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2013년 4월 13일(토요일) 산악회의 정기산행 날
몇번을 불참한 게으름을 이 날 톡톡히 치루었다.
6시 40분 부평역 소방서 앞에 집결임에도 불구하고 눈을 뜨니 창문이 훤하다.
시간은 5시 50분.
분명 알람을 5시에 해놓고 9시도 안 돼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는데
이것이 무슨 조화란 말인가?
갈까 말까?
그래도 꼭 가마고 약속을 했는데 약속은 지켜야지 하며 대충 옷을 챙겨입고 나서자마자 택시를 잡는다.
"아저씨, 40분까지 부평역 될까요?"
택시는 쏜살같이 달려 아슬아슬 1분전에 버스앞에 나를 내려 놓는다.
고마운 아저씨에게 팁까지 주고 내린다.
오늘의 산행은 포천의 금주산!
금주산은 벌써 몇번째이지만 다른 산은 산불예방기간이라 들어가지를 못하니 선택의 여지가 없다.
금주산의 가파른 계단과 사람을 질리게하는 너덜지대가 눈에 선하다.
오늘은 한시간만 하고 그냥 내려와야지.
다행히 나와 뜻을 같이 하는 사람이 6명이나 되니 안심이다.
등산객은 우리 뿐으로
오늘 이 금주산은 온전히 우리 몫이다.
좁은 길을 버스는 못 오르고
처음부터 가파른 길을 오르다보니 금룡사라는 절 입구다.
이 절마당엔 된장 고추장 항아리가 가득이다.
30년 묵은 된장이며 갓 담은 고추장도 달다.
청국장가루 메밀가루 도토리가루는 물론 직접 농사한 서리태 메주덩어리가 즐비하다.
51 년 전 어느 보살에 의해 세워진 이 절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오늘의 큰 절이 되었단다.
사는 것이 힘들어 절을 버리고 도망을 하였으나 결국 경봉 큰스님을 만나 다시 돌아와 원을 세우고 절집을 지켰으나
그래도 힘들자 꿈에 메주덩어리가 쏟아지는 꿈을 꾸고 된장을 만들어 팔아 불같이 일어났다는 금룡사....
된장, 고추장이 일품이다.
오늘은
일찍 내려와 지장전에 들어가 참배를 하고 나오는데
이 절의 주인인 할머니 보살이 나를 보고는 다시 들어오란다.
꼭 주고싶은 것이 있다며.....
금방 텔레비죤에서 김구선생님의 일대기를 특집으로 방영을 했는데
독립자금을 대서 집안이 거덜이 난 자기 아버님이 생각나 눈물을 흘리고 나오니 법당에서 한 여자가 나오는데
그냥 돌려보내면 안 될 것 같아 불러세웠다고.
현재 76세인 보살님은 이곳이 51년째이고 여자 몸으로 이만큼 일궈낸 여자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냥 곱게 늙은 할머니같은데 이렇게 대단한 일을 했다니 믿기지가 않는다.
'''어머나, 저희 아버님이 김구선생님 제자이셨어요" 하니
"어쩐지 마음이 쓰이더라" 하며
이것도 인연이라 하신다.
본의아니게
우리 일행은 그 날 할머니와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었다.
돌아오는 길, 그 분은 나에게 내 키만큼의 종이에 힘차게 먹으로 쓴 龍 자를 선물로 주셨다.
龍이란 물이 없으면 못 사는데
물이 많아도 탈이고
물이 없어도 탈이니 편한 세상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 중에 쓰고 있는 글자라고.
인연!
세상에 어디 인연 아닌 것이 어디에 있으랴마는
산하고 나하고의 인연도 각별하다.
가랑가랑한 외모로 볼 때 내가 어디 산에 다닐 여자인가?
몸이 부실하다고 극기훈련 삼아 남편의 강요에 의해 끌려다닌 산이다.
울고불고 못 가겠다며 떼를 쓰는 나를 얼르고 달래며 부부동반 고교동창산악회에 반강제로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나도 모르게 산에 매료가 되고
벌써 20년이다.
물론 그동안 나는 혼자가 되고 산에서 한쪽 다리도 다쳐 힘들다.
그래도 그네들과 함께 산에 오면 남편이 언제나처럼 꼭 곁에 있는 듯 마음이 편하다.
어찌 보면 어느 단체에 20년을 같이 한다는 것이 보통 인연일까?
지금도 동기들 중 제일 잘 생기고 수학에 천재라던 내 남편을 자랑스레 이야기하는 친구들이 고맙고 좋다.
오늘 금룡사 할머니가 나에게 준 龍 이란 휘호는
왠지 안쓰러워 보이는 여자에게
힘을 실어 주기 위해 건네준 마음의 표시가 아닐까?
4시간 30분의 산행을 마치고 돌아온 일행과 함께
포천에 왔다고 이동갈비와 이동막걸리로 하루의 노고를 달랜다.
술에 취하고 자연에 취하고 벗이 있어 좋은 날.....
아직 이곳은 개나리 진달래는 멀었지만 쑥도 캐고 냉이도 캐서 봉다리에 가득 담아왔다.
오는 길
한강변은 난리가 났다.
벚꽃 축제에 개나리 진달래가 활짝 피어 서울이 꽃으로 피어난 듯 환하다.
정말 아름다운 대한민국이다.
혜원아!
방태산을 잊지 않았구나.
강원도 인제 내린천을 따라 올라가면 나타나는 산....
우리나라 제일 높은 산에서 솟아나는 약수가 바로 방태산 약수터지.
옛날 김신조 일당이 북에서 내려와 청와대로 들어갈 때
그들이 넘어온 산이 바로 방태산이고.
엄청 험한 산이라 그 쪽으로 넘어 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질 못 했는데 허를 찔린 산 ...방태산.
네가 한국에 왔을 때
내가 심심산골 좋은 곳에 아는 집 별장이 있다며 같이 갔는데
1박 2일을 깔깔대며 보냈지.
별이 금방 쏟아질 것만 같은 밤에 감자도 구워 먹고 했는데.....
그 당시엔 집이 몇 채 뿐이 없었는데
온갖 병에 효험이 있다는 약수때문에 이젠 제법 집이 많아졌단다.
승용차는 못 올라가
트럭을 타고 올라다니던 곳
또 가고싶다.
인선아!
보살이란 나를 죽이고 남을 위해 사는 사람을 일컽는 말인데
나는 그 발끝에도 못 따라가지.
실상은 공양주 노릇도 못 할거야.
만약에 인선이 너처럼 큰마음의 소유자라면 모를까.....
그 날 법당에 혼자 앉아 있는데 마음이 착 가라앉고 편하더라.
이래서 고시공부 하는 사람들이 깊은 산중 절을 찾나 봐.
나도 시상이 저절로 떠 올랐다면 믿겠니?
손이
내 손을 잡았다.
깜짝 놀라 황급히 빼려 했으나
더욱 더 꼭 잡고는 놓아주지를 않는다.
쳐다보니
먼 곳을 보고있을 뿐 아무 말이 없다.
벗어나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깊이깊이 빠져드는 수렁.....
손이
아무도 모르게 내 손을 잡았다.
?도산학, 손을 뺄려고 해도 너 그조막만한 손이 무슨 힘 있겠어????ㅋㅋ
나도 언젠가 경험했지만 무지막지한 손힘에는 감당못해.
오해하지 마세요,,,,,,, 여자가 힘세게 잡은 손이었으니까,,,,,,,
누구냐면 김은하 국회의원 따님이 그렇게 기도하며 꽉 잡아주더라.신비해.
나보러 "형님" 하는 사인데 기도하며 본인은 세게 안잡았다는데 그렇게 힘이 세.우와!!!
근데 박윤기선생님 엄마가 저번에 손잡아 주시는데 또 그런 힘이 나오시더라,,,,,,,힘주지않고 계셨어.
96세 어르신이 힘이 세시면 얼마나 세시겠어???? 할머니 힘이 아니드라니까,,,,,,,안타까와 사랑의맘으로 잡으신 손!!!1
노상 용우아빠와 늘 같이 방문했거든. 용우아빠가 늘 앉던 의자 빈 자리보시고 안타깝고 애닳어서 꽉잡아주신 손!!!!
바로 "성령" 의 힘이라고 한다.
재화야!
나이가 드니까
젊은 애들 손잡고 가는 모습도 예뻐 보이고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 하며 웃는다.
손이 예쁜 사람이 잘 산다고 옛 어른들이 그랬지?
그런데 내 손은 왜 그렇게도 못 생겼는지...
아! 옛 어른들 말씀이 그른 것이 없구나 하며 감탄을 한다.
성령이라는 네 말도 맞다.
불교에서는 관세음보살을 천수천안 관세음보살 이라고도 부르는데 천개의 손과 눈으로 중생을 구한다는 뜻이란다.
천개의 얼굴을 가진 부처는
때로는 거지의 모습으로도 때로는 성자의 모습으로 나타나 중생을 구제한다고...
재화야!
너처럼 성령의 힘을 믿는 사람은 참으로 복된 사람이다.
?도산학, 난 어디가던지 "손이 참 곱다" 하는 얘기 참 많이 들어.
산학이도 손이 어린애손같이 조막만하며 너무 귀엽고 보드랍고 예쁘다.
근데 난 손가락이 길어서 하염없이 게으르다. 고걸보고 예쁘다하나봐.
용우아빠도 손이 예쁘다 소리는 한번도 해 준적이 없어.
옛날 어르신들 말씀대로 손가락이 기니 게으르다. 글쎄 내 경우에는 그러네.ㅋㅋ
손에 마디가 별로 없어서 그런가봐. 우리 세대는 별로 손으로 힘지게 하는 일이 없잖아.ㅋㅋ
원래 내가 반지끼는 것을 무척 좋아해.보석이 아니어도 너무 좋아해.ㅋㅋ그냥 재밌어,,,,,ㅋㅋ
음, 부처님이 때론 "거지"의 모습,,,,,때론 " 성자 " 의 모습으로 중생을 구제한다,,,,,,,
금룡사,지장전, 참배, 극기훈련,,,저절로 고개숙여지네.
중생 구제하는 얘기,,,,참으로 이런 설법도 신비스런 이론이다.금주산, 첨 들어보네 .
반지를 껴서 예쁜 여자가 있지.
대개 손이 예뻐야 어울리는데 네가 그 속에 드나보다.
나는 손이 미워서 반지를 안 해.
집안 일에 로숀 바를 새가 없이 살았는데 당연한 일이지.
관절염도 생겨 손마디가 구부러졌고 지문도 없어졌는데 반지라니 개발에 편자야.
그래서 손이 예뻐야 팔자가 편하다 라는 말이 생겼겠지.
여하튼 옛어른들의 말씀은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
그런데
요즈음 노인들을 무시하는 풍조가 만연하니 답답해.
우리들이라도 그러지 말아야 하는데....
대개 절집에서 하는 말이
네 부모를 부처님이라 생각하고 공경하라 했는데 우리는 과연 그렇게 살고 있을까?
손가락이 길고 예쁜 네가 부럽다.
?에유, 게으름의 표상이라니까,,,,,,,ㅋㅋ
원 부러운것이 얼루 다 도망갔네. 며느리 볼 나이에,,,,,,다 소시적 얘기지.
아!!!!관절이 약하구나. 에유, 지문이 없어져???? 반지는 자기 취향이라 손이 이쁘던 말던 껴대는거지뭐.
반지, 귀걸이, 목걸이, 팔찌,,,,,,,,요런것 다 좋아해. 아마 나같은 취향의 여인네들이 꽤 많을꺼야.ㅋㅋ
한번은 어린애 가졌을때는 엄마가 손이 붓는다고 반지끼지 말라고 했는데,,,,,
근데 거의 해산달까지 엄마말 안듣고 2개나 끼고 있다가 손가락이 퉁퉁부어서 금방에 가서 어렵게 뺐단다, 지금도 생각나.
부모님공경,,,,,,,쉽기도, 어렵기도한, 그리고 해도 해도 모자라고 끝이 없는 부처님공경,,,,,,
?내가 주일날 영성체 후에 아~~주 가끔 느끼는 것인데,
내 앞에 앉은 사람을 남자든 여자든 어깨를 주물러주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가 있어. 그럴때엔 "제가 어깨좀 주물러 줄께요."하면서
어깨를 주물러 주는데, 다들 "으악~~!"하고 고함이 나올 정도로 아프다는거야.
그러면서 굉장히 시원하다고. 때로는 내가 어깨 아픈것 어찌 아냐고.....
난 그냥 살며시 어깨만 마사지하듯이 살포시 하는데 그러더라.
어떤 자매님은 담엔 꼭 내 앞에 다시 앉아야겠다고도.
어쩌다 그런 맘이 들때면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도 하더라.
가끔은 꾹 눌러 참기도해. 혹시 악령은 아닐까 하고.
또 준비하고 가게에 나갈 시간이다.
한국엔 모두들 잠자리에 들어가는 시간이네.
모두들 곱고 예쁜 꿈들 꾸시길.....
인선아!
남을 위하는 일이 악령이라니 말이 아니지.
내가 듣기로는
아기같이 순수한 마음이 되면 상대방을 볼 수 있대.
그러니까 안타까운 마음이 아픈 사람을 알게 되고 빨리 낫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며 마사지 해 주는 것이지.
옛 말에 "즉심으로 하라" 했지.
생각이 나는대로 하라는 것인데
이것저것 생각이 많다보면 내 순수한 본마음이 없어져버려 오히려 일을 그리친다는 이야기이다.
내가 만약에 저 사람에게 천원을 주고싶으면 그냥 주면 그만인데
아! 저녁에 콩나물도 사야하고 두부도 사야하는데 하면 벌써 일은 그르친 것이라는 말이다.
내가 볼 때
우리 친구들 중 그렇게 사는 사람이 몇 있는데 참으로 귀한 사람들이다.
당연히 너도 그 중의 한 친구고.
있다고 다 베푸는 것은 아니니까....
산학후배!!~~
"인연"이란 주제에 어쩜 이리도 이선희의 노래는 우리네 가슴을 절절하게 만드는지!!~~
혜안을 가진사람들 눈에는 산학을 보는 순간 남다른 감성을 느끼나봐!~~
몇년전, 사진작가로 활동중인 혜경후배의 예술사진에서 산학이를 모델로 썼던 그 액자를 보며,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은 충격을 받은적이 있어!~"한이 담뿍 담긴"~"처연한 모습의"~~~
그 모습을 담아낼 줄 아는 혜경의 심미안에 혀를 내 둘룰 지경이었으니까!~~~
원했던,원치않았던 간에 주어진 삶을 살아오면서 내공이 쌓여졌기에 비쳐진 산학의 모습이었으리라 짐작해!~~
바람만 불어도 훅 날아가버릴 것 같은 체구에 어디서 그런 강인한 인내력이 보이는지!~~암튼 건강에 힘 쓰고!즐거운 나날이 되길!!~~~
최희순 선배님!
"인연"이라는 노래는 영화 "왕의 남자"의 주제곡입니다.
이선희가 어찌나 잘 부르는지 저도 일부러 배운 적이 있는 노래랍니다.
덕분에 자막 없이도 할 수 있는 몇 곡 중에 하나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클라식만 좋아할 것 같은 선배님도 이 곡이 좋다 하시니 왠지 기분이 썩 좋은 것이 왜일까요?
선배님 말씀대로
정말은 김혜경 선배님이 대단하시지요.
평범한 인물을 순식간에 이야기가 많을 것 같은 베일에 싸인 여자로 확 바꾸어 버리는 그 재주는
아무나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색 계의 이안 감독이 어느 각도에서 탕웨이를 찍었냐에 따라 영화가 달라졌듯이 감독의 심미안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만약 김혜경 선배님이 영화감독을 했더라면 하는 안타까움이 가끔 있기도 했습니다.
하기는 요즈음은 스마트 폰으로도 단편영화 같은 것을 만든다니
또 모르지요?
훗날 김혜경 선배님이 영화를 만들었다는 소식이 날라올지도요.
최희순 선배님!
저는 선배님께서 평생을 피아노를 끼고 사신 피아노 전공자이시니
음악회 같은 곳엔 선배님이 혹시 고견을 주시지 않을까 기다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기다릴 때에는 오지도 않으시더니
이렇게 불현듯 제 글에 답글을 주시네요.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선배님의 피아노 소리는 언제나 들을 수 있을까요?
도선배님은 산전문가시군요
산에 가서 맺는 인연이 쉽지 않은데
각별히 친히 불러서 좋은 선물을 받으셨네요
겉으로는 용글씨의 선물만 있지만
그 안엔 두분의 보이지 않는 내공과 끈끈한 정이 있음을 알게 합니다
참으로 아름답고 훈훈한 이야깁니다^^♡♡♡
이인희님!
저는 결코 전문가가 아니고
혼자서 좋아하고 혼자서 애태우며 짝사랑을 했을 뿐입니다.
그러다보니
좋은 인연이 생기기도 하는 것은
산을 의지해서 사는 사람들의 순수함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보이는 것은 산...
산뿐인 사람들에게 무슨 욕심이 있을까요?
흔히 말들을 합니다.
네팔에 사는 사람들의 행복지수가 우리들 보다 훨씬 높은 이유는 욕심이 없기 때문이라고요.
욕심을 버리고
아기같은 마음이 되면
상대의 마음이 저절로 보인다고요.
측은지심으로 물끄러미 나를 바라볼 때 왜 눈물이 났을까요?
이왕에 "인연"을 올렸으니 "왕의 남자"를 지나칠 수가 없다.
왕의 남자의 앤딩 부분이 지금도 생각난다.
줄(인연)을 끊고 죽음을 택하는 공길과 장생....
그리고 그들의(광대) 마지막 가는 길에 나누는 대사가 소름이 끼친다.
과연 죽음은 그들의 끈질긴 인연을 갈라 놓을 수 있는 것일까?
동성애는 그리스 시대에서 부터 있어왔다고 기록에 전하니 짐작컨대 아담과 이브시절 부터 유래 된 것이 아닐까?
그리스의 태양의 왕 아폴론과 히아킨토스의 동성애는 유명하고
그리스의 유물들을 보면 남자가 토끼를 뇌물로 바치며 구애하는 장면들이 많으며
심지어는 교육용으로 동성애를 권장했다는 설도 있다.
만약에 기독교, 가부장제도, 유교등이 없었다면
오늘날 동성애는 어떤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을까?
왕인 연산과 광대인 공길과 장생
공길과 장생의 관계을 알고
질투에 장생의 두 눈을 지져버린 연산.....
사랑은 서로의 눈을 마주보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사랑하는 연인의 얼굴조차 볼 수 없는 장생의 슬픔과 한을 누가 짐작이나 할까?.
줄을 끓으려 하는 장생을 향해
"안 돼"라며 울부짖는 공길...
과연 왕은 누구였을까?
원래 왕의 남자는 연극인들이 무대에 여러번 올린 작품이었으나
이준익이라는 걸출한 감독을 만나 우리 곁에 왔다.
그 작품 속에 호소력 짙은 이선희의 노래가 한 몫을 했다.
"인연" 이라고도 불리고
"동녘바람" 이라고도 불렸던 노래다.
도산학 후배!
금주산엘 다녀왔군요.
택시 잡아 타고 시간 대어 도착했으니 보통의 성의로는
하기 힘든 일인데.. 의리 있는 산행 친구들이 얼마나 반겨 주었을까...
나도 마음은 굴뚝같았는데
손주보고온 여독이 안풀려 쉬어 버렸답니다.
내 기억으론 금주산은 아주 높은 산은 아니라도
그 가파른 정도가 엄청 심했던 것 같았는데, 너덜 지대는 특히.
금용사, 절에서 쉬기를 정말 잘 했네요.
쑥 , 냉이도 한 봉다리나 캐고
게다가 "용" 자 서예 작품을 받는 횡재(?)까지?
그 노 보살님께서 혜안이 있으시다 사람의 인품을 알아 보는 .
행운을 축하 할게요.
이선희의 칼칼한 노래가 있는 영화 소개까지 해주어
언제나 맛깔스런 산학 후배의 글과 함께 즐거운 저녁 시간을 만끽하고 있답니다.
곧 얼굴 볼 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기대하며
풋풋한 따뜻함이 있는 산학 후배을 떠올려 봅니다.
조영선 선배님!
3개월 동안 두명의 아기를 돌보셨다니
병이 안 난 것 만해도 감사한 일입니다.
집에 오니 이곳이 천국인가 싶으셨다고요?
푹 쉬길 정말 잘 하셨습니다.
금주산!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산이지요.
가파르고
계곡을 끼고 내려오는 끝없는 너덜지대........
이번에도 내려오는 계단이 무서워 그냥 내쳐들 갔다가 초죽음이 되어 겨우 내려왔습니다.
늦게 내려오는 바람에 2시가 훨씬 넘어 점심을 했는데
빈 속에 벌컥벌컥 마셔버린 이동막걸리 석잔에 그만 취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앞으로 막걸리는 사절이지요.
정말 저는 그 날 횡재했습니다.
몇번인가를 가도 못 뵈었던 주지 할머니를 우연히 뵙고 말씀을 들었으니까요.
산을 다니다 보니까
좋은 자리엔 꼭 절이 있어 반겨주는데
저는 이런 일이 두번째입니다.
가평의 보답산 기억하시나요.
보답산은 가평군수인 한석봉이 공부하던 자리에 조그마한 암자를 세웠는데 그 절이 보광사였지요.
그 주지 스님이 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곁에 있던 우리 회원들이 기절을 할 정도로 놀랐습니다.
저는 한마디도 안 했는데 이 스님이 어찌 나를 이렇게 본듯이 알까 햇지요.
우리를 찾는 바람에 부랴부랴 내려와 야단을 맞고 어디갔다가 늦게 왔느냐 하길래 자초지종을 말 했더니
이주영 교수님 말씀이 그 분이 유명한 예언가라고요.
여자들이 그 이야기를 듣고 다시 올라갔다 오겠다 했으나 묵살당하고 그냥 서둘러 오고 말았을 때
그 때 그 자리에 계셨나요?
그 날도 그 분이 저만 유심히 쳐다 보더니 이야기를 꺼낸 것입니다.
다른 날 여자들끼리 한번 가 보자 했으나 인연이 그것 뿐인지 아직 가 보지를 못 했습니다.
20년간의 산행...
그 세월만큼 추억이 쌓여만 갑니다.
아, 기억하고말고요.
보답산 산행은 참석 못 했었고..
언젠가 산악회 회원 한정자님과 함께 우리 셋이
길상사에 갔던 날
보답산 암자의 스님이 해주신 얘길 듣고
내가 너무나 놀랐던 일
그리고
그 스님께서 산학 후배가 글은 쓰면 대성할거라는
말씀에 더욱 믿음이 갔던 일도..
사람의 인연은 정말 소중하고도 신비스러운 것 같아요.
지나가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우리 불가에서 전해지는 말도 있지만
요즈음 인터넷 시대엔 상상도 못할 많은 사람들과도 인연을 맺고 있다 생각하니
직접 만나지 않고도 만들어 지는 인연의 시대가 됐다는 느낌이 든답니다.
"20년간의 산행...
그 세월만큼 추억이 쌓여만 갑니다." 이 말이 어쩜 이렇게 마음을 파고 드는지..
조영선 선배님!
약간 와전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활동을 하라기에 제가 그것은 못한다 했더니
그러면 집에서 글을 쓰라 했습니다.
"대성"이라는 말은 없었고 제 이름을 꼭 알고싶다 하시기에 알려주고 왔지요.
훗날 어디에선가 제 이름을 들으면 "아! 그 때 그 여자였구나" 라고 기억하고 싶어서라고요.
정말은 우리가 놀란 일은 따로 있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우린 똑같이 소름이 쫙 돋았으니까요.
우리는 그 날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아는데 죄 짓고 살면 안 돼 라고요.
정말 놀랄 일이 따로 있었네요. 도산학 후배!
하늘이 알고 땅이 아는데 죄 짓고 살면 안 돼
간담이 서늘한 무서운 명언이다~!
난 가끔 미래를 예언하고 占(?)을 잘 치는 사람들의 초능력(?)의
세계는 과연 어떤 것일까? 하고 상당히 궁금증에 휩싸인 적이 있어
의문의 화두를 두고 멋대로 상상해 보았지만 니의 단편적이고
단순한 얕은 생각으론 이해할 길이 없었고..
그저 지나간 시간들을 토대로 현재의 시간이 조금 지혜로울 수 있는 길이 뭘까 에
초점을 두고 노력해보자로 귀결해버렸답니다.
물 흐르듯 막힘이 없는 산학 후배의 좋은 글은
항상 마음을 순하게 만들어 주고 있으니
20여년의 이런 멋진 인연에 난 감사할 수밖에요.
조영선 선배님!
누구나 한번쯤은 초능력의 세계에 관심을 가진 적이 있지요.
옛날에는 미래를 예언하는 사람이 하늘에 제사를 올리고, 그 제사장이 왕이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국어학에서 "무당"의 어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왕"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세월이 변해
그런 부류의 사람들을 천대시 하며 미신이라 한쪽으로 숨어버렸습니다.
우리 할머니들이 장독대에 정한수 떠놓고 비는 신앙을 비롯해 성황당등 모든 것이 없어졌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불교나 기독교에 의지하면서도 기본적으로는 비는 신앙을 간직하고 있다 합니다.
이렇듯 우리나라에서는 다 없어진 것들이
바이칼 호수 근처 알흔 섬에 가면 그대로 있다해서 민속학자들이 연구차 많이 찾아 갑니다.
성황당, 나무에 주렁주렁 달아논 색색 가지의 천들...
이인숙씨의 딸이 신혼여행을 알흔섬으로 갔다 와서 "우리나라 시골과 꼭 같다"며 감탄을 했다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병에 걸려도 무당같은 사람이 주술로 고친다는 곳,
일본 산에 가면
산 입구에 금줄을 쳐놓고 색색 가지의 헝겊을 달아 놓았습니다.
여기는 산신령이 계신 신성한 곳이라는 뜻이라고요
꼭대기엔 어김없이 사당이 있어 무사산행을 감사하며 두 손 모아 합장을 합니다.
우리가 갔던 대마도의 시다라께 산
그리고 韓國岳이란 이름을 가진 산등 다 마찬가지 였지요.
우리는 미신이라고 다 없애버린 중요한 것들이
알흔섬에 일본에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알흔섬은
유럽인들이 주로 많이 찾는데
최근엔 우리나라 사람들도 찾기 시작 했다고요.
조영선 선배님!
시베리안 열차를 타고 바이칼 호수를 건너 우리의 영혼이 살아있는 알흔 섬에 가 보고 싶지 않으셔요?
도산학 후배!
시베리안 열차를 타고 바이칼을 건너 알흔 섬으로 .
내가 가고 싶어 하는 곳을 어찌 그리 콕 집어 내는 지요?
사진 생활을 하는 친구 한 명이 어느 해인가 몽골과
알흔 섬의 풍경을 찍어 보냈는데 내가 얼마나 매료되었던지
그 사진 작품들을 몇 번이나 열어 보았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흥미가 있었고 가고 싶었던 적이 있었어요.
.
특히 그 때 성황당 사진이 너무나 인상적이었고
하늘의 별들이 얼굴로 쏟아질 것만 같았던 그 곳의 풍경이
순수한 대자연에 공해 없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라는 느낌이 들었었어요.
산학 후배는 알흔 섬을 다녀 왔다는 이야길 들은 것 같기도하고..
안 갔으면 나랑 같이 시베리안 열차를 탈 인연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조영선 선배님!
제가 알흔섬이 좋다고 얼마나 떠들고 다녔으면 "다녀 왔겠지..." 하셨을까요?
몽골은 갔다 왔지만
시베리아 근처는 밟지도 못 했습니다.
선배님!
우리목록에 알흔섬을 추가하고
언제 한번 꼭 같이 가요.
시베리안 열차를 몇날 몇일 타고
이광수의 "사랑"의 무대가 된 곳도 밟아보고
우리 민족의 영혼이 살아 숨쉬는 알흔섬으로 가는 배를 오래 오래 기다려 타기로 해요.
오늘은 봄비가 오시네요.
초파일이 다가 왔다고 길거리에 벌써 단 연등도 봄비에 젖고 있습니다.
영조 임금 시절 전라도 부안의 기생인 복아가 지은 "봄바람"이란 시가 아름다와 적어 봅니다.
봄바람은 괜스레 살랑거리고
어느새 달이 떠서 황혼 되었네.
오지 않을 그대인 줄 잘도 알면서
그래도 문을 차마 닫지 못하네. ㅡ복아ㅡ
모든 것이 봄비 탓인가요? 마음만 싱숭생숭 합니다.
산학아!
댓글이 아주 늦어져 버렸네.
이번 봄은 뭐가 그리 바쁜지 맨날 허덕허덕이고 컴에 앉을 시간도 별로 없어.
네 글은 읽고 가볍게 댓글을 달아서는 안될 것 같아서 생각 좀 하다 보면 이렇게 늦어져 버리는구나.
더 늦으면 서운해 할 것 같기도 해서 그냥 마구 적는다.
희순언니 말씀대로 혜경언니가 찍으신 그 사진 우리 함께 봤었쟎아?
유정희 선생님 모신 자리에서...................
그냥 만날 때는 좀 개성적인 사람 정도로 생각했는데 그 사진 보니 산학이도 혜경언니도 예사롭지가 않더라구.
그리고 그 박식함에 !!!
가평 보광사 스님 이야기도 그 날 들었지?
그 날 식사하고 인일여고 가서 합창도 하고 그랬는데 벌써 세월이 흘렀네
몸은 괜찮니?
난 맨날 이런 이야기만 하지?
통 만나기가 힘드네.
5월 1,2일 5기가 여행가는데 그 전 날 가고 여행 다음 날 와야 하니 이 번에도 한가롭게 누구 만날 시간은 없을 듯 해.
아하!
선배님 말씀처럼
선배님이 안 오시면 제가 섭섭하지요.
치과 치료등 난감한 문제들이 이제는 다 끝나셨는지요?
많이 힘드셨지요?
5월에 허브나라에 가신다고요?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봉평,허브나라....
참 그리운 곳입니다.
허브나라 주인 내외 하고도 인연이 각별합니다.
남자는 서울대 공대 여자는 서울대 농대 출신으로 캠퍼스커플인데 여자의 음식 솜씨가 일품입니다.
전라도 김치가 특히 맛깔스럽습니다.
오죽하면 우리가 함께 터키에 갔을 때 어느 음식점의 김치를 그 분이 담가주고 왔을 정도랍니다.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이 열리고
연극인 박정자의 "SO, WHAT?" 이라는 공연이 달밤 야외무대에서 펼쳐진 곳이 지금도 어제인 듯 눈에 선합니다.
가수 노영심이 그곳에 반해 자기 피아노를 갖다 놓고 수시로 드나들던 허브나라.
지금은 많이 복잡해졌지만
그래도 참 좋은 곳입니다.
유명옥 선배님!
소금을 뿌려놓은 듯한 하얀 메밀꽃을 지금은 볼 수 없어도
흥정계곡을 산책도 하시고
친구 분들과 그동안 못다한 회포도 밤새도록 풀고 오십시오.
치과는 연말이나 되야 끝날 모양인데 암튼 한 쪽은 다 되서 먹는데는 지장이 없어.
허브나라 주인이 일본의 유영희랑 대학 때부터 절친이래요(영희도 서울대 농대)
그래서 일본에 가면 영희네 집에 머물고 그래서 나까지도 허브나라에서 온 김치나 더덕 장아찌 맛 볼 기회가 있었지.
이 번에도 영희가 소개를 해서 가는 건데 회장단이 답사차 가보고 너무 맘에 들어 하더라구.
우선 식사가 아주 좋대.
이문세는 아예 자기 방이 정해져 있다더군.
그 노영심이가 가져다 놓은 피아논지는 몰라도 우리가 합창도 하고 싶다고 했더니
그랜드 피아노를 야외 음악당에 내어 준다고 마음대로 쓰라고 했대.
분위기에 어울리는 피아노곡도 준비해 가야 하는데 요즘 도무지 연습을 못하네.
이번에 영희가 한국 온 김에 일부러 허브나라 까지 가서 우리가 쓸 방도 다 정하고 갔대.
말하자면 특별손님이 된 거지.
근데 산학이는 우째 그리 모르는 게 없누!!!!
야외 무대에 피아노가 있고
달이 밝은 보름날이면 더 좋겠네요.
그곳에서는 밤하늘에 울려퍼지는 환상의 노래소리때문에
봄꽃들이, 움트는 나무들이, 벌레들이, 새들이, 별들이 잠 못 이루는 밤이 되면
봄이 오다가 멈칫 숨어버리는 것은 아닐런지요.
그때
????????????????????????????????????????????????????????????
(유명옥 선배님 죄송합니다. 글을 쓰다보면 저런 부호만 계속 떠서 쓰던 글을 중지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참으로 난감합니다)
박정자님은 빨간 드레스를 입고 조명을 받으며 계단에서 천천히 내려오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참으로 고혹적이었습니다.
나이를 먹으면 어때서...SO WHAT?
바로 그 자리에서 노래를 하신다니 부럽기만 합니다.
그리고 이런 일도 있네요.
제가 많이 들었던 "일본에 있는 친구에게 신세를 지고 있다" 라던 그 친구가 바로 선배님의 친구라니요.
실은 허브나라도 일본에서 많이 배워 하나하나 만든 것이니까요.
제가 아는 분도(서울공대 출신들) 초창기부터 그곳에 별장을 갖고 있었고
자연적으로 뭉쳐서 해외여행을 다니곤 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인간의 인연이란 것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이시형 박사님을 필두로 "터키를 사랑하는 사람들" 이 태동된 곳도 그곳이었고
이시형 박사님이 명상의 숲을 만든 곳도 이곳 허브나라가 모델이랍니다.
선배님이 그 쪽과 인연이 닿아 있다니
선배님이 더 가깝게 느껴집니다.
사람이 참 간사하지요?
그 이시형 박사님과 영희가 아주 가깝던데 그런 인연때문인 모양이구나.
이런 식으로 점점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의 폭이 넓어져서 엄청 지인이 많더라구.
영희네 게스트 하우스에 가서 있어 보면 참 많은 종류의 사람들이 와.
거기가 학원겸 영희 사무실이거든.
원래 대규모로 하는 학원은 동경에 있고 이 곳은 그룹렛슨 같은 거 하더라
건물은 하나지만 세부분으로 나뉘어 있어서 안채에는 아무도 안오니까
쉬기는 정말 좋은 곳이더라구.
난 대개 내 볼 일로 가니까 영희랑 멀리 가거나 하지도 못하지.
그래도 심심할까봐 열심히 어디 데리고 가고 싶어해서 고맙고 미안하고 그래.
안 채에 손님이 있으면 다른 손님들이 함께 먹으라고 과자나 소바등 먹을 것도 가져 온다.
난 관광도 싫고 그저 고즈넉한 그 집에 앉아서 음악 들으며 쉬기도 하고
아침이나 밤에는 사무실에 가서 피아노도 치고 그러는 게 너무 좋아.
참 우리 여행 떄 어쩌면 기가 막힌 트럼펫 연주자도 올지 모른대.
그러면 어떨까? 하고 영희가 전화 했던데 우리야 좋지.
암튼 가만 보면 무지 베풀고 이벤트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우린 그 곁에서 그냥 호사를 하는 거지.
산학이처럼 박식한 사람 곁에서 공부도 하고 그러고 보면 난 인복이 많은 가 봐?
김춘자선배님!
산행에 컴퓨터 공부에 많이 바쁘시지요?
대단하십니다.
제 경우를 보면
예전엔 산을 오를 때 산은 못 보고, 앞사람의 뒤꼭지만 보고 올라 갔는데
이제는 산 언저리에서 산을 올려다 보고만 옵니다.
이런 나를 되돌아보며 세상의 이치가 다 변한다 라는 말을 절실히 실감하는 요즈음입니다.
이러다 보면
언젠가는 흙으로 돌아갈 날도 오겠지요?
그 날이 오기까지
주어진 시간에 감사하며 살아야지 하며 다짐을 하곤 합니다.
김구 선생님의 일대기를 보며 독립자금을 댄 아버지를 생각하다 울고 나왔다는 할머니...
그 때 아버지가 김구 선생님의 제자였던 그 딸이 왜 눈에 띄었을까요?
그리고 무엇 하나라도 줘서 보내고 싶은 그 마음은 무엇일까요?
세상에 인연 아닌 것이 없습니다.
인연따라 왔다가 인연 따라 가는 인생길입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
지금 친구가 전화를 주었습니다.
유명옥 선배님께 쓴 답글에 오류가 있으니까 빨리 고치라고요.
메밀꽃이 7월 중순 피는데
내가 "메밀꽃 사이에서 사진도 찍으셔요." 했으니 친구가 놀랄 수 밖에요.
글을 막 써대는 내가 종종 실수를 하는 것을 알고있는 친구가
염려스러워 지적을 해 주니 얼마나 고마운지요.
친구라도 내가 존경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내 글에 비추천이 들어오는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 했습니다.
우리가 남의 나라의 신화 같은 것을 다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는 그리스 신화 정도는 한번쯤은 읽었는데
"동성애"에 대해 썼다고 주홍글씨를 주는 것은 기본적인 신화를 몰라도 너무 몰라서 한 짓이 아닐까 했고요.
"예언가" 를 만났다고 주홍글씨를 주는 것은 종교를 빙자해 샘이 나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해서 웃었습니다.
나는 그 사람들을 만났을 때
그네들이 너무도 평범해 예언가 라는 생각은 꿈에서 조차 못 했으니까요.
실은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예언가가 있다면 오히려 발 벗고 찾아 나설 사람이라고 나는 단언합니다.
그런데 대문글에 주홍글씨는 좀 심각합니다.
"네가 무조건 싫다"라는 의미이니까요?
사람 싫은 것이야 어쩌라고요....
세상에는 고마운 사람도 있고
나를 싫어하는 사람도 당연히 있는 법이니까요.
그러나 나로 인해 죄를 짓게 하니 이 또한 나의 부덕의 소치이겠지요.
오늘
여러가지 생각을 해 준 내 친구에게 진정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인연..........산학아~!
많은것을 생각하게 한다.
이글 저글 스크랩해 읽고 다시 읽으면서 나를 돌아보는동안
고개 끄덕이게 하는글 가져와본다.
인연(因緣)에 대한 명언(明言)
[어록]
* 어떠한 과정도 이유 없는 것이 없다.
모든 생성은 그 원인을 가지며 그러기 때문에 필연이다.
-레우키포스; 단편-
* 전쟁은 전쟁을 낳고, 복수는 복수를 가져온다.
반하여 호의는 호의를 낳고 선행은 선행을 가져온다. -에라스무스; 평화의 호수-
* 금요일에 웃는 자는 토요일에 울 것이다. -라신느-
* 삼라만상 중에 인과관계가 가장 긴밀한 상태는 행복과 덕성과의 관계다.
덕성이 있는 곳에 가장 자연적 행복이 있고 행복이 있는 곳에
가장 필연적으로 덕성을 예상한다.
-세네카-
* 나쁜 과일이 아직 익지 않은 동안은 악인도 더러 행운을 만난다.
나쁜 과일이 익을 때에 이르면 악을 만난다. -법구경-
* 너에게서 나오는 것은 너에게로 되돌아간다. -맹자-
* 한 생명이 세상에 나오기 위하여 한 생명이 사라진다니 업원이 아니고 무엇이랴.
불가에서 말하는 인과였다. -장덕조; 광풍-
* 불가에서는 길거리에 오고가는 사람끼리 잠깐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한다는데 어두운 밤거리 무서운 빗줄기 속에서 10분 동안은
착실히 호흡을 맞추어 걸어왔으니 그것이 인연이 아니고 무엇이랴.
-박화성; 고개를 넘으면
* 인간이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은 별이 하늘에 있는 것과 같은 것이예요.
별들은 저마다 신에 의하여 규정된 궤도에서 서로 만나고 헤어져야만 하는 존재예요.
그것을 거부하는 것은 전연 무모한 것이든가 그렇지 않으면
세상의 모든 질서를 파괴하는 것이지요.
-------------------- -M.뮐러; 독일인의 사랑-
* 깊은 물속에 잠기듯이 감정의 밑바닥까지, 인연이 쉬고 있는 밑바닥에 이르기까지
깊은 생각에 잠기었다. 인연을 아는 것은 사고(思考)요,
사고를 통하여서만 감각은 인식(認識)이 되어 소멸되지 않을 뿐 아니라
본질적인 것이 되어 그 속에 있는 것이 빛날 수 있다고 생각되는 것이었다.
-헤세; 싣달다-
* 생명을 가진 것 치고 안전한 것은 없다.
아내와 새끼를 거느린 수풀의 사슴이 고개를 넘을 때마다,
모퉁이를 돌 적마다 마음 못 놓는 눈을 돌려 살피거니와 그래도 어디선지 모르는 곳에서
날아오는 화살을 다 피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인연이 당하는 시각을 피할 도리는 없는 것이다.
그것을 피하는 첫 길은 아예 인연을 아니 맺을 것이요.
이왕 맺힌 인연이어든 앙탈 없이 순순히 받는 것이 둘째 길이다.
-이광수; 사랑의 동명왕-
김은희 선배님!
오랫동안 소식이 없더니
긴 겨울 지나고 봄이 오시니 봄과 함께 소식을 안고 오셨네요.
선배님네 넓은 정원엔 지금 한창 봄꽃들이 서로 다투며 아름답게 피어나고???????????????????????????????????????????
있겠지요? 쑥, 냉이도 많이 뜯으셨는지요?
일전에 순수 우리나라 하얀 민들레가 약이라고 캐 가는 바람에 멸종 위기를 맞고 있다는 소리를 듣고
혹시 선배님네 정원엔 아직도 하얀 민들레가 있을지도 몰라 했지요.
하얀 민들레를 보셨는지요?
"인연"에 관한 어록....
참으로 많습니다.
하나하나 음미해 봅니다.
그런데 한가지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란 말입니다.
옷깃 이란 옷과 옷 사이의 여미는 부분인데, 이 부분이 스칠래면 서로를 꼭 껴 안아야 한답니다.
이런 의미이기에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다" 라는 말은 육체적으로 깊은 포옹이 있는 사이를 말한다 하더라고요.
제가 좋아하는 "인연"에 관해 법구경에서는 또 이런 시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가지지 마라.
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나서 괴롭고.
미워하는 사람을 가지지 마라.
미워하는 사람은 만나서 괴로우니까.....
김은희 선배님!
내일 봄날 여행 가신다고요?
봄님들과의 즐거운 1박 2일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편안히 다녀오십시오.
순애야!
질 다녀왔구나?
오랜만에들 만나 얼마나 반가왔을까?
인일총동문 중에서도 "봄날"이란 모임으로 또 다시 뭉쳤으니 그 인연이 정말 각별하다.
누구의 글에 추천, 비추천을 하는 것도 다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제도인데 어느 때는 좋은 용도로 쓰이겠지.
다만 그 이유를 써 주면 더 고맙지 않을까?
왜냐하면 다음에 글을 쓸 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이지.
그리고 내가 그 문제에 대해 쓴 것은
분명 비추천을 한 분도 내 방에 들어와 관심을 가져 준 것인데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을 뿐이다.
표현의 자유가 분명 있는데
콕 집어 이야기 안 하고 그냥 비추천 이라하니
머리 나쁜 나는 이 생각 저 생각을 해 볼 수 밖에.....
한때는 노골적인 "왕따"에도 견디었는데..........난 왠만큼 단련이 되었잖니?
그나저나 이런 문제가 화제가 되었다니
내가 고맙다고 "봄날" 식구들에게 한 턱 내야겠네.
순애야,
봄님들!
모두 모두 고맙습니다.
5명옥언니,
1) 길이....길이 너무 좋아져서요, 막힘도 없이 1시간 좀 지나니 그냥 서울로 들어와버렸어요.
마애불 눈에 찍고 떠난 두차 중, (2순영언니 차는 인천으로 ) (내차는 서울로) ......출발하면서
어리석게도 저는 (순영언니, 어느 휴게소에서 서로 콜해서 커피 마셔요) 했는데..... 우리는 목적지가 다르니
가는 길에 만날 수가 없었더군요, ㅎㅎ
(제일 먼길에...... 수고 많으셨슴다, 찬정 too)
2) 비몽사몽.... 이라시지만, 전 정말 놀랐어요! 아니 나이 많은 아주머니들이 어쩜 잠도 안자고
새벽3,4시까지 노래하고 떠들고....... 온전 수학여행 여학생들이던데요!! 감탄! 쇼크!
어제
음력으로 삼월 보름날
인천대교를 건너 을왕리 바닷가를 찾았다.
솔밭 사이로, 손가락 사이로 빠지는 모래가 곱고 가까이에 까지 다가온 바다 색깔이 푸른 물이 들듯 짙푸르다.
작년 겨울
이 바다에도 눈이 나렸다.
펑펑 나리는 하얀 눈이 바다 위에 사뿐이 내려 앉으면 그냥 고요가 되던 바닷가.
바다는 우리의 추억도 삼켜버리고, 눈물도 삼켜버리고, 모래사장에 남긴 발자욱마저 지워버리고
그리고 종내 말이 없다.
6명의 친구가
잠시 바닷바람을 맞으며 바다를 바라보다 커피가 생각난다며 찻집을 찾았다.
어느 때 부터인가 자연스레 모이기 시작한 친구들...
오랜만의 만남임에도 바로 어제 헤어진 듯 스스럼이 없고 걸림이 없다.
편하다.
원래 추천받은 멋진 커피집을 찾았으나
"그 집은요...한 잔에 만오천 이니까 십만원이 들지만 우리는 거기에 못지않게 맛있어요. 그리고 그런 곳은 불륜들이 가는 곳이얘요"
라는 말에 그냥 주저앉아 버렸다.
바닷가의 커피냄새가 구수하고 진하다.
커피 가격도 순하고 오고가는 화제도 커피처럼 구수하고 진하다.
어느덧 "불륜"이 당연시 되어가는 사회에
전혀 관계없는 여자들의 그저 그런 수다들이 끊일 줄을 모른다.
그래도 다들 저녁을 걱정하며 서둘러 일어선다.
누가 무어라해도 착한 대한민국의 엄마들이다.
점심으로 먹은 즉석에서 해서 퍼 준 밤, 대추, 서더리콩이 잔뜩인 찰밥
그리고 물을 넣고 기다려 먹은 누룽지........
된장찌개에 갖은 나물 그리고 계란찜 열무김치의 맛도 그럴듯했으니
만약에 자주 만나도 이렇게 좋을까?
산학아,
보니까 우리 7기들이 이곳 다 모였네 하고 보니까
나중엔 선배님들까지 다 나오셨네.
지금쯤 너는 아마도 잘꺼야... 여기 저녁 6시 반, 거기는 새벽 1시 반인데...
친구들 만나서 커피도 마시고 찰밥도 먹고 했으니 참 좋겠다.
무릎은 좀 많이 회복되었니?
희자야!
크루즈 여행은 잘 다녀왔니?
세계 곳곳을 누비는 너를 보면 현대판 공주님이 아닐까 라며 부러워하곤 한단다.
즐거웠지?
흔히 친구들을 만나서 이야기하다 보면
저 친구는 어떤 인간 군상에 속할까 생각을 하게 되는데
시인 김지하도 종종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을 들었다.
장모님인 박경리의 "토지"를 보았다고 하면 "당신은 작품속 어떤 인물과 비슷하냐? " 라고....
토지는 대하소설인 만큼 인물도 엄청 많으니까.
예를 들어 질문을 받은 사람이 "그렇다면 김지하 시인은 작품 속 누구랑 닮았다고 생각하십니까" 라고 물었더니
"길상이, 구천이가 멋진 사내였으니
그런 사내가 되었으면 했다" 라고 답을 했지.
한 사람, 한사람 개성이 뚜렷한 어제 모임에서도
어떤 사람은 A가 지고지순한 월선이라 했고,
나도 내 나름대로 S는 지혜롭고 강한 여인 서희이고
B는 다정다감했지만 사무치게 깊었던 한을 품고 살았던 침모의 딸 봉순이고
F는 지체높은 신세대 여성 명희가 아닐까 생각을 했단다.
그렇다면
희자야 너는 누구일까?
강한 정신력과 지혜로움으로 최씨 가문의 굴욕과 영광을 지켜내고 사랑도 쟁취한 주인공 "서희"가 어울린다.
그런데 "토지"를 네가 그 먼 나라에서 읽어 보았을까?
임경선 선배님!
먼저 죄송하다는 말을 드립니다.
그 날 을왕리를 이야기 하면서 그냥 뭉뚱그려 "친구"라 지칭해서요.
"혹시 이런 이야기를 쓰면 싫어할지도 몰라" 해서 그리 된 것이니 이해해 주실거죠?
그리고
"저 언니는 월선이야" 라고 처음 말 한 사람이 선배님이고 벌써 3년전인가요?
그 날의 모임에서처럼 을왕리에서도 또 그리 말씀하셨지요.
자꾸만 들으니, 그 언니가 월선이지 싶었습니다.
월선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산 희생적인 여인이라는 사실은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박목월 시인이 40대에 여대생과 사랑에 빠져
집을 버리고 제주도로 내려가 동거생활을 할 때
부인이 찾아와서는 아무 말도 안하고 입을 옷하고 돈을 두고 왔다지요.
훗날 여대생과의 생활을 청산하고 집으로 돌아와 오로지 작품활동에 전념해 주옥같은 글들을 남겼습니다.
아내의 지혜로움이 없었다면 과연 시인 박목월을 상상할 수 있었을까요?
서희, 봉순이, 명희....
다 상처로 피어난 꽃입니다.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고 어느 시인이 노래했듯이 말입니다.
이번 주말은 저도 참 힘들었습니다.
10년 병마와 동거하던 사촌오빠가 67세의 나이로 하늘나라로 가시고 그의 원대로 시신은 성모병원에 기증을 했습니다.
장례식장도 화곡동 성당 본당으로
장례미사 끝나자마자 시신은 병원으로 기증되고 , 다 끝이 나더라고요.
허무합니다.
그리고 다음 날은 세째 동생의 딸이 함을 받는 날이라 세째네로 함구경을 갔습니다.
바가지를 깨고 함을 지고 들어오는 새신랑,
그리고 새신랑을 맞는 한복을 곱게 입은 수줍은 새색시.......
하루는 울고
다음 날은 웃고
인생이 그렇게 흘러갑니다.
그런데 선배님은 누구와 비슷한지 아세요?
정말은 본인은 본인을 잘 모르잖아요.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명희 라고요.
무당딸 월선이와 용이, 별당아씨와 구천이
토지에 나오는 가슴 에이는 사랑의 주인공들
그 선배가 월선이를 닮았다는 것은 사랑에 무조건 착한 심성을 보일 것 같아서였지 다른 이유는 없어요.
왜 억척스럽고 사나운 임이네도 있었잖아요.
임이네 같은 여인들이 가시덤불도 헤치면서 잘사는 법이지요.
강신재 선생이 쓴 `파도`에 나오는 영실이가 어른이 되서 임이네가 될 것 같네요.
그러구보니 파도의 주인공 성희(?)가 자라서는 명희같은 캐릭터가 되지 않았을까?
수십년 전 읽은 소설의 인물들이 아직 머릿속에 살아있다니
토지는 명작임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산학후배~
`정말은 본인은 본인을 잘 모르잖아요.`
과연 그럴까?
자신을 미화시키고만 싶은 ,혹은 자신의 잘못을 뭉개고 싶은 사람들이 모르는 척하는 측면도 있지 않을까?
(소크라데스가 말한 `너 자신을 알라` 라는 철학적 명제를 증거로 들이민다면 그건 저도 너무 할말이 많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습니다요.|)
하는 일도 없이 바쁜 하루가 지나고
오롯이 나만의 시간에 선배님과 마주 앉았습니다.
지금, 8시 뉴우스에서는 개성공단 이야기가 나오는데
북한의 억지가 일등이냐 임이네의 억지가 일등이냐를 따지자면 정말 가관이겠지요?
그래도 북한은 젊잖은 대한민국을 두어서
임이네는 무던한 용이 덕분에 그럭저럭 연명을 하니
그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되짚어 봅니다.
그리고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 한 것처럼
우리는 영원히 나 자신을 파악하지 못 하는 것은 아닐까요?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나는 분명히 공평하게 사랑을 준다 생각했으나
아이들은 편애했다 말하니
누가 진정 나일까요?
인간의 심리를 분석하는 심리학자는 그래서 천재라 하는 모양입니다.
왜 우리 주위에도 엄청 날카로운 분석을 하는 친구가 있어 깜짝깜짝 놀라잖아요.
그것....아무나 못 하는 일입니다.
요즈음 연세대 황상민 심리학과교수가 가끔 텔레비죤에 얼굴을 비추는데 화법도 독특하더라고요.
4차원의 낸시 랭도 꼼짝 못 합니다.
그나저나
선배님을 글을 보니
"젊은 느티나무" 그립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연애에 빠진 주인공들의 심리를 잘 표현했는지
어쩌면 작가의 실제 경험이 아닐까 하기도 했습니다.
"파도"의 주인공이 커서 명희와 비슷하지 않을까..... 참 그렇겠네요.
박 경리씨 하면 토지를 대부분 이야기 하지만
난 바로 위 언니하고 여고시절에 장편소설 김 약국의 딸들을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나네
토지 하면 원고 매수만도 사만여장이 넘고 26년간 육백여명의 인물을
등장시킨 대하소설이니 산학이들이 소설속에 인물들과
선 긋기할 만도 하네.....ㅎㅎㅎ 현대문학상을 우리집 큰오라버니랑 함께 수상했을때
비로도 치마저고리 입었던 박경리씨의 젊은시절에 고운 모습이 우선 떠오르곤하지.
첫인상이 무척 강하게 남아있었던게야.
친정집엔 처음에 연재했던 육십년대에 월간 문학지들이 노랗게 변색된채로 보관 되어 있었는데
아직도 남아있을려나 몰라........................
아~! 옛날이여네........이젠 옛것이 이리 생각나고 그리울 수가 없네.
그리고.........산학이가 귀뜀해주면서 우리것인 토종 하얀 민들레가 있으면
보존해서 퍼트리라고 한말이 생각나서 우리집 마당에 그나마 듬성듬성 나와있는
하얀 민들레를 비디오로 찍어서 동영상으로 편집했어요.
산학이 말대로 귀하게 생각하고 홀씨를 받아서 우리산에다 우선 퍼트려보려고해
어제 만들어놓은 동영상 구경해보라구~
저기 위에 동영상 노래.......인연을 스톱해놓고 보셔요.
나 사는 동네에서도 우리집 마당에서만 보이는 하얀색 작은 들꽃 (일명 내가 부르는 별사탕꽃)을
나는 제일로 좋아하고 그 꽃도 많이 퍼트리려고 노력중이야........
김은희 선배님!
예총 사무총장을 오랫동안 역임하셨던 평론가 김양수 선생님이 오빠이셨으니
선배님께서는 어릴 적 부터 책속에 묻혀 사셨겠네요.
그리고 그 옛날,
현대문학상을 오라버니와 박경리 선생님이 같이 수상하셨다니 "토지"라고 하면 특별히 감회가 남다르시겠습니다.
그리고 남편이신 김정웅 교수님이 김 수영 문학상, 동국문학상율 타셨으니
선배님께서는 문학과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인연이십니다.
아마도 전생에 선배님도 글을 쓰는 분이 아니었을가요?
선배님께서도 이런 인연에 힘입어
자서전을 이쯤에서 준비하면 멋질텐데요.....어떠세요?
그리고 이곳 인천보다 열흘쯤 봄꽃들이 더디피는 김포의 산자락 아래
꽃대궐이 펼쳐졌습니다.
산 벚꽃, 목련, 노랑 사탕별꽃, 오랑캐 꽃, 노오란 민들레속에 사라져가는 하얀 민들레가 남아 있네요.
뉴우스마다 토종 하얀 민들레가 사라져 버린다는 소식을 듣고
혹시나 선배님댁에는 있을지도 몰라 했더니 과연 하얀 민들레가 여기저기 피어 있습니다.
봄꽃들이 지기 전
하루 날을 잡아 꽃대궐로 봄나들이 가고 싶습니다.
산학아~!
문인이 그저 좋은 글을 지속해서 쓰기란 정말 쉽지않은 일이지 싶다.
오라버니는 그저 남보다 일찍 문학에 뜻을 두신 분이시고
물론 장르마다 다르긴 하지만 소설가로 박 경리 선생님은 우리나라 문인으로
소설로 큰 족적을 남기신 분이시고............
그러고 보면 작가는 ' 자신의 불행과 고통을 자양분으로 삼아 자라는 존재다. 작가라는 존재는
스스로 고난의 수형자 가 되는것이다" 라고 표현한 평론가도 있고
잊혀지지 않는 박 경리 선생님의 글귀도 생각나네..."나는 슬프고 괴로웠기 때문에 글을 썼다.........."
많은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었지만 어찌되었든 삶이 슬프고 고통스럽다고
다 대작가나 예술가로 족적을 남기진 못하니까......타고난 기질이 있어야하지않을가싶네.
그러고보면 우리오라버니는 남다른면도 있긴한거 같은데 너무 평범하시지 않았나싶네.
주위에 문학적 소질이 있어 좋은 작품을 쓸만한 후배가 거의 작품을 안 쓰는걸 보면
너무 환경이 좋아서지 싶기도 하다.
하긴.......박 경리 선생님이 이런 말씀도 하셨거든 " 훌륭한 작가가 되느니 차라리 인간으로서 행복하고 싶다"
그저 평범하게 사는일이 결코 쉽지않은 일이지 싶네
인간으로 행복하다는것도 너무 주관적이라서.......그것도 그렇고.
우리집울안엔 벚꽃이 이제서야 만개했어.
좀 있으면 다 지고 말겠지만 .........꽃사과꽃이 피여날때 나들이 오려면 와봐
누구는 자전거도 타고 왔더라만....정말 씩씩하고 부럽더라 그 건강이말야.
재화야!
참으로 이상도 하지.
백설희씨가 부른 것보다
남자인 장사익이나 최백호씨등이 부른 것이 더 애절하고 심금을 울리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노래 가사처럼
짧은 봄날이 덧없이 흘러간다.
첫번째 이야기
꽃 피는 사월
산길을 가다가
민들레를 꺽어
말도 없이 불쑥 내게 건넸지요.
아무런 표정도 없는 얼굴이 재미있어
민들레를 훅 불어
그대 얼굴에 뿌렸습니다.
홀씨 되어 날아간 노오란 민들레를 빼앗아
내 긴머리에 꽂아주고 말없이 바라보던 그대.
쌩긋 웃는 나를 "예쁘다" 했지요.
민들레 홀씨 되어 날아가 버린 자리에
누구도 모르게 싹튼 그리움 하나........
불쑥 불쑥 찾이와
그리움만 주고
홀연히 떠난 그대는
민들레만 지천에 피워두고 어찌하라고 본체만체 인가요?
두번째 이야기
아파요
바위틈을 비집고 나오느라 온몸은 상처랍니다.
돌틈에서도 그리움을 숨기려고 눈물이 났지요.
그대 향한 그리움을
정녕 그대여
민들레 꺽어 머리에 꽂아주며 "예쁘다"했던 그 때를 모른다 하지는 않겠지요?
그대가 건넨 민들레는
곱게 말려서
화장대 거울에 붙여놓고 두고두고 보았습니다.
바람이 많던 그 날
추워보이는 나에게 옷을 벗어 입혀주던 그 손길도 느끼면서
말라버린 민들레는 하얗게 하얗게 바래갑니다.
홀씨 되어 날아간 민들레 하나
언제 다시
내 긴 머리에 꽂아주며 "예쁘다" 할까요?
그대는.......
오래전에 써 둔 "민들레 이야기"를 민들레 이야기가 나오니 다시 뒤져 올려 봅니다.
다시 보니 좀 유치하기 까지 하네요.
오래전에 산학이가 써둔 시라 하니
원래 박경리 씨도 시를 먼저 쓰기 시작했다고 해요
말년의 쓰신
박 경리 선생님의 소문으로 듣던 유고시집이 생각나서 발품팔어 이곳저곳에 다녀보다
가져와 보았다. 전에 분명 집에서 본듯한데 읽지는 않아서 말이지 어디 있는지
찾지를 못했네.
...천성....
남이 싫어하는 짓을 나는 안했다
결벽증, 자존심이라고나 할까
내가 싫은 일도 나는 하지 않았다
못된 오만과 이기심이었을 것이다
나를 반기지 않는 친척이나 친구 집에는
발걸음을 끊었다
자식들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싫은 일에 대한 병적인 거부는
의지보다 감정이 강하여 어쩔 수 없었다
이 경우 자식들은 예외였다
그와 같은 연고로
사람 관계가 어려웠고 살기가 힘들었다
만약에 내가
천성을 바꾸어
남이 싫어하는 짓도 하고
내가 싫은 일도 하고
그랬으면 살기가 좀 편안했을까
아니다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 삶은 훨씬 더 고달팠을 것이며
니레 지쳐서 명줄이 줄었을 것이다
이제 내 인생은 거의 다 가고
감정의 탄력도 느슨해져서
미운 정 고운 정 다 무덤덤하며
가진 것이 많다 하기는 어려우나
빚진 것도 빚 받은 것도 없어 홀가분하고
외로움에도 이력이 나서 견딜 만하다
그러나 내 삶이
내 탓만은 아닌 것을 나는 안다
어쩌다가 글 쓰는 세계로 들어가게되었고
고도와도 같고 암실과도 같은 공간
그곳이 길이 되어 주었고
스승이 되어 주었고
친구가 되어 나를 지켜 주었다
한 가지 변명을 한다면
공개적으로 내지른 싫은 소리 쓴 소리,
그거야 글쎄
내 개인적인 일이 아니지 않은가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홀가분 하다 中 -
박경리 선생님께서
23년이란 긴 세월을 두고 대작을 남겼음에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홀가분하다 하셨으니
내 몸만 버리고 가면 다 끝이라는 말을 어찌 그리도 편하게 하실 수 있었을까요?
평생을 외로와 글을 쓸 수 밖에 없었다는 선생님의 항변이
어머니에 대한 회한
사위 김지하의 옥고
업어 기른 손자에 대한 애틋함 등이 한 시대를 풍미하고 있습니다.
서양에서는 마거릿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있었다면
동양에서는 박경리의 "토지"가 있다 라고 말해도 되겠지요?
2기에 올려 주신 박완서 선생님과 박경리 선생님의 사진이 유난히도 뇌리에 깊게 각인되었습니다.
그런데
네델란드에서는 민들레에서 커피를 추출한다 하네요?
들어 보셨나요?
김은희 선배님!
선배님 덕분에 제가 느닷없이 호강을 합니다.
대가들과 함께 하니 이 노릇을 어찌해야 할까요?
선배님 말씀처럼
사진 한 장이 주는 의미가 남다릅니다.
박완서 선생님의 주름진 손과 손톱.........
선생님이 돈이 없어서 손톱 관리를 못 한 것은 아니지요.
겉모습엔 신경 안쓰는 내면의 단단함이 그녀를 더욱 돋보이게 합니다.
따님 셋이 다 훌륭하지만 아들을 잃은 슬픔은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았다 했지요.
미인이셨던 박경리 선생님의 고운 얼굴.....
평생을 살면서 얼굴에 분칠을 몇 번이나 했을까요?
사는 것이 너무 고단해 거울을 볼 시간이나 있었을까요?
그래도 당당했던
그 분들의 삶이 돋보이는 사진들입니다.
제 사진을 찍어주신 김혜경 선배님도
언제나 화장기 없는 얼굴에 청바지로 수수한 모습이시지요.
대단들 하십니다.
생노병사의 길은 누구나 인간이라면 겪는 일이고
늙어 병들어 아프게되면 마음 약해지는것이 당연할텐데
이분들은 의연하게 받아들이시는 그 모습에서
더 존경스럽기 그지없더군
박 경리 선생님은 폐암 판정을 받으시고도 치료를 안하셨다는걸로 알고있지
미당 서 정주 선 생님께서는 사모님 돌아가시고 곡기 끝고 서서히 가실 준비를 하시더구나
그 모습을 뵙고 어찌하면 그런 의지를 그대로 실천하시는지 ..........
늙어 갈수록 판단이 흐려지고 곁에 식구들이 질리도록 힘들게 하는 노년의 삶들도 많은데 말야
잊고 있다가도 문득 문득 앞으로의 노년의 삶을 생각하게 되네
혹자는 그저 하루 하루를 신명나게 즐기며 살자고 하더라만서도.............
길상사를 다녀왔노라 하니 백석시인이 생각나서
산이 할아버지한테 자정이 넘은 이 시간에 우리집에 있는 오래된 백석시집을 찾아달라했네
하나 골라 올려볼게........
힌 바람벽이 있어
오늘 저녁 이 좁다란방의 힌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것만이 오고 간다
이 힌 바람벽에
히미한 십오촉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낡은 무명삿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
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일인가
이 힌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을 담그고 무이
며 배추를 씻고있다
또 내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늬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조앉어 대구국을 끓여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서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늬사이엔가
이 힌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골을 쳐다보며
이런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
어났다
그리고 이세상을 살어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것으로 호젓한것으로 또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듯이 나를 울력하는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하늘이 이세상을 내일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
픔속에 살도록 만드신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 쨈]과 도연명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
가 그러하듯이
........ 1941년 4월에 쓴 시라서 지금의 표준어가 아니고 토속어의 표현이 많다.........
?? 土 地
박 경 리
어떤 사람이
<土地 > 를
초라하다 했다
맞는 말씀이다
<土地 > 는
매우 화려하지만
作家 가 초라했다
삼지사방
휴매니즘이란 것을
구걸해 보았으나
참으로 귀한 것이어서
좀체 얻을 수 없었다
역시 <土地 > 는 초라했다.
?? 感 性
박 경 리
다 그렇게 살다 갔을거야
응어리 삼키는 江가
구름 한 點 내마음 한 點
한 點
點만큼 줄어든 영혼
펴보면 갈청같이 엷을거야
찢어지겠지
???김은희 선배님, 위 박경리 선생님 시는 1988년도 초판이 발행된
"못 떠나는 배" 에 실린 시에 실린 시인데 맘에 닿아서 다 같이
즐감하려 올려봅니다. 부족하지만 제 느낌이 좋아서 올려봅니다.
사진 감동이 옵니다.특히 흑백이라 아주 깊이가 있읍니다. 감사합니다.
재화야!
박경리 선생님의 초판까지 가지고 있을 정도로 네가 선생님의 작품을 사랑하는 줄을 몰랐네.
역시 거짓없는 분이라 남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큰가 보다.
그 분의 말씀 중 "행복했다면 글을 쓰지 않았다" 라는 말이 두고두고 가슴에 에리네.
좋은 시
소개해 줘서 고마워.
김은희 선배님!
5월 6일 월요일....
정말 화창한 5월의 햇빛을 받으며 인사동으로 삼청각으로 길상사를 좋은 사람들과 다녀왔습니다.
서울 한복판에 이렇게 고즈넉한 곳이 있을까요?
길상사는 그냥 화려한 연등으로 피었습니다.
하양색, 빨간색, 노랑색 연등이 절집을 덮었고
산벚꽃, 왕벚꽃, 철쭉, 조팦나무등이 한데 어울려 눈이 부셨습니다.
그 속에 부처님 한분만 계신 넓은 법당은 정적에 싸여 있습니다.
기도하는 스님도 있는 듯 없는 듯
우리도 발소리를 죽이고 절을 하고 앉아 잠시 묵상에 잠겼습니다.
물론 카톨릭 신자인 선배님도 함께 였지요.
법정스님과 김영한 보살은 도대체 어떤 인연이길래
이렇게 아름답고 깔끔한 기도처를 만들어 오고 가는 이들의 아픔을 위로하고 어루만져 주고 있는 것일까요?
잠깐 만난 백석을 평생 연모하고
그와의 인연을 끊지못해 백석 연구에 아낌없는 투자를 해서
우리에게 그의 아름다운 글을 다시 보게 해 준 기구한 한 여인의 일생이 파노라마처럼 스칩니다.
얼마전에 백석이 처음 번역했던 "테스"가
잊혀져가는 우리의 아름다운 말과 구수한 사투리 그대로 발간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한번 꼭 사서 봐야지 했는데 게을러서 아직 손에 넣지를 못 했습니다.
이런 책이 다시 발간될 수 있었던 것도 물론 김영한 보살 덕이지요.
선배님께서 올려주신 시에도
그런 아름다운 우리말이 생소하지만 많이 나오네요.
요즈음 아름다운 우리 말이 사라지고 정체불명의 언어가 난무하는 것을 보면 가슴이 아픕니다.
시가 죽어가는 사회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5월 4일
논현동 성당에서 조카딸의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신부님께서 새가정을 이루는 신랑 신부에게 이런 말씀을 주시더라고요.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고
상대방을 위해 나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라고요.
희생....
한 여인의 희생이 이루어진 곳이 길상사가 아닐까요?
내가 신혼초 남편 따라 이천에서 삼년여 살다 올라와
시아버님이 마련하신 다년간 살던 정릉집에서 다시 남편직장 따라 개봉동집으로 이사하고
부모님과 시누이가 우리대신 살던 이 정릉집을 오가는 길이 길상사 전신인 대원각을 지나는 길이였었지
대원각이 요정을 닫고 음식점으로 된뒤
나는 가끔 손님들을 그곳에서 대접을 했었고
미국서 친구인 옥녀 오라버니들이 오셨을때도 그곳으로 모시고 갔었다.
나에겐 대원각으로 더 많이 친근했던 곳
정릉집에서 다니던 성북동 그길 오르고 내리고 하던 굽이굽이 길이 꿈속처럼 아득하네.
어제는 새벽 손주들 없는 고요함속에서
백석 의 19세의 썼다는 첫 대뷰작인 단편 소설 ( 그 母와 아들)을 읽었네.
어느 부분은 거의 외국어를 읽는 느낌이더라.
우리의 잊혀진 토속어와 소리나는대로 쓴 표준어 생기기전 쓰여진 원본 그대로라서
추리하고 새겨가면서 읽으니 짧은 단편인데도 불구하고 정독을 할 수 밖에 없었네.
아마 십오육년전 이 책을 펴보면서 골 아파서 던져버렸지싶다.
요즈음 하도 옛것을 헌신짝 처럼 지워버리니 작심하고 읽어보았네.
내 블로그에는 이 소설 전문을 책보고 그대로 실려보려고.............................
그리고 백석이 "자야"라고 불렀다던 김 영한 보살의 백석과의 삼년간의 사랑 이야기도
다른 느낌으로 읽어보았지.
그녀가 십오세때 친정이 가난해서 시집간 사연 일년후 남편과의 사별
조선권번정악전습소 학감인 하규일선생의 넷째 양녀로 들어가 3년간 가무를 배워 남보다 뛰어나
여창가곡을 부르며 수창(여창가곡을 부를때 첫곡을 혼자 부르는것)을 불렀다는
명창이였다는것도 알았네........그냥 요정만 운영한 기생출신만이 아니였더군
(내 사랑 백석)이라는 책도 출간했다는데 나도 이번에 알았네.
시인 이 생진씨의 시 (그 사람을 사랑한 이유)에서 자야 여사의 모든걸 알 수 있었구말야.
.........................................................................................................................................................
그 사람을 사랑한 이유/이생진- 기자는 또 한번 어리둥절했다 세상에 이런 사랑 또 있을까요? ...............................퍼옴.......................
여기서는 실명이 좋겠다
그녀가 사랑한 남자는 백석白石이고
백석이 사랑했던 여자는 김영한金英韓이라고
한데 백석은 그녀를 자야子夜라고 불렀지
이들이 만난 것은 20대 초
백석은 시 쓰는 영어 선생이었고
자야는 춤추고 노래하는 기생이었다
그들은 죽자사자 사랑한 후
백석은 만주땅을 헤매다 북한에서 죽었고
자야는 남한에서 무진 돈을 벌어
길상사에 시주했다
자야가 죽기 열흘 전
기운 없이 누워 있는 노령의 여사에게
젊은 기자가 이렇게 물었다
- 천억을 내놓고 후회되지 않으세요?
무슨 후회?
- 그 사람 생각 언제 많이 하셨나요?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는데 때가 있나?
기자는 어리둥절했다
- 천금을 내놨으니 이제 만복을 받으셔야죠 '
그게 무슨 소용있어 '
- 다시 태어나신다면?
' 어디서? 한국에서?
에! 한국?
나 한국에서 태어나기 싫어
영국쯤에서 태어나서 문학 할거야'
- 그 사람 어디가 그렇게 좋았어요?
' 1000억이 그 사람 시 한 줄만 못해
다시 태어나면 나도 시 쓸 거야 '
이번엔 내가 어리둥절했다
사랑을 간직하는데 시밖에 없다는 말에
시 쓰는 내가 어리둥절했다
그러고보니 이 선희가 부르는 인연이란 노래가 백석과 자야여사의
사랑을 대변해주는것 같구먼 .........이 두사람의 절절한 사랑의 이야기가
산학이 글에 등장하리라고 누가 짐작이나 했으랴.......
자정을 향해 가는 시간에 잠깐 들어와 노래 가사를 듣다 다시 글 몇줄 첨부하네.
"1000억이 그 사람의 시 한줄만 못하다"
이렇게 말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니 정말 믿기지 않습니다.
비록 백석은 북한에서 힘들게 살다 갔지만 진정 행복한 남자입니다.
평소 저는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3년이란 짧은 기간 주위의 반대가 심한 사랑이었기에 절절했지 한 30년 지지고 볶으며 살다보면 그런 마음도 사그러지는 법이라고요.
그러나 제 생각이 짧았음을 시 한줄과 1000억이라는 구절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오늘은 비때문에
화사한 꽃들이 우수수 다 지고 말았습니다.
꽃비가 내린 것이지요.
아스팔트에 착 달라붙은 꽃들을 보면서 "화무십일홍"이라는 말을 절감했습니다.
권력도 그런 것인가 봅니다.
미국에서 성추행으로 도망치다시피 온 윤창중 대변인의 짋밣히는 얼굴이 오버랩 됩니다.
어떻게 올라온 자리인데 한순간에 만신창이가 되다니요.
무슨 말로 자기 자신을 변명이나 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한가지
아직 피해자 조사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들끊는 여론을 보면서
미국과 한국의 성숙한 사회가 비교되는 것이 씁쓸했습니다.
정작 미국사회는 조용한데
한국은 말이 말을 보태 냄비처럼 부글부글 끓고 있습니다.
교포사회에서는 그 사건을 폭로한 싸이트가 대표적인 반한감정을 숨기지 않는 싸이트라지요.
촛불시위때 미국에서는 28개월 이전의 소는 먹지도 않는다 는 등 앞장섰고
심지어 박근혜 대통령을 지칭 할 때도 박근혜니 근혜니 하는 입장이다 보니 얼씨구나 너 잘 걸렸다 하는 모양입니다.
물론 수사가 끝나면 명명백백히 죄가 가려져 그에 따라 어떤 벌을 감수해도 마땅하지요.
그건 그냥 윤창중 개인의 일이지 박근혜 정부가 전적으로 책임질 일은 아니라 보는데 참으로 이상한 방향으로 몰고 갑니다.
얼마전 버지니아 공대에서 우리나라 학생의 무차별 총격으로 여러 학생이 희생되었을 때의 일이 생각납니다.
자꾸만 미안해 하는 우리나라를 미국은 이렇게 말했지요.
개인의 문제라고요.
만약 우리가 좀 더 성숙된 사회라면 이번 사건을 좀 더 신중하게 다루어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
시대가 변했음에도
남자들의 우월주의는 조금도 변하지 않은 점이 이렇게 위험수위로 차 올랐습니다.
동양적인 사고로 영웅은 호색이라느니
허리 아래의 일은 묻지 않는다 라든지 별의 별 말로 변명을 하고 있습니다.
성추행을 4대악의 하나로 정해도 안하무인이지요.
사건이 터지면 죽일 놈 살릴 놈 한 것이 바로 어제인데도
금방 잊어버리고 또 터지고 마니 이 노릇을 어찌 할까요?
거세를 당하고도 역사의 기둥을 세운 사마천이 더욱 그리운 시대입니다.
은기과 끈기의 한국인은 어느새 사라지고
냄비처럼 끓고있는 우리의 현실이 자못 씁쓸합니다.
?"산~~에 사~~는 목련~~~화~~야~~~"
갑자기 활짝 핀 목련꽃이 너 같은 느낌이네.
산타기에 안 어울리는 몸매인데....
가녀린 산학이가 다시 보인다.


정말 대단한 인연이로세.
넌 무슨 보살님일까? 목련보살? 산학보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