어도 탈이니 편한 세상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 중에 쓰고 있는 글자라고.

 

인연!

세상에 어디 인연 아닌 것이 어디에 있으랴마는

산하고 나하고의 인연도 각별하다.

가랑가랑한 외모로 볼 때 내가 어디 산에 다닐 여자인가?

몸이 부실하다고 극기훈련 삼아 남편의 강요에 의해 끌려다닌 산이다.

울고불고 못 가겠다며 떼를 쓰는 나를 얼르고 달래며 부부동반 고교동창산악회에 반강제로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나도 모르게 산에 매료가 되고

벌써 20년이다.

물론 그동안 나는 혼자가 되고 산에서 한쪽 다리도 다쳐 힘들다.

그래도 그네들과 함께 산에 오면 남편이 언제나처럼 꼭 곁에 있는 듯 마음이 편하다. 

어찌 보면 어느 단체에 20년을 같이 한다는 것이 보통 인연일까?

지금도 동기들 중 제일 잘 생기고 수학에 천재라던 내 남편을 자랑스레 이야기하는 친구들이 고맙고 좋다.

오늘 금룡사 할머니가 나에게 준 龍 이란 휘호는

왠지 안쓰러워 보이는 여자에게

힘을 실어 주기 위해 건네준 마음의 표시가 아닐까? 

 

4시간 30분의 산행을 마치고 돌아온 일행과 함께

포천에 왔다고 이동갈비와 이동막걸리로 하루의 노고를 달랜다.

술에 취하고 자연에 취하고 벗이 있어 좋은 날.....

아직 이곳은 개나리 진달래는 멀었지만 쑥도 캐고 냉이도 캐서 봉다리에 가득 담아왔다.

 

오는 길

한강변은 난리가 났다.

벚꽃 축제에 개나리 진달래가 활짝 피어 서울이 꽃으로 피어난 듯 환하다.

정말 아름다운 대한민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