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눈이 많이 온다더니 정말 눈이 많이 온다.

매일 같이 경비 아저씨가 가래로 눈을 밀고 긁는 소리가 겨울답다.

 

  우리 아파트 옆 작은 길에 벤치가 하나 있는데 그 옆을 지나가노라면  생각나는 일이 있다.

어느 여름날 저녁 때  우리 남편이 그 벤치 위에 앉아 있는데 초등학교 1,2학년쯤 되는 사내 아이가 다가와서

"할아버지! 핸드폰좀 빌려 주세요" (왜?) "학원 갔다 와보니 엄마가 없어서 집에 못 들어가요. 엄마한테 전화 하려고요"

늙은게 싫은 내 남편이 (알았다. 근데 나는 할아버지가 아니다. 너보다 큰 형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니 그냥 선생님이라고 해라) "네. 선생님"  핸드폰을 빌려 주어서 그 아이가  엄마한테 전화를 했다고 집에 들어온 남편이 (나 참, 할아버지라고 하니까 싫더라)라면서 그 얘기를 해 주었다. 우리는 아직 손주가 없으니까.

 

  가을날, 저녁을 먹고 난 후  우리 부부는 벤치에 앉아서 바람을 쐬고 있었다.

웬 사내 아이가 다가 오더니  우리 남편에게 "선생님, 핸드폰 좀 빌려주세요. 엄마가 집에 없어서 못 들어가요. 엄마한테 전화하려고요"

나는 웃음이 나왔다. 두어달 전 여름에 남편이 만났던 그 아이가 분명하다. 아니 이 녀석이 잊지 않고 선생님이라고 하다니...

 

  한번은 저녁 먹고 어두울 때 이마트에 가려고 지나가는데 그 벤치 위에서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남녀 학생이 거의 포개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속이 부글거려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요즘 어른이 없는 세상이라는데 내가 한번 어른 노릇을 해볼까? (너희들 여기서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아무짓도 안하는데요"  (떨어져서 앉아야지. 그렇게 사람이 다니는 길가에서 붙어 있으면 안되는거야) 그 아이들이 움찔하면서 조금 떨어지는 게 보였다. 나는 괜히 창피하기도 하고 해서 서둘러서 가던 길을 가면서 얘들이 뒤에서 나를 따라오면 어떡하나? 살짝 뒤돌아 봤다.  요즘 애들은 무섭다고 하는 말이 생각나서.. 다행히 안 따라오더라.

 

    또 한번은 어두울 때 역시 이마트 가려고 벤치 옆을 지나가는데 이번엔 꽤 나이든 청춘 남녀가 아름다운 키스를 시작하려고 얼굴을 가까이 대기 시작하는게 아닌가?  또 속이 부글거려서 발을 쾅쾅 거리면서 다가갔다.  알아듣고 떨어지라고... 그러나 키스에 심취했는지 그대로 진행하고 있었다.  (이봐. 여기 사람다니는 길목에서 그러면 흉하지) 깜짝 놀란 남녀가 즉시 떨어졌다. (아이고 미안! 늙어서 내가 샘이 났나보다)라고  생각하면서 웃음이 나왔다.   

 

   눈이 와서 미끄러질까봐 운동하러 자주 나가지도 못하고 들어앉아 있으니 이런 저런 추억이 떠오른다.  

우리 친구들 "해피 누 이어-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