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신문을 읽다가 너희들과 함께 읽고 싶은 글을 보았단다.

오늘 소풍이라 아침에 좀 여유가 있어서.

일단 옮겨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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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처 예상치 못한 눈물이었다. 연단에 서 계신 은사분들께 무릎 꿇고 큰절을 하는 순간 갑자기 눈앞이 흐려졌다.

백발이 성성한 선생님들은 제자들이 건넨 꽃다발을 가슴에 한아름씩 안고 허허롭게 계셨다.

우리들은 30년 만에 그분들께 큰절을 올렸다. 머리를 조아리고 엎드리는데 그 30년 세월이 내 등을 타고 물밀듯 밀려왔다.

 

고등학교 졸업 30년을 기념해서 동기들이 선생님들을 모시고 행사를 한다기에 사실 심드렁했다.

지난 주말 고향의 한 호텔에서 열린 행사엔 친구들의 손에 이끌려 마지못해 참석했다.

공식 세리머니라는 게 어쩐지 불편하고, 동문 모임이라는 게 돈 잘 벌고 출세한(또는 그러기 위한) 이들의 사교장 아니냐는 삐뚤어진 생각도 있는 터였다. 하지만 돌아온 탕아에게 고향은 역시 어머니처럼 포근했다.

 

선생님들께 절을 올리고 자리에 돌아와 앉아서 그 눈물의 곡절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했다.

눈물을 애써 감추며 힐끗 둘러보니 친구들 중에서도 더러 눈시울이 붉어진 이들이 있다.

나이 드니 청승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뭔가 내 뿌리에 닿았다는 느낌이었다.

그동안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잊어버린 삶의 뿌리를 다시금 들여다본 게 아닌가 싶었다.

학창시절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르면서, 지금의 나에게까지 마구 이어졌지 싶다.

어쩌면 그 흘러간 세월이 서러웠는지도 모르겠다.

누군들 지나온 세월, 서럽지 않은 사람이 있으랴마는.

 

열 분 남짓한 선생님들은 제자들에게 30년 전처럼 각자의 개성대로 말씀들을 남기셨다.

건강하게 오래 살아 또 만나자고들 하셨다.

투병 와중에 힘들게 나오신 체육 선생님은 주머니에서 준비해 온 원고를 꺼내셨다.

유도를 가르치셨던 이분은 수업시간이면 공포의 누르기 한판으로 우리들을 떨게 했던 분이다.

부축을 받으며 선생님이 힘겹게 읽어내린 말씀을 제대로 기억하진 못한다.

우리는 선생님 말씀이 끝나고 오래도록 박수를 쳤다.

 

독자들께서 양해해 주신다면 지면을 빌려 선생님들께 감사 말씀을 전하고 싶다.

(유도를 가르쳐주신) 유준조 선생님, 오래오래 사세요.

시화전 할 때 어쭙잖은 제 시에 멋있는 그림을 그려주신 조윤호 미술 선생님, 멋지게 나이 드셨네요.

낭만과 문학을 가르쳐주신 한양률 국어 선생님, 이 글로나마 술 한잔 따라 올립니다.

김준태 독일어 선생님, 아우프 비더제엔!(독일어로 또 만나요, 안녕!)

 

5월은 누군가에게 감사하는 달인가 보다.

8일은 어버이날이고, 15일은 스승의 날이다.

푸르른 신록 아래서 그동안 빚진 이들과 정겨운 시간을 나누라는 것일 게다.

살아가면서 내 주변의 어느 누구 하나 빚지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부모님, 형제자매, 처와 그 가족들, 친구들, 직장 동료들, 생각해보면 누구 하나 고맙지 않은 사람이 없다.

기자 생활 하면서 바쁘다는 핑계로 무심하기 짝이 없던 내게 은사님들이 30년 만에 주신 또다른 가르침이 아닌가 한다.

 

제각각 이름표를 목에 걸고 테이블에 둘러앉은 우리들은 처음에는 띄엄띄엄 대화를 이어갔다.

이름표를 보고서야 서로를 알아보는 친구들도 여럿 있었다.

살이 찌기도 하고, 머리가 벗겨지기도 하고, 반백이 된 친구들도 많았다.

술잔을 기울이며 얘기를 이어가다 보니 어느새 친구들 얼굴 속에서 하나둘씩 학창시절의 앳된 모습들이 되살아났다.

 

마음은 언제나 청춘이라던가, 우리는 금방 학창시절의 짧은 머리 고등학생으로 되돌아가 있었다.

‘푸른 숲 눈부신 이른 아침에, 오너라, 오너라, 어서 오너라∼’ 누군가의 선창으로 학창시절 즐겨 부른 응원가를 목놓아 불렀다. 그렇게 우리들의 봄날은 가고 있었다.

 

백기철 논설위원kcbae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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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참 비슷한가 봐.

암튼 같이 읽고 싶더라구.

 

완전 여름이 되어버린 날씨. 건강하게 잘 지내자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