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회 | 포토갤러리 | - 게시판담당 : 김경희 - 인일13 다음카페 가기 - 13회 아이러브스쿨 가기
나는 인천시 동구 금곡동 42번지에 살았다.
배다리에서 큰 길로 쭈~욱 문화극장을 지나 한 참을 올라오다가
왼쪽 길로 더 가면 동명국민학교가 나온다.
동명국민학교로 가는길에는 내 기억에 자갈이 깔려있었는데..
거기서 가끔 하얀 모시한복을 입은 망태? 할아버지를 만났다.
아마 그 할아버지는 애꾸눈이셨고 하얀 턱수염도 있으셨는데..
철없는 아이들은 왜그랬는지 할아버지를 놀려대며 돌을 던졌던 것 같았다..
그러면 뒤돌아서 호통을 치시면 와르르 도망가는 재미에 그랬는지...
지금 생각하면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큰 길가 오른쪽으로 "조약국"집을 끼고 골목으로 들어가면
빨간 벽돌로 된 큰 공장이 있었는데..
나는 그게 "바늘공장"이라고 알고 있다.
거기서 다시 우측으로 난 골목으로 돌아서면 막다른 골목의 맨 끝집....
그 골목에서는 이 맘때 한 여름 밤이면 아이들이 하나 둘 나와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와 '술래잡기'로 왁자지껄 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 앞집에는 명애네, 그 옆에는 봉규네..
그 집에 셋방살던 희숙이네선 엄마 아빠 소꿉놀이도 많이 했다.
낮에는 말까기, 고무줄놀이를 했는데..
명애랑 라이벌 관계였던 아이(이름이 생각안남)와는 내 팔을 한 짝씩 붙잡고 잡아당기며
서로 자기랑 놀자고 싸우곤 했다. 지금 그 애들은 무얼 할까...
우리 집엔
아버지가 12만원이랬던가...를 주고 새까만 수도피아도를 사 주셔
젓가락 행진곡과 웨딩마치 연습을 얼마나 했던지...
이사갈 때마다 짐덩어리였던 추억의 피아노... 결국 고물로 폐기되었다.
가운데 마루를 두고 안방과 건너방이 있었고,
안방에 쪽문으로 통한 부엌은 문지방과 턱이 왜이리 높았는지...
그리고 사랑방에는 종범이네가 살았다.
앞마당에는 가운데 화단을 두고 수돗가와 장독대가 있었고
우리는 겨울이면 마당에 물을 겹겹이 뿌려 얼리고는
장독대를 짚고 롱스케이트를 타다가..화단을 가운데로 코너링 연습도 하곤 했다.
그리고 안채 맞은편에는 우리가 부르기를 "마루방"이라는 곳이 있었는데
거기는 나무쪽마루로 깔려있었고, 피아노가 있었으며, 늘 시원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에 응접실이었나 보다.
대문쪽으로 나가면 대문옆에 화장실이 있었다.
대문은 나무 빗장으로 잠그게 되어 있었는데.
창영초등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 "고 xx "(별명 고구마?)라는 놈이
나를 계속 쫒아오며 "송충이~~ , 송사리~~" 라고 외쳐대며 놀려대서
나는 얼른 집에 뛰어들어와 대문 빗장을 걸어 잠그던 생각이 난다.
그러면 마루에 나있는 창문 창살에 들이대고 소리치며 다시한 번 놀려대고 가버리곤 했다.
부장니임!
그림까지 그려 올려놓으시다니.........
이 글을 읽으니
주안에서 살았던 어린 시절이 생각납니다.
우리 집엔 우물이 있었고 닭도 길렀었지요.
우물가에 관한 추억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오이꼭지를 파서 두레박 만들고 꽃잎 따서 비눗물로 색깔 바꾸고(이른바 산성,염기성 실험이죠.)...
소꿉이 귀했던 시절이어서 밭에서 플라스틱 소꿉을 1개 주웠을 때 너무 좋았던 기억도 납니다.
이런 시절을 지금 도시 아이들은 갖고 있지 못해요.
매일 학원에 끌려다니고 공부에 지쳐해서 불쌍해요.
내일은 옛날 아이들 이야기나 해줘야겠어요.
추억여행 잘 다녀왔습니다.
목요일에 뵈어요.
아참!
제 생각으로는'고구마' 라는 별명의 남자아이는 틀림없이
미섭언니를 흠모했을 겁니다. 저랑 같은 성씨라서 제가 압니다.
" 옛날이나 지금이나 애들은 사랑 표현에 너무 서툴러.
좋으면 좋다고하지 왜 놀리고 못살게 구냐 말이야.......
종범이도 혹시 미섭언니를 좋아한 거 아닌가? "
하고 저는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이 밤에.
전 15기 후배입니다 동창회모임은 참석하지 못하는데 친구통해 가끔 소식은 듣다 오늘 우연히 제가 살던 동네라서 넘 반가와 글남기네요 잊었던 추억이 새삼 가슴 벅차고 그립네요 전 그곳에서 1975년 주안으로 이사갔어요 저는 바늘공장 사장집과 붙은 골목 첫번째집 이었어요 어쩜 그리 기억력도 좋으세요 명애 희숙 봉규 저도 생각이 나네요 물론 저보다는 언니들이었어요 그골목 중학교 졸업후에 한번도 가보진 않았지만 새삼 그립네요 그때 엄마한테 언니네 부모님들 좋으신 분이란 말씀이 기억나네요 언니 동생도 있었던거로 기억나네요 인천모임이 있을때 한번 가보고 싶네요 언니 덕분에 잠시나 마 옛 추억을 떠올리며 미소짔네요
송미섭 후배님
깊은 감동으로 그시절을 그려보았습니다.
같은 동네에서 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고향 인천의 지명과 얘기들이 참으로 다정하게 닥아오는군요.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