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저녁 7시반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우리 7기의 자랑스런 자녀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양지}의 귀국독창회가 있습니다.
양지는 세계적인 이태리 산타체칠리아음악원에서 줄곧 수석으로 공부했을 뿐만 아니라 (더하여... 만점수석 & 로드 수석!)
국내외 세계성악 콩쿨마다 세계 최고의 상을 수상하여
명실공히 post 조수미 기대주라 하겠습니다.
(만점으로 수석 졸업하는 경우.... 또 로드 수석 명예를 따는 경우가 많지 않아서, 리사이틀 후 양지는 다시 이태리행,
오페라 무대에 서야하는 특전=의무....를 갖게 되었다 합니다 ㅎㅎ)
11월 27일 화욜!
음악을 사랑하는 모든 인일인들과....즐거운 모습으로 광화문에서 만나뵙겠습니다. (일정표 확인하시고 반드시
광화문 세종문화회관.....늦지 않도록 써넣으세요! 당일, 양지 후원회장 유교수에게 눈도장 꼭 찍어주심 감사하겠습니다)
1. 14기 ~ 후배들은 허인애 멘토 총무님이
이번 주말 힐 하우스 모임에서 만나면 드린다고
초대권 가져 가셨습니다.
2. 8기 ~ 금현숙 후배님은 평화음악회 방영후
댓글에 양 지 귀국 독창회때 초대해 달라고 하셨져?
초대하겠습니다. 당일 제게 오시면 드릴께요.
그리고, 지난 5/12 ,토, 정동교회에서 있었던
故 강영우 박사 추모 음악회에서 8기 후배님 몇분이
저한테 양 지 귀국 독창회때 꼭 초대해달라는 분들이
있었는데, 이름이 생각이 안나요. 죄송한데요,
누구인지 몇분인지 알려 주실래요? 초대권 보내드릴께여.
3. 4기 ~ 서순하 선배님도 오신다고 댓글 주셨져?
이미자 총회장님 편에 전해드려도 될까요?
**그밖에도 양 지 노래를 듣기 원하시는 동문들께서는
댓글에 올리시던지, 전화로, 문자로, 카톡으로 연락 주시면
초대권 보내 드리겠습니다. ( H.P : 010- 2932- 2119 )
4. 6기 ~ 광숙언니 죄송해요. 초대권이 부족하여 15장 밖에 못 보냈어요.
나머지 부족한것은 당일 오시면 드리겠습니다.
5, 개인적으로 ( 낱개로 ) 전화 주신 분들은 당일 7시전에 입구에 저 나 유순애 교수를 찾아 오시면
초대권을 드리겠습니다.
송미섭의 글입니다. 댓글 놓치실까봐 여기에 복사해 넣었습니다.
13기
서선옥 4장(이미 직접 신청했답니다.)
문선희 2장
최성원 2장
서금순 2장
엄정숙 1장
송미섭 4장(이미 받음)
설레는 마음으로 양지를 기다립니다.
현장에서 제가 받아서 나눠줄까요?
선배님, 이런 좋은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 미섭 총무님~
당일에 총무님 이름으로 7장 준비 해 놓겠슴다.
바쁜 일과후에 퇴근 하시고 오시기 어려우실텐데,
양 지의 노래를 들으러 와주신다니 넘 감사합니다.
양 지의 음악을 들으면서 행복한 시간이 되셨으면!!! ...... 기대해봅니다.
*** 서선옥 후배님~
일찍 신청하셔서 발송해드렸슴다.
혹시 당일날 갑작 스런 일이 생겨 못오실 분이 있어 초대장이 남으면,
당일날 제게 꼭 갖다 주시면 고맙겠슴다. 초대장이 모자라요.
1장을 중요시 여겨서 자리가 구멍 나지 않도록 도와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양지씨의 얼굴을 보면 이정수선배님의 웃는 미소와 닮은데가 있어여...
선배님께서 테니스를??? 우와 제친구 김우숙이 14기때 인일 대표테니스 선수였답니다...
지금은 같은 운동을 하는분하고 결혼하자마자 포항으로 가서 살아여...
포항제철 소속이라서여...
넘 멀리 있고 친정부모님 살아계실때 인천에 오면 가끔 얼굴 보았는데
목소리 들은지도 오래되었어여...
왠지 낯설지 않은 선배님의 첫인상이 이렇게 테니스로 연결되네여...
살면서 느끼는건...
오늘의 만남이 우연인듯해도 아주 오래전부터 오늘을 위한 준비를 누군가가
해 주시고 계시다는거지요...
은혜가운데~~~
첫번째 이야기 (영원한 열등감.... 나의 노래)
개콘에서 박지선이 <나는 못생기지 않았습니다>라고 울먹이면서 시작하는 코너가 있는데.....나도 <저는 노래를 못하지 않습니다!> 하려면 눈물이 흐르고, 코가 시큰거린다.
노래는 나는 열등감의 근원이다!
열 살 무렵부터 합창을 하였다.
당시 윤학원 선생님은 미혼의 청년이셨는데, 이분을 후원하여 어린이합창단을 만드는 일은 어머니와 또 당시 일식집 미우만을 경영하던 아주머니 등등 몇 분이 하셨다. 실은 나는 어린이 합창단 정식 단원이 아니었는데, 내 동생이 노래하는데 쫓아가서 몰래 엿보곤하는 나를 ‘들어와 함께 연습하자’, 하시던 윤학원 선생님은 후에 인천문화원 소녀합창단을 만드시고는 노래를 잘도 못하는데 단원으로 뽑아 주셨다. 인천문화원 소녀합창단은 극동방송 소녀합창단으로 선생님의 일터가 바뀌시는대로 이름이 바뀌었다ㅎㅎ. 우리는 인천항에 영국황실함대가 들어올 때나 미국 군함이 들어올 때 한복을 입고 승선하여 합창을 하기도 하였고, 또 Logos라는 선교 船이 입항하였을 때도 승선하여 노래를 불렀으니.... 좀더 넓은 세상을 바라볼 기회가 남달랐을 것이다.
선생님께서 결혼을 하시고 자녀를 낳으시고 하는 것과 우리의 성장기가 맞물려서 선생님의 연애담, 첫사랑 이야기 등을 들려주실 때는 흥분하고 소녀들은 소리를 지르며 열을 내었던 것 같다. 기억하는 사람들은 윤학원 선생님께서 얼마나 미청년이셨고 깔끔한 멋쟁이이셨는지....알 터인데, 그러니 더욱 눈표정 하나로, 어깨 움직임 하나로도 단원들을 집중시키는 마력을 가진 지휘자셨다.
우리들이 고3이 될 즈음 극동방송국은 서울 합정동, 홍익대 아래 동네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선생님께서는 우리에게 서울로 진학하면 꼭 극동방송 합창단에 입단하라 하시더니, ‘아름다운 목가’의 뜻을 가진 <마드리갈 합창단>을 방송국에 만드셨고 신촌에 위치한 방송국이다보니 이대 성악과와 연대 성악과 재학생들 중심의 준 프로급 혼성합창단이 되었다. 우리들은 인일을 졸업하고 서울대_연대_이대 등의 뱃지를 달고 1970년초 마드리갈에 입단하였다.
그러지 않아도 “앨토에서 이상한 소리 나요~~,” 선생님께서 지적하시면 맘이 늘 불편하였는데, 이 성악과 학생들 틈에서 식물학 전공의 나는 늘 좌불안석이었다. (이 성악과 학생들은 대개 현재 음악대학 교수들이심) 맨먼저 키 커다란 서울대 화학과 4학년 학생분이 안나오기 시작하더니, 그 다음번으로 내가 자퇴를 감행하였다.
기실 대학합격증을 쥐자마자 한 일이 다니던 교회에서 어린이 성가대 조직한 일이요(결혼할 때까지 12년간 이끌음), 청년성가대 총무로, 멤버로, 또 가끔 활동하는 어머니성가대 지휘로 어찌보면 당시 합창활동이 너무 많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인일에서는 친구들이 나를 음악인으로 보아준 적은 없는 것 같다. 합창제 때도 그저 반장이었지....지휘자의 물망에 오른 적은 없다! (이 나이에도 절망감을 느끼게 하는 추억이다). 요즘은 친구들이 가끔, “순애야 너 노래 잘해”라고 해주는데... 어렸을 때 듣지 못한 이 말을 다 늙어서 듣는건 그나마 위로가 되기도 하고 진짜아? 되묻는 마음이다 (실은 본인 스스로 그 조금 짧은 실력을 왼바로 알고 있음). 변변치는 않지만, 영원히- 음악의 여신에게 봉사하련다 늘 다짐하곤 한다.
두번째 이야기 (콩나물은 자신있었는데.....)
고교 3년간 밴드반을 하였다.
인일여고 밴드반은 피아노를 치는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연주하는 어코디언밴드였는데, 나는 피아노를 못치니 무거운 목금을 들고 운동장과 연습실을 들고 다니며 행진곡을 연주하였다. 당시는 교육감님들이 수업을 들어와 교육현장을 평가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어느날, 뜻밖에도 음악 모범수업을 한다고 하며, 관련 교육감님들이 오신다 한다.
교실은 밴드반 단원들로 채워지고, 즐거운 모범수업을 하였는데 키 큰 박준교 교육감님(정확한 직급은 잘 모름, 인일 음악선생님 역임)께서 우리 실력을 시험하련다고 다음과 같은 박자를 칠판에 그리셨다.(그림 추후). 학생들은 저마다 손을 들고 그 어려운 박자를 딴따안따 딴따단따 딴다안따 따.....하며 소리를 내어 맞추려 하였는데, 피아니스트들이 모두 맞추지 못하고 내가! 제대로 맞추었던 자랑스런 추억이 있다!
이후로 내 마음 속엔 콩나물의 높낮이, 길고 짧음은 난 정말 자신있다! 하는 우쭐한 마음이 들었다.
특히 음정이 흔들리지 않으니 합창을 할 때에도 내 파트의 사람들은 주로 내 옆에 와서 귀기우리고 제대로 된 음을 내려고들 한다. 영국 케임브리지에 교육부 파견으로 가서 1년을 보낸 1993-4에도 마찬가지였다. 유학생들이 한인회의 주축이었던 그곳에서 우리들은 한인교회를 만들고 성가대를 시작하였고 (내가 초대지휘자인 셈), 또 영화 Love Actually 그대로...영국 초등학교에서는 학기말, 성탄 등에 학예회를 하는데, 이때 학생들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학부형들을 불러 함께 캐롤을 하였고 이 때도 약간~ 국위선양에 이바지 하였다 자부는 되었다 (우리집 아이들이 당시 초등과 중등 재학함).
음악의 나라, 합창의 나라 영국에 왔으니, 기회 닿는대로 합창을 해보자, 결정하고 대학 합창단에도 가입하여 보았는데.... 아시다시피 케임브리지대학은 킹스컬리지가 세계적인 남성합창으로 유명하고, 성탄 때마다 <Carrole from King's>를 생방으로 세계에 보내는 곳이 아닌가! (물론 무대는 세상에서 가장 '파이프오르간과 스테인드 글라스'가 아름다운 그곳..... 헨리8세의 King's College Chapel). 나는 오디션 없이 단원을 뽑는다는 광고가 붙어있는 Trinity Hall College의 음악반 (Music Society)에 가입하기로 했다. 첫모임에 가보니 흠~ 일본인 교수(흰머리의 우주항공학자)가 앉아 있는게 아닌가! 요시, 그럼 겨뤄보자. 하는 마음이 불끈 솟았다.
12부 합창을 해보았는가! 패리의 <I was glad> 이런 12부 합창은 정말 가슴터지는 황홀함을 합창이 주는 경험을 하게 한다. 물론 영국의 음악문화의 진수, 그 우월성을 알게함은 물론이었다. 영국 학생들은 음을 못잡고 헤맬 때 내 옆에서 귀를 쫑긋 거렸고, 내가 한국의 생물교수라 하면 넌 어쩜 그 재미없는 공부를 하느냐....고, 또 유학생(대학원생) 같은데 정말 교수냐...고도 묻고 즐거웠다. 그러던 중 정신을 차려보니 일본 교수는 자퇴를 하고 없었다. 속마음으로 그래... Oh Danny boy나 부를 줄 알았나? 하는 마음이었지만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하니 내심 서운한 것도 사실이었다 (이분으로 인해 케임브리지에 와있던 일본여자교수들과도 친분이 생김). 그런데.......
슈벨트의 미사곡 악보를 받는 순간 부터는 완전 주눅이 들었다. [이동도법]은 한 마디마다 장조가 바뀌는데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한인교회 성가대 멤버인 젊은 엄마가 생각났는데 이분은 이대 성악과 출신으로 젊은 외교관 서방님의 파견교육에 따라와 육아에 전념하고 있었다. 청하니... 마침 부모님이 꼭 자신을 위해 쓰라고 통장을 주셨다면서 시간제 베이비시터를 구하고, 택시로 합창연습시간을 맞췄다 (나는 자전거). 이 양반 때문에 고색창연한 케임브리지의 여러 채플에서의 공연은 그나마 소리를 낼 수 있었으나..... 그후 내 입에서 [콩나물은 자신있어] 하는 말이 완전히 사라졌다.
나자신을 위한 Souvenir로 이 모든 공연의 녹화를 떠놓았다. 비디오기사를 청하여 절대 라이트 비춰가며 촬영하지 말기, 나를 찍고 있음을 알리지 않기를 약속하고 찍어온 비디오들은 나의 귀한 보물들인데....특히 Trinity Hall College 음악반의 천재작곡가요 Organist인 미청년지휘자를 화면에서 볼 때면 케임브리지의 생활이 더욱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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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순애선배님의 음악사랑은 파란만장하군요( 이 단어가 적합한가 모르겠지만)
자신의 전공이 아닌 것에 대한 사랑
이과 전공자의 예술사랑
이 모두 선배님의 사고와 감성을 풍성하게 하는 요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란디 요즘 통 IICC에 안 보이십니다요
?유순애, 난 모범수업했던것 생각안나네.???? 난 빠졌나?
박준교선생님하고 "라쿰파르시타" 연주 안했나?
난 제일 작은 아코디언으로 연주했는데 하고나면 무거워서
어깨가 뻐근했다. 그리고 정리할 때 무지 무거웠어.
난 조회설때, 또 방송국에서 나와 인일 소개할때,졸업식때 그때
소개가 된것같고 난 고2때 화성학을 좀 배웠는데
그때 완전 주눅이 들었다. 물리, 해법수학보다 더 난해하더라.ㅋㅋ
?정말 윤학원 선생님의 발성지도법은 아무나 따라할 수 없을것 같애.
그리고 너무 여린듯하시며 잘 생기셨고 라디오에서 나오시던 음성 ,,,,넘 멋있으셨어.
너무 정확하시고 정이가고 최선을 다하셔서, 그 시간대를 기다리곤 했단다.
저 위 8기 금현숙후배의 목소리가 제일 고음이었던것 같애.
음성이 정말 맑고 청아하고 지금도 생각이 나네. 아마 쏠로도 했지.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 아주 예뻤어. 나는 앨토였지.
참 너무나도 귀중하고 소중한 추억을 갖고있다는 것이 행복하다.
그리구 영국 군함인지 미국군함인지 그 안이 운동장처럼 넓어서 놀라웠지.
배안에서 차가 다녔었던 것 같애.? 근데 12부 합창이 있어? 대단하네.
순애야, 계속적으로 올려주고 잘 읽고 있어. 옛날이 그립구나. 고마워.
선배님, 저도 초대를 받고싶습니다. 주제넘게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자기최면에 빠져사는걸요~ 부탁드립니다.(_ _)
010-9889-3080입니다. 내일 선배님께 따로 문자를 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이 가을이 가기전에 낭만의 장소에서 제 자신과 만나는 귀한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축하드립니다.!!!
세번째 이야기 (인일여고 교가)
총동피 모교소식 란에 들어가면 맨 윗줄 공지사항 란에 조경래 작사, 박준교 작곡의 우리 인일의 교가가 있다 (http://inil.or.kr/zbxe/?document_srl=934378).
(1) (2)
발해물에 번쩍이는 드높은 전당 교정에 그늘지는 해묵은 수양
빛난 역사 지어내는 우리 학교일세 연한 듯 무거움은 정숙의 표상일세
진리의 깃발 아래 거센 풍랑 박차고 진리에 깃들이는 수양의 벗들아
굳세게 나아가자 우리는 이 땅의 딸 즐겁게 손잡고 미덕을 쌓으세
아~ 맑은 창파는 이어이어 푸르러 아~ 저 나무는 길이길이 무성해
성스런 이 학원 영원토록 빛내리 귀하다 그 이름 인일여자고등학교
신혼 때 이 교가를 불렀더니, 서방님은, 무슨 여학교 교가 가사가 그토록 대단하냐!고 놀라던데, 나이들어 불러 볼수록 보통
가사가 아니다. 엄청난 깊이와 의미가 있다! (2절 가사는 내가 아는 말로 좀 바꿔 적음 양해 바랍니다. 부를 때는 원전대로 해야죠!)
작사작곡하신 어른들의 인일 사랑, 그리고 여성교육에 대한 깊은 이해...를 느낄 수 있다.
내가 아는 교가를 몇 개 적어서 비교해 보면 교가마다 그 무게가 얼마나 다른지 알 수 있다.
(제물포 고교: 길영희 작사, 나운영 작곡)
(1) (2)
여기는 희망의 빛 제물포고교 여기는 사랑의 동산 제물포고교
새 나라 험한 길에 바칠 정성은 같은 맘 같은 뜻의 한 덩이 불길
아침 길 저녁 길에 더욱 새롭다 피고피고 또 피어 만고에 곱다
아~ 네가 참 이 나라의 학도로구나. 아~ 네가 참 이 나라의 학도로구나
(서울대학교: 이병기 작사, 현제명 작곡) 서울대 경우는 교가의 부족점을 동창회가를 만들어 보완하고 있다.
가슴마다 성스러운 희망을 품고 이 세상에 사는 진리 찾는 이 길을
씩씩하게 나아가는 젊은 오뉘들 이 나라와 이 겨레의 크나큰 보람
뛰어나는 인재들이 다 모여들어 더욱더욱 융성하는 서울대학교
(배재대학교 학당가: 아펜젤러 작사 작곡) 체육대회 응원가 풍으로, 배재교수합창단 단장인 유교수가 정년 전에 대학만의 교가를
지어보려고 고심중임
우리 배재학당 배재학당 노래합시다. 노래하고 노래하고 다시 합시다
우리 배재학당 배재학당 노래합시다. 영원무궁하도록. 라라라라 시스뿜바 배재학당 시스뿜바!
인일여고 교가에는 민족의 유구한 역사와 새로운 역사를 창출하여 이어감, 진리, 정숙, 성스러움, 희망, 우정 등
우리나라 여성들의 모든 미덕과 또한 역경을 딛고 이겨내는 힘찬 저력이 새겨져 있다! 이 교가를 부르고 배출되는 사람 중에는
훌륭한 위대한 학자도, 정치가도, 교육자도 사업가도, 또 위대한 어머니도 있을 것이라고 부를 때마다 믿어 의심치 않는다.
김에 육사 교가도 살펴보았다 http://blog.daum.net/ku0214/15691572
후렴 부위를 빼면 인일 의 교가 가사의 무게와 거의 맞먹는것 같다. (작사는 공중인, 작곡은 여류작곡가 김순애 님이시라 함)
유순애후배에게 대단한 음악역사가 있었네....
정말 감격이다.
그런 귀한 지휘자를 두고 내가 합창을 지휘했으니 참 부끄럽네.......
참 대단한 후배라는걸 글을 통해 알개되었어.
양지의 독창회에 정말 가보고 싶은데.......
그 날의 연주회를 좀 동영상으로 올려줄 수는 없을까?
부탁해요~~~
13. 송미섭
저도 "노래를 못하지 않습니다." 에
얼마나 공감을 했는지요...
중학교 때 음악선생님께서
처음 곡을 배울 때면
음악책의 악보를 보고 선창을
정확한 음과 박자를 내는 제게 시키셨습니다.
그리고 합창단으로도 끌어들여 알토를 시키셨죠..
저는 제가 노래를 잘하는 줄 알았습니다.
커가면서 변성기 때문인지
제가 제 목소리를 몰라서였는지
제 목소리는 허스키한 목소리였음을 깨달았고
음폭이 좁았음을 깨달았고
점점 자신감을 잃어갔습니다.
어떤 친구는
허스키 보이스 가수이름을 대며
너도 그쪽으로 해보라는 소리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노래를 못하는 사람으로 되어버렸습니다.
노래를 자......알........ 부르고 싶습니다.
목청 터지게 소리지르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노래를 그렇게 해본적이 없습니다.
언젠가는 한번
발성이라는 것도 배워 속시원하게
노래를 불러보렵니다.
내친 김에.....목소리 노화를 방지 하는 법에 대해 먼저 글을 올려볼까 합니다.
네번째 이야기 (성대, 목소리를 젊게 유지하는 법)
나이가 들면 [벌너 현상]이라고(이태리 말?)..... 목소리가 고무줄처럼 출렁거리고, 영- 입벌리기도 어렵게 된다.
이런 현상은 교회에 가서 노인들 사이에 앉아 찬송을 들으면 알 수 있다. 그리고 노인 남자들도 목소리가 골골 거리면서 가래가
끓는가.... 할 정도로 늙은이의 목소리, 젊은이 혹은 어린이의 목소리는 확연히 다르다. 그러나 연습과 관리, 훈련을 지속적으로 하면
어느 정도는 이와같은 목소리 노화 현상을 극복할 수 있다고 한다. (아래는 우선,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양지의 이야기를 실었고 뒤에
유교수의 의견을 실었습니다. )
(1) 양지의 이야기: 우선 성대를 혹사시키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의 성대는 우리 몸안에 있는 의지대로 움직일수 없는 근육입니다만, 상당한 시간과 노력에 의해서 얼마만큼은 의지대로 움직이게
할수 있는 아주 섬세하고 예민하고 까탈스런 기관입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매운 것 먹지마!!) (잠을 잘 잔다~!) (무리한 다이어트 노~!) (너무 말 많이 하지마!) 등등 많은 규칙들이 있지만,
제 생각에는 징크스는 절대적으로 심리적인 요인이 큰 만큼 제 자신을 컨트롤 하는데 있어서는 그러한 터부를 만들지 않도록 노력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열심히 운동하고 매운 음식도 잘 먹고 우유도 잘 마시고 수다도 떨고 하지만....힘들다고 느껴져도 노래하는 데에는 큰
지장이 없다고 스스로 최면을 거는 스타일입니다. 프로니까... 아무래도 상황에 더 휘둘려선 안되겠다고 스스로 여기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성악전공자들의 관리법을 보면,
-맵고 자극적인 음식을 피한다 (=제가 알기로 성대는 기도부분에 있어 사실 먹는 음식과의 관계를 놓기엔 논리가 부족해보입니
다만 음식은 구강과 식도 그리고 식도 주변의 목근육들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죠. 노래할 때 목 주변의 근육들 역시 성대 이상으로
공간을 만들고 진동을 증폭시키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기 때문에 이러한 주의가 생겨나지 않았나 합니다)
-충분한 수면과 휴식(=꼭 필요하지만 너무 치중하다보면 생활의 리듬을 완전히 상실할 수 있어서 반드시 운동을 겸해야 합니다.
잠을 자는 동안 피부도 몸의 기관들도 모두 제 싸이클로 돌아가지요.
사실 성대는 약 2cm정도 이므로 그 부분의 특별한 care를 위와 같이 하면 과영양 상태가 되기도 합니다. 누가 좋은 care法을 발명
해줬음 좋겠습니다. 성대만 기름지고 건강한 관리를 할 수 있는 약이든 보조식품이든...목이 상하면 이를 회복시키는데 적게는
3개월 길게는 영원히 건강을 상실할 수도 있습니다. 작은 기관이므로 그만큼 쉽게 손상될 수 있고 주름 피기나 기미잡티 제거처럼
집중적인 관리가 힘들기 때문에 사용에 각별히 주의해야 합니다.
저는 연주 후에 한 2~3일 정도를 일없이 쉽니다. 집에서 나가지도 않고요, 하루에 2시간 정도 걷기 자전거 타기 등 쉬운 운동을 하고... 대부분 게으르게 잠을 자죠. 한 연주에 집중되는 에너지와 흥분도를 이렇게 하여 가라 앉히고 ‘예민하고 섬세한 조그만 성대’의 피로를 풀어줍니다.
무리한 다이어트는 금물: 몸에서 지방이 빠져나가서 쉽게 주름이 생기기도하고 관절이 나빠지기도 하죠. 지방이 줄어들 때 성대도
목 주변 근육도 영향을 받을 것입니다. 게다가 헉헉거리면서 하게되는 운동은 치명적인 상처를 부여하겠고 있는 힘껏 긴장을 하는 것
도 목에 힘이 잔뜩 들어가는 일이니 좋지않죠.
말 많이 하지말 것 (성대는 소모되는 기관이고 회복도 상당히 더딥니다. 목이 건조하다, 어쩐지 목주변이 뻣뻣해지면서 피곤하다
싶은 순간 따듯한 물을 마시고, 즉 수분을 충분히 투여하고 바로 말을 좀 줄여야 할 것입니다. 두개의 얇고 작은 근육이 끊임없는
진동을 통해 소리를 만들어내죠
무엇보다도 거칠게 마찰시켜선 안돼요! 혹사시키면 안되고 피곤하다 싶으면 얼른 쉬어주는게~!
마지막으로 목도리 등으로 늘 따듯하게 해주세요. 피아니스트들이 늘 장갑을 끼고 권투선수들이 가운을 입는 것 투수들이 핫팩을
늘 손에 쥐고 있는 것, 모두 다 같은 원리랍니다. (이상, 양지였습니다)
그런데....유교수가 보기에 양지는 professional이기 때문에, 여기 적지 않은 비법이 더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소금물로 인후부를 늘 세척하는 등.... 제가 잠간 눈치챈 일들입니다. 양지의 방법에 더하여 유교수는 심천의학에 기초한
방법을 소개드리고자 합니다.
(2) 유교수의 이야기: 성대와 그 주변의 조직도 예외없이 노폐물이 쌓이고 나이먹음에 따라 신장기능 저하로 요산이 쌓이게 되는데,
이는 목 주변에 검버섯 혹은 검정색 물사마귀 등이 늘어나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런데 심천사혈요법에 의해 ①감기혈 사혈만
으로도 목소리 회춘에 훌륭한 효과를 얻는데, 사혈 후 놀라울 정도로 목소리가 맑아지고 올라가지 않던 고음이 편히 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즉 이 심천사혈요법은 감기걸렸을 때나 나이들었을 때의 성대보호 콘텐츠임) 물론, 사혈 후 목주변에 은하수 처럼 생기던
물사마귀 까만점 등도 다 함께 사라짐.http://inil.or.kr/zbxe/?document_srl=1878609
감기가 심할 때 목이 찢어질 듯한 아픔을 누구나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백혈구가 싸움에서 지고 조직에 요산이 들끓게 되면 이토록
목이 찢어지게 아프구나 싶다. 이렇게 산성혈질이 되고 다시 나쁜 것들이 더해져 칼륨혈질이 되면 갑상선 용종이 생기는 등 목 부위의
건강환경이 나빠지는 것. (참고: 감기혈은 쇄골사이 즉 목 아랫부분 중앙, 손가락을 눌러 깊이 쑤욱 들어가는 곳). (오늘22일 아침
신문과 TV 뉴스에는 황제병이라 불리우는 통풍에 대한 설명이 있었는데, 관절의 연골에 쌓인 요산이 결정화되어 관절을 찌른다는 얘기
.........얼마나 아픈지는 상상불허라는 환자들의 얘기고 보니, 나이듦과 더불어 신장기능이 저하되고 따라서 조직에 남아있는 요산....
참 무서워요. 하여간 일단 굳기름, 또 방부제, 또 항생제 및 농약잔류....이런거는 절대 먹지 않도록 주의에 주의를 거듭해야 겠습니다.
물론, 맞춤형 제약의 귀재 심천선생님은 요산 녹이는 약도....칼륨혈질 녹이는 약도 다 만들어 저희들에게 처방전을 가르치십니다.)
즉, 요산과 어혈을 제거하는 부황사혈을 감기혈자리에 하므로서 감기만 낫는 것이 아니라 젊은 목소리를 보존에도 효과가 크다는 것!
이때 ②침샘혈 사혈을 병행하거나 ③기관지혈(=감기혈 밑 5cm 지점) 사혈을 병행하면 가래도 완전 없어지고 목소리는 회춘하는
경험을 나 자신이 하였다. 나아가, 규칙적인 호흡 훈련(횡경막 운동)은 발성의 젊음유지에 지름길이니, 매일매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에 앉아서, 혹은 이부자리에 누운 채로 배 위에 묵직한 책을 올리고서는 짧게 들이마시고 오래 내뱉는
훈련하는 등, 호흡훈련은 장수에도 첩경임을 잊지 마실 일이다. (이상 7유순애 작성)
?순애야, 우리 호흡훈련 많이 했지?
윤학원 선생님께서 특히 많이 지도해 주셨지.
지금도 생각이 나네. 세밀히 글을 올려주어 옛생각이
다시금 새로워. 계속 수고 하길,,,,,,
정수야!!!참말로 애쓴다.
딸을 저렇게나 훌륭하게 키웠으니 그동안의 수고가 얼마나 많았을꼬!!!알고도 남아요.
양지의 노랠
지난번 열린음악회장에서 직접 들어봐서 익히 알고있지.
아직 티켓 못 받은 상태이나 모자란 것은 체임버홀 앞에서 받을게.
우리 그림 동호회원들이랑 공방 식구들,
성당 봉사자들한테 엄청 자랑 늘어났쥐~~~~
그 날 만나자~~~~
이정수샘
우리 3기가 6명(외국에서 오는 친구들도 있음))이 가는데....
양지 큰 아빠께서 우리도 부족하고,
최샘에게 보낸 것도 부족하니
이정수샘에게 받아 보라는데....가능할까?
그런 귀한 음악회는 공짜표로 가는것보다 돈을 내고
관람하는것이 좋지요......
이정수후배가 참 마음이 흐믓고 감사하겠다.....
양지가 고리도 곱고 예즈개 잘 자라고
노래도 그렇게 잘 부르니
이젠 정말 프리마돈나의 테가 나네그려....
정말 수고 많이했어.
나도 그곳에 있다면 꽃다발이라도 가지고 가서 안겨주고싶어요...
정말 축하해요....
정수야, 벌써 초대권이 매진되었구나.
그저 한장이라도 빨리 주고싶은 네 사랑의 마음이 아름답다.
엄마로써, 친구로써, 동문으로써,,,,,,고마워.
성원해주시는 동문님들의 열의에 박수를 보냅니다.
정수도 차한잔마시며 좀 쉬려므나.
순애야, 세번째 이야기에서,,,,,
역시 우리 인일여고의 교가가 으뜸인것 같네.
옆학교도 있고 제일 수준있는 학교도 있다마는,,,,
난 그래도 역시 우리 학교 교가가 으뜸이다!!!
순애야, 영국 케임브리지에 가서 12부 합창을 해 보았구나.
그리고 슈벨트의 미사곡 악보를 받고 주눅이 들었다고?
그 이동도법이 그렇게 어려웠어? 네가 힘들었다니,,,,,,
참으로 처음 듣는 단어가 많구나. 영국에서 좋은 시간을 갖었었구나.
응, 음악활동도 그렇고..... 어머니를 초청하여 한달 그림그리시고 대영박물관 등 전람회 가시고 (이후 한 십년 어머니의 유럽여행 시대)
하면서 생활했기에.....각별한 추억이 있다오. 서방님이 당시 조수미 독창회에 어머니를 초청, 세종문화회관에서 음악회
참여하고 청후회 후에 차마시면서 <왕복비행기표와 파운드>를 드렸던 로맨틱한 사연.... (우리 세식구는 당시 영국에)
그런데 영국사람들은 모두 <정원사요, 합창단원>이라고 난 생각해.
미국사람은? 글쎄......국민 모두가 이건 한다, 개념에서 미국인은 뭔지 모르겠고 (엔터테이너? 카우보이?)
한국인은 <등산가>가 아닐까, 매주말 산에들 올라가니까....
어머니는 케임브리지에 오셔서도 온데 사방 그림을 그리셨는데 (www.ilovegrandmother.com 그림나라>할머니 삽화감상>영국기행삽화 참고) 어디건 앉아서 그림을 그리시면 영국사람들이 뺑 둘러 100명 정도는 이 동양할머니가 수채화 그리는 것을 구경해요. 그러다가 하루는 식물학과 건물을 그리셨는데.....이 건물은 동양에 자라는 은행나무를 가져다가 심고는 앞뒤로 벋는 가지는 자르고, 좌우 위로 자라는 가지는 ㄷ자못을 벽에 박아, 마치 담쟁이처럼 자라게 해놓았죠. (영국의 이노베이션은 항상 이토록 뜻밖!)
그런데 학과장님이 점심 먹는 곳에서 그러시더라고요, 너네 엄마시지? 네....했더니 그림을 학과에 기증하라는 말씀.
케임브리지대학 식물학과에 걸려있는 어머니 그림보러 언제 또 그곳에 가보고자.... 합니다.
다섯번째 이야기 (음악과 함께 만난 사랑하는 사람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1/23/2012112301629.html
오늘 아침 조선일보에는 등단40년 정호승 시인과의 대담이 실려있다.
"중학교 2학년 때 국어 선생님이 시를 한 편씩 써오라는 숙제를 냈어요. 그때 시라는 걸 처음 써봤지요. 김영랑의 시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를 배울 때였을 거예요. 하필 저를 지목해 숙제로 써온 시를 읽어보라고 하십니다. 운명의 순간이었죠. 시를 낭송했더니
까까머리를 쓰다듬어주시면서 '호승이 너는 열심히 노력하면 좋은 시인이 되겠다' 하셨지요.....
나에게도 이와 비슷한 추억이 있다.
우리 때 고3엔 음악수업은 없으나 성적은 내야 했는데, 유정희 선생님께서는 학급마다 시간을 정해 순방하시고 학생들은 한사람씩
교탁에 올라가 자유선곡의 노래를 불렀다. 워낙 시간이 모자라니 노래를 길게 할 수는 없었다. 음악이 없던 고3 교실에 선생님이 들어
오시면 다들 소리질러 환영하였고, 짧은 소절 노래를 불렀다. 나는 슈벨트의 세레나데를 불렀다.
『명랑한 저 달빛 아래 들리는 소리 / 무슨 비밀 여기 있어 소근 거리나 / 만날 언약 맺은 우리, 달밝은 오늘, 달밝은 오늘/ 오라는가 나의
사랑 들리는 곳에 / 타는 듯한 나의 생각 기다리는 너, 잊을 수 없구나』여기까지 불렀을 때 선생님께서는, “그만! 끝까지 못들으니 아쉽다“
하셨는데, 이 말씀이 선생님께서 내 노래에 대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평가를 말씀으로 표현해 주신 경우였다.
정호승 시인의 마음에 남아있는 국어선생님 말씀처럼, 유정희 선생님의 이 말씀...뉘앙스, 그때의 선생님 표정 등은 내 마음에 이토록 오래
여운을 남기고 있다. 영화라면 이 말씀을 회상하는 순간부터 주변 모든 것이 사라지고 【음악】속으로 몰입되는 그런 모티브라 할까......
잘도 못부르는 노래를 마음 속으로 꽉 잡고 이날까지 오게만든 그 원동력이라할까....정호승 시인의 운명의 순간에 비교할만한 나의
‘작은 운명의 순간’이었다.
유정희 선생님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이화여고를 진학하시고자 고향 진남포를 떠나 서울에 오셨을 때 마침 그때 삼팔선이 막혀
이남에서는 고아처럼 홀로 지내게 되셨다. 그런데 선생님의 큰언니께서 우리 어머니와 경성사범 동창이신 까닭에 선생님은 어머니를
따르시고 반가워 하시곤 하였다. 내가 배재에 부임한 1985년, 내 연구실로 전공이 같은 충남대 대학원생이 찾아왔는데 전공관련 얘기를
나누던 중, 귀공자 같은 이 청년이 자기도 고향이 인천이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그를 얼싸안고 울고 있었다. ‘너 유정희 선생님 아들이지?
나 인일여고 출신이야’.......하면서. 그냥 아무 설명도 없이 모든 사실이 전광석화와 같이 느껴졌던 것이다!
유정희 선생님은 우리 인일인들의 음악사랑, 그 중심에 계신 분이시다.
위의 아드님이 일본 유학 중 열애한 부인(선생님의 며느님)도 성악하는 사람이었다니 음악은 이렇게 인연을 만들어 주기도 하고
영원히 흠모하는 사제지간의 든든한 연결고리가 되어주기도 한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함께 중창 혹은 합창을 했던 사람들,
음악회에 초대해 주었던 사람들... 녹음이나 사진을 보관하고 있다고 주던 사람들...모두 마음에 따듯하게 기억된다. 나는 요즘 내마노
(=내 마음의 노래=우리 가곡부르기)의 대전충청지부에서, 또 인일 동문회 봄날의 작은 음악회 무대에도 오르며(!) 비전문가 음악 애호가
로서 기량을 닦아가고 있다. 서울대OB합창단, 또 배재교수합창단에 참여하고 있으며, 정년 후 좀더 시간이 자유로워지면 실버마드리갈
합창단에도 복귀할 예정이다. 나이들어 가면서도 이렇게 음악의 여신에 더더욱 봉사하련다.
?순애야, 다섯번째 이야기부터는 유정희선생님 이야기도 나오네.그 시절이 그립다.
우리 인일여고 학생들이 훌륭하신 선생님께 참으로 많은 것을 배웠는데,,,,,,,
어쩜 고 3때 있었던 일을 고렇게 기억하고 있니? 정말 대단하다.
어머님이 그림그리고 계셨을때 100명이 들여다보고 있었다니,,,
이 또한 대단하다. 순애는 바쁜 와중에도 합창의 끈을 놓지않고 있구나야.
양지 덕에 순애의 10살때부터 지금까지 음악과의 끊이지 않는 추억과
활약상을 즐겁게 보았어. 남은 이야기는 방학과 동시에 어떨까???
양지의 학력과, 수상경력과, 연주경력을 보았더니 너무 훌륭하다.
정수야, 여기 오기까지 남편과 얼마나 애를 썼겠니?
또한 순애같이 열렬한 추진위원회 위원장이 옆에 있고,,,
건강하고 완벽한 콜로라츄라 소프라노로 성공하여 왔으니,,,,,,
27일이 가까와 지고 있네. 많은 분들이 얼마나들 성원하고 계신지,,,
위의 댓글들을 보면 그 마음들이 여기저기 표현되어 있구나.
나는 이 저녁 미사 내내 양지생각에 감사기도가 나오더라.
또한 양지의 수고함도 어떻게 말로 표현할수 있겠니? 그저 하느님께 감사드릴 뿐이다.
다시 읽어보니......그대는 내가 접은 이야기들을 방학에라도 작성, 올려주기를 원하는구만요!
넘 얘기 듣기 좀 지치지 않아요? ㅎㅎ
저는 좋아요, 하라면 합니다.
이번 양지 귀국독창회로 알게 된 것은...... 정말
리사이틀 포스터 한장에 얼마나 많은 엄청난 노력이 대변되는가... 난 그간 완전히 몰랐다는 점.
양지 부모님 노력, 정성
양지 본인과 서방님, 시가 어른들의 노력, 너그러운 이해심과 격려.....(전남대 명예교수이신 시부님이 진정한 후원회장님이심)
그 주변인들의 사랑과 노력.............우리 같은 理科 사람들은 상상을 못해! 그중에도 양지 모친, 우리 인일7 이정수쌤의
원대한 계획 (자녀들 어린 시절부터 계속되어온....기도와 더불어)과 세밀한 추진력 등, 이거 정말 우리7기 아무도 흉내도 못내 ㅎㅎ
(고3 때 음악시험 보던걸 어찌 기억하냐고?...하면 안되죠. 난 그때 유정희 선생님의 흡족하고도 아쉬워 하시는 표정, 말투...
그대로 내 마음에 새겨있다니까)
<양지>는 저의 동기(=인일7) 이정수 쌤의 맏이인데요....
엄마는 학창시절 테니스 선수로 우월유전자를 뽐냈죠~ 지금은 해남 땅끝 초교에 근무하는 쌤이랍니다.ㅎㅎ
그런데 양지는 병명이.... 장금이 이영애에요. 사진보고 쉬- 동의 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