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회 - 아이러브스쿨 게시판담당 : 김영자
47세라는 나이에 처음 해외여행이라니, 좀 창피하기도 했지만, 내 여권이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하다. 그동안 1년에 절반을 해외 출장중인 남편 때문에, 집안 일에서 한순간도 짬을 낼 수가 없어 그 흔한 미국이나 유럽 출장 길에 따라나서지도 못했는데, 대충대충 집안의 큰일들이 마무리되어, 홀가분한 마음으로 나선 길이었다.
그때는 설레기만 해서 4000m 라는 산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르고 좋기만 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라는 말이 그때의 나를 두고 하는 말이었음을, 머지않아 깨달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기다리고 있는 줄도 모르고….
콸라룸푸르에서 사바주로 가는 국내선으로 갈아타고 다시 5시간에 걸쳐 버스로 이동, 바로 키나바루 입구에 도착했다. 산 아래라 공기가 맑고 깨끗해, 밤에는 별들이 그냥 우수수 쏟아질 것만 같은 별천지의 세상이다. 보이는 건 산 뿐이고 해발 1800m에 위치한 산장에서는 맑은 공기 때문인지 쉬이 잠이 오질 않는다. 그곳 산장에서 하룻밤을 묵고, 새벽 일찌감치 키나바루 입구에 도착하니, 절차가 꽤 까다롭다. 보험을 들어야 하고, 셀파를 배정 받고, 허락이 떨어진 후에야 산에 오를 수가 있었다.
매년 세계적인 산악 마라톤이 이곳에서 열리는데 그때마다 심장마비로 죽는 사람이 생겨 꼭 보험에 들어야 한다나. 유럽인들이 특히 많다. 우리의 가이드는 태권도 금메달 리스트로 말레이시아에 사범으로 왔다가 그만 키나바루에 반해 주저앉아버린 전문 산악인이다. 이번이 87번째 오르는 것이란다.
셀파들이 짐을 다 들고 우리는 맨몸으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아열대 지방의 나무들이 오르면 오를수록 높이에 따라 달라지고, 세계의 명산임을 입증하듯 쉼터도 잘 정돈되어 있었다. 만나는 이들마다 인사는 "천천히, 천천히."
고소증에 시달릴까 봐 미리 약을 먹었는데도 시간이 지날수록 견디기가 힘들었다. 또 하루에 한 번 쏟아지는 "스콜" 때문에 옷은 흠뻑 젖고, 땅에서 뿜어대는 열기는 가히 살인적이다. 숨이 탁탁 막힌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고 구토가 나고. 3000m를 넘으니 어지럼증까지 일기 시작한다.
준비해온 산소를 마시면서 가는데도 소용이 없다. 땀을 얼마나 흘렸는지 소변은 나오지도 않는다. 내가 왜 여기에 왔을까? 다리는 풀리고 주저앉아 울고만 싶었다. 우리 팀만 14명인데, 뒤에서 멀찌감치 따라오는 셀파들이 걱정이 되는지 자꾸만 쉬어가자 한다. 차라리 셀파들이 물건을 버려두고 나를 업고 가면 안될까. 등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만약 내가 포기하면, 당연히 남편도 나 때문에 포기해야 되고, 그러면 일행 중 누구는 우리를 따라 나설 테고. 결국은 한 사람 때문에 몇 사람이 못 가는 결과가 오면…. 끔찍한 일이다. 그냥 철없이 해외여행이라니까 앞뒤 가리지 않고 따라나선 나 자신이 기가 막혔다. 무식하면 용감한 법이라는데, 그 말이 딱 맞았다.
너무 힘이 들어서 남편에게 "셀파들이 날 업고 가면 안될까?" 했더니 벼락같이 화를 낸다. 셀파들이 얼마나 힘이 드는데, 너를 업고 가라는 말은 죽으라는 말과 같은 거라나, 결국 남편과 대판 싸우고 부어터져서 걸었다.
"내가 만약 여기서 심장마비로 죽으면, 너는 아마 평생을 죄의식 속에서 살아야 할 거다." 속으로 수없이 욕을 하면서 올라가는데, 내 앞에 조그마한 여자가 올라가는 것이 눈에 띄었다. 깜짝 놀랐다. 나보다 더 작고 마른 소녀가 캔맥주 2박스를 등에 지고 가는 것이 아닌가? 가느다란 다리가 금방 부서질 것만 같았다. 가이드에게 물으니, 헬리콥터로 물건을 실어나르는 것보다, 인건비가 더 싸기 때문에, 직접 사람이 산장까지 맥주를 운반하는 것이란다.
3353m에 있는 산장까지 캔맥주 2박스를 메고 오르는 현지인 소녀. 일당은 우리나라 돈으로 2만 원. 땅만 내려다보고 흘러내리는 땀은 닦지도 못한 채, 묵묵히 한발 한발 힘겹게 내딛는 소녀의 모습에서 나는 내가 얼마나 나약하고 호강에 겨워 불평을 하고 있는지 한없이 부끄러웠다.
짐도 없이 내 몸 하나 달랑 올라가면 그만인 것을…. 나는 왜 그렇게 불평만 했을까? 까무잡잡한 피부에, 슬픔을 간직한, 소녀의 깊고 깊은 쌍꺼풀진 눈이 계속 나를 쫓아왔다. 이를 악물고 올랐다. 드디어 멀리 불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3400에 위치한 산장이다.
앞서 도착한 일행이 손전등으로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눈물이 왈칵 솟았다. 2층 산장에 들어서니, 늦게 도착한 우리를 위해 모두 일어나 기립 박수를 쳐 주었다. 기립 박수 속에서도 마룻바닥이 빙글빙글 돌고 있다. 山에서는 모두가 한마음이 되는가?
무사히 올라온 하루를 서로 축하하며 마음속까지 짜릿한 맥주를 들이켰다. 아마 이 술은 내가 기억하는 한 제일 맛있는 술이 되었다. 이런 짜릿함 때문에 남자들이 술을 마시는가?
내일은 새벽 2시에 일어나 정상까지 5시간 정도를 올라가야 한다. 유럽인들은 대개 하루 정도를 더 쉬고 오른다는데, 우리는 급한 성격 때문인지 후딱 해 치워야 직성이 풀린다. 더 이상 욕심내지 않기로 작정하니 고소에도 불구하고 잠이 쏟아진다. 그래도 새벽에 일어나 정상에 오르는 일행을 배웅하고 또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선두가 도착했다. 일출을 보고 서둘러 내려오는 길이라고. 풀 한 포기 없는 바위 산인데 바람 때문에 날아갈 것 같았고 추위에 두통과 고통이 심해 열 발자국 걷고 쉬고 , 또 걷고 . 결국 일출을 보고는 사진 한 장 후딱 찍고 내려왔단다. 바람 때문에 더 이상 지체하면 위험하기 때문이다. 대단한 사람들이다.
그날 아침을 먹고 내려오는데, 두통도 어지럼증도 하나도 없어 참으로 신기했다. 오히려 힘들게 올라오는 이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천천히 천천히. 조금만 힘내세요. 산장이 바로 앞이라고. 오를 때는 보이지 않던 산들이 비로소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스콜이 또 쏟아지기 시작하는데 이제는 너무너무 시원하다.
드디어 다 내려와서 내가 말레이시아 정부로부터 받은 번호가 204406번이다. 이 산을 오른 204406번째 사람이라는 인증서이다. 얼마나 소중한 증서인가? 비록 4095m 정상까지는 못 갔지만 3400까지 갔다 왔다는 것이 아쉬우면서도 자랑스러웠다. 증서를 받아들고, 자축하는 뒤풀이에서 가이드는 나를 "평생 못 잊을 여자"라는 고백을 했다. 왜냐하면, 87번째 등산객을 안내하면서 "아! 저 사람은 중간에 포기한다."라고 찍으면 백발백중이었는데, 이번엔 예상이 어긋났단다. 나를 포기할 사람으로 찍었는데 올라갔다고. 그래서 못 잊을 거라고…….
셀파들과 헤어질 때는 아쉬워서 몸에 지닌 액세서리는 다 빼서 선물로 주었다. 반지, 머리핀 등을 건네면서 여동생이나 여자친구에게 주라고 당부했다. 순수하고 우직한 이들에게 무엇이든 다 주고 싶었다. 캔맥주 박스를 힘들게 짊어지고 가던, 가냘픈 소녀의 슬픈 눈도 평생 잊을 수가 없다. 무엇 때문에 산에 의지해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눈은 왜 깊은 슬픔을 간직하고 있는 것일까?
한때 대학시절 수녀님들을 도와 춘천 교도소에서 정기적으로 봉사 활동을 한 적이 있다. 회색 높은 담 위에 철조망이 겹겹이 둘러쳐져 있는 정문을 통과하면 망루 위에 총을 든 경비병이 섬뜩했던 그곳. 여자 수용소의 방을 들어서면, 다들 겨울에도 맨발인데, 마룻바닥은 얼마나 닦았는지 아른아른 하고 얼굴에 화장까지 한 여자들이 우리를 피해 황급히 눈길을 돌린다. 그러나 어쩌다 눈이 마주치면 그 눈빛이 얼마나 애절하고 슬픈지 그네들의 눈을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
비록, 세상의 죄를 지었지만 그네들의 눈은 그렇게 순수해서, 보는 이로 하여금, 한없는 슬픔을 끌어내곤 했다. 보아주는 이도 없는데 왜 화장을 하느냐고 했더니 그곳에서도 몰래몰래 연애를 한다고. 종교활동 시간에는 남녀가 합동으로 강당에서 강의를 듣는데 그때 서로 눈이 맞아 쪽지를 몰래 주고받는단다.
아마도 힘든 수감생활을 그런 식으로나마 견디고자 했나 보다. 그런데 그들의 눈빛에서 나는 오히려 슬프도록 순수한 마음을 보았다. 살다가 지치고 정말 힘이 부칠 때, 나는 이러한 눈빛들을 떠올리고 나 자신을 추스른다. 말레이시아의 슬픈 눈을 가진 현지소녀나, 수감 생활에 지친 여인의 애절한 눈, 그리고 번호 204406번을….,
세월 속의 나의 첫 번째 여행지 키나바루. 다시 그 길을 가라 하면 갈 수 있을까? 벌써 10년 전의 추억이 되 버린 키나바루. 그래도 그날만 되면 그리워져 다시 새겨본다.
`````````````````````````````
도산학
1952년 경남 마산 출생
인천 인일여고 졸업
성심여대 국문과 졸업
인천 송도중학교 국어교사 역임
````````````````````````````````````````````
당선소감
다만, 글쓰는 것이 좋아 혼자 끼적이며 살아왔는데 느닷없는 당선소식에 깜짝 놀랐습니다.
유난히도 힘들었던 신묘년의 끝자락에 선물처럼 쏟아진 소식이 지금도 남의 일만 같은데
부끄럽고 민망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할 뿐입니다.
더군다나 내 글을 자기 일처럼 추천해 준 친구 소화 데레사 수녀님에게도 고마움을 전하며
앞으로 열심히 하라는 채찍으로 알고 일기를 쓰듯 욕심부리지 않고 글을 쓰겠습니다.
김정화 선배님!
오늘 일이 있어 일찌감치 나갔다 조금 전에 돌아와
컴퓨터를 켜니
이런 일이...........
원래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겠다고 해서 그냥 지나친 일인데 10개월 후에 언니가 약속을 깰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 했네요.
상을 탈 만한 그릇도 못 되는데
이 민망함을 어찌하면 좋지요?
실상은 며칠전에 모던포엠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12월에 수상식이 예술의 전당에서 있으니 참석하라고요.
물론 단번에 못 간다고 했지요.
왜냐하면 활동도 안 하는 제가 무슨 자격으로 가나 해서였는데 이곳에서 선배님의 축하를 미리 받네요.
감사합니다.
몸무게 30kg 겨우 넘으려나..... 도산학 여사, 나는 영국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짐을 싸서 부쳐봤는데
그때 놀란게.... 인도계 이삿짐센터_짐꾼들이 우리 생각에 도저히 들 수 없는 책박스 (예: 가로2m 세로 1.5m 높이 1m)를 잔등으로 번쩍 번쩍
들어요. 조그만 체구에.... 너무 놀라서 물으니 요령이고 단련이래요. 아마 셸파가 도산학 여사는 업고 올라갈 수 있었을 듯. ㅎㅎ
도산학 글을 대하면 우리네하곤 한차원 다른 각도에서 사는상싶다.
진즉에 작가무리에 끼어서 글을 썼어야 했었던것 같애.
너무도 감사하고 기쁜 소식을 주신 김정화선배님, 고맙습니다.
그 긴글 올려주시고,,,, 아주 재미있고 슬픈장면도 있읍니다.
정화선배님 , 다시한번 수고많이 하셨읍니다.
도산학, 고맙다. 기쁨을 주어서,,,,
달랑 남은 한장의 달력이 '여의주를 물은 흑룡'이 되어 드디어 승전고를......
중견 작가에게 신인작품상이라니?
작가님을 친구로 둔 나는 정말 복녀일세!
건강에 건강을 더하여 계속 좋은글을 쓰시길 빕니다.
멀리서 축하만해서 미안합니다.
작가에게 깎듯이 존경을 표합니다.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영육간에 건강하시고, 대림절을 잘 보내시고
아기예수님을 잘 맞으시길 빕니다.
다시한번
산학아,
뒤늦은 소식이지만 참 감사하다.(사진에 날자가 2012년1월 7일)
깊은 마음으로 축하 한다.
너의 글이 항상 마음에 와 닫는것은 알지만 위 당선작 글을 읽으면서 또 눈물이...
산학아, 마음껏 울고 또 웃을수 있는 글 좀 올려줘
나는 너의 팬이다
추신: 이글 올려주신 김정화 선배님께 감사드립니다
순애야, 재화야, 인선아, 희자야!
정말은 사연이 이렇단다.
인숙이 수녀님이 어느날 보니까 모던포엠에 등단을 했더라고.
우리가 만나 축하를 해주고
인일 홈페이지에서 내 글을 본 인숙이가 3편을 골라 그곳에 보낸 것이 우연히 당선이 된 것이야.
그냥 장난삼아 한 것이 2월에 책에 실렸으니
10개월 전의 일이지.
이 사실을 알고있는 친구들에게 별 일 아니니 누구에게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는데
인숙이 언니가
그 사실을 잊었나
오늘 올려버렸네.
내가 얼마나 당황을 했는지 몰라.
정말은 내가 인숙이라는 좋은 친구를 둔 덕이지.(인숙이와는 중2때부터 5명이 난초라는 이름으로 만났다)
친구들아!
별 것도 아닌 나에게 주는 축하의 말 .....고마워.
아이 이 양반, 뭘 그리....
시상식에 참여하라면 하는 거이지.
내 모시고 갈께 쪽지로 <시상식 일시> 알려줘요
그러지 않아도 예술의 전당에서 미켈란젤로 다빈치 등 전시회 4월까지 여는 광고를 흘깃 봤는데....
전시회 없음 서예상설전시 봐도 좋고.
경사가 났는데............지나칠 순 없잖아!! 갑시다. 아니 시간낼 수 있는 사람들 모두 몰켜 갑시다.
(그리고... 당신이 별것도 아닌 사람이라면, 난 시시껍진껍진한 사람일쎄... No, no 어찌 그런 말을.... 총무님,
국제적으로 유명한 인일7기의 동문회 총무님; 우린 대단해요! 인일7기라...)
?김정화 (글라라)?언니를
우리 7기의 고문으로 추대합시다!!!
가끔 김인숙(소화 데레사)수녀님의 연락병이시기도 하굽쇼. ㅋㅋㅋ
다시한번 축하하고,
?유순애?꼬마대장을 리무진(?)교수기사님으로
보무도 당당히 '예술의 전당'(어디에 있는가?)에 가서 상장을 받아와야
더욱더 글쓰기에 매진할 것이로세.
그사이에 우아함을 덧붙이기 위해서 열심히 잘 먹도록......
조개넣은 수제비가 참 맛나겠다. 쩝쩝쩝ㅎㅎㅎ
P.S; 우리 앞마당 쫴깐정원에 난초가 있는데
얘는 생긴것이 붓처럼 한줄기만 올라오는 가냘픈 보라색 난초.
늘 터들넥의 스웨터를 즐겨입는 널 생각나게 하거든?
너의 5인방모임 ?'난초'?와 딱! 맞아떨어지누먼.
인선{ 젬마} 안녕 !
우린 서로 얼굴도 모르지만
캐나다얘기만 들어도 인선이가 살고 있어 정겹고....
홈피에서 "정인선" 이름 석자만 보이면 댓글도 다 읽지요.
시원 시원하고 정 많은 인선 이를 그리며..................
새벽에 미사 봉헌중에 떠오르는 인선이가 이젠
전생부터 아는 사인것 처럼 친근감이 든다오.........
인숙 수녀는 11월 13일 미국 덴버에 사는 큰언니한테 환갑 휴가 갔다가
12월 1일 귀국했지요.
7기 누구나 다 동생 친구라 더 친밀감이 들고 정이 간다오.....
귀국하면 우리 꼭 한번 상봉해서 회포를 풀어 보자구요.
이 언니가 맜잇는데와 좋은 여행지 많이 알고 있으니....
{ 빈 말 아님............}
7기에 무단 침입 해서 동생들 미안해요..................
?김정화 글라라언니 안녕하시쥬~~~~
ㅋㅋㅋ"시원 시원하고 정 많은 인선이..."오매~~~부끄럽구먼유~~~
인숙수녀님과 볼 기회를 놓치고 말았어요.
덴버와 이곳은 뱅기로 다섯시간은 걸렸을꺼예요.
요즘 대림기간 중에 저희 본당에서는 성경필사로
'루카복음서'를 숙제로 내주어서 열심히 필사중예요.
구약의 '에즈라기' 까지 마치고요.
우리 네여인들이 모두들 얼굴도 모른는 정화글라라님께 고마워하면서요.
글라라언니의 영성체후 기도가 없인 불가능한 일인것을 우린 넘 잘 아니까요.
복많이 받으실꺼예요!!!
영육간에 건강하시고 새해에는 좋은 일들만 함께 하세요~~~!!!
월간포엠이라고 하니 언젠가 7기 김인숙수녀님이 등단했던 단체 아니던가요?
그 때 도산학선배님이 궁금해 하셔서 제가 월간포엠사이트를 링크 해드렸더니 좋아하셨는데 클릭
그 단체에서 등단을 하신거군요.
넓은 바다에서 마음껏 선배님의 날개를 펼치시길 바라며
축하드립니다.
???축하해요!!!!!!!!!!!!!!!!!!!
이젠 작가로 등단 했으니 좋은글 많이 써서
우리 인일이 훌륭한 작가님의 탄생을 기뻐할 수 있게 해주세요.
재삼 재삼 축하 합니다.
먼저,
정화언니 ~!
좋은소식 알려줘서 고맙습니다.
이곳저곳 아름다운글들 잘보고 있습니다.
건강하시고 앞으로도 많은 글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우리 산학이 ~!
축하해요.
당연히 등단하신 분인 줄 알았지요
앞으로도 글많이 쓰시고 우리들에게도 많은 즐거움 주세요.
(밥좀 마니마니 먹고.....)
오늘에사 천천히 여기저기 들러보는 중인데 경사가 있었네.
축하해.
산학이 글은 정말 좀 차원이 다르지.
앞으로도 자꾸자꾸 좋은 글 써주기 바래.
우리 산학이!
유명옥 선배님!
여행은 잘 다녀 오셨는지요?
혹시 손주 재미에 푹 빠져서 늦게 늦게 오시는 것은 아닌가 은근히 걱정을 했는데 이렇게 오셨네요.
정말은 그동안 홈피에서 선배님 이름을 찾을 수 없어 섭섭했습니다.
올 해가 가기전에 "작은 음악회"를 통해 뵐 수는 있겠지요?
올 겨울처럼
눈이 많은 계절엔
꼭 가 보고싶은 곳이 설국의 배경이 된 북해도였는데
선배님께서 일본을 다녀오셨다니 그 마음이 더 간절해졌네요.
그런데 갑자기 제 글이 차원이 다르다니요?
얼토당치도 않은 말씀입니다.
일기를 쓰듯
너무도 쉽게 씌어지는 제 글임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이 아껴주셔서 늘 감사하고 있음을 모른다 하지는 않으시겠지요?
항상 지나가고 나서 무슨 이야기였던가......다시 생각해보고
지금에서야 7기방도 열어보고
아~! 그이야기가 이 이야기였었네 했네.
산학이의 겸손한 마음가짐이 더 좋구나.
해오던데로 평온하게 나아가기를...........
그래서 오래도록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김은희 선배님!
제가 당선소감에
"일기를 쓰듯 욕심내지 않고 쓰겠습니다" 라던 문귀가 생각납니다.
욕심을 낸다고 욕심대로 되는 일이 있을까요?
생각해보면
살아오면서 내 뜻대로 된 일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지나고보면 이것이 "運命"인가 했을 뿐입니다.
주어진 길을 가고 있을 뿐인데 좋다고 애원하고 싫다고 앙탈을 하고 왜 그렇게 무모했을까요?
누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많이 갖는 사람이 성인이 아니고
많이 버리는 사람이 성인이라고요.
글을 쓴다는 것이 조심스러운 이유는 내가 버리지 못하는 욕심이 훤히 들여다 보이기 때문이겠지요.
그렇습니다.
"아름다운 글은 아름다운 마음에서 오는 것이니 네 마음부터 닦아라."라는 선배님의 말씀 잊지 않겠습니다.
詩가 존중받는 사회는 언제나 올까요?
산학이 축하해~~
그렇게 글잘쓰는 재주는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히 받은 선물 이겠지? ....
앞으로도 달란트를 더욱 발휘하여
우리모두에게 즐거움을 주길 ......
다시한번 추카추카!!!!
산학 후배,
수상 축하 합니다
하지만 신인상이란 말은 별로 적절하단 생각이
들지를 않아요.
우리에게 벌써 많은 좋은 글들로 감동과 즐거움을 주고 있는
베테랑 이신데요.
이제 더 많은 사람들이 산학 후배의 글을 읽고 공감하리라고
믿어요. 수상을 계기로 무한한 발전을 기원 합니다
다시 축하 드려요.
김혜경 선배님!
먼저 죄송하다는 말부터 올리겠습니다.
실상은 그쪽에서 수상소감과 약력 프로필사진이 필요하니 보내달라고 하는데
아무리 뒤져도 제대로 된 사진이 없어
선배님의 허락도 받지않고
선배님이 예전에 찍어주신 사진중(한복입은 사진은 말고) 하나를 보냈습니다.
그랬더니 그쪽에서 사진이 너무 좋다고요.
제가 다시금 선배님의 예술적감각과 실력에 감탄을 한 날이랍니다.
책이 나오고
그 사진을 보면서
선배님께 죄송하고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책이라도 보내드리려고 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 여기까지 왔습니다.
선배님께서 찍어주신 사진이 그렇게 요긴하게 쓰일 줄은 정말 몰랐지요.
그리고 중요한 사건은
글보다 사진이 더 좋았는지
어떻게 알고 편지를 보내는 사람이 있어 웃었습니다.
실제로 보면 사진과는 달리 분위기는커녕 꽝이니 얼마나 실망을 할텐데 하고 말입니다.
늦었지만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신세 잊지않겠습니다.
뒤늦게 도산학님의 수필가 등단을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