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젊었을 때그 당시 많은 젊은이들이 그랬듯이나도 클래식 음악에 빠져있었다.왜 그랬는지 모르나 그냥 듣기만해도 되는데 음악의 작품번호음악가들의 태어난 연도그들이 활동했던 도시들을 지도로 공부하며 음악 감상실에 앉아 긴 젊은 날의 오후를 보내곤 했었다.

 

바로 그때 음악을 전공한 한 청년을 소개받았다.

그는 그 당시 학교 음악 선생이였는데첫인상이 음악선생이라기 보다는 체육 교사 같은 것이 좀 맘에 걸렸었다.

왜냐하면 그때 나의 결혼 이상형은 성격이 까다로운 깡마른 남자였기 때문이였다.

그렇지만 그 며칠전 선배언니네 놀러갔었는데그 남편되시는 분이 고향 우정이라는 유행가를 큰소리로 불러제끼는 것을 보며그런 문화가 결핍된 사람과 사는 그 언니가 무척 불행한 사람으로 보였었다.

그래도 같은 종류의 음악을 부부가 들으며 사는 것이 이상적이다 싶어서 음악공부를 하러 떠나는 이 청년과 결혼을 했다.

 

그러나 결혼을 한 뒤로는 둘이 다 일에 파묻혀 음악은 커녕 피곤해서 헤어나지 못하고 지나면서 크리스마스때나 록펠러 센터 트리를 보러 나갔다가 카네기홀 주위를 쓸쓸한 마음으로 둘러보고 오는 것이 고작이였다.

 

또 혹 같은 음악을 듣는다해도 감상하는 방법도 서로 달랐다가령 베토벤의 Spring Sonata를 들으면 나는 봄볓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듯한 선율에 감동하며 “ 여보!이곡 좋지?” 물으면 현하는 놈들이 매일 옆에서 긁어대던 곡이네” 하며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무슨 말이냐하면

{현악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자주 연주하던 곡이다.}

이런 말이다.

그리고 가끔씩 좀 한가해져서 맘에 드는 찬송가를 골라 혼자 불러보고 있노라면 여봐요아니 여기가 세박자인데 왜 한박자 반만 끌고 관두지” 왜 그렇게 박자 개념이 없어작곡자가 세박자를 썼을땐 그 의도가 분명히 있는거라구자 다시 한번 불러봐.“

라고 소리를 질러서 노래하고 싶은 마음을 싹 가시게 만들기가 일쑤였다.

 

그런데 내나이 설흔아홉이 되던 해.

남편이 생일선물로 풀룻을 사줬다나는 너무 좋아서 시도때도 없이 풀룻을 불었다.

뜻밖에 옆집 살던 미국 아줌마가 이것을 보더니 제가 쥴리아드에서 풀룻을 전공했어요지금은 애들 키우느라 모든 꿈을 접고 있지만요.”

하며 일주일에 한번씩 렛슨도 해주었다.

(참고로 말하면이 미국여자는 꿈을 잠시 접고 있다는 자기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얼마후 클리브랜드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발탁되어 이사갔다.)

 

풀룻소리를 맑게 내기란 쉽지가 않았다나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연습했다이 풀룻은 아이들이 다 대학으로 떠나고 난 뒤 텅빈 집안의 공간을 메워 주었으며마음이 한없이 가라 앉았을 때때론 남편과 다투고 난 뒤 속이 있는대로 뒤집혀 있을 때 나의 호흡을 한곳으로 몰아주며 은은한 친구로 늘 내 옆에 있었다.

 

나는 또 가끔 남편에게 풀룻곡을 한번 작곡해 봐요 내가 불게 하며 졸랐으나 바쁘다는 핑계로 좀처럼 오선지를 펼치지 않았다.

 

남편이 몇 달 전 암수술을 받고난 뒤 이제 다 난 줄 알고 남편은 골프도 나가고 나는 나대로 이런저런 계획으로 바빴는데 방사선 치료후 이렇게 힘든 여정이 뒤에 남아 있었구나를 깨닫기 시작했다.

몸무게가 이십 파운드가 빠지고수술한 다리의 통증이 시작되어 모든 행동에 제한이 오기 시작했다남편은 이제 병원에 검사를 받으러가는 일 외에는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나는 매일 일갔다가 어린 아이를 혼자 집에 두고온 것처럼 불안해하며 급히 페달을 밟아 집으로 달려온다.

 

대게는 누워있는 것이 다반사인데오늘은 일을 갔다가 집에 와보니 뜻밖에 책상에 앉아있었다.

상기된 얼굴로

여보내가 오늘 편곡 한번 해봤어불어봐

 

공책을 펼치니 오선지 위에 은혜의 단비” 이렇게 써 있었다집에 있다가 심심했는지 교회 음악을 꺼내 편곡을 시작했던 모양이다.

갑자기 음감이 살아났고또 오래 앉아있으면 수술한 다리가 다시 아파올까봐 시간에 쫒기듯 서둘러 세 시간만에 편곡을 다 끝냈다고 한다.

 

남편은 기분이 좋은지 어떻게 부르라고 악보에 표시를 해주며 설명했다.

자 하나님의 사랑을 조금씩 알아가던 믿음의 초창기를 기억하면서처음에는 천천히 시작하라구그리고 점점 주님을 알아가면서 받은 그 은혜에 감동하여 그것을 소리로 표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그런 터질듯한 기쁨을 크라이막스로 몰고 가다가 하나님의 영광이 절정에 달할 때 끝을 내야 하는거야알았지그럼 불어봐.”

 

이렇게 연주 주문을 해놓고는 피곤하다며 다시 자리에 누웠다.

 

마른풀 같이 시들은 늪에서 깨어나쩍쩍 갈라진 메마른 땅을 흠뻑 적시는 소나기처럼 내리는 단비를 맞는 희열을 표현하라는 말이다.

 

끝도 없는 평지를 지루하게 달려가고 있었던 듯한 어제의 신앙생활에서

이 굴곡이 심할대로 심한 파도를 타는 요즘나도 알수 없는 이상한 은혜의 힘으로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는 나에게 그것을 표현하라는 것은 그리 어려운 주문이 아니였다.

 

나는 케이스를 열어 풀룻을 꺼내 곡을 불기 시작했다.

남편이 원하는 대로 천....

이 눈물의 강을 건너는 나에게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은혜의 단비가 내 영혼을 서서히 적셔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