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회 - 게시판담당 : 윤순영
?결혼 하기전 친정에서는 제사가 없었다.
일찌기 친정쪽 어른들께서 서구문명을 받아들여서 천주교에 입문하셨고
그렇기도하지만 친정할아버님이 형제분중 차남이셔서 큰집 큰할아버님이
집안 대소사를 관장하셨고 큰일이 있으면 남자 어른들만 참석하셔서
제사란 어찌 진행이 되는지조차 나는 알지 못했었다.
더군다나 여자로 태어났으니
남의 제사나 큰일에 참석조차 못해보았고 제사지내는 모든 절차는
모르는것이 당연한 일이였다.
이런 내가 시집이라고 온곳이 큰집이기도하고 거기다 종가집이기까지 했다.
스물다섯에 말망아지처럼 자유롭게 살던 내가 시집가서 다른풍속에 집안에서
지켜야 하고 해야 할 의무와 책무가 어떠리란걸 감지하지도 못한채
덜컥 결혼을 했으니 처음에 겪은 일들이 어찌했으리란것을 누누히 말하지 않아도
짐작이 가지 않을가싶다.
허긴 이것저것 많은것을 알면 결혼이 그리쉽게 성사가 될듯싶지도않은게 사실이다.
그래선지 친정부모님께서는 살면서 배우면 된다하시고
또 시부모님 되실분들도 배움이 없는 여인네들도 모두 다 살면서 배우고
거뜬하게 해 내는 일이니 어려울것 없노라 하셨다.
실제로 결혼하는 당사자 두 사람은 뜬 구름같은 꿈을 나름대로 따로 꾸었으니
지금도 생각하면 어이없는 일이였지싶고
이루어질 수 없는 그 꿈은 이렇게 칠십고개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아주 가끔
우리부부에겐 젊은날을 회상할때의 한 토막 이야기꺼리가 되곤한다.
그러면서 짧지않은 세월 사십여년간 어른들 말씀처럼
종가집 외며느리로
작은일 큰일을 배우면서 치루어내고 일년에 삼대 기제사와 명절차례도 지켜가면서
오늘날 까지 잘 버티어내었었다.
오늘은 우리아이들에게 증조모할머니시고 내겐 시할머니의 제사날이다.
아니 그렇게 알고 오늘 나는 어제서부터 오늘의 제사음식을 장만하고 만드느라
하루해를 다 보냈다.
분가한 며느리한테 삼일전에 전화를 해서 날씨도 춥고 아이들 오면 오히려
바쁜중에 아이들 챙기기가 힘이 더들테니 제사상 다 진솔해서 차려놓은
다음에 오라고 했었다.
"그러면 어머니 제가 전 다섯가지랑 녹두부침 모두 부쳐갈게요" 한다.
제사 음식 장만한지가 사십년이 넘어가는데 며느리 맞이하고 처음으로
일을 나누어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기특하고 착한지
어느때보다도 오늘 지낼 시할머님의 제사가 뜻있는 하루가 될것같았다.
육탕, 어탕, 다섯가지 나물도 만들어놓고 어적, 고기산적을 다 구워놓고
산이할아버지가 오로지 할 일인 지방 하고 축문을 오늘은 좀 일찍 쓰면
좋겠노라 부탁하러 서재를 찾았다.
"날씨도 춥고 손주들이 너무 깊은밤까지 있다 돌아가면 길도 미끄럽고하니
다른때 보다 두어시간 일찍 지냅시다" 말을 건네보았다.
아주 선선하게 "그러지 뭐"하는것이다.
정석대로 큰일이든 작은일이든 하는 사람이 손주에게는 항상 양보하는 생각을
한다는걸 알고있기는 했지만 아주 쉽게 마음을 정하니 고맙기도하다.
산이할아버지는 지방을 쓸때는 만세력을 보면서 다시확인도 할겸 음력날짜를 항상 챙기는데
1월 4일 오늘은 시할머니 제사날인 28일이 아니라고 하면서 나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해가 바뀌면 달력에 우선 집안 행사 날짜를 챙겨 동그라미를 쳐놓곤하는데
"에이구.....작은 달력 작은 글씨 음력 23일을 28일로 보고 표시를 해놓은 모양이다.
사십년이 넘게 지내온 제사날짜를 헛짚는일이 벌어진것이다.
양력날짜로는 해가 바뀌었으니 내 나이 육십하고도 팔세이니 적지는 않은 나이긴하다
그렇지만 허탈하고 기가막히다.
차분하게 잘 챙기지 못한 잘못이 있긴하지만
오히려 닷새뒤 또 다시 마련해서 제사음식을 장만 해야 할 마누라가 딱한지
"당신도 이젠 나이먹은 티를 내는구료" 하며 안쓰러운 눈길을 보낸다.
이런 사정을 빨리 아들 며느리에게도 전하며 사태를 수습하기 시작했는데
이왕지사 만든 음식이니 맛있게 잘먹으라는 당부까지 어김없이 했다.
탕국과 나물을 저녁밥상에 차려 내놓으면서
"이게 바로 헛제사밥이로구료..........맛있게 먹읍시다"
다섯가지 나물을 비빔밥으로 하고 탕국과 함께
오늘 음력 11월 23일 저녁밥을 먹었다.
닷새뒤 다시 우리식구는 헛제사밥이 아닌 제사지낸 음식으로 음복을 할 것이다.
은희 언니.!
선배님들 기수에 맨 첫 댓글 다는 건 항상 망서려지긴 하는데
그래도 아침 일찍이지만 인사차 들른 후배가 뭐 그리 미울까 싶어 그냥 씁니다.
가까우면 그 헛제사밥도 얻어 먹고 싶구요.
요즘에는 새벽같이 아침밥 차릴 일이 없어서 상당히 느긋해요.
부산이 서울 다니기는 좀 번거롭지만 나이 든 사람들 살기에는 정말 편리 한 것이
바다 있고 산 있고 저희 동네는 유명한 온천까지 있거든요
남편처럼 운동하기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그 온천이 참 유용해요.
요즘 목욕탕에는 가지가지 물 속에서 할 수 있는 기구가 즐비하니까요.
저도 일주일에 한 번은 온천욕을 즐겨했었는데 수술한 이후로는 그냥 안가고 말았지요.
따끈한 탕 속에 들어가면 뭔가 피부 속으로 스며드는 듯한 그 기분좋음을 잊고 사는 요즘
이렇게 추워서 어깨가 움츠려 드는 날은 새벽 목욕하고 얼굴이 발그레해져서 돌아오는남편이 참 부럽습니다.
헛제사밥이란 제목에 들어 와 보니...........................아이구 참!
언니랑 통화를 한 직 후라 더욱 실감났어요.
그렇긴 해도 지나고 생각난 게 아니라 참 다행이지요?
그런데 어머님도 아니고 할머니신데 그리 항상 격식을 갖추어서 차려야 하나요?
그냥 3가지씩만 하면 좋겠네요.
먹는 사람들이야 좋겠지만 또 시장 봐야하고 조금 있으면 음력 설도 오는데 제가 다 걱정입니다.
저도 친정에서는 아버지가 3남이시라 제사에 직접 참여 해 본적은 없고
명절 날 큰집에 가서 먹던 기억 밖에 없는데다가 시댁도 아버님께서 막내시라 집에서 지내는 제사 없었거든요.
일본 서 돌아오기 몇 년 전에 시할머님께서 돌아가셨는데
무슨 영문인지 시증조부모님의 제사를 가져 오셨더라구요.
참 자손들에게 물려주실 것이 없다보니 그거라도 챙기셨는지.........................................
시동생이 해석하기를
다들 서울에 살다 보니 자주 만날 수도 없고 제사라도 있으면 좀 더 자주 오지않을 까 하신 것 같다는데 참!!!!
큰 어머니께서 할머니께 소홀하셔서 한 동네에 계신 홀로사시는 고모님께서 할머니를 모셔왔는데
거기에 따른 일종의 반발로 할머니제사를 가져오시겠다고 고집을 부리셨답니다.
형님들께서는 다 작고 하시고 유일한 어른이셨거든요.
워낙 한 번씩 말도 안되는 억지 잘 부리시는데
엄청 머리 좋으신 남편의 사촌 형님되시는 시아주버님께서
"할머니제사야 종손인 제가 당연히 모시는거고 정 그러시다면 증조부모님 제사나 가져 가시지요"
이렇게 해서 원래는 없었던 제 차지 제사가 생겨버렸답니다.
헛 영리하신 우리 아버님은(원래 막내들이 대책없이 저지르쟎아요?) 몇 번 하다가 도루 주면 되지 하신 모양인데
저희가 돌아 오고 그 제사를 돌려주겠다고 하니(물론 아버님께서) 그 쪽에서 딱 거절하더라구요.ㅎㅎㅎㅎㅎ
그 제사 날이 항상 입시다 뭐다 바쁠 때...............................
암튼 우리 아버님께서는 그게 마음에 걸리셨는지는 몰라도 추석 다음날 돌아가셔서 추석이 제사날이 됬어요.
3년 쯤 아침에 차례, 저녁에 제사 지내는 난리를 쳤더니
큰 댁에서 아주 선심 쓰듯 이제 그냥 아침 차례로 대신하면 된다고 그러시더라구요.
우리시대는 속으로는 불만이 있어도 윗 분들에게 대들거나를 못했쟎아요?
솔직히 그 큰 댁 분들은 자기집은 이랬다 저랬다 엉망으로 하면서 남들에게는 간섭을 많이 하더라구요.
전 말이 되든 안되든 이 때다 싶어서 얼른 그 분들 말씀을 듣고 그대로 시행을 했지요.
증조부모님 제사는 아직도 두 분 합해서 지내고 있지만 언젠 가는 없어질테고
어머님도 3년 지나면 그냥 아버님과 함께 지내기로 했으니까 전 그럼 명절만 차리면 된답니다.
솔직히 저도 교회 다니지만 어쩌겠어요?
어차피 지내는 제사니 정성 껏 하려고 하지요.
언니 글에 댓글 단다고 와서 너무 길어졌네요.
죄송합니다.
지금 뒷부분은 지울까 말까 고민 중이랍니다.
명옥아~
일찍 컴앞에 앉았구나
나도 어제의 일때문에 일찍 눈이 떠지고 써놓은 대문글이 생각나
생각난김에 초고없이 그냥 써내려간 글이 마음에 걸려
다시 읽어보려고 일어난김에 들어와보았단다.
나도 지워버리고 싶은 문구도 있지만
그냥 놔두려고................지을래면 아예 시작을 말아야지 않을가 싶기도해서...........
명옥이도 얼떨결에 어려운일 맡아 했구나.
교회를 다니면서도 부부간 큰 충돌없이 해나가니 용타!!!
천주교신자는 몇부분만 지키면 제사는 허용이 된단다.
살아오는동안 이왕지사 하는일 조상님들께 일년에 한번씩
인사드리는 마음으로 하자.............고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힘들었지만 질서와 예의와 도리를 그나마 지켜나갈 수 있는
좋은 측면도 있어서 긍정적인면도 있다는 생각이다.
괜찮아요 ~ 명옥아~!
댓글 쓰고싶으면 쓰고 또 할 이야기가 없으면 안쓰게되는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지싶구나
난 종가집 외며느리니 당연히 할일 해왔지만
명옥이는 잘 해왔구나....................남편이 말은 안해도 고마울거여~!!!
개신교신자들은 목사님에 따라서 갈등을 겪게 되지요.
목사님들 중에서 연로하시거나 아주 완고한 분들은 남의 사생활을 쥐락펴락 하시거든요(물론 설교 말씀으로)
전 학교 때 교회를 다니긴 했어도 그냥 대강 다녔고 다시 가게 된 건 나이가 들어서였고
사후 영생이 문제가 아니고 사는 동안이 힘들어서 가게 된 교회라 무조건 분쟁은 피하자주의에요.
허지만 제사문제같은 건 하면서도 마음이 편할 수만은 없는데
예전에 저희 교회 부목사님 중에 기막히게 설교를 잘 하시는 분이 계셨어요.
전체교인이 있는 자리는 아니고 구역장 권찰들만 보는 예배에서 (석 달 쯤 담임목사님이 출타하셔서)
제사에 대한 설교를 하셨어요.
그 분 말씀이 무조건 분쟁은 피해야 하고 마음에 걸리는 부분은 지혜롭게 처신하라구요.
저처럼 직접 지내야 하는 사람은 피하기가 쉽지않지만
그렇지않은 경우라면 며칠 전에 찾아가서 제사비도 두둑히 드리고(그 날은 일이 있다고)
또 돈이 없으면 그날 일찍 가서 일 다 해드리고 핑게를 대고 나오던 가....등등
사실 저도 지내 보면 참 얄미운 교인들이 많아요.
오죽하면 제가 제사가 돈생기고 일 피하는 행사라면 교인 아니라 아마 미국에 살아도 찾아 올 꺼라고 한다니까요.
평소에도 뺀질이짓 하는 사람이 대개 제사날이면 교인행세하고
직장가진 사람중에도 얌체족들은 명절이면 일직한다쟎아요?
큰 충돌 일으켜 봐야 제가 이길 확률도 전혀 없고 힘만 들어요.ㅎㅎㅎㅎ
일하고 생색내는 게 백 번 낫지요.
그리고 종교문제를 떠나서 제사라는 게 좋은 면도 많거든요
큰며느리가 힘들고 돈들어서 그렇지 요즘세상에 사촌이며 조카까지 모일 일이 없으니까요.
다행이 저희 시댁은 안지내던 제사 지내는 형편이라 뭐 제대로 몰라요.
대강 책보고 비슷하게 하고 넘어가지요.
시간도 맘대로(월드컵 때는 정말 가관이었어요.그저 온 식구가 축구에만 정신이 팔려서)
ㅎㅎ
그냥 친척들이 모여서 웃고 떠드는 재미가 쏠쏠했는데
이제는 각자 제사며 자손들이 생기고 다들 늙어서 못모이게 됬어요.
그래서 올 해부터는 저도 지내기 싫네요.
아들도 갔고 우리 둘이서 뭘 할지.................................................
기온이 연말연시 내내 영하의 추위라서 보일러 기름도 쑥쑥내려가고
오늘은 달랑달랑 반드럼도 안남은 기름 보충하려
일찌감치 주유소 기름차를 불러 왔는데 집안길에 치우다 못치운 눈 때문에
그 큰차가 헛바퀴돌아 힘들게 힘들게 기름을 겨우 채웠다네.
우리집 진도견 보리도 추위에 움츠려들어서 제집에서 본채 현관쪽으로
피난시켜 함께 지내고있지.....................정말 지구의 이상기후 징후가 분명한거 같다.
사실 제사만 아니라 큰일에 있어 각 집안마다 우여곡절이 아마도 많을라
내 주위에도 이런저런 사연을 듣기도하고 보기도 해왔었다.
우리집 산이할아버지 오남매도 종교가 각각이지만 자유롭게 의사를 존중해주는편이다.
그래도 가끔 목사부부인 시누네가 친정부모님 묘소도 찾지않는 행동은
매우 섭섭하게 생각하지만 그일도 말로는 표현하지않는단다.
종교.................오죽하면 종교로 전쟁도 하겠나싶다.
인간이 이기심이 제일 많지않을까 하는 생각이든다 .
이 나이되니 조금은 보이기 시작하네.
순수한 인간성을 갖고 사는일이 얼마나 어려운일인가도 알게되고
오죽하면 인적없는 산으로 피해들어갈까 .......아니면 칩거에 들어갈까
이해가 되는 세상이지.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은 사람속에 부대끼며 살아가는 수밖에
없지않을까 하네.
그나마 사랑하고 미워하고 좋아하고 싸울 사람도 사라지거나
점점 느끼지 못할 나이가 다가올텐데
시컷 사랑하고 미워하며 살자꾸나.................ㅎㅎㅎㅎㅎ
그리고 명옥아~
두분이서 간단하게 명옥이 말대로
추도하는 날로 조상님을 기리는날로 하면 되지않을가싶으네.
김은희 선배님!
세상에 이런 일이 다 있네요.
저도 선배님 글을 읽고 놀래서 다시 한번 제삿날을 확인하고 빨간색으로 표시를 해 놓았답니다.
저희 집은 제삿날이 보름 간격으로 몰려있어
음력12월 1월은 죽었구나 하고 살고 있거든요.
특히 핵가족 시대인 요즈음은 제사를 핑계로 모여서 얼굴을 보게되니
어떤 때에는 힘들어도 제사라도 없었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도 더러 듭니다.
헛제사밥도 그러네요.
간장으로 비벼먹는 것이라는데
우리 집은 고추장을 넣고 비벼 먹기에 양념고추장을 준비해 놓는답니다.
하기는 제사 라는 것이
돌아가신 분을 추모하고 그리워하며 덕담을 나누는 자리이니
고추장으로 비벼 먹는다고 무슨 흉이 될까요?
그나저나
선배님, 또 한번 고생하셔야겠네요.
하이고오,,,은희언니,,,맴 보다는 ,,,,이제서야 들어왔네요,,,
어제밤 늦게서야 이 글을 읽고는 어찌 감동스럽든지,,,근대 넘 늦어서 답을 못 드렸어요,
답을 안 드리고는 도저히 넘어갈수 읎게 찡한 이 글,,,,,,,,,,,,,,,,,,,,,,,,,
명옥후배와 산학후배의 댓글과 함꼐,,,한국여성들의 제사 또는 집안의 규례로 인해 겪는 어려움이 잘 나타나있네요,
아무것도 모르게 철없이 귀하게 자라,,,멋모르고 한 결혼뒤에 밀어닥치는 그런 일들,,,
다들,,,잘 견뎌내신 ,,, 삶을 살으셨네요,,
저는 우리 아버지가 막내로 또 타향살이를 하시다보니 제사를 못 겪어봐서
제사/차례음식도 이상해서 못 먹을 정도로,,,,그렇게 자랐지요..
또 이 먼곳으로 떠나서 살다보니 장남에 종손이라도 제사라는것은 몰르며 지냈어요.
헤엥,,,그러믄 멀해요,,,장남이라는 따까리는 바다건너 삼만리의 거리도 못 막을만큼 밀려부치는 부채나 같아요,
평생,,,없는 집안에 한 달도 거르지 않고 돈 부치고,,큰 일떄는 또 따로 부치고,,
시동생 대학공부,,,따로 부치고,,형제들 다 챙기는 일들을 평생,,,
불과 한 이삼년전에야 그런 일들이 끝났어요,,,하하하하하
7남매라도 자식은 오직 하나인듯,,,장남만이 홀로 다 해야하는 듯 ,,,,그런 식으로 사는 삶이 마음에서 얼마나 어렵든지,,,
그러면서도 평생 입 다물고 속으로 혼자 삭이며 사는 여인의 삶이란,,,,
이제 이망큼 나이 먹으니 별로 흉이란 생각읎이 저절로 나오는 자유함이 있드라구요,
또한 그렇게 하는 말들이 은연중에 누군가를 위로해주는 힘도 있음을 알게되고,,,
아,,,나만이 아니였꾸나? 라는,,,,,,,,,,,,,,,,,,,,,,,,,,,,,,,,,,,,,
이제 40년 쯤 되니,,,부모님 다 돌아가시고,,,이제 비로서 우리만의 삶을 살게 되며,,
저에게도 시부모님 제사를 두 번을 맞게 됬네요,
우리 이이는 원래가 자기 어머니가 큰집으로 너무너무 어렵게 시집살이하며 사신것을 보고 자란지라.
그런 규례/전통속에서 벗어나서 자기는 절대로 그런식으로 살지 않겠다고 미국행 꿈을 꿨는지,,
그런 것을 아주 싫어해서 모든지 편한 식으로 ,,,,,,,,,,,,라는 식이예요,,
지금, 시형제들이 주위에 있는 상태에서 모시는 두 제사를,,,,,,
우리 이이는 상을 차린다는 것에 비중을 안 두고 그냥 그날 형제가 부모님의 기일로 인해 모여서
좋은 시간을 갖는 것이라고 생각하며,,,모시는 우리집이 기독교이니
부모님을 기리는 찬양 두어곡과 성경 말씀읽으며 부모님을 회상하는 덕담을 나누며
간단히 한그릇 '땡' 하는 식의 애찬으로,,,,,,,,,하지요,,
우리 이이는 머든지,,,여자들이 편한 식으로,,,가 기준이예요,
그러나 어떤식이 꼭 옳다? 보다는 그저 가족이 서로 의논하여,,,
좀더 산 사람이 편한 식으로 ,,,,어쩔 수 없이 변해가는 거지요,,
시상에 날을 잘 못 집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얼마나 당황하셨을가요?
그런대도 한국여성 특유의 덕으로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리신 은희언니를 존경합니다.
지난 번에 주신 긴 답글들 ,,,,고마웠어요,,
그러나 원래 저의 글 자체가 답글이다보니,,,제가 일일이 답을 올리지 않았음은
모두에게 열린 편한 대화를 하시게 하기 위해서였읍니다.
언제나 진솔한 삶의 떄가 묻어있는 은희언니의 글은,,,살아 숨을 쉬는 글이예요,,,
대문글에 사진은 안동에서 유명한 헛제사밥 밥상차림이다.
이십여넌전 안동을 찾았을때
유명하다는 음식점을 물어 물어 찾아가 먹어보았었다.
제사를 지내지않는 사람들은 궁금해서 찾아가 보겠지만
그 시절 제사 음식을 일년이면 여덟번이나 해야했었던 나는
일부러 찾아가 먹으려 하는 사람들도 그렇고
왜그리 안동 헛제사밥이 유명세를 타는지 이해가 안되었었다.
양념이 안된 심심한 제사음식이 그렇게도 맛있는지 .................
지금 이제서야 사람들이 추억속에 음식을 그리워 한다는것,
너무 다양하고 많은 음식들의 홍수속에서
담백하고 소박한 맛을 좋아할 수도 있다는것을 이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