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제이고요,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하며 꼬까옷 입고 즐거워하던 나의 명절이
시집을 와서는 180도로 변신을 했다.
명절이 가까와 오면 한달 전부터 걱정이 앞서고 몸이 먼저 알아서 아프기 시작이다.
한번은 구정 연휴가 시작되기 하루 전날, 갑자기 이가 아파 물 한모금을 넘길 수가 없는 것이 아닌가?
부랴부랴 치과엘 갔더니 치아에는 전혀 문제가 없으니 신경외과를 가란다.
결국 병명은 들어 보지도 못한 "제3신경통"으로 원인은 과도한 스트레스 때문이라나....
의사 선생님이 왼쪽 광대뼈를 만지니 까무러칠 정도였다.
그러나 명절이 코 앞이니 별 수가 있나.
명절내내 빨대로 물과 우유만 빨면서 일을 했다.
그래서인지 명절만 되면 겁이 앞선다.
맏며느리로 시집와 시어른 모시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는 안 해 본 사람은 절대로 모른다.
그런데 살면서 터득을 한다고 나름대로 지혜를 짜냈다.
못 하니까 남들보다 먼저 준비를 하는 것이다.
우선 냉동실에 보관해도 될 것 부터 시작이다.
갈비는 기름기 많은 한우대신 L.A갈비를 찜용으로 썰어서 핏물을 뺀 후 갖은 양념에 잰다.
이때 내가 꼭 넣는 것은 콜라로 갈비가 부드럽고 짜게 되는 것을 예방해주기 때문에 애용한다.
무우 감자 당근등도 갈비 정도로 큼직큼직하게 썰어 찌는 갈비위에 부서지지 않게 살짝 얹어 익혀낸다.
다 익힌 갈비는 하룻밤 지나면 기름기게 하얗게 앉는다
그러면 기름기를 깨끗이 건져내고 또 다시 한번 중불에 익히고는
호일에다 갈비 두어점, 감자, 무우, 당근 하나씩에 고명으로 호두와 잣을 올려서는 보자기처럼 접는다.
이런 호일 보자기가 한 100개쯤 되야 갈비찜은 끝난다.
그리고 식으면 냉동실로 직행.
만들 때는 번거롭고 잔손이 많이 가지만, 먹을 때는 찜통에 넣어 뜨거운 김만 올리면 되니까
그릇에 기름기가 묻지 않아 깔끔하다.
물론 상에 올릴 때도 깔끔하기 그지없다.
탕국도 푹 고아 고기는 건져내 쭉쭉 찢어서는 갖은 양념으로 무쳐놓고
국물은 식혀서 기름을 걷어낸 후 냉동실로 직행이다.
산적도 충분히 두들긴 후에 갖은 양념에 재어둔 후 지져낸다.
북어찜은 잘라 놓은 북어를 사면 훨씬 싑다.
대강 물에 불렸다 가시를 발라서는 불고기 양념을 한다.
이때에도 콜라를 한잔 정도 넣으면 짜지도 않고 색깔도 예쁘다.
조기찜은 제일 쉽다. 평소에 소금에 절여 말린 것 중 실한 놈만 골라 두었다가 쪄내면 되니까.
물김치 식혜도 미리 해 두고
식구들이 기름진 음식뒤에 개운하게 먹을 수 있게 빨간 게장을 무치는 것도 게을리하면 안된다.
명절 전날은 녹두전 동태전 호박전 동그랑땡등을 해야 되니 바쁜데
실은 내가 제일 신경 쓰는 음식이 녹두 빈대떡이다.
왜냐하면 네모난 큼직하게 부쳐내는 빈대떡은 이승에서 저승으로 갈 때 출출하면 먹는 도시락이라고 배웠기에
녹두를 물에 불렸다 직접 갈아서 정성을 들인다.
맛이 없으면 저승 가는 길이 힘들까 봐.
잡채와 나물은 맨 마지막에 손을 댄다.
그리고 또 한가지
당면을 삶을 때는 간장과 소금 식용유 한방울을 넣으면 면이 엉겨 붙지도 않고 쫄깃쫄깃 해진다.
이렇게 차려야 하니 일 못 하는 나는 보름전에 준비를 안 할 수가 없다.
이렇게 여러날 준비한 음식을 상위에 올리면 마음이 뿌뜻하다.
힘들었지만 내가 조상님들을 위해 무언가 한 것 같은 대견함도 들고
식구들이 맛있다고 하며, 이것 저것 싸 달라고 할 때에는 그 동안의 고생이 확 달아나버린다.
인사로 하는 말인 줄 뻔히 알면서도,
어린아이처럼 즐거운 이런 순간 때문에
나누어 준다는 작은 기쁨에 힘들게 준비를 하는 우리네 명절.
그래서 몸은 힘들어도
세월이 흐르다 보니
그것도 습관이 되어 버렸는지
그렇게 옛날처럼 요란하게 아프지는 않으니
세월이 사람을 가르치는 모양이다.
옛날 우리 엄마들
연탄 때는 재래식 부엌에서 명절이면 얼마나 고생들을 했는지 절대로 잊지 못한다.
방앗간에서 줄 서서 기다려 떡을 뽑아 오면
상위에 콩고물 팥고물 쫙 펼쳐놓고
김이 펄펄 나는 찹쌀을 찬물에 손을 담가 가며 떡을 만들던 일이며
물엿을 고아서 밥풀데기, 깨등을 묻혀 강정도 직접 만들고
만두는 밤을 새워가며 왜 그렇게 많이 만들었는지
식혜는 꽝꽝 얼어서 한입 입에 물면 이가 덜덜 떨렸던 기억 등등
그때에 비하면 일같지도 않은 요즈음 명절
어쩌면 우리는 지금 너무 편해서 아픈지도 모를 일이다.
? 귀신들의 명절 유머
?명절때 쫄쫄 굶은 조상 귀신들이 모여 서로 신세를 한탄했다.
----씩씩거리며 한 조상 귀신이 말했다.
" 설날 제사음식 먹으러 후손 집에 가보니,
아, 글쎄 이 녀석들이 교통체증 때문에
처갓집에 갈때 차가 막힌다고,
새벽에 벌써 지들끼리 편한 시간에 차례를 지냈지 뭔가?
가보니 설거지도 끝나고 다 가버리고 없었어."
-----두 번째 분통터지는 조상 귀신이 말했다.
" 자넨 그래도 나은 편이여,
나는 후손집에 가보니 집이 텅 비었더라구.
알고보니 해외여행가서 거기서 제사를 지냈다는거야.
거길 내가 어떻게 알고 찾아가누?"
-------아까부터 찡그리고 앉은 다른 조상 귀신,
"상은 잘 받았는데, 택배로 온 음식이 죄다 상해서
그냥 물만 한 그릇 먹고 왔어."
----------뿔난 또 다른 귀신,
" 나쁜 놈들! 호텔에서 지낸다기에 거기까지 따라갔더니,
전부 프라스틱으로 차려서 이빨만 다치고 왔네."
-------열받은 다른 조상 귀신이 힘없이 말했다.
"난 말야, 아예 후손집에 가지도 않았어.
후손들이 인터넷인가 뭔가로 제사를 지낸다고 해서,
나도 힘들게 후손집에 갈 필요없이
편하게 근처 P C방으로 갔었지."
"그래, 인터넷으로라도 차례상을 받았나?"
"먼저 카페에 회원가입을 해야 된다잖아.
귀신이 어떻게 회원 가입을 하누?
귀신이라고 가입을 시켜줘야지!"
? ?"에이 망할놈들!!!"
산학후배!
오랫만이예요.
산학후배는. 글만 잘 쓰는줄 알았더니 음삭도 잘 하나봐...
갈비찜할때 콜라를 넣어한다는것 첨 배웠어요.
나도 그렇게 해 봐야겠어요..
사실 너도 갈비찜을 알루미늄 호일에 싸서 냉동실에 보관했다가
상에 놓기전에 오븐에서 데워서 내 놓지요.
한국에서 명절엔 가족들끼리 둘러앉아 전을 지지고 빈대덕을 부치고......
이제 한국을 더난지 35년이 되고나니 명절도 다 잊었어요.
이번 일요일이 구정이지요?
우리 할아버지 기일이 토요일이어서 가족들이 모여서 추모예배를 드리고
음식을 파트락으로 해와서 함께 먹는답니다.
난 우리 할아버지가 좋아하시던 만두국을 즌비하기로 했지요.
포기김치를 달 익혀놨어요.
빈대떡도 좀 하려구요....
미주신년동문회에 많은 동문들이 세게각국에서 모엿다가
이제 다들 돌아갔지요.
한바탕 큰 잔치를 벌였다가 끝이 난 것 같아요.
한국에 돌아간 동문들은 구정 준비하느라 쉬지도 못 하겠어요..
7기에서도 손금자후배가 다녀갔어요.
산학후배도 함께 했더라면 참 좋았을텐데요....
건강하세요...
그리고
복 많이 받으세요...
멋진 김춘자 선배님!
역시 이번 신년회도 성황리에 끝난 것 축하드립니다.
목까지 쉬어가며 혼신의 힘을 다 쏟는 것을 보면서
일년에 쓸 힘을 며칠에 쏟아 붇는 것이 아닐까 했습니다.
각국에서 모여드는 인일의 딸들.......
그 중심에 계신 김춘자 선배님을 어찌 멋지다 안 할 사람이 있을까요?
한국을 떠난지 벌써 35년이 되셨네요.
그래도
할아버님 기일이라고 할아버님이 좋아하시던 손이 제일 많이 가는 만두랑 녹두빈대떡을 잊지않고 하시니 역시 대단하십니다.
갈비찜도 저와 똑같이 하신다니 더욱 반갑고요.
손재주 없는 제가
실은 시집살이 20여년에
사람이 되었답니다.
그리고 고백하건대
2012년 한 해
선배님 덕분에 행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도산학에게!
나 8회 이향숙이야.
세월이 너무 흘러 친구들 이름을 잘 기억 못하는데 너이름은 특이해서
아직도 안 잊어버렸다.
구명화하고 통화하고 연락하는지 얼마 안 된다.
경기도 파주군에서 2년 교사생활 하고는 아버지 따라서
이곳 청주로 와서 교직생활 작년까지 38년 했단다.
넌 내 이름 기억 하니?
지금은 친정어머니 병상에 누워 계셔서 그리도 가고 싶은 인천을 못 간단다.
그래도 날 좀 풀리면 한번 가 볼꺼다. 가서 친구들 보고 싶어 못 견딜 지경이다.
모두들 얼굴이 많이 변했겠지?
얼른 만나 보구 싶다.
향숙아!
며칠 전, 분명 네 이야기를 누군가에게서 들었단다.
순애가 그랬나?
네가 청주에서 교편생활한다고 했는데 이렇게 소식이 올 줄이야....
반갑다
지금도 그렇게 얼굴이 뽀얗고 하얀지 궁금하다.
이름뿐 아니고 얼굴도 생생한데 너무 보고싶네.
친구들이 너를 보면 또 얼마나 좋아할까?
효녀라 어머님을 죽 모시고 살아왔구나.
그런데 편찮으시니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
당장은 못 만나더라도 이곳에서 시간 날 때마다 만나자.
이 글 보고 친구들도 연락을 할거야.
정말 반가워.
두서없이 서둘러 몇자 적는다.
<동병상련>
오늘은 (7→8 이향숙)도 들어와 있네! LA의 6춘자언니께서도~
모두모두 Welcome~ 입니당~
내 경우도 서방님이 7남매 맏이이다 보니, 명절만 되면 저절로 전투태세에 돌입하곤 하였는데, 기본 자세는...(①풍족하게 먹고 즐겁게 만나자 ②조카들이 커서, 큰댁에서 어린 시절 참 좋았다...하도록 추억을 심어주자)는 마음이었으니, 몸이 아프거나 할 겨를도 없이 시모님 안계신 집안의 차례/제사의 총책임자로서
-우선 메뉴를 짜고 (차롓상... 그 다음 끼니 등등)
-장볼 목록을 만든 후에는
-일의 진행표 (새벽4시 국국물 만들기 시작...7시 식구들 들어닥침....8시 차롓상 올리기 등)를 2박3일 혹은 1박2일 일정으로 짜서 냉장고에 붙이는 것으로 전투를 시작하곤 하였다.
우리나라 차롓상은 맨날 그 음식이 그 음식이어서 반드시 후식으로 재미를 본다.
우선 직접 내린 원두커피는 곤할 동서들을 위해 반드시 준비하고, 꼬맹이 조카들을 위해서는 빵집에서 슈크림 등을 한 쟁반 사다가 놓는다. 차례 후에 남는 음식과 과일은 돌아가는 집집마다 나누어 싸주고, 경비아저씨에게 뜨끈한 떡국과 녹두지짐, 그리고 산적과 전 등을 작은 쟁반에 차려다 드린다. 서비스를 더 하려면 모두 끌고 남산 팔각정에 올라간다. 연 날리는 사람도 보고 서울시를 내려다 보면서 일년을 축복 속에 맞이하는 마음을 갖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모든게 내 맘과 같은 건 아니었다.
동서들에게 음식 분담을 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혼자 감당할 수 없으니 전화로 분담을 요청하면, 대가 센 둘째동서는 (다른 집에선 지차들은 맨손으로 가는데....), 혹은 김치 좀 가져와 봐 하면 (내 김치 맛있다고 하는 사람은 세상에 형님밖에 없어요)하며 방어막을 친다. 동서들이 모두 전업주부이고, 둘째는 어린 시절부터 우리병원에 드나들던 사람이었는데도 법적으로 자매가 되고나니 관계가 다정해지긴 커녕 더 경직되었다ㅎㅎ. 셋째동서의 굴전과 참치전은 고기 안드시는 시부님을 위한 배려요, 그러니 고정메뉴가 되었다.
대가족의 이런 <차례와 제사> 행사는 20년 가량 지속되더니, 이민들을 가고, 해외주재를 하고, 전국에 흩어지게 되니 어쩔 수 없이 간소화 되고 말았다. [차례와 제사]는 family party인데, 총책임자인 맏며느리가 앓을 정도로 부담을 주는 행사여서는 절대 안될 일이다.
<차례와 제사>라는 Family Party 도 21세기 식으로 변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전통적인 차례상은 조금씩만 사거나 만들고 (주로 가족들이 좋아하는 것 중심으로)
-각 집이 가장 자신있는, 모두에게 소개하고픈 dish 하나씩 만들어 오기로 하면 어떨까!
-茶禮라는 말에 걸맞게 가족의 다과모임으로 진중하게 바꾸어, 이런저런 차를 마시며 그간 가족의 대소사 못전한 말들을 나누고, 각집의 새해 포부 등을 나누고 덕담을 하는 등 진정 고품격의 family party로 기획하는 것도 좋으리..... (전통을 그대로 계승하는 것이야말로 고품격이지만 준비책임자 수고가 너무 커서 지레 앓고 명절증후군이라고...스트레스들을 받으니 어쩌랴, 사람이 살고 봐야지.... 그리고 "저렇게 함이 그의 의무다" 하지만 말고, 의견도 따라주고 해야 총책임자로서 가슴이 펴질거 같다. 일노예는 아니잖는가.....)
내 친정에서는 명절이면 (전날 한복을 대려놓고 .... 아침 일찍 한복입고 세배를 한 후)
윷놀이, 시조놀이 등 너무 재미있었는데,
이런 전통놀이를 가족이 함께 즐기는 분위기도 되살리고 싶다. (우리 시댁 식구들은 이런 놀이를 하지 않음). 이제는 며느리와 내가
설날을 함께 맞게되니.... 세뱃돈을 줄까 하다가, 아예 미리 상차림 준비용으로 한봉투 주고나니 맘이 개운하다.
명절을 행복하게 지낼 만반의 준비가 되었다.
순애야!
"며느리에게 세뱃돈을 줄까 하다가, 아예 미리 상차림 준비용으로 한봉투 주고나니 맘이 개운하다."
이 말 한마디로 순애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도 남음이 있는데
왜 손아랫 동서들은 궂이 모른 척 했을까?
아무래도 남편께서 처복이 많은 분인가 보다.
대학교수로 세종기지연구원으로 다재다능한 나라의 인재를 시집살이까지 톡톡히 시키면서 살고 계시니 말이다.
그나마 건강이 받쳐주니 그 많은 일을 해내지
나같은 사람은 엄두도 못 낼 일이네.
새벽 3시에 일어나
밤 10시 잠자리에 들 때까지
서울에서 대전으로 그리고 어머님 수발들러 인천까지
한시도 쉬지않는 순애야
친구이지만 정말정말 존경한다.
올 한해도 건강하고 온 집안에 행복이 함께 하기를 기도한다.
1)
그럴게(존경...) 어디 있어?! 아, 그녀 앞의 삶은 그간 그랬었구나..... 하면 되지.
서방님이 모시던 장관님, 그 사모님 20년 알고 지내는데, 며칠 전 첨으로 (제가 대가족 맏며느리로....) 했더니, 말을 끊으시고는
(다- 짐 질 수 있는 사람에게 짐을 지게 하시는거야) 하고 동정도 논평도 안하신다.
맘에 정말 쏘옥 들어라! (그분은 더 험난한 시련을 겪어내심:DJ&No정부 10년 알뜰히 10년 기도원에 가계심....독방기도원, 어딜까요?)
우리는 모두 자기 앞에 펼쳐진 길을 열심히 왔지! 그점에서 당신도 위대하고(=체력도 안되는데... 그엄청난 일을...) 나도 조금쯤은.....
여기에 하늘의 섭리가 우주공식에 의해 작동한다이. (ㅎㅎ 난 좀 무식하게 달라붙지, 앞뒤 계산 못하고. 힘이 되니 그러지 어디 그대
처럼 우유만 먹어가면서리?? 그런적 없다이. 게다가 이젠 힘이 딸리니 안된다. 어찌보면 그땐 행복을 희구하고 집착했는데, 이제는
선선해졌다.... 혹은 슬거로와졌다......고도 볼 수 있음)
2)
손아래 동서가 이젠 다섯이다!
어디 나와 견줄 수 있는 놈이 있간.(바로 손아랫 동서는 초딩, 셋째동서는 고딩...우리집 특징으로)
그러니 내가 맘 조심 입조심....늘, 해야지. (그런데 동서들도 맘 가는 정도가 다르니.... 이도 조심할 일)
3)
결혼 전에 친정에서 명절마다 무슨 게임을 그리 많이 했는데...... 기억을 더듬어보니, 윳놀이 하면서 진팀이 구운 오징어 사오기
(당시엔 구루마에서 오징어 구어 팔았다), 또 시조놀이 하면서=요건 개인전이니까.... 진 사람이 트위스트 춤추고 노래하기, 또 손목 때리고 맞기 벌 등 ㅎㅎ
순애야!
인천을 사랑하는 분들이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시는데
주로 영웅호걸같은 류의 인천사람들을 옛날 이야기 삼아 하시는 것을 여러번 들었단다.
여자들과 달리 남자들은 남의 칭찬을 잘 하는데
너의 삼촌 이야기는 꼭 전설처럼 하더라.
실은 나같은 사람은 무식해서
남의 나라에 가서 공부하는 것이 있다는 것도 중학생때 혜원이네 집에 가서 프랑스로 유학간 오빠 사진을 보고 처음 알았으니
세계적인 대수학자라는 너의 삼촌은 전설일 수 밖에.....
네가 서울대 수학경시에서 4등을 했다는 것도
분명 전체학생들 앞에서 발표를 했을텐데도 공부에 관심이 없어 잊어버렸고
어찌되었든 대단한 명문가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런 명문가가 인천에 많이 생기면 얼마나 멋질까?
얼마전 3기 김혜경 선배님의 조카가 세계적인 과학잡지에 논문이 실려 노벨상에 근접했다는 소식이며
"압록강은 흐른다"의 이미륵 선생님이 2기 장은숙 선배님의 외할아버님이라는 사실등이 자랑스럽다.
순애야!
가문에 흐르는 피가 어디로 가겠니?
철없던 어린시절
종가집 종부인 우리엄마
명절이면 한숨 푹쉬시며 너는 절대 맏며느리로 안보낸다 하셨는데
나는 얼마나 좋았는지 명절이
광에 그득한 음식들 더 많이 안한다고 엄마를 괴롭혔던일
지금 생각해 보면 철도 엄청 없었으니
밤에 북어전 (물에 살짝 불려 손바닥 크기로 잘라 전을 부쳤음) 광에 가서 서리 해 먹던일
산학 후배!
그래도 그시절이 더 따듯하고 정겨웠던것 같아요
지금의 단출한 생활이 좋은점도 많지만
정을 나누는데는 그렇치요?
열심히 산 당신 복 받을 겨요
건강하길
순애에게!
오늘 병원에 계신 어머니께 갔다 왔다. 머리를 섬머슴처럼(마치 스포츠머리)처럼 깎아 놨는데
엄청 속이 상하더라. 아무리 할머니라도 여자인데...
순애는 맏며느리라 명절이 돌아오니 엄청 힘들겠다.
그래도 지혜로와서 계획을 짜서 잘 하는구나.
명절 끝나고 다음날부터 우리집 도배하고 페인트 칠하고 전등 예쁘게 교체하고...
대대적으로 리모델링 공사 할 거다.
예쁘게 해 놓고 초대할께. 그 때 강옥선이도 같이 와라.
건강 해치지 않게 명절 준비 해라.
그럼 명절 끝나고 우리집 리모델링 끝나고 만나자.
다음에 오면 우리 사랑이와 미미 그 땐 구면이라 그렇게
짖지 않을거다. 안녕!!
청주에서 향숙이가...
ㅎㅎ 아이고 (7→8 이향숙)이네 반려견들은
유교수 '매채' 기억하고 있을거다. 하여간 그대도 이생에서 수고가 크요! 이렇게
나이들어가는 길목마다 만나고 얘기나누고 그러면서 오래~ 같이 지냅시다. (나 그리고 요즘 힘안들게 지내. 그럴 힘이 아예 없어졌어=vanished)
어떤 이는 입춘이 진정 새해의 시작이라 하고
어떤 이는 설날 구정으로,
어떤 이는 신정을 새해의 시작으로 보던데....
어떤 시각에서건 이젠 정말 새해가 펼쳐지네요! 모두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벅찬 희망으로 한해가 이어지시기를~~~~~
와하하하하하 할말 잊었씀니다아,,,시상에,,,
그리도 마니 준비를 해야 되는 것,,,,,,,마치 옛날야그 듣는 느낌이네요.
예전에 막내로 손에 물한방울 안 튀기며,,,,당연히 먹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던 철 없음이,,,
그리고 이리 멀리 떠나 살으니,,,다른 부담은 평생 엄청 했으나,,,이런 명절은 멀리 지냈네요,,,
지금 생각하면 대가족을 거느리던 한국의 예전 부엌은 왠만한 식당 못지않은 역할을 한 것 같아요,,,
큰 아침상에 ,,,,도시락은 몇개를 싸야하고,,,,점심에 ,,,,거대한 저녁에,,,갖은 생일 ,,,명절,,,,차례,,,
엄마/주부들이 얼마나 수고를 하셨을까???
산학후배,,,그 연약한 몸으로 ,,,하나도 뻬놓지 않고 일일이 자상하게 갖추는 그 마음,,,
유교수후배님도 어머님의 영향을 마니 받아,,,역시 큰 맘을 쓰시고,,,
또 개혁적이기까지 한 면이 아주 좋읍니다.
모두 고개가 절로 숙여집니다,
큰 살림,,,맏이노릇하기가 그리도 어렵지요???
그래도,,,일을 해 보지도 않은 분들이 ,,,,,,,,,,,,,다 척척 해 내시며 큰 마음 쓰시니,,,,,,,,,대단하십니다.
정순자 선배님!
나이가 들면서
의례적으로 하던 일들도 이왕이면 정성을 다해야지 합니다.
제사나 차례도 그렇습니다.
온가족이 모여 가신 분을 추억하고 그리워하는 자리입니다.
그리고 생전에 못 해 드린 점 사과하는 마음도 있고요.
만약에 한 사람이 가고 없는데 그런 모임이 없다면 얼마나 서운할까요?
아이들이 커 가면서
아이들 이름으로 선물도 들어오고 하니 그렇게 대견할 수가 없습니다.
처음으로 아이들에게 칭찬을 다 했습니다.
아빠가 계셨으면 얼마나 기특하다 했을까 하면서요.
아이들은 민망한지 그냥 웃고 말더라고요.
그리고요
누구든지 닥치면 다 한답니다.
옛날에 달리기를 하면 맨날 꽁지였는데
남자아이들이 쫓아오면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일등으로 도망쳤잖아요.
그런 식이지요?
급하면 물 불을 안 가린답니다.
언제나 밝고
청순한 정순자 선배님!
새해에도 건강하시고요 행복하십시오.
매서운 추위임에도 불구하고
입춘이 지나면서 공기의 촉감이 달라서인지
우리집 베란다에 빨간동백이 몽글몽글 꽃망울을 잔뜩 매달고 있습니다.
며칠 후면 여기저기에서 꽃망울 터지는 소리가 툭툭 들리겠지요?
벌써부터 남녘의 새빨간 동백이 그리워지는 날
저 어딘가에서 서성이는 봄을 맞으러
여기 내가 좋아하는 김동인님의 "향일암 동백"을 올려봅니다.
무리져 피지 않듯 더불어 지지 않는
봄 품을 밀쳐내며 저렇게 붉다가는
절정은 저런 것인가 목을 꺽어다 바치는,
너 있던 그 자리에 문득 너는 없던
꽃 빈 가지마다 꽃말 툭툭 떨어내던
춥다고 입술을 주고 더 춥다 입술을 받던,
산학 후배,
제목이 정겨워서 들어와 보니
산학후배의 설 음식 장만 이야기 네요.
그 가녀린 몸으로 그렇게 많은 음식 장만을 한다고 하니
믿어지지가 않아요.
그래 올해에도 그렇게 준비해서 식구들이랑 즐거운
설날을 보냈겠지요?
어제 마당에 나가 보니 뒤뜰에 혼자 핀 동백이 안 되보여서
사진 몆장 찍어 들고 왔지요.
겨울 바람속에 꽃잎이 얼면서 터지면서 피어난 동백이
안쓰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합니다
쌀살한 봄 바람이 계속 흔들어 대는 데도 아랑곳없이
묵묵히 피고 지는 동백이 우리 한국여인을 닮았다
싶어요. 힘들어도 끊임없이 제사상을 차리는 여인들 말입니다.
김혜경 선배님!
명절 음식이라는 것이 물론 지방마다 다르지만 그 음식이 음식이라
제가 죽기 전에는 해야 할 일이기에
처음에는 힘이 들었어도 습관이 되니 그냥저냥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일부에서 아직도 제사 지내는 것을 우상숭배니 뭐니 하먼서 폄하할 때는 속이 상하지요.
나를 키워준 부모도 돌아가시면 예를 갖추지 말라니요?
참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억지들이 놀랍기만 합니다.
올려주신 동백을 보니
문득 해남에 있는 두륜산 대흥사가는 길의 동백숲이 생각납니다.
기름이 잘잘 흐르는 아름드리 동백나뭇잎의 진초록과 새빨간 동백꽃이 너무도 아름다운 길을 걷다보면
나도 동백꽃이 된 듯 싶은 착각에 금방 빠져듭니다.
비 온 다음 날엔
숲길이 온통 새빨간 동백꽃으로 덮이는 그 곳
오죽하면 꽃 지는 소리가 시끄럽다 했을까요?
대흥사 가기 전 일지암이란 암자까지가 정말 장관입니다.
위의 제가 소개한 시 향일암의 동백도 대단한가 봅니다.
향일암은 홍련암 보리암과 함께 우리나라 3대 해수관음도량으로 찾는 이들이 많은 기도처인데
바다를 끼고 있어 해당화가 지천으로 피어있는 것은 보았지만
그곳의 동백은 아직 보지를 못했는데
시인의 표현이 굉장해
꼭 가 보리라 마음먹고 있습니다.
동백이 떨어지는 모습을 "목을 꺽어다 바치는 " 절정이래도 좋으리라 표현한 시인.....
사랑의 절정에서 죽어도 좋다 라는 결연한 의지가 발칙합니다.
"춥다고 입술을 주고 더 춥다고 입술을 받던"
향일암 동백의 선홍색 열정때문에
봄은 서성이고 못 온다니요.
그런데 선배님네 동백은 홀로 너무 너무 외롭네요.
그래도 너무 멋진 새빨간 동백꽃입니다.
처음에 댓글 달기를 놓쳤더니 흐름을 따라잡는 게 수월치가 않네요.
게다가 내용들이 모두 일당백이상의 여인들 이야기라서리!
산학이도 순애도 참 대단하고 훌륭합니다.
뭐 그정도 소리밖에는 할 말이 없어요.
힘들다고 대놓고 해대기보다는 입이헐고 아픈 게 낫다는 순애 말이 정답이에요.
허지만 큰며느리가 모든 걸 감수해야한다는 건 개선해야 할 부분이지요.
부은 얼굴로 툴툴거리면서 많이 다니고 끝난 후에 앓아눕고 하다 보면 자연히 조금씩은 개선이 되긴 하지요.
"공평"이란 단어는 큰며느리 입장에서는 일급 금지사항이에요.ㅎㅎㅎ
이런 풍습도 이제 마지막이 아닐까요?
자꾸자꾸 없어져가는 것이 많다 보니 이런 평생의 어려움조차도 따뜻하게 여겨집니다.
유명옥 선배님!
이번에 미국 신년회에 참석을 못 하셔서 많이 속이 상하셨지요?
그래도 지혜로운 선배님이니 판단을 잘 하셨겠지요.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뭐니 뭐니해도 건강이니까요.
잘 지내셨지요?
오늘은 아침 일찌기부터 "차마고도"라는 다큐를 다시 보았습니다.
네팔 5300M 산악고지에서 2 100KM라는 거리를 오체투지를 하면서 파텔라궁까지 오는 사람들을 보면서
인간의 한계는 과연 어디까지일까 생각했습니다.
폐병에 걸렸음에도 죽기 전에 파텔라궁에 모셔져 있는 석가모니불앞에 꼭 당도해 10만배를 하면
그동안 당신이 지은 모든 죄가 조금은 씻겨지고 영혼이 맑아지기 때문에 오체투지의 고행을 하는 것이라고요.
그네들의 고행을 보면서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 아닐까 했습니다.
성철 큰스님도
살아 생전에 나를 보려면 1000배를 하고 들어오라 하셨다는데
전직 대통령인 어느 분은 그것을 못해서 만나지 못 하고 돌아왔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1 000배를 하게되면 너무 힘이 들어 나중에는 아무런 생각이 없어진다는데
나를 비우라는 뜻이었다고요.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오만하고 교만을 버릴 수 없는 자리이기에 두 말도 안하고 돌아선 것이겠지요.
선배님 말씀처럼
따뜻한 예쁜 마음으로 세상을 보면 걸릴 것이 없겠네요.
그리고 선배님처럼 음악을 사랑하는 분들은 사람들의 마음까지 순화시켜주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어제 대통령 취임식 초청장을 받았습니다.
대통령에 뽑아 달라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뛰어다니던 것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벌써 2월 25일
제 18대 대통령 취임식입니다.
7만명이 국회의사당 앞마당에 모인다지요.
취임식은 11시인데 9시까지 입장을 하랍니다.
그런데 혹시 저처럼 그 날 오는 동문이 있겠지요?
저는 출입문 4문 좌석은 3구역 입니다.
만날 수 있으면 참으로 좋겠습니다.
내일 모레면
우리의 제일 큰 명절 설입니다.
이 글은 몇년 전에 올렸던 글인데 음식준비를 하다보니 다시 생각이 나서 올렸습니다.
매번 으례 하는 일이건만 그래도 만만치를 않습니다.
다들 힘이 드시지요?
그럼에도 조상에게 예를 올리고
식구들이 모여 한 해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우리의 미풍양속은 아름답습니다.
계사년에도
건강하시고 북 많이 받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