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회 | 포토갤러리 | - 게시판담당 : 박화림
정채봉 작가의 “스무 살 어머니”에 수록 된 글입니다

내가 나가던 대학 도서관의 천장에는 헬리콥터의 프로펠러 같은
선풍기가 쉬엄쉬엄 돌아가고 있었는데
그것으로 우리들 등줄기에 흐르는 땀을 식히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나는 밖을 우두커니 내다보다 말고 벌떡 일어났다.
나무의 맨 위 이파리 하나 까딱하지 않는 것이
나를 그렇게 발작시키지 않았다 생각한다.
그 시절 우리들 호조머니 사정이 뻔했다.
세 친구의 호주머니를 털어서야 고향 갈 차비가 되었다.
궁금해 하는 인천 친구한테 책가방을 떠맡기면서 나는 말했다.
“어머니 산소에 벌초하러 가는 거야.”
그러나 고향에도 바람이 불고 있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우리 어머니 묘의 풀만이 무성했다.
그 풀을 베고 땅찔레를 파내고 있는데 산지기 노인이 올라왔다.
산소하고 어떤 관계냐고 해서 아들 된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노인은 근처의 무성한 뻘기꽃 같은 허한 웃음을 웃으면서 말했다.
“네가 이렇게 컸단 말이냐? 네 어머닐 여기에 묻을 때
건 하나 달랑 쓰고 온 애기였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떡이나 듬벅듬벅 베어 먹고 있더니......
네가 그때 몇 살 때였는지 아느냐?”
“세 살 때였다고 들었습니다.”
뿌리가 깊이 든 땅찔레를 뽑아내다가 나는 찔레 가시에 손바닥이 찔렸다.
빨갛게 올라오는 피를 보면서 뻐꾸기 울음소리를 듣고 있었는데
산지기 노인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 무렵에 태풍이 올라왔었다.
그런데 한밤중이면 바람 속에 여기 네 어머니의 통곡소리가 들리는 것이야.
너무 젊어서 아이를 두고 죽었던 것이 억울했던 게지.
우리 식구들은 한 사흘 밤은 칙간에도 다니지를 못했었다.”
내가 말대꾸를 않자 노인은 소를 풀어놓고 왔다며 산을 내려갔다.
나도 이내 손바닥의 피가 지혈되자 어머니의 산소를 뒤로 했다.

나는 주인이 졸고 있는 선창 가게에서 소주 한 병을 사가지고
고향의 외곽 간척지 둑을 걸었다.
그 둑은 바다를 저만치 밀어내며 이웃 읍내로 뻗은 20리 길이기도 했다.
어느덧 해가 지고 달이 떠올랐다.
바닷물이 출렁거리는 둑방 길을 소주를 홀짝거리며 걷자니
오랜만에 속이 좀 트이는 것 같았다.
그런데 둑의 한가운데쯤에 이르렀을 때였다.
바닷물 소리가 좀 달라지는 가 했더니 달이 숨었고 천둥이 쳤다.
그리고는 곧이어 소나가가 쏟아졌다. 장대 같은 비였다.
처음에는 잠시 지나가는 것이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다.
칠흑같은 어둠속에서 비는 줄기차게 내렸다.
사위를 살펴보니 저만큼에 불빛 하나가 희미하게 가물거리고 있었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서 그 불빛을 향해 뛰었다.
그 집은 돌담만 들러 있을 뿐 대문도 없는 오두막이었다.
내가 주인을 찾기도 전에 인기척을 들었는지 방문이 열렸다.
검은 주름살이 얼굴 가득한 노인 내외가 마르로 나오며 물었다.
“누구시오?”
“길을 가던 학생입니다. 갑자기 비를 만나서....”
노인 내외는 흔쾌히 말했다.
“어서 안으로 드시오.”
마치 기다리고 있던 사람 마냥 할아버지는 젖은 옷을 벗으라며
삼베 바지저고리를 꺼내 주었고
할머니는 부엌에 나가서 물 한 사발을 끓여왔다.
그리고는 한사코 거기에 밥 한 덩어리를 말아주는 것이었다.
이튿날 아침 눈을 떠 보니 노인 내외는 일을 나갔는지
집에 없었다. 윗목에 얼뚱한 길손의 밥상만을 봐 둔 채로.
하늘은 언제 그런 소나기가 있엇냐는 듯이 청명해 있었고
해는 또다시 끓을 채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묵묵히 밥을 먹었다.
그러나 고마움을 표할 것은 나한테 그 무엇도 없었다.
돌담 가에 기대 놓은 대비를 들어
그 집의 마당을 쓸어놓고 온 것이 고작이었다.

*서점에 갔다가
진열되어 있는 정채봉 작가의 책이 여러 권 있는 중에
‘스무 살 어머니’란 책을 고른 것은
‘스무 살 어머니’란 이 분의 글을 읽었기 때문이다.
단 한 권 남아있어, 표지가 약간 더러웠지만
왠지 정이 가는 이 책.....
역시...내 예상대로
소박하고 따뜻함이 묻어나는 글들....
눈이 내릴 때 태어나고(1946년)
그가 가는 그 날도 눈이 내리는 때였으면 좋겠다고 한
그의 바람처럼 동화처럼 눈이 내리는 날
그의 생을 마감했다고(2001년) 한다.
요즘 몹시 더운 한 여름을 지나면서
그 분의 삶의 향기가 묻어나는
따뜻한 책은 나를 행복하게 한다.
An Adagio By Francis Lai
수인아~
안녕?
나팔꽃은 언제나 향수를 자극한다.
우리 어릴적 피었던 꽃 ~ 나팔꽃, 채송화, 맨드라미, 칸나,요즘은 흔하지 않지만 가끔 보면 왜 그리 좋은지 몰라.
세살때 엄마가 돌아가셨음 얼마나 가슴이 아릿하고 항상 슬펐을까?
그분의 책 읽어볼께.
여기 깔은 음악도 애잔하지만 좋다.
여기는 백일홍도 피고 깨꽃. 칸나 등....꽃이 지천이야.
백일홍이나 과꽃은 그 색갈이 유치해서 싫더니
이곳에서 보는 그런 촌 스런 꽃도.....참 좋아.
어떤 사람이 분꽃이 미국에는 없다고 했는데
어느날 산 입구에서 소담하게 핀 분꽃을 봤어.
우리 집 옆에도 올해는 노인이 크고 멋있는 화분에다, 분꽃을 심어놓아서
며칠 전에 바닥에 떨어진 분꽃씨를 5개를 주워왔어.
한 번도 '엄마'라고 불러 본 적이 없는 그것이, 그 마음에 얼마나 사무칠까.....
삼춘들이 '형수'라고 불러
그 분도 엄마를 '형수'라고 불렀대.
<스무 살 어머니>도 한 번 올릴께.
이름이쁜 아해덜이 오손도손 야그하고
영구불멸 언니같은 그이름이 정례언니
다독이는 그모습이 아름다워 한발끼오
늙을수록 꽃의의미 새록새록 새겨지네
꽃과구름 풀과나무 자연끼리 우리끼리
어머나~
저 그림 수인이가 그린거구나~
그림이 너무 좋다.
수인인 재주가 많구나.
글도 잘 쓰고 그림도 잘 그리고~
어느날 보니 우리집 담 밑에 진한 빨강 노랑 분꽃이 피었는데 보는 순간 왜 가슴이 두근 거렸을까?
아마도 어릴적 자라던 이런 저런 생각이 나서 그랬던것 같아.
어릴적 우리집 앞마당에 채송화, 봉숭아, 나팔꽃, 분꽃이 많이 피었거든.
며칠전부터 더위가 한풀 꺽였어.
좀 살것 같구만.
경선아~
태백 다녀오니 시원해졌지?
피로도 풀렸지?
넌 그날로 음악회를 갔으니 대단하다.
어제 핸폰을 은행에서 잊어버렸는데 다시 가보니 없어.
결국 못찾았는데 심란한데 이방 들어오니 잊어버리네 ㅎㅎ
수인아~
아침이라 활짝 피진 않았는데 내가 지금 나가서 담 밑에 핀 꽃을 찍어서 올린거야.
윗 사진은 봉숭아랑 분꽃 능소화는 물받이를 타고 올라가고 있어.
아래 사진도 분꽃.
활짝 피면 한번 더 올려야겠다.
이제야 ~
수인이의 글이 눈에 들어오네.
수인아 ~!
괜찮지?
궁금하다.
수인이의 그림이 수인이 닮았네.
근데 두번째 사진은 나팔꽃이 아닌거 같어.
저꽃은 우리 탄천 물가에도 많은데
왜래종으로 마구 번지는것 같던데
이파리가 다르잖어?
정례~!
이제 자리좀 잡혔니?
건강 조심하길....
우쪄~!
우리 이쁜 화리미
스마트폰이 꽤 돈이 되서
많이 잃어버린다던데...
전화기가 꺼져 있더라.
멧세지 남기라하구.
난 헐랭이가 되서 물에도 잘떨어뜨리고 잃을까봐
늘 전화번호를 따로 저장해 놓는단다.
너무 애쓰지마.
사람 안다치면 된거야.
답답하긴 하것다.
오늘 겨우 내 컨디션으로 돌아왔는데
딸년이 새벽3시에 전화해서
엄마 ~!
은초가 안자구 놀재~
이러며 SOS 쳐서 3시에 업어다가 7시까지 봐주구
다운됐다.
그래두 지난 2박3일 못보니 보고 싶더라.
순호야,
할메 역할이 지치기는 해도
손주들에게 가장 소중한 "사랑"을 품게 해주니
큰 공헌하는 거 아닐까.
우리 딸도 은근히 엄마 은퇴를 기다리는 거 같애.
사위도 그렇고. 힘든가봐. 그래서 좀 미안한데...
아직은 마지막 목회지에서 좀 더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서
여긴 출석 교인은 얼마 없는데
오랜 역사 때문인지 지역 교회로서
지역과 밀접된 사역이 꽤 많네.
내 적성에 맞는 거 같아 신은 나는데
전처럼 책을 볼 짬이 많이 줄었어.
이사 정리?
풍성한 서랍장에 대충 집어넣어 겉으론 정리된 느낌야.
천천히 꺼내 제 자리에 앉혀야지..
주일 오후 하덕실 (고교땐 하관식으로 알고 있지)이 부군과 교우님 한분이랑 방문해서
반바지 입고 파도 가장자리에서 물놀이 좀 했단다.
더 추워지기 전에 바닷가에 오겠다 하더니.
여기선, 글쓰는 김인숙과 가장 가까이 살아.
운전해서 30-40 정도니까.
지난 주에 만났고, 내일도 갔다오려고.
순호야~
맞아~ 두번째 사진은 나팔꽃은 아닌것 같아.
잎사귀가 다르네.
그렇게 미친듯이 덥더니 어쩜 아침 저녁 소슬 바람이 부니?
너는 애 많이 써서 아직 피곤할텐데 은초를 또 봐주었다니 에구~ 모른척 할수도 없구~
내가 한동안 신나서 텃밭을 호미질 하면서 "팔뚝 원없이 굵어지겠네~ " 그랬는데 그게 문제가 아니고 자고 나면 손이 부어서
안쥐어지는거야.
엄지 손가락도 힘이 없어지고~
놀래서 텃밭을 그냥 내 팽개쳐뒀는데 오늘 아침에는 맘먹고 나가보니까 길건너 윗집 아줌마가 우리 밭을 낫질하고 있는거야.
어머~ 미안하게 ~ 그냥 놔두세요~ 했더니 안해보다 해서 그런가 보다고 자기 별로 할일 없다고 신경쓰지 말래.
잡초가 무성한데 많이 정리가 됬어.
통성명 제대로 해보니 56 년생인데 옛날에 이혼하고 자식도 없고 혼자 그럭저럭 산디야.
나도 주책이지~ 대뜸 나온 말이 "에구~ 신간 편하겠네"
경선아~
풀륫하는 애들 전부 그럴줄 알았다고 할꺼야~
언젠가는 학원에 그냥 두고 와서 혜숙이가 다시 와서 문열고 갔다니까~
내가 한번 된통 혼나야 정신을 차릴래나~
젠장~ 이삼일 기다려봐서 다시 하나 사야지.
핸폰없이 살순 없구~미쳐분다.
이제야 시간내서 다 읽어 보았어. 참 따뜻한 글일쎄.
니 나팔꽃 그림 참 멋지다.
일취월장 그림실력 대단해 지네.
그림이랑 좋은 글이랑 고마워. 잘 보았어.
인선~!
오랜만....
잘지내지?
사업은 잘되고?ㅎㅎ
수인아 ~!
우리딸때 보니 한국에선 그럴때 아주 입원해서
침대에서 꼼짝 못하게 하고 주사를 늘 꽂고 있더라.
잉태하지마자 그렇게 했던 에미가 요즘 그아이
앞세우고 딸내미네 놀러 다니는것보니
그에미 고생 할때가 생각나서 나도 가슴이 뭉클하더라.
우리 은초도 40여일을 입원했다 태어나서 그런가
괜시리 더 안쓰럽고 애잔하더라..
지금은 아주 건강해서 근처에 다른애들이 얼씬을 못해.
소리지르고, 뺏고,눈을 찌르고...
아마도 오빠와 늘 어울리니 애가 쎄진것 같애.ㅎㅎㅎ
조심해서 아주 건강한 아기 안기 바란다.
기도할께.
와~은초 정말 건강해보이네.
오빠도 닮고 외할미도 닮았네.
수인이가 힘들겠구나.
우리 둘째 예준이도 태어나자마자 황달끼가 있고 용량미달 ㅎㅎ병원에 한달 가량 입원했었어.
그래도 지금은 여시짓만하고 얼마나 똘똘한지 몰라.
힘든 시간 다 지나면 또 좋은 시간 올꺼야.
잘 보살펴서 예쁜 손주 보기 바랄께.
우리 양지는 임신된 줄도 모르고 한국에 다녀간 직후에 갑자기 유산기가 있느니해서 나를 놀래켰단다.
있는 정성 없는 정성 바리바리 싸서 멕이고 보내고 하느라 축난 재정 좀 추스릴 꺼라고 식구들에게
긴축재정을 선언한지 일주일도 안되서.ㅎㅎㅎㅎㅎ
할 수 없이 내가 다시 왕창 싸들고 가서 2주나 봐주고 왔쟎아?
2주동안 잘 멕이고 안움직이게 했더니 나았는데 양지는 태어나는 날까지 에미가 입덧을 했어.
엄청 약하고 예민힌 아기가 나올까 걱정했더니
세상에 죙일 먹을 것만 찾는 건장한 여자아기가 되서 목하 걱정중이란다.
사진이 무지큰데 줄이는 법도 잊어먹었 다.
수인아,
정채봉 님의 글엔 우수가 묻어나오던데
정화수 되어 마음을 씻어주지?
특히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살다가신 흔적이
여기 저기 보이는 그 분의 글엔
본향, 본질로 돌아가게 만드는
소박한 힘이 녹아있는 거 같애.
엄마
꽃은 피었다
말없이 지는데
솔바람은 불었다가
간간히 끊어지는데
맨발로 살며시
운주사 산등성이에 누워계시는
와불님의 팔을 베고
겨드랑이에 누워
푸른 하늘을 바라본다
엄마...... (정채봉)
좋은 책 한권 고르며 서정을 잃지 않는 네 모습이
내게도 청량수처럼 자극을 주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