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란 것이 어찌보면 이별의 끝이라고 말할수도 잇습니다

우리는 태어나서 부터 죽을때 까지 수많은 크고 작은 이별을 경험하며 마지막 나 자신이 세상과의 이별을

통해 인생이 마감 되는 것이니까...

 

그러나 우리는 살아 가며 그 많은 이별들을 치뤄내지만 어떤 이별이든 그 이별은 우리에게 아픔을 주고

때로는 견딜수 없는 괴로움으로 인해 불면의 밤을 보내기도 합니다

이렇게 60평생여년을 살아 내며 우리는 어쩌면 인생의 지독한 이별의 계절 한가운데 서있는지도

모릅니다

곳곳에 들려오는 어릴적 친구들의 부모님들,형제들 자매들의 부음

서캐가 옮을 정도로 머리 부비며 한 세월을 함께 웃으며  지낸 친구의 부음

이런 이별들을 통해서 유한한 인생에 대해 생각해 보며 곧았던 머리를 숙이는 연습도 하게 되는지

모릅니다

 

 작년 어머니를 보내며 문득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이 나이에 어머니를 잃는 슬픔이 이러할진데,아주 오래전에 부모님을 여읜 친구들의 마음을

어땟을까 하며 헤아려 보기도 했습니다

 

아주 오래전 저의 뇌리속에 잊혀지지 않는 이별의 모습이 있습니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인천의 한 고등학교에 한혜숙이와 같이 근무를 했었는데 그때 병환중이시던

혜숙이의 아버님이 돌아 가셨습니다

20대 초반의 혜숙이는 하얀 상복을 입고 같이 간 교장선생님을 붙들고 저 이제 어떻게 살아요

하며 오열하고 있었습니다

얼마 후 혜숙이는 동생들과 같이 아버지께 아버지 아무걱정 하시지 마시고 편히 가세요

동생들과 어머니는 우리가 잘 돌보겠습니다 ,,,,

 

혜숙이는 그 약속을 분명히 지켰을 거라고 생각 됩니다

그 당시는 너무도 힘들고 어려웠겠지만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이겠지만 돌아서서

 그것이오늘날 혜숙이를 작은거인이라 불리게 한 원동력이 아닐까 제 나름으로 짐작해 봅니다

 

저는 노 은심이랑 참 친했었습니다

처음에 은심이를 볼땐 조금은 강하고 거친 아인줄 알았는데 우연히 고등학교 2학년때 같은 반이 되면서

은심이의 따뜻한 품성과 그애가 갖고있는 아픔을 읽으며 급속도로 친해졌습니다

2000년 12월 은심이는 엄청난 사고로 인해 잔인한 운명이 시작되었습니다

10년에 걸쳐 뇌수술을 여러번 받으며 예전의 모습을 잃어버린채 너무도 쓸쓸하게 우리곁을 떠났습니다

저는 그때 중국에 있었기에 그해 여름에 본 은심이의 얼굴을 기억하며 정말 너무도 많이 울었습니다

 

제 친구 조명자 이야기좀 할랍니다

친구지만 늘 존경하고 저같은 날라리 선생이 아닌 연구하고 노력하는 시대의 참 스승 조명자

명자도 참 가슴 아픈 이별을 했었지요

투병중이던 남편을  온누리동산에 묻고 온날 ,그날 저는 뒤에서 조명자를 지켜 보았습니다

하관식때 무너지며 절규하던 명자의 그 하얗고 가녀린 모습이 한동안 저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진짜 아픈 이야길 해 볼까요

저 사실은 아픈 어머니 수발에 멀미가 나서 중국으로 도망친 셈입니다

큰딸이 오라고 하는데 얼씨구나 하는 마음으로 몇년안에 돌아 가실껄 뻔히 알면서도 도망친

아주 못된 딸입니다

그것도 딸이 둘도 아니구 하나 밖에 없는데 말입니다

오동지 섣달 제 딸아이 백일날 새벽부터 백설기 찌어서 머리에 이고 오시다 넘어지셨던 그런 엄마를

두고 온 그런 딸입니다

 

어머니 돌아 가신지 6개월남짓,

아침에 눈을 떠서 잠들기 전까지 제 기억엔 어머니가 계십니다

그래서 어머니 이야기만 나오면 참으로 가슴 속 저 깊은 곳에서 울음이 치받칩니다

 

이렇게 이별은 우리를 무너지게도 하고 세우기도 합니다

아픈만큼 성숙해 진다는 말이 결코 유행가 가사만은 아닌듯 싶습니다

 

인생에서 수많은 이별을 경험한다 해도 원래 이별엔 면역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별은 늘 이렇게 슬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