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
만남.
요즘 나를 붙잡고 있는 상념이 " 만남" 이다.
부모님의 자녀로 이 세상에 와서
얼마나 많은,
얼마나 진지한,
얼마나 지속된 만남이 있었는가...
젊은 시절에는
그냥 만나지는 줄 알았다.
한번 만나면 오랫동안 못 보아도 또 언제인가는 보겠지 ... 라는 생각을 가졌었다.
또한 실제로 만나지 못했어도
만날기회가 오겠지 ... 라고 막연한 기대를 가졌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다시 못 볼 수 있다는 것을 알아 버렸다.
그러한 중에 오스트리아의 피아니스트 Friedrich Gulda의 죽음 소식을 들은
2000년 1월 27일에 '아차' 하는 충격을 받었었다.
같은 오스트리아에서 동시대를 10년넘게 살면서
언제라도 그의 연주를 실제로 볼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미루었었는데..
그가 70세의 나이로 갑짜기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후 그의 연주음악을 여러 매체를 통해 듣고 보면서
항상 후회가 되어왔다.
어느해 비가 주룩 주룩 내리는 여름밤에,
비엔나 영상음악회가 열리는 시청 광장에서 그의 모짜르트 피아노 협주곡을 보았다
넓은 광장에 우산쓰고 서서 보는사람이 손 꼽을 정도인데도,
국영방송국에서 끝까지 보여주는 영상을 보면서
온몸이 저릿 저릿 시린듯 그의 혼연일체가 전해왔다.
영상 속의 그는 영원히 세상에 살아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만날 수 있었던 기회를 놓친 것을 아쉬워 하며 그 자리를 떠나왔다.
열흘전,
휴가로 찾았던
오스트리아 케른텐 주의 밀스타트(Millstatt)호수마을에서
그의 아들 Paul Gulda가 바로 아버지가 연주했던 그곡을 협연한다는 포스터를 보고
얼마나 기뻤던지...
7월 18일 연주되는 얼마 안남은 표를 당장 구매하고나서,
연주 당일날 하루 종일 가슴이 두근 거리기 까지 했다.
이 아들도 비엔나 살고 있으나 실제로 연주를 듣지 못하고
언제인가는 보겠지... 막연히 생각했었다.
그런데, 휴가온 곳에서 우연히 기회가 온것이다.
저녁녘 설레이는 마음으로 일찌기 수도원 성당에 도착하니
어느 새 많은 관객들이 곳곳에 산책하거나
한적한 곳에서 독서를 하는 여유도 보였다.
국영방송국 (ORF) 차가 도착해 있었다.
( 숙소 Villa Verdin을 떠나 설레이는 맘으로 공연장을 향해 오면서 ^^)
(독서하는 여인...)
(방송국 차량)
이 지역에서 10년전부터 여름마다 특별연주 축제가 열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종의 여름 음악축제로서 온가족들이 성장을 하고 한여름밤을
클래식 음악과 보내는 것이다..
정중하고 진지한 청중속에
나는 호기심 가득히 자리에 앉아 있었다.
드디어 Paul Gulda가 나오는데,
보통 연주자 차림의 정장이 아닌
하얀셔츠에 소매없는 검은색 조끼 비슷한 옷을 입었다.
피아노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모든 생각은 사라지고
모짜르트의 음악에 융해되었다.
나는 그를 통해서 그의 아버지 Friedrich Gulda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음악을 통해 Friedrich Gulda를 만난것이다.
'만남'이란
이런한 양상도 되는 것이라는 것을
깊이 깊이 느끼며 감사하다.
(2012년 7월 27일 새벽 )
- Villa Verdin 3.JPG (418.3KB)(0)
- Stift Millstatt 4.JPG (344.8KB)(0)
- Stift Millstatt 5.JPG (194.3KB)(0)
- Stift Millstatt 6_2.JPG (352.7KB)(0)
- Stift Millstatt 7.JPG (334.6KB)(0)
- Stift Millstatt 8_3.JPG (58.9KB)(0)
- Stift Millstatt 8_4.JPG (108.9KB)(0)
- g928020a.jpg (32.8KB)(0)
- Friedrich_Gulda.jpg (24.3KB)(0)
이수인 선배님 안녕하세요?
저는 저의 직업상 요즘 한창 일해야 하는 시기에도 불구하고,
친구따라 강남 간다는 말처럼
친구가 가는 출장겸 휴가에 덩달아 다녀 왔어요.ㅎㅎ
그래서 사전 준비없이 갔던 곳이었는데요...
지금 생각하니 그래서 더 감동이 컸던 것 같으네요.
우리가 살다보면
예상치 않는 만남에 가슴이 떨리고
그 진동이 오래가는 때가 있잖아요?
그 감동의 여운이 사라지기전에 글로 남기고 싶었어요.
열흘간 호숫가와 비엔나 근교를 다녀오자마자,
삼일간 몰아쳐 일하는 중에,,,
누가 다그치는 것도 아닌데...그제 새벽에 윗글을 올리고 잠이 모자라
어제는 귀가하자 마자 쓸어져 잤어요..
선배님 말씀처럼 항상 제가 에너지가 넘치는 것은 아니에요. ㅎㅎ
제가 여기 저기 다니면서 심장과 가슴에 담아온 것들을
막상 지면으로 옮기려고 하면,
머리가 갑짜기 얽히는 느낌이 들때가 종종 있어요.
아주 간단 명료하게 요약하기가 어려워요.
이생각 저생각하다가 우선 제목'만남"부터 떠올려 보았어요.
만남, 다시만남으로 이어지는 인연이 있는가 하면,
만남, 헤어짐,,, 으로 마무리 되는 인연,
만남의 기대...로만 머무는 인연도 있겠지요...
이번 휴가에
오랫만에 우연히 옛지인들을 만나면서
여러 상념이 들었었어요.
어제는 일하러 나갔다가
고객도착이 딜레이 되는 때문에 기다리는 중에,
위의 음악을 이어폰 끼고 몇번 반복해서 들었어요.
가슴 한쪽이 싸르르 해지는 느낌이 내내 들었어요.
아름다움과 환희의 극치는 슬픔과 상통하는 듯해요...
선배님 !
작년가을 선배님과의 만남을 아주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어요.
내년 미주방문에 만나게 되면 " 다시 만남"이 되겠네요.
내내 안녕하세요.
옥인후배가 올려주는 음악과 글만 대해서일까요?
항상 멋지고 부러운 인생을 살아가는 대상이 되어버렸어요.
정통 음악이 그냥 삶이고 영화같은 도시가 자기동네고......................................................
세상이란 게 얻는 게 있으려면 포기할 것도 많다는 건 아는 나이지만
자신의 삶을 위해서 후배 또한 많은 용기와 결단이 있었으리라 싶지만
그 점이 존경스럽고
지나간 그 당시의 사회가 그렇다고는 했지만
하나 밖에 없는 자신의 인생을 그저 수동적으로
남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의 한 편린으로 만들어 버린 자신의 소극성이 새삼 아쉽네요.
수영에 대해서는 흐름을 놓쳐서 댓글도 못달았고요.
만남이란 것에 공감합니다.
요즘 내가 우선적으로 실천하고자 하는 게 바로 그거에요.
오늘 할 수 있는 건 다 하자는 거!
별로 재미도 없는 인생에 후회까지는 하고 싶지 않거든요.
그곳의 더위는 우리와는 다르지요?
요즘 한국은 전국이 다 땡볕이랍니다.
습기도 많고.
앞으로도 계속 건강해서 이런 수준높은 문화를 체험시켜 주기 바랍니다.
반가워요~ 유명옥 선배님~
선배님께서 보시는
이곳 홈피에 올리는 저의 생활모습이 저의 일상의 한 부분임에는 틀림이 없지요..
그러나
한밤중 잠을 못들어 일부러 집안전체를 환하게 불 켜놓고
이일 저일 찾아하는 저의 모습도 있어요.
환한 대낮, 태양이 작렬하는 가운데,
군중속에서 혼자 속뇌임을 하는 내면의 모습도 있고요. ..
선배님께서 언급하신대로,
여태까지 여기 와서 살아가면서
얻은것이 많지만 잃어버린 소중한 것들도 많아요.
비엔나 온지 20여년이 되다보니,
한국에 있는 가까운 가족이 많이 아퍼도,
당장 달려가지 못하면서... 스스로 여러 변명을 하는 제가 서글퍼지기도 하고요.
요즘 정말 이런 저런 생각이 많어요.
그리고 선배님!
제가 인천여중 2학년 때
서클활동에 피아노반에 들었었어요.
그때 선배님이 고3 이셨었는데,
선배님이 피아노 치는 것도 보았었고,
어느 선배님 ( 이름이 기억안나는 ..) 성악 반주를 하는 모습을 보았었어요.
슈베르트의 '송어' 였던 것 같아요.
그 반주가 쉽지않잖아요.
특히나 제가 어렸었기에 선배님 반주모습을 경이하는 맘으로 보았었어요.
제 기억이 맞는지요?...
그곡 반주 하신적이 있으신지요?,,,갑짜기 자신이 없어지네요. ㅎㅎ
여기 날씨는
7월초에 무덥더니
중순에 비가 와서 서늘 하다가
요즘은 적당히 더워요.
집안에 있으면 하나도 안덥고요.
선배님글을 읽고
좀더 알차게 살아야 겠다고 생각했어요.
내년에 미주방문에 만나면 정말 반가울거 같아요.
제 기억 속에는 인일 여고적 선배님이 계시는데,
선배님께서는 3년전부터 이 홈피에서 사진으로 보아온 저의 모습만 있지요?
그런데요, 3월에 김순호 선배님을 처음 뵈었는데도,
아주 오랫적부터 뵈온 것처럼 금방 친숙해졌어요 ㅎㅎ
아휴~ 제가 어젯밤 숙면을 하고 일어 났더니
말문이 터진 것같애요. 이제 그만 할께요.
선배님 건강하세요.
아! 송어반주!
그거 미국의 춘자가 부른 거래요.
6기에는 또 다른 성악전공의 후배도 있어서 처음엔 나도 좀 헷갈렸어요.
그 반주가 어려워서 피아노곡 연습하듯 마구 연습을 하다 보니 혼자서만 달려가는 거에요.
그래서 유정희 선생님께 "얘 노래는 그리 피아노처럼 빨리 갈 수 없어!" 하고 한소리 들은 기억도 나네요.
그 당시는 피아노 반도 있었군요.
인일여고는 드믈게 피아노는 여러대 있었는데 막상 제대로 된 것이 없었지요.
음악실 피아노가 그 중 나았는데 행사일이면 그거 아닌 막 쓰는 피아노를 가져다 놓는 거에요.
어느 행사였던가?
몇학년인지는 생각이 안나고요
순호가 같은 반이었으니까.
솔로를 해야 하는데 조율도 제대로 안된 철렁거리는 피아노에 낙담이 되서
(우린 웬만한 건 그러려니 하거든요)
찔끔 거리고 있으니 친구들이 와서 왜그러냐고 하는 거에요.
사정을 듣더니 순호를 비롯한 키가 큰 친구들이
다른 건 괜찮냐고 하길래 음악실 피아노가 좀 낫다고 했더니
"그럼 그걸로 바꾸자" 라면서 당장 유정희 선생님께 가서 허락을 받아오더니
몇명인가 암튼 덩치가 큰 친구들이 우르르 나서더니
계단을 한층 더 올라가야 하는 강당으로 피아노를 옮겨주는 거에요.
크다고 해도 여고생들이쟎아요?
평소에 그다지 친한 친구들도 아니었어요.
정말 지금 생각해도 눈물나는 감동이었지요.
여러명이었는데 유독 순호가 기억이 나는 거 보면
순호가 앞장서서 한 것 같아요.
순호야 보고있니?
나 그 때 정말 너무 고마웠는데 뭘 몰라서 고구마탕도 쏘지를 못했네.
ㅎㅎ 김춘자 선배님요?
제기억속 피아노 반주가 어렵다고 생각했던 "송어"부르신 분이 바로 그, 그, 그, 선배님!
지금 가만히 그때의 정경을 떠올려보니,
검은 뿔테 나비형 안경을 썼던 것 같기도...( 하긴 그때는 그런 안경테가 유행이었지요...)
그때 성악하시는 선배님보다 반주하시는 선배님을 유심히 보아서
유명옥 선배님 이름만 기억하고 ㅎㅎㅎ김 춘자선배님께 죄송해요~~
참! 6기에 성악전공 선배님이 많다고 하셔서 떠오르는 선배님 한분이 있어요.
전체조회때 지휘를 하던 "권순정" 선배님,
인일여고 시절에는 하얀 얼굴에 입가에 검은 점이 있었어요.
기억 나세요?
이분하고는 1981년 같이 일본 연주여행을 15일간 갔었어요.
대학 졸업후 전석환 선생님이 이끄시는 합창단 일본연주 여행준비 연습때 처음 만났어요.
그 선배님은 3년 후배인 저를 모르지만,
저는 그분을 기억하고 인사를 했었지요..
참으로 명랑한 분이
음악을 참 섬세하게 잘 만드셨어요.
그때 합창 반주했던 곡들이 아직도 저에게 고국의 향수를 일으켜요.
특히, 청산에 살리라,, 님이 오시는지,,등등...
전석환 선생님.. 단장,
권선배님.. 지휘자.
저는 반주자...
벌써 31년전 추억이 되었네요.
30명 넘는 연주여행단중에 제가 제일 연소자 였던 시절이네요.. 아직 20대 ㅎㅎ
연주 여행후로는 연락이 끊겼는데요.
문득 문득 생각이 났었어요..
(어디에 사실까? 잘 사시겠지... 남편되시는 분이 그시절 음악 유학중이 었었는데..)
오늘 유선배님과 얘기하다 보니
새삼스럽게 그시절이 그리워지고 다시 만나기를 기대해 보아요.
순호 선배님은 그시절 부터 대장이셨군요 ?
아무리 상상해도 어떻게 그 무거운 것을 옮겼는지 .. 괭장한 힘들을 가지셨었네요.
이제라도 그때 대접못한 고구마탕 대신
맛있는 것 대접해주세요~~ㅇ.. 제 안부도 전해주시고요.
유명옥 선배님
정말 우리가 사는 세상이
특히 인터넷상으로는 바로 옆집처럼 참 가까워졌지요?
내내 건강하셔서 종종 추억의 얘기를 들려주세요~~~
조근조근 야그들을 나누길래 시~익 웃고만 있었는디....
바로 어젯일 같은 일이 떠오르만요.ㅎㅎㅎ
그리고 보니 우린 고3 내내 한반 했었던겨?
명옥인 우리들의 우상이었지.
야는 스스럼 없이 우덜을 위해 많이 연주해줬었지.
그때 피아노 나르다가 힘 다빠지는줄 알았당께.
마탕사라 ~~~~!!!
옥인~!
난 원래 천성적으로 한가지 일에 집중을 몬하는 성격이라
옥인의 글과 사진을 보다가....
그곳을 상상하며 즐기다가....
태백껀 생각나는대로 메모하다가....
빨래 뒤집다가....
졸리믄 이리딩굴 저리딩굴....
께임 한판 두들기다가....
파출부커피 곱배기로 타마시다가....
또 옥인글 읽다가....
청소기 한번 돌리다가....
뻥튀기 씹어 대다가....
어머니나 ~!!!
내이름이 마구 나오네.ㅋㅋ
딸내미는 괜찮고?
아직 내 가슴엔 옥인을 가득 안았을때의
희열감이 남아있는데....
보고싶다.
난 송어 ~하니깐,
음악 생각은 안나고 크로아티아 폴리트비체 나오다가
송어구이를 먹었는데....
다른사람들은 모두 포크로 먹으니 제대로들 몬먹는데
우리들은 나무젓가락들을 갖고 가서 아주 잘발라먹어
일행들이 부러워 했었던 생각만......ㅎㅎㅎ
참 아는만큼만 보인다니까....
알았다 마탕 사리다.
옥인후배!
맞아요.
춘자는 아주 마르고 나비뿔테안경 썼었어요.
내가 말한 후배는 김희란인 가 하는 후배였고요.
나중에 연세대성악과를 갔어요.
남원옥 남효옥 쌍동이 자매도 있었고.
원옥이는 작곡, 효옥이가 성악했지요.
권순정이하고는 어릴 적에 피아노를 함께 배웠어요.
6기였나요?
엄청 귀여워서 훨씬 아래학년인 줄 알았는데...ㅎㅎㅎㅎ
여고시절 합창단을 다니더니 지휘를 배워서 인일 합창제 때 보니까 지휘도 아주 잘 하더군요.
숙대 성악과 나오고 노래도 잘 하던데.
별명이 점백이 었던 것 같기도....ㅎㅎㅎ
6기에는 음악 전공한 사람이 꽤 많았어요.
사실 6기에는 여중 때 안 경원이가 공부도 잘하고 피아노도 썩 잘쳤는데
이화여고로 갔다가 연세대 영문과로 갔더라구요.
대학때 한진버스에서 만났는데 피아노는 계속 하고 있지만
공부는 영문학 쪽으로 계속할 꺼라고.
기억에 남는 후배는 8기의 오혜숙!
첼로전공인데 얘도 경기여고로 가서 서울대로 진학하는 바람에 연결이 안됬지요.
전봉초선생님 제자라 함께 레슨간 적도 있어요.
상당히 친했는데 내가 결혼하고 떠난 바람에 모든 연락이 다 끊겼지요
8기도 많아요.
유명혜(내동생), 박은숙(우리 올케).손귀옥 등등등
아이구 재미있네요.
9기부터는 전혀 모른답니다.
예~ 우리 9기에요.
참 그러고 보니 우리 9기에도 생각나는데로 적어보면,
음인혜, 윤명숙 외에도,,,
장선화(작곡), 조혜숙(피아노), 오인옥( 바이올린)김혜실 (피아노)유제영 (피아노)
하도 오랫동안 못만나고 떨어져 살다보니 기억에 한계가 있어요.
참! 그때는 그랜드 피아노가 드물었었지요?
저도 대학입시준비 하면서 처음으로 교수님댁에서 그랜드 피아노로 레슨받었어요.
.
그래도 옛날 모든 여건이 안되었지만
음악을 사랑하던 그때가 요즘 손쉽게 편하게 마련되는 여건에서 보다 더 아름다워요.
유명옥 선배님!
어제 그제 부터 자주 뵙네요 ㅎㅎ그래도 또 반가워요 ^^
한잠자고 일어났더니 어느새 앞장이 넘어가서
댓글 찾느라고 위로 아래로 왔다 갔다 했어요.
오인옥이하고는 졸업후 통학시절 몇번 본것 같고
사적으로는 만나지 못했어요.
인천여중 시절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한 걸로 기억하는데,
그때 몇명이랑 배운지 얼마 안되어
mozart eine kleine nachtmusik를 합주하던 것을 보고 놀라웠었어요.
참~~ 선배님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잊혀진 줄 알았던 옛이야기가 퐁퐁 떠오르네요.
그리고,
ㅎㅎㅎ취소 하신다고 하시는 선배님이 귀여워요 (죄송)
사실 저도 모두 기억 못하겠는데요.
김순호 선배님!
그러잖아도 요즘 슈노 언니 생각이 많이 났어요.
그동안 그라츠도 다녀오고... 발칸도 다녀오면서 ... 아! 여기를 슈노 언니도 다녀가셨지 .. 하면서요.
그리고 그때 3월말에,
딸애가 선배님이 공수해온 쑥떡을 먹으면서
" 엄마! 옛날 부터 잘아는 선배세요?" 묻더라고요 ㅎㅎ
그래 사정 얘기를 했더니,
머리를 갸우뚱 하면서
" 한국사람들은 참 희얀해요.. 인터넷으로 사귄 동문들이 어떻게..."
그래서,
" 얘야... 한국 사람들이 다 그런 것이 아니구, 엄마 다닌 핵교가 별라서 그래"
좀 잘난 척좀 했지요 ㅎㅎ
" 하긴 엄마가 예전 부터 별난 엄마인줄은 알았는데, 다 이유가 핵교에그런거군요... ㅎㅎ" 하더라구요.
슈노언니는 글로 표현을 너무 잘하셔서
지내시는 모습이 눈에 훤히 보이는것 같애요^^
참 ! 고등시절에 그렇게도 힘든 피아노를 들을 생각을 하신것이 너무 신기해요.
저는 무거운 것은 예나 지금이나 엄두도 못내는데요( 죄송)
여기 음악회 본 호숫가에서 며칠간 지난후
3일간 비엔나 근교 동알프스에 저희 모녀가 자주 나가는 곳에서 3일간 더 지내다 집에 돌아왔어요.
친구 3가구가 사는 곳 바로옆에
재작년부터 집터와 전원지대를 친구와 더불어 장만했는데요.
요즘 우선 수도 전기 시설하면서 정말로 땅정비를 시작 했어요.
지난번 아픈 것이 회복된 딸이
제법 농기구를 만지면서 풀을 열심히 자르 더라구요.
아래 에니메이션으로 잠깐 보여드릴께요.
1 방학식날. ..실습나갔던 곳에서 꽃선물 받고
2 ~3알프스 전원집에서 지내다 동네 가게에서 일상품을 사가지고 오는 모녀
4 .밀이 가을 수확기 처럼 풍성히 바람에 날리고
5~6 자기보다 큰 기구로 풀을 자른다고
7~10, 에미가 식사준비하고 딸을 담장 넘어로 부르는 데도 농기구 모터 소리에 듣지 못하고 지나가더라구요.
이제는 이정도로 건강해졌어요.
딸애가 하나님주신 대지에서 새로운 기운을 차려서
걱정해주신 모두모든 분들에게 감사해요.
새로운 대지와의 만남이 시작되었어요.
(참조 동영상:Friedrich Gulda 추모 5주년 기념일인 2005년 1월 27일 일본에서 연주한 것입니다.)
Friedrich Gulda의 둘째아들 Paul Gulda (1962년 비엔나 출생)와
셋째아들 Roco Gulda(1968년 스위스 츄리히 출생 )와,
그리고 그가 아끼던 제자 Martha Argerich (1941년 부에이노스 아이레스 출생)
세 피아니스트가 연주하는 모짜르트의 세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입니다.
저의 소견과 느낌:
쟈켓을 안 입고 전곡을 악보없이 연주하며 주도하는 사람이 둘째아들 Paul Gulda입니다.
원래 본문에 올린 프로그램 피아노 협주곡 연주곡목이 21번인데,
이곡 연주한 굴다의 동영상이 없어서 23번으로 본문에 올렸었습니다.
그런데, 세대의 피아노 협주곡 뒷쪽 22:41~ 25: 19 까지
아버지 굴다가 즐겨 연주하던 21번 2악장의 주제부분이 잠깐 나오면서
굴다 형제의 인스프레숀 카덴짜가 아버지를 연상시키는 환상적 부분입니다.
또한 Martha Argerich 가 14세에 비엔나에 유학와서 프리드리히 굴다의 제자가 되었을 때,
아직 태어나지도 않었던 선생님의 아들형제와 오랜 세월이 지나 같이 연주하는 모습에서
평소의 연주때 보다 인자한 모성이 곁들인 모습 또한 인상적입니다.
윗부분 모짜르트의 "세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
(Mozart Concert for 3 pianos, Argerich, Gulda bros, Arming NJPO)
카덴짜에서 나오는 주제 멜로디는
Friedrich Gulda가 연주한 Aria 에서 완연히 찾을 수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연주를 비교해보면,
솔로의 Friedrich의 연주는 아주 자유자재로 자신을 펼쳐나갔습니다.
그것에 대조해 세대의 피아노 연주에서는 주고 받으면서 주제 멜로디를 반복했다고 할수 있겠지요...
세 연주자가 주제를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연주하는 것이 이곡의 별미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언젠가 Friedrich이 연주했던 Aria를 들었던 청중은 이 세사람의 연주에서 더욱더 감흥이 높았을 것입니다.
카덴짜에서 다시 모짜르트 원곡으로 이어지는 라이트 톤(이끈음)을 맡은 Paul의 모습은
가히 그의 전도를 보여 주는것이 었다고 느껴집니다.
이때로 부터 7년이 지난 Paul Gulda는 자신의 연주세계가 완연해졌습니다.
(참조:다음장에 올린 바흐의 연주를 보면서 확실히 느꼈습니다.)
(본문계속)
프리드리히 굴다가 1990년 두아들과
잘츠캄머굿 Attersee호수에서의 모습이 이들 삼부자를 대표로 보여주는 것이다.
죽기 10년전 60세에
두아들과 같이 연주활동을 왕성히 하던 행복이 넘치는 모습을 보면,
그가 성공한 연주자이자 아버지로서도 성공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 비엔나 오기 직전에
명동에 있는 중앙우체국 근처 옛날 중국대사관 앞에있는 판가게에서
굴다가 연주하고 클라우도 아바도가 지휘한 모짜르트 협주곡 테이프를 사가지고 왔었다.
그러니까 한국서 부터 그의 연주를 좋아했었다.
( 2010년에 그곳을 들렸더니, 그 가게가 없어져서 섭섭했다)
유학 생활비로 비싼 원판이나 CD를 쉽게 금방 사기가 어려울 것을 생각하고
이외에도 기본적인 것들을 준비했던것이다.
위의 사진을 비엔나에와서 메스콤에서 종종 보면서,
바로 옆집 아저씨 같이 그를 생각했었다.
거리를 다니다 그의 음악회포스터를 보고는
언젠가 실제로 그를 만나서 인사를 나누었던 것처럼 반가움이 들었었다.
이런 감상이 그를 떠올리면 항상 일어 났었다.
인희 후배 여기호수가 어디에요?
잘츠캄머굿에 있는 굴다가 머물던 아터제( Attersee)호수 같은데요...
이번에 제가 머물렀던 호수는
케른튼주에 있는 밀스톄터제( Millstaettersee)에요.
아주 아주 오래전 서기 800년부터 이곳이 이루어진 전해오는 얘기가 있어요.
그때 이곳에 기독교를 전파하기위해서 찾아왔던 Domitian 선교사가
우상선배하는 것을 막기위해 1000에 달하는 우상을 이곳 호수에 던졌다고 해요.
그래서 그때부터 밀스테터제 라고 불리워지고 있고요.
이런 연유로 이곳은 가톨릭 성지이기도 해서
순례자들이 많이 찾아오고
순례자들을 위한 여러기획이 있더라고요..
성 도미티안의 조각이 현대작품으로
1994년 Giorgio IGNE 교수에 의해 제작되어 호수에 세워져 있어요.
낮에는 물론 호숫가를 거닐다 보면 저절로 만나게 되고요,
한 밤중에도 조명빛에 신비롭게 비치어서
이곳의 심볼이 되고 있더군요...
하루는 호수 유람선을 2시간 반정도를 탔었어요.
물이 얼마나 맑던지요... 넓이도 넓어서 바다 같더라고요.
(본문 계속)
휴가차 처음 가본 지역을 둘러보다 거리에서 문화 포스터를 훑어 보는데,
" Klingende Kathedlale".... "음이(소리가) 울리는 주교성당" 이라는 타이틀이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바로 모짜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과
안톤 부르크너 심포니 5번이 였다.
특히 연주자 이름을 보고 매표소로 달려갔다.
문닫기 10분전이었다.
음악회 당일에 장만한 프로그램중에서..
동행과 같이 나란히 앉지 못하고 앞뒤로 앉는 떨어진 표를 아슬 아슬 구했지만,
일단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연주공연장인 밀스타트 수도원 성당을 미리 보려고 찾아 갔다.
이 성당은 1070년부터 설립된 베네딕트 수도원으로,
오스트리아가 중요한 건축양식으로 간주하는 문화재 기념물 수도원성당이다.
12세기의 고딕양식부터,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이 골고루 갖추어진 귀중한 자료가 넘치는 중요한 건축물이다...
라는 설명이 들어간 성당 안내문.
측면 경당에 놓여있는 쳄발로가 이성당의 음향력과 잘 어울릴 것같다.
답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과연 연주당일날의 음향이 어떨지 궁금해진다.
연주 당일 에..
연주시작전에 성당안에 들어가니
피아노 조율사가 마지막 점검을 ...
전날 낮에 왔을 때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는 것을 느끼면서
좌석을 찾아갔다.
연주가 시작되자
청중은 숨한소리도 내지않고 성당안은 음악만이 살아움직였다.
포스터에 적혀있듯이 " 음이 울리는 주교 성당" 이라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었다.
Mozart의 음악은 정말 이런 규모의 성당에서 연주 하는 것이 어울린다.
여기 보다 규모가 훨씬큰 비엔나 스테판 돔성당에서
모짜르트의 "대관식 미사곡"을 듣고,
연주하는 성당 규모에 비해 소리의 나약함에 아쉬었던 기억이 떠 올랐다.
모짜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1번의 2악장은
영화 엘비라의 주제음악으로 많이 알려진 곡이다.
그러므로 클래식 전공자들이 영화 상영이후 연주하기를 꺼리는 경향도 있다
이번 연주는 그러한 우려를 물리치듯이
피아노의 멜로디부분을 오케스트라 연주가들이 삼연음부 반주로 차분하게 한소리처럼 받쳐주었다.
독주자는 절제와 증폭을 완벽하게 구사했다.
독주쉬는 부분에서 호흡을 가다듬듯이,, 스스로를 지휘하듯이
한손을 허공으로 올렸다 내리는 모습이 과장이 안된 그만의 음악표현 연장으로 인상적이었다.
음악은 소리의 예술이다.... 협주는 더구나 혼연일체의 예술이다.
화협된 소리가 성당안 곳곳에 울리는 즉시 녹아 스며드는듯하다.
바로 다음 이어지는 소리가 깨끗하게 그대로 선율을 날려준다.
드디어 연주가 마쳤다.
아무도 소리를 내지 않는다.
Paul Gulda도 잠시 자리에 그냥 앉아 있는다.
그가 한 몇초 그러는 동안 모두 한마음으로 지켜본다.
그가 일어선다.
장내는 거듭된 박수로 그를 환호한다...
Paul Gulda님!
앞으로도 변함없이 당신의 KLANG(음)을 들려주세요.
당신의 아버님도 장하다고 하실 거에요.
오늘의 감격을 오랫동안 간직하겠어요.
감사 합니다.
옥인씨~
이번 음악회는 성당에서 조촐하게 열린 것 같네요.
동네 분위기나 사람들이나...
특히 책읽는 여인은 명화 속 한 장면 같구요
옥인씨의 옷차림은 또 왜그리 로맨틱한지요....
예술의 도시 비엔나에서 옥인씨의 삶도 하나의 예술로 보이며
생각하는 것을 곧바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에너지가 부럽습니다.
아들 Gulda의 피아노 음악을 통해, 그 아버지 Gulda를 느끼고
만난 단상....잘 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