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회 | 포토갤러리 | - 게시판담당 : 한선민
수학선생님이었지요.
얼굴은 새까맣고, 키는 작고, 좀 못생기셔서 아이들이 붙여드린 별명은 메뚜기였지요.
수업시간에는 바지 주머니에 한 쪽 손을 꽂고 칠판쪽으로 비스듬히 서서 칠판에다 문제를 푸시는데
아이들은 너무 어려워서 반쯤 포기한 상태라 딴짓을 하거나 잡담을 했지만 선생님은 그러거나 말거나 문제만 열심히 푸셨지요.
그 어려운 수학문제를 어찌나 잘 푸시던지 한번도 막히는 적이 없으셨지요.
야단치시는것도 못 봤고, 화를 내시는 것도 못 봤고, 그렇다고 활짝 웃으시는 것도 못 봤어요.
조금 수줍은 듯한 표정이었지요.
그 선생님이 요즘 가끔 생각이 나네요.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암이야, 숙자야
기가 맥히게 나도 수학선생님 두분이 생각나는데 성함은 한분것만 기억납니다.
맨첮날 교실에 들어 오셔서 칠판에 2 : 0 (: 위에 - 을 표기함) 이라고 써놓고 그것이 자신의 이름( 이 태영) 이라고 하셨는데
수줍으신지 젊으셔서 인지 모르지만 볼이 볼그스럼 하셨던것으로 기억 납니다.
기분이 좋으신날은 제법 큰소리로 말하시던것도 기억됩니다 "이반엔 왜 이렇게 미인이 많아?"
그렇다고 성적을 잘주신것 같지도 안아요. 아마도 돌아가셨겠지요.
글을 쓰다보니 메뚜기 선생님이 또다른 한분이 아니었나 생각이 되네요. 그땐 남자들이 머리에 "포마드" 라는것을 바르고 다녔는데 머리가 야자수 처럼 ? 그래서 그랬나요? 자신이 없읍니다. ㅎ ㅎ ㅎ ㅎ
얘들아~~~~~
이 태영 선생님은 우리 중학교 1학년때 선생님이 셨고
그 유명한 메뚜기 선생님은 천재급이셨어.
우리 마스게임 할때 도형 만들어 바귈때 인원수 배치를 김중흠무용 선생님이 메뚜기 선생님게 의뢰했다는 이야기하시며
천재급이라고 소문이 자자했었지..
몸 아프셔서 쉬고 계실때
메두기 선생님 아버님께선내가 입학한 대학교 교무처 직원이셨어.
그래서 나의 합격 소식도 합격자 발표전 우리집에 일착으로 알려 주셨던 분이야.
제자 사랑이 지극하셨음을 이제서야 알게 되다니........
늘 철 안든건 이제나 저제나 마찬가지인 나이니....나원 참 참 .....
사모님께선 굉장한 미인이셨는데 지금 어찌 살고계신지???
그래애,,,암이야아,,,그 메뚜기 선생님,,,미선이 말대로 천재셨어,,
백목을 항상 뒤로 잡고는 칠판에 말씀하시며 비스듬한 각도로 달필로 써 내려가싱게,,,
항상 미소를 지으시며,,,맨 앞에 앉음 침이라도 튀길듯이 열강이셨지이,,,,,,,,,,,,,,우리가 그렇게들 말하곤 했지,,
암이같이 공부 일등파들은 문제읎씨 따라 갔긋으나 어디 왠만해선 도저히,,,하하하하
세상에 30대 후반에 돌아가시다니,,,천재는 단명???하다는 것을 증명하시려고???
항상 생각나는 선생님중의 한분이시지,,,
미선이는 그 선생님에 대해 기억이 각별하겠구나아,,,
나도 그 선생님이 뵙고 싶다...천재 선생님
글구 김중흠 선생님은 내가 최후로 보지 않았나 생각해
학생때 짬뽕을 한번 사 주셨는데
무용하던 김영옥이 심부름을 꾀 여러번 해 주다가
소공동에서 비싼 일식을 1번 사드렸지
불우한 가정생활을 말씀하시면서
그 명랑하시고 패기만만하신 모습은 어디가고
제자 앞에서 눈물을 보이시더라고....
지금은 고인이 되신지 오래 되셨지만
언니들 글에 댓글은 달고 싶은데 그 수학선생님들에 대해서 전혀 아는 바가 없어서요.
무용선생님도 얼굴은 알지만 배워 본 적이 없고요.
평소에는 2년 선배님이라고 큰 차이도 없어보였는데
이렇게 이야기를 하다 보니 완전 시대가 다르네요.ㅎㅎㅎ
근데 저희가 배웠던 이종예선생님도 아기 낳다가 돌아가셨는데
우리 무용선생님들이 왜 그리 운명이 가혹할까요?
마음이 안좋아요.
명옥후배애,,,,그렇지요? 이년의 차이가???
그럼 그 천재수학선생님은 어디로 가셨을까???
이종예선생님도 개성이 색다른 매력의 무용선생님이셨지이,,
우리 동기 선우금숙이라는 칭구의 올케가 되셨었지,,,
그 칭구 오빠와 중?인지 고?인지부터 연애하시며 오랜 기다림끝에 결혼을 하셨고,,
그 어디야 답동사거리에서 배다리로 가는 그 길에서 댁이 운동사를 하셨지???
근데 나중에 들으니 내가 듣기로는 임신과 전후하여 백혈병? 지금 생각하면 루키미아를 말하는지로
돌아가셨다는 야그를 듣고는 너무 안타까원었다오,,
그 칭구말이 어떤떄 늦게 집에 돌아오다 보면 오빠가 담장에 고개를 묻고는 울고계시드라고,,,
오랜 애인이자 아내,,,아가의 엄마를 잃은 아품이 어떠했을가요,,,
어찌도 그리 건강해야만 할 분이 그리 되셨는지,,,
이상 내 기억에 있는대로를 나누어 봤어요,
굉장히 인간적이었던 것으로 기억나
정말 화도 안내고, 독일어 키작은 여선생님하고
메뚜기선생님 생각이 또렷해
침튀기며
설명하시던 모습....
헐렁한 밤색바지에 입은 지금 생각하니 유재석같고 자세히 보면
그런대로 귀여운 모습도 있었어 그지ㅣㅣㅣㅣㅣㅣ
건강들 하시겠지 그렇겠지 즐겁다 그때를 생각하니
정숙아!
숙자 글 보았지
방금 친구로 부터 들은 바로 메뚜기 선생님은 전동에 사시다가
30대 후반에 아프셔서 돌아가셨단다.
독일어 여선생님은 안 늙으셔서...
지난번에 뵈니 우리 하고 친구하면 꼭 친구같고.
친구들아..
몇일 여행하고 돌아와 보니 옛 선생님에 대한 추억이 소복히 쌓여 있네.
메뚜기 선생님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는데
아버지께서 대학 교무처 직원이셨다면 그 때로서는 꽤 괜찮은 집안이셨나보네.
아내와 자식이 있었다니, 젊은 나이에 남편 돌아가시고 어떻게 사셨을까? 선생님이 무정하시다는 생각이 든다.
이종례 선생님은 다리가 아주 예쁘셨고 덧니 난 얼굴이 귀여우셨지.
여자가 집안에서라도 부시시하고 있으면 안되고 언제나 단정하게 해야한다고 하셔서
어떤 아침 눈꼽끼고 게으름 피다가도 그 말씀이 생각나서 얼른 세수하고 화장한단다.
내가 알기로는 선우 금숙의 삼촌의 아내셨어. 금숙이의 작은 어머니셨지. 아마 맞을거야.
금숙이는 내 서림초등학고 동창이야. 금숙이도 보고 싶네.
아무튼 아기낳으신 일로 돌아가신 걸로 알고 있어. 그 아기는 어떻게 됐는지?
가슴이 아리다. 예쁘신 우리 무용 선생님의 아기가 얼마나 컸을까?
왜 우리가 좋아하던 선생님들이 돌아가셨는지?
찾아 뵙지는 못해도 소식이라도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선운사에 가서 템플 스테이를 3일동안 하고 왔어.
나무들이 뿌리로부터 물을 빨아 올리느라고 줄기가 푸르스름해 진 것을 보면 나도 기를 받는 것 같아서 봄 여행이 너무 좋아.
1년 쓸 에너지를 받는 것 같아. 동희의 말에 의하면 봄 나물을 먹어야 기를 받는다네.
맞아! 그 추운 땅속에서 움츠리고 있다가 딱딱한 흙을 뚫고 올라오니 얼마나 기운 차겠어?
시골 길가에서 할머니들이 쪼그리고 앉아서 파는 봄 나물도 많이 사오려고 했는데 아직 안 나왔더라.
그래서 봄 마무리라고 하는 처음 보는 나물과 보리싹을 사왔는데 어떻게 해 먹는지 아는 사람 있어?
그냥 멸치 넣고 된장 풀어서 국 끓이려고 하는데...
어젯밤에 돌아와서 피곤해서 자고 일어나서 볼일 보고 나서, 급한 마음으로 우리 인일 3기 방에 들어왔어.
이리 급하게 보고 싶은 우리 방은 어떤 매력이 있는 것 같아.
생각만 해도 가슴이 더워지는 친구들이 와 있으니 당연하지?
봄나물 먹고 떨어진 에너지 보충해서 오래 오래 함께 잘 지내자.
맞어 그 수확 선생님 별명이 메뚜기 였는데
네말데로 열심히 문제를 푸시는중 열심히 하는 친구도 있었지만
나도 어려워 뭔지 모르니 아무래도 딴전을 부리던기억이 난다.
내가 기억하는 수학 선생님 두분중에 또 한분이 계신데
별명은 바로 야자수 내가 중학교때 그분 머리가 뻣뻣하게 뻐친것이
야자수 같은 모습이라 그렇게 불러더니 바로 그분 별명이 야자수라고
인일 교지에 까지 나왔었지. 메뚜기 선생님 그리고 야자수 선생님
지금도 건강하게 살아 계시겠지.
방금 친구로 부터 들은 바로 메뚜기 선생님은 전동에 사시다가
30대 후반에 아프셔서 돌아가셨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