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는 발레 공연을 봤습니다.
2012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입니다.
현재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발레인들을 초청하여
그들의 아름다운 기량을 선보이는 자리였습니다.
미정으로부터 초대를 받았습니다.
그녀의 딸,조수연이 출연을 하기 때문입니다.^^
배너의 무용수 중 여자가 조수연입니다.
이번 포스터는 수연이가 대표되었던 거죠^^ㅎ
여러 명이 발레를 선보이는 갈라콘서트의 형식입니다.
많은 사람이 같이 출연하는 군무를 시작으로
남녀가 한쌍이 되어 춤을 추는 <파 드 되>, 그리고 솔로가 들어 있었습니다.
오늘 저는 조수연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겠습니다.
조수연은 1부와 2부에 다 출연을 했는데
1부는 로미오와 줄리엣 중에서 발코니에서의 <파드되>를 선보였고,
2부에서는 현대적인 분위기의 <Wave of Spring>을 보여 줬습니다.
수연이와 함께 한 파트너는 중국 출신의 왕이(Wang Yi)입니다.
이들은 미국 오클라호마주의 <Tulsa>발레단에서 호흡을 맞춘 커플입니다.
1부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발레는 고전적인 형식의 발렙니다.
줄리엣이 발코니에서 로미오를 생각하며 애틋함과 사랑함을 표현하는 동작부터
저는 그만 그녀에게 반하여 발레에 몰입이 됩니다.
백조의 호수처럼 짧은 발레복이 아니고 하늘하늘한 미디 길이의 흰 드레스가
수연이에게 무척이나 잘 어울렸고
발코니에서 내려와 로미오를 만나는 장면은 가히 천사의 동작이요,표정이었습니다.
프로코피에프의 몽환적인 음악에 맞춰서 이들은 아름답고 멋진 동작을 유감없이 만들어 가면서
그들의 사랑을,그들의 안타까움을 너무 잘 나타내 주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발레를 보면서 저는 제가 마치 줄리엣이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지게 되는데
그것이 결코 싫지 않았습니다.ㅎㅎㅎ
그리고 2부에서 선보인 <봄의 물결>에서는
두 남녀가 초록의 의상으로 나왔고 무대배경까지 연녹색의 분위기로 만들어 줘서
의상과 무대배경이 아주 조화로와 보였습니다.
무르익는 봄의 색과 생명이 피어나는 역동을 아주 힘있게,그러나 섬세하게 잘 나타내 주었습니다.
수연이의 동작은 마치 한 마리의 새 같기도,아름답게 늘어지는 수양버들 같기도 하였습니다.
유연하면서도 힘있는 동작과 그녀의 세심한 표정은 왕이와 잘 어우러져서
봄의 만물이 막 피어나는 모습처럼 환희가 느껴졌습니다.
이 작품은 수연과 함께 호흡을 맞춘 왕이가 안무를 했다고 하고
이날 세계 초연인 셈이 되었다고 하네요^^
아아...지금도 어제의 춤에 빠져서 헤어나기 싫을 정도로 기분이 참 좋습니다.
무릇...사람의 몸으로 이렇게 멋드러지는 기분을 표현하다니요...
가히 참으로 신기하고,참으로 위대하단 생각이 듭니다.
발레는 언제 봐도 너무 우아하고 아름다워서 거기에 그만 빠지게 됩니다.
어제 역시~~결코 예외가 아니었지요...
그렇게 세세하고 아름다운 동작을 표현하게 위해서
그들이 연습하고 연습하는 그 노력과
내면적인 아름다움을 나타내려고 그들이 애쓰는 태도가 짐작이 되어서
더욱 더 발레하는 그들을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되더군요^^
조수연!!!
오래 전부터 봐왔던 내 친구 딸입니다.
인천에서 무용을 시작했습니다.
엄마는 밥을 잘 먹으라고 발레학원에 보냈다는데
여기서 좋은 발레선생님을 만났고
(김혜영원장님,아직도 부평에서 발레를 가르치는 훌륭한 분입니다)
발레학교의 메카인 선화학교에 들어 갑니다.
(서울이 아닌 곳에서 이 학교가기 만만치 않다고 해요^^ㅎ)
수연이 중3 때에 스위스 로잔콩쿨에서 1등을 했고
이어서 불가리아 바로나 콩쿨에서 다시 수상을 합니다.
그리고 캐나다 국립발레학교에서 장학금으로 공부를 하고
쉬투트가르트 발레학교를 거치게 됩니다.
엘리트코스를 밟았지요.
그 후에 라이프찌히발레단을 시작으로 미국의 털사발레단에 갑니다.
거기에서 꼬다(군무를 추는 것을 말하나 봐요)를 넘어서서 주역으로 발탁을 받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을 <프린시펄>이라고 하더군요^^
프린시펄이 되는 것이 쉽지 않은 과정이고 기회라고 하네요^^
이제 당당히 수석무용수로서 주역의 자리를 거머쥡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 털사보다 규모가 큰 <휴스턴>발레단으로 자리를 옮겨서
이번 휴가가 끝나면 이들과 합류한다고 합니다.
수연이는 찬찬히 발레의 코스를 잘 밟고 있습니다.
그러나 수연이가 무엇보다 참으로 장한 이유는
발레를 너무나 사랑한다는 점입니다.
수연이는 연습 벌레라고 소문이 나 있습니다.
연습을 하고 있으면 그렇게 신나고 즐겁다고 하더군요^^
그러니 잘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제 이미 전문발레단에서의 경력이 깊어져서
기량 뿐 만 아니라 그녀가 표현하는 모든 것이 정점에 달한 느낌입니다.
너무너무 우아해서 눈물이 핑 돌 정돕니다.
그리고 파트너와의 호흡도 기막히게 척척 맞습니다.
수연이는 발레를 그렇게 잘 하면서도 너무 착해요^^
여름마다 휴가 차 한국에 들어오면
그녀가 어릴 때 배웠던 부평의 조그만 발레학원에 꼭 간다고 합니다.
어린 친구들을 돌봐주고 한 수 가르친다고 해요^^
발레 강의를 하기 전에 아이들 머리를 빗겨주고, 옷입은 모습도 봐준다고......
그래선지 어제도 학원의 어린 학생들이 수연이에게 환호성을 보냅니다.
어제 그 학원의 원장인 김혜영님도 수연이를 칭찬합니다.
지금 유명해졌어도 여전히 밝고 환한 모습으로 학원을 찾아 준다구요...
너무 순수하고 착하다고~~잠깐이지만 술회를 하더군요^^
이점 또한 수연이를 생각하면서 마음에 감동이 이는 부분입니다.
무용은 말할 것도 없이 잘 하는데 착하기까지...대단한 거죠^^
조수연!!!
너는 끝까지 발레를 잘 할 것인데
뛰어난 발레의 기량과 더불어 맑고 순수하고 강직한 너의 심성도 더욱 잘 간직할 수 있음 좋겠다.
아무렴~~~~잘 하고 말고....
그래서 나는 수연이를 무한하게 사랑하겠다!!!
어제 발레를 보고 끝나서 집에 오는 시간에는
비가 주룩주룩 내렸습니다.
그 비는 긴 가뭄 끝에 오는 것이어서 더욱 반갑고 고맙기까지 했습니다.
비가 내리는 것은 어제의 발레단의 공연에 좋은 축복이기도 한 것 같았습니다.
내년에도 이 발레공연을 잘 지켜보고 싶습니다.
수연엄마. 미정아!!!
어제의 초청...정말 고맙다.
조수연인 네 딸~~참 장하고 대단해.
발레....잘 봤어.
난 아직~~어제의 감동에 빠져 있단다.
오늘은 하루 종일 빗소리와 함께 그 감동에서 깨어나지 않을 거야........^_^
어제 우리 친구들은 저와 김명숙 그리고 이숙과 그녀의 딸이었습니다.
이미숙아...어제 어머니기일 잘 했니?
너무 중요한 일이라 못왔지?
우린 이렇게 잘 봤단다.....^_^
안녕하세요?
유혜동선배님!!
지면상으로나마 반갑습니다.
미정이로부터 말씀 들었습니다.
공연을 보셨군요^^
수연이가 참 잘 하죠?
어찌나 우아하고 세세하게 잘 하던지요...
수연이는 무대에서 그 기량을 완벽하게 나타내고 있더군요^^
발레리나의 엄마답게 미정인 참 멋진 친굽니다.
겉모습 뿐만 아니라 내적으로도요...
늘 노력하며 자신을 연마하는 부분이
저랑 친구지만~~~
제가 그녀에게 존경을 보내게 되기도 하죠^^.ㅎㅎ
그날 공연을 마치고 로비에서 인사를 드렸어야 하는데
미처 뵙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다음 기회에 뵙게 되면 꼭 인사 올리겠습니다.^^
어줍잖게 쓴 글인데 읽어주셔서 송구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다시 한 번~~~~~더~~~고맙습니다!!
이미정 후배~
정말 장한 어머니네요..
이렇게 딸을 예술의 길로 인도하고 뒷바침하는게 보통 어려운게 아닌걸 잘알아요.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따님이 참으로 매력적으로 생겼어요.
비엔나에 공연이 있으면 꼭 보러 갈께요.
앞으로 더욱 더 큰인물로 성장하기를 기원해요.
이 인희 후배~
어쩌면 글을 이렇게 감칠맛 나게 잘 쓰세요?
제가 주말에 출타중에
스마트폰으로 잠시 보면서 감탄했어요.
지금 귀가해서
커다란 화면으로 보니
제가 그곳에 있었던듯... 실감이더 나네요.
좋은소식 전해주어서 고마워요.
에고고...부끄럽습니다.
늘 그냥 한달음에 휘리릭 쓰고 있는 걸요^^
그래서 오타도 많고 글의 문맥이 매끄럽지 못할 때가 많아요^^
많이 반성하곤 해요^^ㅎ
그럼에도 늘 이렇게 안좋은 습관으로 내리 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수연의 공연을 보고 와서는
그녀의 아름다움에 반해서 한참을 멍하게 있었으며
어떻게 수연을 잘 표현할까 골똘하게 생각하다가
요만큼이라도 써 봤지요^^ㅎㅎ
선배님은 스위스 잘 다녀오시고
그라츠에 가신다고 하셨죠?
그곳...가고픈 곳이에요^^
몇 년 전에 쥐스킨트의 소설인,<향수>를 읽고
다시 영화로 만든 것을 봤었는데요,
거기서 주인공안 장 그르누이가 그라츠로 떠나서
꽃을 따다가 증류하고 추출해서 세계최고의 향수를 만드는 장면이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프랑스의 남부라고 했는데(그라쓰였나?ㅎㅎ)
선배님이 가신 다는 곳이
혹 그곳 그라츠가 아닌가 싶네요^^
더운 날씨에 출장 잘 다녀오시고 즐거움을 만끽하세요^^
늘 고맙습니다!!!
미정 후배~
모녀의 사진을 보니 실제로 보는 듯이 반가워요
어제 아침 전화 주었을때,
제가 급히 일나가야 해서 미정후배와 통화를 여유롭게 못하고 마친후,
하루 종일 일하면서
미정후배의 음성이 귓가를 스쳤어요.
오늘은 며칠간 연이은 일을 마친후
집에서 푸근히 쉬고 있어요.
지금 라디오에서 글렌굴드의 곡이 나오는데,
웬지 미정후배에게 글을 보내고 싶어서 몇자 적어요.
예술의 길을 가는 딸을 바라 보는 여늬엄마들 보다
훨씬 여유로움에 존경의 맘을 보내요.
따님이 점점 성숙해지면서
언제인가는 독자적인 길로 갈거에요.. 아마 이미 그길로 들어섰을 수도..
현대는
곳곳에 너나 나나 모두 현대무용이라는 이름아래
의아한 안무가 난무하고 있지요.
그런중에도 다행스러운 행사로
비엔나에는 매년 '임풀스탄츠' 라는.. 현대 무용제가 열리고 있어요.
세계적으로 명성을 올리는 무용가들의 공연과 워크샾이 열린답니다.
가끔 공연을 보러 가면..
뜨거운 열기속에
육체가 정신을 끌어내는 혼연의 무용을 보면서
숨이 턱 막힐 때가 있어요.
(참조: 비엔나 국립발레단 현대무용 공연후기_STEPS AND TRACES...... 바로가기 클릭)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따님의 고전발레는 지금처럼 유지한다면 그대로 볼수 있겠지만요....
혹 현대무용을 추구한다면,
현대의 양상을 조화와 승화시키는
수연양의 무대를 직접대하는 순간을 바래보아요.
특히 따님이 스스로 만족하는 예술인이 되기를 기원해요.
수연양에게도 전해 주세요~
(부담갖게는 말고요 ㅎㅎ)
Glenn Gould (1932-1982)
너무 주관적이고 독특한 스타일, 그리고 한정된 레퍼토리라는 점에서 그를 20세기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로 보기 힘들다는 의견이 있었는가 하면, 그래도 그가 20세기 후반의 모든 음악인들에 미친 지대한 영향도 있고, 주관적이라 하더라도 피아노를 ‘너무나 잘 치는’ 연주가이므로 20세기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의 대열에 꼭 껴야 한다는 의견 등 그에게 너무 많은 수식어들과 논란이 끊이질 않는다.
그는 너무 자주 신경증적인 ‘가짜 통증’을 호소했다. 그래서 정작 치명적인 ‘진짜 통증’이 왔을 때 의사는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그는 죽음을 맞이하게 됐다. ‘거짓말쟁이 소년과 늑대’라기 보다 ‘가녀린 영혼과 죽음’에 가까운, 너무나 아까운 죽음이었다.
굴드가 그토록 기인처럼 보였던 이유도 이제는 너무나 명백하다. 그는 그야말로 진정한 예술가였고 순수한 사람이었다. 그는 단순한 연주자가 아니라 음악에 대한 분명한 자기의 입장과 소신을 가지고 있었으며, 자신의 해석을 옹호하기 위해 당시의 풍토와 맞서 싸워 나갔다. 이런면에서 그는 현대적 피아노 연주와 해석의 새로운 선구자 였다. 그의 이러한 모순과 독특한 면모는 당시 사람들의 호기심을 사기에 충분했고, 그에게 매료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그에게 부정적 시각을 가진 사람도 있을 수 있겠으나, 20세기 가장 위대한 연주자 중 한 사람이었던 그 덕분에 우리는 더욱 풍부한 음악 유산을 누릴 수 있게 됐고 또한 우리가 보는 세상을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는 도전을 심어준 자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늘 모순 투성이었던 사람.
사람들과 멀어지고 싶어하면서도 사람들이 관심을 갈구했고, 추위를 싫어했지만 북쪽 지방을 동경했으며, 비행기 사고를 무서워해서 비행기를 타지 않았으나 자동차를 거칠게 몰았던 사람.
무대와 청중이 싫어서 스튜디오 녹음을 고집했으나, 실황이 휠씬 아름답다는 평도 있으며 낭만주의 음악을 꺼려했으며서도 젊은 시절 연주한 그의 쇼팽 연주는 굉장히 낭만적이고 아름다웠다고 사람들은 기억한다 - 개인적으로 굴드가 쇼팽을 연주하지 않은것이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 피아니스트였지만, 다른 일에 더 열중했던 인생자체가 모순덩어리였던 그.
그는 이러한 자신의 광기와 고독을 음악으로 풀어냈던 것이다.
과거의 위인을 틀에 넣으려는 애쓰는
더우기 수수께기 같은 그를 두고 음악학자나 일반인들의 관심을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이 자체를 즐기면서도, 나를 그냥 내버려 둬!! 라는 다소 신경질적인 목소리를 낼 것 같다.
유리처럼 맑고 아름다우나, 깨지기 쉬운 영혼의 소유자 글렌굴드.
1932년 캐나다의 토론토에서 음악가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기 글렌은 태어나 사흘째 되는 날부터 손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옆에 사진은 태어난 이듬해에 찍은 사진.
그의 아버지 버트말에 의하면
글렌이 태어나 사흘째 되는 날, 손가락을 계속 움직였어요. 마치 음계 연습을 하듯이 바로 이렇게요.(글렌의 아버지는 손가락을 꿈틀거리며 시범을 보였다) 팔을 앞뒤로 흔들며, 손가락은 이렇게 하면서요. 글렌이 음악적이라는 걸 보여주는 것이었죠. 그래서 의사가 그런 말도 했어요. "이 꼬마는 이담에 의사나 피아니스트, 둘 중 하나가 되겠군."
어쩜 이 의사의 말은 두가지 전부 실현되었다고 볼 수 있다. 피아니스트로 그는 위대한 업적을 남겼으며, 의학적으로 전문가 뺨치는 책을 읽었고, 늘 스스로 자가진단을 하고자 했다. 그럼으로써 그는 당장의 위기는 면했으나 장기적으로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 갈 결과를 초래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이 작곡가 그리그(Edvard Grieg)와 외가쪽으로 진척이 된다고 했으나, 확실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아마추어 바이얼리니스트인 아버지와 직업 피아니스트를 꿈꾸었던 어머니를 두었다. 그의 어머니는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아들이 이루어 주길 바랬고, 굴드는 3세때부터 악보를 읽을 수 있을 정도의 재능을 보이기 시작했으며 5세때부터 작곡을 시작하였다.
글렌의 아버지 말해 의하면, 그는 어렸을 때 부터 자신의 손가락에 유별히 신경썼으며, 손가락이 다칠까 봐 공놀이 따위는 하려고 들지도 않았다. 손가락이 다쳐서는 안된다는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이다.
1942년, 10세가 되던해에 어머니로부터 피아노를 배웠으며 토론토 왕립 음악학교에서 정식으로 음악공부를 시작했다.
그 곳에서 알베르토 게레로(Alberto Guerrero)에게 피아노를 배웠고 프레데릭 실베스터에게 오르간, 그리고 레오 스미스에게 음악이론을 배웠다.
그의 처음의 스승이자 마지막이라고 할수 있는 게레로에게서 그의 평생의 습관이라 할 수 있는 낮은 의자에 앉아 건반과 수평이 되도록 손가락을 유지하는 법, 어깨에서 판을 통해 전달된 에너지를 사용하여 손가락의 민첩함을 강조하는 법 등 글렌 특유의 피아노 테크닉을 익혔다. 그의 어머니는 그런 자세를 소름끼치게 싫어 했지만, 그의 아버지는 그를 위해서 특별히 의자를 만들어주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바닥에서 꼭 14인치 높이의 이 의자는 글렌이 평생 동안 피아노를 연주할 때 사용한 의자이다. 낡아서 뼈대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글렌은 이 불편한 의자를 바꾸려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1944년, 음악원 수료와 함께 키바니스 페스티벌(Kiwanis Music Festival)에 참가하여 '피아노 트로피 경연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였다. 이듬해 1945년에는 음악학교의 독주자 종합시험을 통과하였으며 1946년에는 최고 성적으로 졸업장을 받았다. 음악학교에서 "베토벤의 4번 협주곡"을 연주하여 독주자로 데뷔하게 되었으며 다음 해인 1947년에는 스카를랏티, 베토벤, 쇼팽 그리고 리스트로 짜여진 프로그램으로 굴드의 공식적인 리사이틀과 함께 1950년에는 CBC를 통해 그의 리사이틀이 첫 라디오 방송이 되었다.
1955년 1월 11일, 굴드의 뉴욕 데뷔연주회가 이루어 졌다. 데뷔연주회와 함께 CBS와의 녹음계약을 맺었고 같은 해, 6월에 CBS스튜디오에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으로 그의 첫 레코딩을 하였다. 이 앨범은 레코드 역사상 가장 유명한 음반 중의 하나가 되었고 발매 당시에도 엄청난 판매량을 기록하며 굴드를 국제적으로 유명한 연주자로 만들게 되었다.
옆에 사진은 <골든베르크 변주곡>에 맞취 지휘하듯 손을 내저으면 춤울 추고 있는 굴드. 1955년 <골든베르크 변주곡>을 녹음할 때의 모습이다.
이 당시 기자들이 녹음실에서 초청되어 글렌을 지켜보았고, 그는 기분 내키는 대로 인터뷰를 해서 기자들에게 보답했다.
한 기자는 이렇게 표현했다.
그것은 간단히 말해서 끝도 시작도 없는 음악. 사실상 클라이맥스도 종결부도 없는 음악, 보들레르의 애인들처럼 "구애받지 않는 바람의 날개위에 가볍게 얹혀 있는" 음악이다. 그때 음악은 직관적 통창력으로 통합되며, 섬세한 솜씨와 정밀한 관찰에서 나온 통일성은 대가의 손길로 완숙해져서, 예술에서는 참으로 드물게도, 잠재력의 정점에서 한껏 기뻐하며 그 무의식적인 구상이 영상으로 나타나게 된다.
1957년에 굴드는 냉전시대 캐나다와 북미 최초로 러시아에서 2주간의 콘서트를 가졌다. 러시아 콘서트 중에서 어느 하루 , 글렌은 손으로 쓴 쪽지를 받았다.
선생님, 관현악단 없이 바흐를 좀 연주해주십사 간청드립니다. 우리는 16일 연주회에 참석할 기회를 얻지 못했답니다. 길에서 오랫동안 기다렸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답니다!
당신을 숭배하는 러시아사람 올림.
글렌은 그래서 음악원에서 학생들을 위해 다시 연주해 주었다. 무대연주를 무척이나 싫어했던 글렌도 러시아에서의 연주는 꽤나 만족스러워 했다.
이를 시작으로 처음으로 유럽 콘서트 투어를 가지면서 청중과 비평가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또한, 이 투어에서 굴드는 "베토벤의 3번 협주곡"을 카라얀의 베를린 필과 협연하였다.
1960년에 굴드는 레너드 번스타인, 뉴욕 필과 함께 미국 텔레비젼에 처음으로 출연하였고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캐나다의 TV프로그램에 정기적으로 출연하기도 하였다.
1964년 4월 10일, LA에서 피아니스트로서 마지막 연주회를 가진다. 공식연주회에서 이토록 빨리 은퇴한 것은 피아니스트로서의 활동이 그의 많은 다른 관심사들을 실현하는데에 방해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실 굴드는 그 자신의 본업이 피아니스트라고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는 작가로서의 활동, 방송활동, 작곡, 지휘, 그리고 기술적인 갖가지 시도들에 피아니스트로서의 활동과 똑같은 열정을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1981년 굴드는 재녹음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깨고 26년전에 녹음했던 장소에서 골드베르크변주곡을 두 번째로 녹음했다. 굴드는 변주들이 서로 별개의 것이 아니고 보다 큰 전체 속에서 하나의 리드미컬한 파동, 화성, 그리고 근원적으로 동일한 하나의 이데올로기를 가진 개체들로 해석함으로 이전의 녹음과는 전혀 다른 두 가지의 해석을 남겼다. 굴드는 기술 (테크닉이 아니라 테크놀로지라는 의미에서)이 만들어주는 가능성을 언제나 민감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첫 번째의 녹음이후 25년간 이루어진 녹음 기술의 놀라운 발전은 굴드가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재녹음하도록 결심하게 하는 데에 중요한 동기를 부여했다고 생각된다. 이 음반은 그의 마지막 음반이 된다.
1982년 10월 4일, 토론토에서 51세의 이른 나이에 뇌졸증으로 사망하였다.
참고 : 피터 F.오스왈드<글렌 굴드>中
SONY의 글렌 굴드 공식 홈페이지
ⓒ 라한다 2006.12.22
악기를 연주하는 음악가 중에는 아마도 피아니스트가 가장 많을 거예요^^
그럼에도 우리의 마음에 깊이 남는 피아니스트는 그리 많지 않을 거구요....
저는 글렌 굴드를 안 지는 다른 피아니스트보다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그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들으면서 참으로 기이한 분도 있구나...생각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연주하는 골드베르크에 점점 빠져 들게 되더군요^^
너무 일찍 작고해서 안타깝지만 그의 연주들에 흥얼거림이 들어가 있어도
모두 주옥같다는 생각이 든답니다.
올 하반기에는 우리나라에서 골드베르크변주곡을 연주하겠다는 분이 있어요^^
글렌 굴드와 바흐의 피아노곡에 쌍벽을 이룬다는 캐나다 오타와 출신의
<안젤라 휴이트>라는 피아니스트지요^^
안젤라 휴이트는 바흐의 클라비어평균율과 골드베르크변주곡,프랑스모음곡, 영국모음곡 등을
녹음하면서 그 음반들이 모두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라 있다고 합니다.^^
저에겐 아직 음반이 한 장도 없지만요....ㅠ.ㅠ
.오랜 시간 바흐의 피아노곡에 공을 들인 피아니스트라고 하더군요^^
이름하여~~~바흐 스페셜리스트입니다!!
안젤라 휴이트는 1958년에 태어난 여류피아니스트예요^^
(저와 동갑...ㅎㅎㅎ)
이번 이 여류피아니스트의 골드베르크변주곡을 일찌감치 예매해 놓고 있는 상탭니다.
그래서 글렌 굴드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자주 듣고 있어요^^
김옥인선배님이 이곳에 이렇게 올려주시니 더욱 감사하기만 합니다.
나는 발레하는 사람을 딱 두사람 알고 있다.
한사람은 이미정의 딸인 조수연이고
또 한사람은 국립발레단에 있는 발레리노 이동훈이다.
동훈이 덕에 국립발레단의 공연을 더러 가고 있다.
이 친구는 엄마를 알고 있어서 알게 된 발레리노다.
동훈이가 중학생 때에 비보이를 하면서
성적이 자꾸 떨어지고 있는 터에 학교체육선생님이 발레를 시켜보라는 권유를 하고 있다고
고민을 했다.
그런 그녀에게 내가 강력하게 주장을 해서 발레를 하게 되었지.
(내가 돈 내는 거 아니라 그랬나?ㅎㅎ)
그리고 곧 바로 학교 앞 발레학원에 가서 동훈은 발레를 시작을 했고
동훈이는 내가 그 엄마에게 말한대로(그의 발레의 순차를..) 잘 되어서
지금은 국립발레단의 수석무용수가 되었다.
사람의 말이 이처럼~~~대단한 힘이 있다는 사실에 나도 떨릴 정도로 책임이 엄습하는 부분이란다.
작년엔 동훈이가 부상을 당했었는데 지난 번 호두까기 인형을 하면서 보니 괜찮던데 구체적으로는 잘 모르겠다.
올해는 상반기에 하는 그의 공연을 못갔는데
하반기의 공연은 다시 정신을 차리고 챙겨봐야겠다.
언제 수연과 동훈이 호흡을 맞추면 좋겠다.
그런 날이 올까?ㅎㅎㅎ
나는 발레부자다!!!
아무렴............^_^
<국립발레단의 무용수 이동훈과 그의 어머니>
이인희 후배님, 안녕하세요?
어제 저녁에
저도 극장 용에 가서
매력적인 수연양의 멋진 발레를 보고 왔어요.
그런데
인희 후배님의 글을 읽고 나니
여러가지로 모르던 것을 알게 되어
더욱 도움이 되었네요.
그 날 같이 간 친구와
열렬한 박수를 보내며
역시 수연양의 공연이 최고라고들 했답니다.
발레하는 딸을 둔 엄마답게
미정후배님도 키가 크고 늘씬하지요.
미정 후배님,
덕분에 좋은 발레 공연 잘 보았고
앞으로도 수연양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