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이곳 북경에두 봄이 익어가고 있단다

곳곳에 온갖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었고 귀한 봄비가 한바탕 지나고 가니 미쳐 피지도 못한 꽃들까지

져버린게 마치 봄눈이 내린듯 하구나..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첨엔 이곳 북경에서의 삶이 아주 낯설드니만 이젠 중국사람이 다 되서

어딜 가두 스스럼 없이 행동을 하구 다닌단다,

 

한동안 조금 바뻐서 오랜만에 들어와 니들의 여행기 재밋게 읽었단다

화림이의 뛰어난 여행사진을 보니 문득 사진에 얼킨 이야길 하구 싶어 글을 올렸단다

인터넷을 통해 홈피에 올려진 생생한 사진들,,

구도가 각도나 어느것 하나 손색이 없구 꽃들은 마치 향내가 날것 같은 그 모습이 사진의 위대한

역할이 정말 대단해졌지?

 

사실 내가 사진관집 딸이잖니

어릴때 말야 흑백사진시절말야

우리 아부지가 초등학교 입학식때 부터 카메라 들고 이모양 저모양 들이 대시는 바람에 아마

나처럼 어릴때 사진 많은 사람두 드물거야

 

3학년때 처음 구구단을 배우던날 아부지가 선생님에게 부탁을 하셧는지 칠판에3곱하기3은 9를 쓰는

내모습두 있단다 ,

그런데 너무 우스운건 초등학교 입학식때 엄마가 사준 빨간 우단 원피스가 5학년 소풍사진때 까지

찍혔으니,,,,그시절 엄마들의 절약정신을 알겠지?

무조건 옷을 사면 단을 접고 또 접어 한 5년은 입어야 되니 말야

나중엔 거의 우단이 닳아서 얇은 속이 다 보였다니까.

 

나 어릴땐 우리집이 사진관이 아니라 사진을 현상 하는 곳이었어

사람들이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오면 우리집에서 그걸 인화지에 대고 확대를 해서 하이보란 약물에 담그면

그게 서서히 사진으루 나오지,그럼 그걸 또 말려서 가위질을 해서 필름과 함께 사진을 사람들이 찾으러 오는거야

특히 봄..여름 휴가철엔 너무너무 일이 많아서 우리집사람들이 막 밤을 세우구,어느땐 나두 불려나가서

사진 가장자리를 자르는걸 도와 드리기두 했단다

 

그땐 필름도 거의 국산이 없구 후지나 코닥 그런 거였어.

그러다 혁명이 일어난거야 색의 혁명,,,칼라사진시대가 온거지,,

근데 그땐 서울만 칼라현상소가 있구 아직 인천엔 없는거야

사람들이 칼라필름으루 사진을 찍어서 우리집에다 맡기면 우리집에선 그걸 이삼일에 한번씩 들구

서울로 가서 맡기면 서울서 현상을 다 해서 보내준단다 ,

그러니 얼마나 시간이 많이 걸리겟니,

사람들은 자기가 찍은 사잔을 빨리보구 싶잖니,그러나 독촉전화두 참 많이 오구 ㅎㅎ

참 지금 들으면 재미있는 그때 그시절 이야기지??

 

그리구 사실 고백할게 있는데 말야

난 그때 우리집이 카메라가 많으니까 괜히 우쭐대면서 어깨 너머로 사진 찍는걸 배웠어

근데 중학교3학년때 첨으루 덕수궁에서 전국학생촬영대회가 열렸는데 사진관계하시는 아부지가

무조건 따라 오라구 해서 그냥 가서 왓다리 갓다리 하면서 구경만 햇거든

아니 실은 거기 온 남학생들 구경하느라 바뻣었지.

한참 사춘기 엉덩이 뿔날 때엿거든,

 

한 한달이 지났을까,,

교무실에서 나를 부르는거야

내가 뭘 잘못했나 두근거리며 갓더니 담임선생님이 교장실루 날 데리구 가는거야

내가 전국학생촬영대회에서 3등을 해서 상장이 학교루 온거야

왜 상을 받게 된지는 다 알지??

내 생애 첨으루 월요일 조회때 단상에 나가서 상을 받았단다,

 

좋은 세상에 살아서 통과 됏지,지금 같으믄 아마 인터넷에 도배가 됐을거야 허위라구 ㅎㅎ

  그때부터 소풍만 가면 애들이 날더러 사진 찍어 달라구 ㅎㅎㅎ

물론 아주 못찍진 않았어,,고등학교땐 사진반에 들어 정식으루 배우기두 하구...

 

애들아 이런 이야기가 이젠 정말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가 되엇네.

필름도 없이  사진이 나오구,인터넷을 통해 사진뿐만 아니라 동영상이 나오니 말야,

 

아부지가 그렇게 아끼던 라이카 카메라 아사히펜택스니,,이런것들이 이젠 임자가 없어

그냥 골동품이 되버렷단다,

자꾸 이렇게 옛날 이야기가 하구 싶은걸 보니,나두 이젠 정말 늙어가나부다,그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