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미영님과 같은 동산에서 여고3년을 함께 했던 동기분들께,

님들에게는 못잊을 친구라서 당연히 보내는 의식들에 참석을 했노라하시겠지만,

유가족들에겐 정말 많은 힘이 되었고 위로가 되었습니다.

이제 49재도 지냈지만, 아직도 그 이름만 떠올려도 가슴이 먹먹합니다.

하지만 최소한의 사람의 도리라도 해야겠기에 용기를 내어 11기 동기분들께 감사의 글을 올립니다.

저도 많지는 않지만 부부간을 죽음으로 이별한 분들을 위로한 경우가 있었지만, 그곳에 대부분 가족 친지들이었지

이번과 같이 고인의 많은 여고 동기생들이 자리를 지켜주고, 그마저도 부족해서 49재까지 찾아 위로한 경우는 보질 못했습니다.

유가족으로서는 정말 감사하면서도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집사람 이름 앞에 "고"자를  붙여야 할 줄 어찌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아침 잠에서 깨면 먼저 떠오르는 그리움일 줄 어찌 알았겠습니까?

해질녁 주방에 서면 누굴 위해 밥을 해야 할지 멍하니 서있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렇게 49일이 지나고, 앞으로 490일, 4900일도 맞아야 하는데 집안 곳곳의 사진 속 그 사람은 말없이 웃고만 있네요.

 

부부의 연이 여기까진가 보다라고 접고 넘어가기엔 아쉬움과 후회가 많습니다.

누가 그러데요, 남자들은 정말 모른다고. 주부가 금방 죽을거 같아도 자식과 남편 앞에서는 움직이는 알 수 없는 힘이 있다고.

그렇게 죽을 정도로 아프면 그냥 입원하게 드러눕고, 미우면 밉다고, 싫으면 싫다고 소리치지...

지나 놓고 알아야 때 늦은 후회뿐입니다. "그 때 잘할껄" 해 봐야 소용없는 되뇌임 뿐이지요.

"있을 때 잘해"라는 유행가 가사가 맴돕니다.

 

가까이 사는 제고 동기 3명에게 많은 위안을 받고 삽니다. 저녁에 차도 한잔씩하고, 뒷산 등산도 하고, 메일도 주고 받고...

한명은 중학교 때부터 같은 동네 살았고, 한명은 고등학교 동아리이고, 한명은 분당에 와서 가까워진 친구인데, 정말 친척보다

더 많이 걱정해 주고 위로해 주네요.  먼저 간 그사람도 인일11기 동기들과 행복한 시간이 많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 함께 하실 수 없겠지만, 그 행복했던 기억들만 간직하시고 계속 동기 분들끼리 좋은 만남을 이어 가시길 빕니다.

동기분들이 보여 주신 따뜻한 위로에 다시 한번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미영의 '엉뚱도령', '아기천사'를 대신해서 '내짝'이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