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추석날 보름달이 휘영청 환하다.
6살 조카아이가 보름달을 가리키며 저 달을 보고 자기가 소원을 방금 빌었다한다.
"무슨 소원인데?"
"그건 비밀이라 말 할 수 없어. 그런데 고모도 소원을 빌었어?"
그 질문에 나 자신도 놀랐다.
왜냐하면 최근에 보름달을 보고 소원을 빈 적이 없으니까.
그렇지만 아이에게 그렇게 이야기 할 수는 없으니 당연히 고모도 소원을 말했지 했더니 대뜸 "뭐라고 빌었어?" 한다.
"네가 비밀이니까 고모도 당연히 비밀이지만 네가 살짝 이야기하면 고모도 말해 줄 수 있어"
그 말에 호기심이 생겼는지 빙긋이 웃으며
"예원이는 유치원에서 친구들과 사이좋게 놀게 해 달라고 했고 또 한 가지는 친구들보다 밥을 빨리 먹을 수 있게 해 달라고 했지."
웃음이 피식 나왔다.
밥을 늦게 먹는 것이 얼마나 스트레스였으면 저렇게 이야기 할까?
그리고 서둘러 재촉을 한다.
고모는 달을 보고 무엇을 빌었냐고.
어떤 이야기를 해야 예원이가 제일 좋아할까 해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정말은 달님을 보고 고모의 미운 얼굴이 예원이처럼 예쁜 얼굴이 되게 해 달라고 빌었어."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거울을 봐. 만약에 예원이 얼굴이 고모 얼굴로 바뀌어 있을지도 모르니까. 알았지?" 했더니
"아마 그런 일은 없을거야. 달님은 내 편이니까....." 하며 깔깔 웃는다.
우리의 대화를 듣고있던 예원이 아빠가 한마디 한다.
누나가 그러니까 예원이가 자기가 제일 예쁜 줄 알고 벌써부터 거울 앞에 붙어 앉아 있어 걱정이라고.;
추석.....
어릴 적엔 무조건 설레고 기다려지던 한가위 명절이었는데
결혼과 더불어 큰 무게로 다가오면서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음식을 정갈히 장만하고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하는 일에
흩어진 가족이 오랜만에 함께 하는 것은
힘든 세상살이에 그래도 올 수 있는 고향이 있고 나를 믿어주는 가족이 있다는 뿌리에 대한 회귀현상이 아닐까?
예쁘지 않아도 예쁘다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있고
지금은 비록 힘들어도 너는 해 낼 수 있다고 믿어주는 사람들이 있고
내가 울고싶을 때 실컷 울라고 가슴을 내어주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서
그만큼의 댓가를 치르고도 조상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명절이 있는 것은 아닐까?
가정은 모든 것의 근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급속도로 번져가는 사회문제로 가정이 해체되어 가는 모습을 보면서 새삼 명절의 중요성이 깨달아졌다면 아이러니일까?
남편의 빈자리가 커 보이는 날
삶에 지쳐서 달 한번 제대로 쳐다 볼 낭만도 꿈도 없어져 버렸지만, 이 날 하루만은 아이들에게 강요를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명절엔 집으로 돌아와 함께 있자고.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하고
친정으로 가서 하루를 끝맺는다.
7녀 1남이라 번다한 친정은 40여명이 시끌시끌하다.
아버지는 여전히 누워 계시고 엄마는 진두지휘를 하는 가운데
한 방에서는 고스톱이, 한 방에서는 술판이, 다른 한 방은 자느라 정신이 없고, 당구장에 PC방에 제각각이지만 웃음소리가 끊이지를 않는다.
2살 부터 85세까지 좁은 집안에서 복딱이는 명절날
누구는 죽고 누구는 결혼을 앞두고 있고 누구는 공부때문에 누구는 일때문에 멀리 가 있지만
씨줄 날줄이 얽히고 설켜 세상이 돌아가듯 가정이라는 울타리 속에 세상이 돌고 도는 것은 아닐런지.
어린아이는 산너머 무지개 꿈을 꾸고 어른들은 꿈을 잃어가고
그렇듯 달도 차고 기운다.
산학이가 모처럼 글을 올려 반갑다.
건강이 웬만해졌다는 증거이니 더 좋구나
나도 어제 내 블로그에 우리집 추석이야기란 제목으로 새벽 한시 반에
간단하게 일기삼아 글을 올렸었네.
오랜만에 자정 가까운 시간에 보름달도 올려다보면서 사진도 찍고 감회가 새롭더라
우리집은 큰집 종가집인데 워낙 시집이 적적한 편이라서
작은 시아버님 자손들의 가솔들하고 우리집 식구들만 모이곤해서 산학이네 친정처럼
시끌법석 사람 냄새가 나는 그런 구경은 할 수가 없지
어제 마침 써 놓은 글이니 댓글삼아 올려보마.
(2012년 우리집 추석이야기)
?2012년 한가위 추석명절도 자정을 넘어 지나가고 있읍니다.
추석 성묘 다니러 온 작은집 식구들이 다녀가고 우리 산이네도 늦은밤 지들 집으로 가고나니
집안이 썰물이 빠져나간듯 허전하고 고요합니다.
마당의 밝은빛도 그제서야 내다보이고 창문으로 보름달이 중천에 둥싯 떠서
환히 마당을 비추어주는 모습에
두 노인네가 안마당에 나가 밝은달을 올려다보면서 마당 한바퀴를 돌고 들어왔지요.
올 한해도 무사히 잘 넘기고 집안내 평안하게 해주십사 하는 바램을 달님에게 실어보내고..............
이런 추석명절도 또는 설 명절과 더불어 우리세대에나 유지가 되지싶기도 합니다.
명절때가 돌아오면 으례히 TV방송에서 공공연하게
명절증후군이니 명절스트레스니 하면서 여성을 위한 생각을 해주는양
부정적인 면을 떠들어대곤하니까요.
나도 젊은시절 일은 서투르고 아이들은 어려서 이중삼중으로 힘든시기라
한때는 명절이면 힘에 부치곤 했었답니다.
지나고보니 그래도 그시절 온식구가 둘러앉아 송편을 빚고 은은한 솔잎향기를 내면서
송편이 쪄지면 아이들은 제 입맛에따라
송편소를 찾아 먹느라 한입 베어먹고는 콩이 싫은아이는 슬쩍 내려놓고 다른 송편을 다시 베어먹기도 했지요
달콤한 밤소를 찾고 고소한 깨소을 찾아먹느라 말입니다.
추석빔을 차려입고 어른들손에 이끌려 성묘도 다니면서 친척집도 찾아가서 대접도 받아보고
하면서 나름대로 추억거리가 생기게 마련이였지요.
그저 겨우 한두번 명절때나 잠시 만나보는 친인척간에 만남도
번거롭고 힘들다는 이유로 사라지고나면 그 아래세대의 존재는 길에서 우연하게 만나도
스쳐지나가버리며 몰라보는 그런 세상이 오지않을가 싶기도 합니다.
우리집 안마당 고로쇠나무 사이로 올려다본 추석날 보름달의 모습입니다.
김은희 선배님!
그동안 걱정을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이제는 걱정을 놓아버려도 될 것 같은 느낌에 한결 마음이 개운합니다.
추석은 역시 힘드셨지요?
그러나 워낙 큰살림에 내공이 쌓였으니 "이 정도야..."하시지 않았을까 미루어 짐작해봅니다.
올려주신 사진을 보니
같은 달이건만
빌딩숲 사이로 떠 있는 도시의 달과
나무 사이로 떠있는 시골의 달이 엄청 달라 보입니다.
정감도 물론 느낌도 제각각이지만
그 달을 향해 소원을 비는 아름다운 마음은 하나가 되겠지요?
선배님께서 달님을 향해 소원하신 대로 이루어지는 한 해가 되길를 저도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산학아,
네글, 또 선배님 글을 읽으니까 옛날 생각이 난다.
실은 한국에서 이렇게 지내는 추석이 정말 부럽다.
일주일 전에 언니가 전화 해서 이제 곧 추석이야 하길래 언제냐고 물으니까
달력에 보면 빨갛게 써 있어 하시더라.
다행히 한국달력이 있어 보니까 추석이 9월 30일.....
나도 동생에게 메일 보내고 전화 하고, 성묘 준비하는 올케에게 인사 하고....
내일 여동생과 같이 밥이라도 먹을까 하고 된장찌게랑 생선을 준비 했단다.
이곳 음악대학에 한국 장고 workshop 이 있기에 작은 딸 이랑 여동생이랑 셋이서 식사후 가기로 했어.
추석맞이 장고 웤숍?
오랫만에 너의 글을 읽고 반가웠어!
보고싶은 희자야!
잘 있지?
가장 아름다운 스위스에서
한서문화교류를 위해 왕성한 활동을 하는 등 쉴 틈도 없겠지만
이렇게 명절이라면 고향 생각에 쓸쓸한 마음이 드는 것은 숨길 수가 없구나.
그래도 여동생과 딸이 곁에 있으니 다행이다.
세계은행에 다니는 야무지고 예쁜 여동생도 잘 있지?
이곳에 있으면서 할 염두도 못 내는 장고연습을 스위스에서 하고 있다니
역시 나가면 애국자가 되는가 보네.
이제 추석이 지났으니
아름다운 가을이 물들어가며 깊어간다.
낙엽 밟는 소리가 좋을 때야.
너랑 같이 손잡고 낙엽지는 소리를 들으며 한없이 걷고 싶다.
산학 후배와 은희 선배님의 추석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어버지가 막내셔서 큰집에 제사 지내러 가면 친척들이 많이 와 계시고
광주리에 수북이 담긴 전과 떡... 저는 한 두개 집어 먹고는, 질려서
지금까지도 떡을 별 좋아하지 않게 되었어요.
시집도 기독교 집안이라 제사가 없다 보니, '
가족도 단출한데다, 늘 썰렁했고
미국에서 살다 보니, 더욱 명절과는 상관이 없이 살게 되어
이제는 점점 잊혀지는 추석 명절이 되었어요.
두 분의 글을 읽으며, 추석 명절을 고요히 떠 올려보게 되었습니다.
이수인 선배님!
한 때는 저도 명절이 너무 힘들어
"기독교 집안이면....., 이민을 갔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했습니다.
명절에 해외여행 가는 친구들을 보고는 "전생에 기가막힌 좋은 일을 했나보다" 라며 부러워했습니다.
그러나 다 남의 떡인걸 하면서 하다보니
아무리 힘든 일도 지나가 버리더라고요.
선배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요즈음 말로 전생에 나라를 구하는 복을 지은 사람이라고 하지요.
그래서 지금 편한 삶을 누리는 것이라고요.
그러나
이번에 느낀 점은
젊어서는 아무리 몸이 고달퍼도 추석보름달을 보고 소원을 빌고는 했는데
이제는 그것이 없어졌다는 사실이 가슴이 아픕니다.
꿈도 잃어버린 것 같아서요.
명절 차례지내면서 손주들 조상님께 절하는 모습처럼 귀엽고 사랑스런건
말로 다 표현 못하겠구만~!!!
나도........아주 백년도 넘은 구교집안인 친정에서 자라고 친정 할아버님도 지차이시고
친정 아버님은 아예 외동이셔서 제사도 구경못했지만
시집와서 시댁의 명절의 시끌법석한 모임이 젊은때는 힘이 들어서
이거 큰일이구나 했었네 또 우상숭배니 하고 교육받은 교리가 있어 부정적이였거든
사십년넘게 보아오면서 근본적인 인간의 도리라는것이 우선이 되고보니
이젠 마음 편하네.
부모님 살아생전에 대하듯 ...........그리고 명절이란 이름하에 친인척들 만날 수 있는 기회의 날이라고 생각하게되었지.
생각이나 행동이 최첨단을 향해 가는 우리집 애들도 우리 고유의 명절문화를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생각들이라서 충돌은 없어 다행이지싶어요.
우리손주들 자랑좀 한다면....ㅎㅎㅎ
아파트로 이사가서 엘리베이터 속에서 노인양반들을 뵈면
인사를 공손하게 하면서 " 대곶 대벽리 **번지에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도 사셔요"
하며 자랑한다고 우리 며느리 흐믓해 해요.
사람 사는일에 질서를 배우는 일중에서 옛 풍습이 중요한 몫을 한다는걸 이제서야 나도
조금씩 알아가는듯하지.
다섯살먹은 손주 산이가 저도 차례술 조상님께 올려보고 싶다고 아주 공손하고 조심스럽게 엄마의 도움을 받고
이번 추석엔 참여를 했지요.
김은희 선배님!
"인간의 근본적인 도리"를 지키고 사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닌데
그렇게 사시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생각나름이라고 긍정적으로 사는 일의 어려움을 종종 느끼고 있는데 알면서도 실천을 못 하는 것이 더 큰 죄임을 알고 있지요.
그러나
아이들은 어른의 거울이라고,
보고 배운대로 실천하는 꼬마들의 앙징맞은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조그만 입으로 쫑알쫑알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는요...."라고 말 할 때 어른들의 표정은 어떠했을까요?
술잔을 올리는 산이의 모습도 의젓합니다.
사랑도 받아 본 사람이 줄 줄도 안다고
훗날 사랑스러운 아이들로 성장하겠지요.
단란하고 행복한 선배님의 가정에 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저도 이번 추석엔
꼬마들이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맞추어 말춤을 추는데 기함을 했답니다.
추는데 그치지 않고 같이 추자고 졸라대더니
종내에는 이것은 틀렸다 저것은 아니다 하면서 가르치는데 얼마나 놀랐는지요?
이번 추석엔 싸이 열풍이 집안까지 점령해 버렸습니다.
고혜진 후배님!
오랜만에 이름을 불러봅니다.
잘 지내고 있지요?
후배님의 성격이 워낙 좋아 시댁 어른들께도 얼마나 잘 하고 살고 있을까요?
추석이 되니 ?
예전에 좋아했던 김초혜 시인의 "추석"이 생각납니다.
오늘은 추석입니다.
뜨거운 목소리 남긴 채
홑적삼만 입고 가신 우리 어머니
첫애기 안고 와서 이렇게 웁 니다.
이 들녘은 다 비었습니다.
인생은 한 번 노래하고 꿈꾸는 것이라고
아무것에도 감동되지 않던 마음인데
풋풋한 밤 대추가
가슴을 칩니다.
나날이 창 앞에 오시는 성싶어
빗장을 지치지 않고 보내어도
가슴에 와 맺히는 건
모진 바람뿐입니다. (중략)
나이를 먹으면서 느끼는 것은
인생의 정답이 없다라는 것입니다.
학창시절 읽고 본 책이나 영화를 60이 넘어 읽고 보면 느낌이 전혀 다르듯이 말입니다.
명절도 그렇습니다.
어릴 적엔 좋기만 하던 명절이
결혼 후엔 족쇄가 되었는데
60이 넘으니 아이들이 괜히 떠나고 안 올 것만 같아 쓸쓸한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요?
달도 차면 기운다고....
참으로 기가막힌 정답이네요.
추석은 잘들 지내셨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