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회 - 게시판담당 : 윤순영
일요일 열시가 되면 나는 열일 제쳐두고 TV앞에 앉는답니다
KBSTV에서 방영하는 명작스캔들을 보기위함이지요.
명작의 스캔들이라 하니 자연스럽게 호기심이 동해서 어떤류의 방법으로 명작에 대한 뒷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려는지 궁금했읍니다.
우리들에게 잘 알려진 예술가들의 작품들이 등장하고 말그대로 작품들의 뒷이야기들이
몇몇 고정 출연자들에 의해 진행이 되니 산만하긴 하지만 그런대로 재미가 있었읍니다.
종종 성악이나 연주자들의 노래나 연주도 들려주기도 해서 귀도 심심치않기도하고
어제 지난일요일에는 우리나라 조선시대 화가 최북의 작품인 "풍설야귀인"이란
풍경산수화 한점이 등장했지요
음악에선 우리나라 가곡 "보리밭" 에 대한 뒷이야기가 이어졌고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바리톤 최 현수씨가 부르는 보리밭도 들어보는 좋은시간이였는데
오늘은 조선시대 화가 호생관 최 북의 이야기만 해보려합니다.
왜냐하면 동양화완 아주 무관하지않은 나지만 그저 조선시대의 화가중 한분이라는것만 알았었지
그분의 그림이나 인적사항을 전혀알지못했기 때문에
그날 그 방송을 보고 이어지는 이야기들을 듣고는 그제서야 이것저것 찾아보고
좀 부끄러운 생각도 들고 했었기 때문이였지요.
내가 이 인일홈피에서 서양화가인 인상파화가 고흐의 작품에 대한것을 열심히 올린적이 있었는데
우리나라 조선시대의 화가인 최북이 고흐보다 1세기도전에 고흐 못지않은 삶을 살면서
화가의 길을 걸어나갔다는 것을 이제서야 알았기때문이였지요.
그러나 뭐.........이제서라도 늦지않았다고 자위하면서 화가 최북의 작품과 그의 이야기를
찾아내어 올려보렵니다.
.....................최 북의 초상화 ................
조선 영조와 정조 때 화가 최북 (1712~ ?)
.........풍설야귀인............
중인 집안에서 태어난 최북은 자신의 호를 '호생관'이라고 지었다.
호생관이란 2개의 뜻을 가지는데 하나는 '붓으로 먹고 사는 사람이란 뜻이고
또 하나는 '터럭같은 인생살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칠칠이'화가가 바로 최북.
그러자 최북은 화가 나서 "남이 나를 저버린 게 아니다. 내 눈이 나를 저버렸다!"라고 하며
스스로 송곳으로 한쪽 눈을 찔러 멀게 했다고 하 는 일화가 있다.
권력에 타협하지 않는 칼날같은 그의 성정을 엿볼 수 있다.
예술가적 광기가 번뜩이는 그는 한국의 반고흐라고 불리운다.
당시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술주정뱅이', '그림쟁이' , ' 미친놈' 을 넘나든 사람이라 했다고.
평생을 호기롭게 불꽃같은 열정을 불사르며 산 인물답게 최후 역시 남다르다.
열흘을 굶다가 그림을 팔아 오랜만에 술을 잔뜩 마시고는 집으로 돌아가다가 성 귀퉁이에서 쓰러져 얼어 죽었다.
..................퍼 옴...............
그러나 이곳저곳에서 읽어본 이야기의 대부분이 그리들 전하고 있지만
그의 죽음에 대한 명확한 사실은 알 수가 없다는 이야기도있지요.
저 초상화를 보더라도 그의 성정이 어떠한지는 상상할 수가 있긴합니다.
또 (최 북}을 잘 나타낸 시가 있어 가져와 봅니다.
초옥산수(草屋山水), 종이에 수묵담채, 31 x 36.1 cm, 서울 개인소장
그림 왼쪽 위에는 '빈 산에 사람이 없으나, 물이 흐르고 꽃이 피네(空山無人 水流花開)' 라는
왕유(王維)의 시에서 따온 화제(畵題)가 흘림체로 씌어 있다.
화면 오른쪽으로는 초가 지붕을 얹은 소박한 정자와 나무 몇 그루가 서 있고,
왼쪽으로는 작은 폭포를 이루어 흐르는 계곡이 그려져 있다.
정자와 나무는 담묵의 필선으로 간략하게 묘사하고,
반면에 계곡 부분은 겹쳐 바른 농묵과 담청을 덧칠하여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있다.
....................또다른 소감을 피력한 글이 있어 가져와봅니다.........
?빈 ?산에 사람 없어도 空山無人
?물 흐르고 꽃 피네 ?水流花開
소동파의 글을 옮겨온 최북의 속은 깊다. 산속에 사람 흔적 눈 씻고 봐도 없다. 그래도 물이 흐르고 꽃이 핀단다. 물과 꽃은 저들끼리 말 맞추지 않는다. 인간사에 두담두지(애착을 가지고 돌보다) 않은 채 흐르고 핀다.
꽃 피고 물 흐르는 풍경은 유정하거나 무정하지 않다. 시 짓고 그림 그리는 이 저 혼자 겨워할 따름이다. 스스로 그러해서 '자연自然'이다. 저 빈산, 무엇이 아쉬워 사람 손길을 기다리겠는가.
이 글은 손철주 지음, 옛 그림 보면 옛 생각난다(2011, 현암사)에 실린 글을 옮긴 것이다.
............................................................. 최북의 삶을 들여다보고 배경음악도 다시 올려보네요 그의 죽음도 한편으론 그다웁고 처절하기도하고 아름답기도 해서........... 어려서부터 시서화를 잘 했다는걸 보면 타고난 예인이였나보다 했는데 찾아보니 어머니는 기생출신이였다고 하며 최북을 낳고 기생직을 그만두었다고 하고 아버지는 떠돌이 화가였다고합니다. 출생이 그렇다면 ......."에고 콩심은데 콩나고 팥심은데 팥낳네 그려" 아! 그 이어진 끈질긴 핏줄로 인한 원인과 결과라니 이 아침에 또한번 뭉근하게 가슴아픕니다. 비록 작품으로 후대의 우리들에게도 보여주긴 하지만.....................
많은 자료, 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도 그 프로를 보고........그림에 감동하고
우리가 저런 분을 가졌었구나.... 저의 무지함에 가슴을 쳤답니다.
???은희야!!!!
나는 명작 스캔들을 잘 안보지만
이 글을 읽으니 참 좋은 프로 같다.
고흐보다 1세기 전에 살았다니.............
그러나 저러나 저런 사람을 낭군으로 섬기는 아낙네의 속은 아마도 숯검댕이 일꺼야.ㅎㅎ
술 주정뱅이에 애꾸눈.
사후에나 이름을 알리지 살 때는 무지 힘들게 산거 같구나.
여하튼 진정한 예술가들의 삶은 다 저렇게 파란 만장 해애야 되는건지 안타깝다.
난 예술가의 아낙 되기는 글른 사람일세.ㅎㅎ
<호생관 최북> 이란 소설가 임 영태씨의 책이 벌써 나와 있다고하네
물론 사실과 비사실이 혼합되어 나온 소설이겠지만
소설속에 <이담>이라는 여인이 있는데
실제의 여인이기도 하다고 하네.
최북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지고지순한 사랑을 최북에게 바친 여인이라고하네.
눈은 권력과 부를 거머쥔 사람이 그에게 그림을 흥정하듯하고
안되니 잡아가 태형을 하겠노라 협박해서
너한테 잡혀가서 그림을 그리겠느니 내눈을 찌르고 말겠노라 해서 얻은 상처라고한다.
지금은 화가도 예술인이라고 대접을 받는세상이지만
그시절 돈푼깨나 가지고 권력을 잡고 한 인간들은 환쟁이 취급만 한거지
사람 취급을 했겠나싶다.
그가 왜 술을 마셨을가 ..........라는걸 나는 생각을 한단다.
어느 인생이 참인생인지는 어느누구도 판단할 수가 없다는 생각이다.
호생관 최북이 산수, 인물, 영모, 화훼, 괴석, 고목 등 모든 대상을
잘 그렸다고합니다. 백여점 남아있다는 그림중 유명작품을 찾아서 보다가
"기우귀가 <騎牛歸家>" 라는 그림에서
소탄 아이의 해학적인 얼굴모습과 요동하는 소의 몸짓을보고 "아!" 하게되는군요
그래서 다른 명작이라는 그림보다 먼저 올려보려구요.
................그의 정신이 들어나는 어록이 있어 열심히 필기 노트해서 다시
노트보고 자판 두드립니다...............
그의 질문
< "너는 그림을 그릴때 대상을 그리느냐, 네 마음을 그리느냐?
그림에 네 마음이 들어가 있다면,
그 그림을 보는 사람은 애초에 대상을 보는 것이냐, 네 마음을 보는 것이냐?>
그의 대답
<" 그린다는 것은 만나는 일이다. 보이는 것 에 보이지 않는 것을 담는다.
그 보이지 않는 것은 대상에 원래 있는 것이면서 내가 내 마음으로 본것이다.
하여, 그린다는 것은 한 정신이 다른 한 정신과 만나는 일이다>
<예인은 자기안에 불멸을 길어올리는 사람이다.
목숨걸고 자기 생의 바닥으로 내려가 존재의 근원을 찾는다>
< 필묵의 기표를 잊어야만 진경을 그릴 수 있다.
실경을 그리는 것은 공간에 시간을 덧입히는것>
<그린다는 것은 피를 파는 일이다. 피몰래 뼈가 울던 날들을 이제는 바람처럼 보낸다.
내가 놓은 세상이여, 부디 나 또한 놓아주시라>
< 문장에 신품, 묘품, 법품 이 있듯 도화 또한 그러하다
신품은 태어나면서 아는자고, 묘품은 배워서 아는자고
법품은 노력해서 아는자라 하였다
신품은 스스로 안다.>
< 빈산에 아무도 없는데 물은 흐르고 꽃은 핀다.>
오늘 집안일 하면서 오전중에 지기들과 전화주고 받는 시간외에 하루진종일
이 진정한 환쟁이 호생관 최북에게 빠져있으면서
명작스캔들에게 감사하고 있답니다........와우.....이런 예인을 알게되다니.............
은희언니,
예당으로, 예원으로 꾸미시는 이 저력 놀랍읍니다. 저 사의 찬미에 위의 귀우귀가
당신께서도 흠뻑 빠지시고, 관객 또한 감동 백배이니, 계속 품메셔야 되겠네요.
언니, 고맙습니다.
김은희 선배님!
예전에 유흥준 선생님에게서 들은 최북을 여기에서 다시 만나게 되다니 너무너무 기쁩니다.
일부는 고흐와 비교를 하지만
고흐보다 훨씬 앞선 인물이니 당치도 않습니다.
시에도 능해 금강산의 폭포에 반해 그냥 뛰어들고 말았다니 이태백이가 아니고 무엇일까요?
우리는 우리 것을 너무 소홀히 대한 예가 바로 최북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몰라라 했던 최북에 대한 소설이 있다니요?
그 와중에도 눈 밝은 이가 있어 일대기를 썼다니 참으로 다행이네요.
저도
그 책을 사서
꼭 읽어야겠습니다.
최북을
다시보게 해 주신 김은희선배님 고맙습니다.
실은 엊그제서부터 마음이 착찹하다
산학이한테 김 재옥 선생님 전화번호 알려받고
이 알량한 제자는 전화수첩 잊어버리고 말야
팔순잔치에 모시려고 몇달만에 전화드렸는데 "아이쿠 머니 치매 검사중이시라 입원중이시라네"
어제 검사 발표나온다고 하시는 말씀에 웬만하시겠네 하고 퇴원 언제하시나 알아보려
오늘 전화드렸더니 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시네그려
꽉 잠기셨는데 ......"결과가 안좋단다" 하시는데
당장 찾아가뵙지 못하는것이 송구하기 그지없네
...."언제고 찾아가 뵙겠습니다"...했더니 "네 고맙습니다" 이러시는데..........에구
알아보시지못할 때 보다 지금이라도 찾아가보뵙자구나
참말로 말이되나 모르겄는데........그래서 호생관 최북에 더 빠져있게되네.
희순이도 가뵈야 한다고 했으니 곧 가보려고 한다......그래야 내가 팔순잔치에 좀 가벼운 발걸음을 하겠다
산학이도 오케이!
아예 여기다 밀어부치려고 산학이에게도.
최북은 조선 영조와 정조의 치세를 살았다.
중인 집안에서 태어나 경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었음에도
스스로 지은 '호생관'(붓으로 먹고 사는 사람)이라는 호처럼
평생을 떠돌아다니며 그림을 팔아 호구지책을 마련했다.
최북을 정의할 수 있는 단어는 '칼날'과 '불꽃'.
그의 꼿꼿하고 타협하지 않은 성정이 칼날이라면,
상식과 평범함에 안주하기보다는 예술가로서
광기가 번득이는 삶을 산 것은 불꽃이라 하겠다.
비록 그림을 팔아 술을 사고 늙도록 남의 집을 전전했지만
그림에 대한 애정은 매우 각별했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작품은 인정을 받았다. 그리고 겸재 정선, 현재 심사정,
단원 김홍도 등과 함께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화가로도 꼽힌다.
산수화를 잘 그려 '최산수(崔山水)'라고 불렸고,
특히 메추라기 그림을 잘 그려 '최메추라기'라고도 했다.
손가락 끝에 먹을 묻혀 그리는 지두화를 잘 그렸다.
다음은 최북의 50대의 삶이 어떠했는지는 알려주는 시의 한 구절.
최북은 서울에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
살림살이는 벽만 덩그렇게 선 초가.
문 닫고 온종일 산수를 그리는데
유리 안경에 나무필통 하나뿐.
아침에 한 폭 팔아 아침밥 얻고
저녁에 한 폭 팔아 저녁밥 얻네.
날은 추워 해진 담요 위에 해진 손님 앉히니
문 앞 작은 다리엔 눈이 세 치나 쌓였네.
최북은 결코 그의 재주로 그림으로 권력이나 돈을 얻으려 하지 않았다.
그는 가식이 없되 가식이 있고 진실이 숨쉬되 허구가 있고,
아픔이 있되 희망을 주고, 겨울이되 봄인 느낌을 그림으로 그리고 싶었다고...
단지 그래서 그림을 그린다고...최북은 말하고 있다.
18세기 수묵채색화 지본담채(紙本淡彩) 38.5x57.3cm 개인 소장
이 표훈사 도는 금강산에 있는 표훈사와 그 주위의 승경을 그린 작품으로서 구도는 그의 산수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원 산수법이다 호생관은 중국 원 말 남화산수에 관심이 깊었다고하나 천품이 틀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해서 항상 자기류의 산수법을 주저 없이 구사하던 사람이였다 또 남의 비평을 듣는것을 아랑곶 하지 않을 뿐더러 화흥이 미치는대로 개성적인 표현을 했다. ............................................................ 근대동양화가중 명인 세명중 한분이시라는 청전 이 상범 선생님과 누하동 청전화숙이 생각나는 오늘 아침이다.
친구들이 긴글은 아예 읽기도 어렵다고하면서
그 긴글들을 읽고 다시 다독여서 올리냐며
아직도 기운이 남아 있다니 용하다 하는말에 서글퍼지기도 합니다
은사께서 팔순에 치매가 온 일이 곧 우리의 일이라는 말들을 자연스레들 하는양을 보며
"그려 기운 떨어져 아무것도 못하기전에 오늘이라도 더 애써보자" 합니다.
메추라기를 잘 그려서 최 메추라기라는 별호가 따로 있다는 호생관 최북의
메추라기 그림을 색감좋은것으로 이리저리 다니다 가져와 봅니다.
보통 수묵을 이용해 화선지에 그림을 그리다보면 한번 붓질에
다 완성되던 그림이 단번에 망쳐버리기 일수인데
신품으로 태어난 예인은 영모조충도까지 또 모든 대상을 넘나들면서 신끼를 묘사하는군요.
금강산 표훈사도 가 저위에 표훈사도 와는 다른 느낌이라서
비교해 보는 맛이 있군요 앞산이나 뒷산을 평형으로 늘어놓은듯한
느낌이면서도 금강산의 진경을 느낄수 있게 그린 그림입니다.
가장 많이들 난초를 치지만 쉬운듯하지만 그래서 또 가장 어려운 난초치기
머뭇거리지않고 그리긴 어려운데.............
손톱과 손가락끝으로 그렸다는 지본수묵화
게와 갈대, 지본수묵, 26 x 36.7 cm, 선문대 박물관
이 작품도 최북의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난는 작품이다.
왼쪽 상단에 씌여진 '지두작(指頭作)'이라는 단어의
지두는 손가락을 말하는 것으로 이 그림은 손가락으로 그렸다는 뜻이다.
날카로운 게의 다리는 손톱을 이용하여 그린 것이며
두터운 집게발은 손톱 밑의 살을 이용하여 그린 것인데
이 그림은 강하고 날카로운 최북의 개성적 필법이
잘 표현된 뛰어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호생관(毫生館) 최북(崔北)의 <애련도(愛蓮圖)>
화제(畵題)로 "蓮之愛 同我者幾人"
(나처럼 연꽃을 사랑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이라 적어 놓고 있다.
주돈이(周敦?)가 <애련설(愛蓮說)>에서 언급한 "蓮之愛 同予者何人
(연꽃을 사랑하는 이 나만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라는 구절을 슬쩍 비튼 것으로 보인다
.................................
?시서화가 다되는 호생관 최북의 재치가 보이는 그림이라는데
색감이 흐려서 유감입니다.
?
남다른 삶을 살다 가는 예술인들이 많다지만
우리나라 조선시대에도 화가들중 취벽과 기행으로 이름난 이들을 짚어본다면
연담 김 명국과 호생관 최 북 그리고 오원 장 승업 이렇게 3인을 꼽는다고 합니다.
오원 장 승업은 우리에게 임 권택감독의 영화 "취화선"으로 잘 알려졌지만
호생관 최 북에 대해선 잘 알려져있지않다고 이곳저곳서 모두 안타까워 하는글들을 만날 수가 있었지요
우선 그날 화제의 "풍설야귀인도"에 대한 글을 올려보려합니다.
....................................
최북은 손가락 끝에 먹을 묻혀 그리는 지두화를 잘 그렸는데
아래 그림도 지두화의 하나인 '풍설야귀인도'이다.
풀설야귀인도는 최북이 유장경(당대 오언시의 대가)의
시구(아래에 있는 시)를 보고 그려냈다고 한다.
여기에서 최북의 호방함과 파격적인 개성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리다 보니 손가락에 묻힌 먹을 떨어뜨린 것 같다.
하지만 개의치 않고 그냥 뭉개버렸다.
日暮蒼山遠 (날은 저물고 푸른 산 아득하고 )
天寒白屋貧 날씨는 찬데 가난한 오막살이 보인다.)
柴門聞犬吠 (사립문 밖에 개짖는 소리 들리나니 )
風雪夜歸人 (눈보라 치는 이 밤에 누가 돌아오는구나 )
?이 풍설야귀인도는 시귀절 넷을 차례대로 그렸다고합니다
제일 윗부분이
日暮蒼山遠 (날은 저물고 푸른 산 아득하고 )
?그 다음 둘째 부분이
天寒白屋貧 날씨는 찬데 가난한 오막살이 보인다.)
?그다음 세번째부분이
柴門聞犬吠 (사립문 밖에 개짖는 소리 들리나니 )
?그다음 네번째 부분이
風雪夜歸人 (눈보라 치는 이 밤에 누가 돌아오는구나 )
?
그림을 자세히 보면 원근법을 무시한체 그린 그림이지만
실경산수화를 대담한필치로 잘 그렸다고도 하니
그 시절에는 도발적이고 도전적인 그림을 그린 화가인듯합니다.
저 노인은 자기자신을 그린것 같다는 느낌을 말하기도 하고
북풍한설에 자기의 마지막 모습을 예견한듯하다는 이야기도 그날 했지요.
눈바람 부는데 얼마나 바람이 세면 나무가지들이
저렇게 휘어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