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회 | 포토갤러리 | - 게시판담당 : 한선민
이제 곧 추석이다.
일년 중 제일 예쁜 달을 구경할 수 있는 날이다.
주위에 건물이 적은 공원에라도 가서 맑은 하늘에 낯 씻고 나온 말간 달을 바라봐야겠다.
추석에는 시댁에 가서 일만 하던 세월이 생각난다.
어느 해 명절에는 상을 몇번 차렸나 세어보니 다과상 포함해서 하루에 20번 이상 차린 적도 있다.
시댁이 시골인지라 도회지에 나가서 살던 친척들이나 이웃 사람들이 어머니께 인사(세배)하러 올 때마다 상을 봐야했다.
그렇고 그런 음식들, 집집마다 똑같은 음식들이지만 의례 누가 오면 상을 차려 내야했다.
온 사람은 밥 먹었다고 배부르다고 한사코 거절해도 먹든 안 먹든 상을 내가야 했다. 그것이 우리네 정서였다.
참으로 불합리하다고 느끼면서도 음식 대접을 안하면 왠지 정이 없는 것 같아서 찝찝했다.
돌아오는 차에서는 밖에서만 돌고 나를 도와주지 않은 남편과 일 적게 한 동서들에 대한 분노에 가득차서 속을 부글거리면서도 피로에 지쳐서 잠에 곯아 떨어져서 오곤 했다. 몇일 동안 남편에게 제세하면서(공치사?) 몸살을 앓았다.
만약 내가 시어머니라면 어떻게 했을까? 어쩔 수 없이 우리 어머니와 똑같이 하지 않았을까?
다만 몇 십가지 차리던 메뉴 수를 줄이고, 남아서 처치 곤란하던 음식의 양도 줄이고, 만든 음식도 많이 사다 먹었을 것 같다. 그리고 누군가만 희생하지 않게 골고루 일을 분배했을 것 같다.
이제 어머니 돌아가시고 시골 시댁이 없어져서 그런 고생은 안한다.
그렇지만 그립다. 시어머니도 그립고, 들꽃이 피어있는 정겨운 시골집도 생각나고, 조카들과 함께 왁자지껄 시끄럽던 명절 상도 그립고, 마실오셔서 심각하지 않은 사는 얘기를 나누시던 이웃집 할머니들도 그립다.
도시의 명절은 너무 쓸쓸하다. 결혼한 자식이 없기 때문일까?
암이야~~~~~~
추석명절이 정말 코앞에 다가왔구나!
명절 증후군이라는 말이 있듣이 우리들 명절나기는 참 고되었지....
우리 시엄니도 워낙 사람 북적거리는것 좋아하시고 남 대접하는것 좋아하셔서 며느리 고생이 많었다.
어느날 갑자기 우리집에서 시아버님 제사 모시라는 시엄니 분부에 이유도 모르는채 제사모시기 시작해서 우리집은 명절때 친척과
손님대접에 분주했었다.
시어머님 돌아가시고 제사는 제위치 찾아 큰형님 집에서 모시니 손님처럼 참석하여 편한세월도 잠시잠깐
며느리 많은 집에 둘째가 큰형님이 녹내장으로 실명하시는 바람에 맏며느리 노릇 20년가까이했다.
자격도 안되는 사람이 바깥일과 병행하다보니 명절 일주일전부턴 장보기에 허리가 휘어지는것 같았어.
동서들과 큰집 우리집 며늘이 하루 전날와서 후딱 해치우고 명절을 맞이했지만
손님 치닥꺼리 뒷마무리 설거지 정리가 여간벅찬게 아니었지
지금은......
산전 수전 공중전 핵전으로 겁날게 없는 세상살이가 되버려
재작년 엄마 편챦으시다는 핑계로
명절은 각자 집에서 보내라는 내 결정에 모두들 순순히 따라 주었는데
몸은 조금 편한데 어찌 김빠진 맥주 앙꼬없는 찐빵 같은 명절같지 않은 명절을 보낸다.
이를 기회로 우리 며늘은 활인(?)했다.
명절날 아침에 와서 내가 쉬엄쉬엄 만든 음식 차려만 놓으면 된다.
오후엔 친정으로 보내고나면 보통 때보다 더 한적하고 심심한 하루가 된다.
왜냐?
우리엄마 아버지 돌아가시곤 작년 부턴 갈 곳이 없어졌다.
그래서 한가위 명절날 적막강산인 우리집 창 밖에 휘엉청 뜬 보름달이 유난히 외로워 보인다.
.
정말 시대가 핵가족이 되고 간단해 지니
옛날 처럼 정신적인 풍요로움은 없어진것 같아
우리 엄마 지금은 병원에 누워 나의 애간장을 녹이고 계시지만
젊어서 한 떄 종갓집 큰며느리 노릇하느라 고생? 꽤나 하셨지
철없는 나는 그렇게 좋았어 음식마다 그득 그득 하니
제사상 차리느라 없는것 없이 일년에ㅣ가장 신나는 날이었지
우리 엄마 말씀 너는 종갓집 며느리로 안보낸다는 말 입에 달고 사셨어
그 떄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하니 철없는 딸이었어
다락 채반에 북어포 전 서리해 먹던 생각하니 눈물이 난나
명절이 뭔지 작년에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도 엄청나
그저 못해드린것만 생각나
잔소리 라고 듯기 싫었던 목소리도 그리웁고
암이회장 ?
우리딸도 지금은 엄마의 마음을 모르겠지
아!
그래서 있을때 잘해 노래가 나왔나바
그리움을 느낄 수 있는 우리는 행복한 사람들이야
건강히 추석 잘보내게
미선총무 토끼도 보고
선민방장 떡도 잘먹을께
건강하길
그래 맞아. 우리는 모두 같은 세대를 보냈기에 명절날 어려운 시집살이에 공감하는 것 같아.
너네들 얘기 듣다보니 나는 별거 아니었다는 생각이 드네.
얘들아! 참 장하다. 그래서 지금 들 잘 사는가 보다.
노인들이 늘 하시던 말씀 "그래도 그 땐 젊었으니까 이겨냈지"가 맞는 말인 것 같아.
똑같은 상황이 오더라도 지금은 허리, 무릎 아파서 못 해낼 것 같군,
그래도 기운 좋았어도 젊은 시절이 다시 오는 건 난 싫다. 지금이 제일 좋은 걸!!!
정숙이는 아버지께서 돌아가신지 얼마 안됐으니 명절날에 얼마나 생각날까?
병석에서 몇십년 누워 계신 어머니께 잘 하는 걸 보면 나까지 마음이 따뜻해져.
미선이도 어머니께 참 잘해드렸지.
착한 우리 친구들!
무리하지 말고 추석 잘 보내!
명절!
즐거운 날!
빨간치마에 노~란저고리 입고 뛰어 놀던 날.
방아찧어 체에 쌀가루 내려 시루떡, 인절미 풍성히 만들던 할머니와엄마.
그 분들은 명절준비를 새옷까지 지으며 어떤 맘으로 맞이했을까?
암이의 글을 보고 계속 생각한다.
그 때는 힘들었고 지금은 쓸쓸하고.
우리들은 남편에게 힘들다고 내색하며 삶의 활력을 얻었나? 이런 때 빌어 대놓고 시댁 흉도보며?
이제 맨앞에서 어떻게 이 명절 즐겁고 반갑고 아이들에게 기다리는 날로 전해 줘야하나?
이것이 시어머니로서 이번 명절의 화두이다.
어떻게 명절 전날 음식준비 안하고 컴 앞에 앉아 고민하고 있느냐고?
큰아들네가 올 추석은 제주도 처갓댁에 다녀오겠다 하여 팔자에도 없을 귀성 행렬에 참여하여
새벽1시에 출발. 목포에서 9시30분여객선으로 제주행 . 작은 아들은 저희들집에서 음식 준비 할테니
추석날 오라하기에 그러기로, 완전히 아무것도 안하는 추석은 어떤것인지 체험해보기로 했단다.
이번에 재미삼아 오늘 아침 감주다려놓고 암이표 약식 준비 해놓고
좋긴 좋으네. 상큼한 날씨에 이러고 있을 수 있다니 .
여러 형태로 이번 추석명절 보낼 우리 친구들 되도록 즐겁게보내자.
공감 가는 기숙이 말들!
맞아. 우리가 맨 앞이지.
내가 맨 앞에서 집안을 이끌고 나가야 한다.
특히 명절이나 큰 일 때는 내가 하기에 따라서 가족과 친척들이 행복할 수도 있고 불행할 수도 있다.
최선을 다 할 수 밖에...
전 부치고, 갈비 재고, 여러가지 나물 볶고, 송편은 떡집에 가서 2만원 어치 사다 놨다. (선민이 떡보다는 못하지만! ㅎㅎ)
어제는 김치하고 나박김치도 담갔으니까 내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갈비 찜하고 소고기국 끓여서 상만 차리면 된다.
내가 전통을 지키려고 노력해야 이 담에 딸이 그대로 해먹을 것 같아서 떡 빼고는 집에서 열심히 지지고 볶았다.
친구들 말대로 우리네 어머니들은 옷까지 준비하느라고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생각하면서...
소위 추석 명절인데 초라하지 않은 밥상을 마련해야지. 그리고 산소에 가서 성묘도 해야지..
아까는 달 보러 공원에 갔다 왔다.
날씨가 맑아서 휘영청 밝은 달이 중천에 눈부시도록 아름답게 떠 있었다.
마치 우리를 축복하러 나온 듯.
정다운 친구들아,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라듯이 추석 행복하게 잘 보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