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다.

정말 덥다.
카뮈의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는
엄마가 죽고 정사를 하고 아랍인을 태양때문에 죽였다고 강변한다.
죽음, 정사, 살인 그리고 긴 재판의 부조리가 묘하게도 태양때문이라던
이방인이 유독 요즈음 실감으로 다가온다.
태양이 가까와져 몽땅 타 버리는 것은 아닐까라는 엉뚱한 생각도 해본다.
거기에 어쩔 수 없이 몸은 축축 처지고
냉방병에 입맛은 똑 떨어져 밥을 거르기 일쑤다.

 

이렇게 힘이 들 때 내가 찾는 음식이 있다.
된장에 바지락을 넣고 양파와 청량고추를 잘게 썰어서 넣고 바글바글 끓이다 

다진 마늘과 파를 듬뿍 넣어 되직하게 끓여내는 강된장이 그것이다.

호박잎을 찌거나 양배추를 쪄서 강된장 한 숟가락 푹 떠서 싸 먹으면 잃었던 입맛도 돌아오고

속이 메스껍고 안 좋을 때 속을 금방 가라앉혀 주는 묘약이기도 하다.

 

특히 이 강된장에 관한 소중한 추억이 있다.
대학1학년 부활방학때 보길도로 윤선도를 만나러 갔다.
그 때는 교통이 너무 불편해서 보길도 가는 길이 무척 고달폈다.
기차를 타고 큰 배를 타고 또 다시 작은 배를 타야만 보길도가 나왔다.
멀미를 해가며 보길도에 도착하니 섬전체가 청보리밭으로 어디가 바다고 어디가 밭인지 구분이 되지를 않는다.
바람이 불면 그냥 다 넘실대는 바다만 같았던 소롯길을
시내버스가 손님을 아무데서나 태우고 내려주었다.
남자차장은 돈이 없다고 하는 남학생들에게 알밤 한대 주고 다음에 가져 와 한마디하면 그만인 곳이다.
식당은 보이지를 않고
천상 민박을 잡았는데 허기진 우리 일행에게 할머니가 내온 점심이
보리밥에 강된장 한 보시기에 묵은 김치 그리고 생선 한토막이 툇마루에 올랐는데

멀미임에도 불구하고  강된장 냄새에 홀렸는지 모두들 허겁지겁 먹고 누룽지까지 싹싹 비우니.....
세상에  어느 진수성찬이 이보다 더 맛이 있을까?
우리는 삼일 내내 강된장만 먹고 지냈으니
보길도하면 국문학도인 내가 민망하게도 윤선도보다는 투박한 할머니가 끓여준 강된장이 먼저 떠 오른다.


하기는

순진하기만 했던 나는 유배생활을 한 윤선도가 얼마나 힘들게 살았을까 걱정이 태산이었지만

실제 답사 결과는 실망만 잔뜩 안고 돌아왔다.

지금도 척박한 보길도에 연못을 만들고 큰 바위를 가져다가  놓고 달밤에 그 위에서 기생들에게 춤을 추게 하고

연못에 비친 그 그림자를 보고 시를 지었다하니

그 당시 나는 이럴 수가....

높으신 대감들은 유배를 이렇게 하는구나  했으니

오히려 강된장을 끓여준 투박한 할머니에게 마음을 더 빼앗겼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그 이후로 강된장은 그냥 내 음식이 되어 버렸다.
음식솜씨가 별로인 나도
친구들이 와서 먹어 보고는 맛있다,  어떻게 한 거니?라고 바결을 물을 정도이니까...

 

그래 그런지

강된장만 끓이면 보길도가 생각이 난다.

넘실대던 끝없는 청보리밭

티없이 해맑은 아이들과 투박한 할머니의 손

윤선도와 어부사시사 그리고 기생들의 춤이 함께 넘실댄다.

아...그리고  돌아오는 길엔 억수같이 퍼붇던 비에 배가 길을 잃어서 죽을 뻔했던 기억들

그때 뱃머리에서 옷가지를 태우며 빙빙 돌던 불덩이도 생각이 난다.

그 불덩이를 보았는지 등대의 불빛이 우리를 계속 비추며 인도하던 보길도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