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사실 다 늦은 나이에 뜬금없는 중국살이가 시작된 것도 따지고 보면 순전히 저의
잔머리 굴림의 결과인 것 같습니다
지사 발령을 받은 남편을 따라 북경으로 간 딸이 간절히 엄마 오라는 권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큰 이유는 40여년간 살아온 남편과 공식적인 별거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별다른 사연이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밥 해주고 얼굴 보고 사는게 지루 해졌다는것이
솔직한 심정이었습니다
미래를 준비할 절호의 기회라는 딸애가 어학원에 등록을 하려면 4살짜리 손자녀석을
돌봐줄 노동력이 필요햇던 딸이 어찌나 조르는지 남편도 흔쾌히 허락을 햇습니다
남편 역시 저랑 별다르지 않아서 40여년 살아온 마누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이란
생각에 쉽게 대답을 했던것 같습니다
아니 가만 생각해 보니 본인도 해방감을 맛보고 싶었던것 같기도 합니다
하루에도 몇번씩 가나 마나 ,,,어느것이 나에게 편하고 유리할까 잔머리를 굴리다가
특유의 대책없는 성격으로 인해 저의 북경살이 가 시작되었습니다
막상 가보니 생각보다 많은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엇습니다
우선 말을 못 알아 들으니 발도 덩달아 묶인채 갑갑한 날들이 시작 됏습니다
딸애는 어서 말부터 배우라고 뽀족한 소리로 채근이니 어디 그게 맘처럼 됩니까
돌아서면 뭘 배웠는지 자동으로 지워지고 무엇보다 젊은이들과 둘러 앉아 수업중에
마구잡이로 불러 세워 말을 시키는 중국어 선생한테 받는스트레스로 먹은게 소화가
다 안될 정도 였습니다
모기만한 소리로 중얼중얼 거리다 체신없이 웃기만 하고 온날도 허다합니다
아이구 잔머리 굴리다 망했다 무슨 영화를 볼려구 이 나이에 ,,
거기다 손자녀석 보는 것 역시 장난이 아닙니다
집안일은 도우미가 해준다지만 천둥벌거숭이 손주녀석과 부대끼다보면
저녁엔 끙끙 앓는 소리가 날 지경이었습니다
차라리 남편 밥해주는게 상팔자란 생각에 뒤늦은 후회의 눈물을 짓고 있었습니다
그러던중 느닷없이 혼자 살겟다고 큰소리를 치던 남편이 20일만에 전화로 밑도 끝도
없이 낼 간다 하더니 따라 온 것입니다
아마도 혼자서 살아 낼수 있는 극한체험의 한계가 다다른것 같습니다
이리하여 장소만 바뀐채 우리의 40년 넘은 동거는 다시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람 마음이 참으로 간사 하드라구요
군대밥 한숟갈에 하늘같은 고참이라 더니 늦게온 남편앞에 20일 먼저 온 제가
이참에 왠지 군기를 잡아야 될것 같앗습니다
저는 그래도 오기 삼개월 전부터 중국어 공부를 하는 시늉이라도 햇지만 남편은
완전 촛자니 큰소리를 치며 그때부터 저의 주도권행사가 시작이 되엇습니다
물론 아침밥은 없다
로마에 오면 로마법을 따른다
중국사람들은 다 아침을 사먹는다 그러니 그대도 아침은 나가서 해결하고
점심은 더워서 못하니 스스로 해결하고 오직 저녁 한끼만 식탁에 앉을 수 있다
더 이상한 것은 저의 이 명령에 남편이 고분고분해지기 시작 한겁니다
당연히 손자 돌보는 일도 남편몫으로 돌아 갔습니다
그때부터 남편의 손자사랑이 시작되며 그 둘이는 뗄래야 땔수 없는 연인사이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가관인것은 딸애의 지시사항입니다
자연학습을 위해 잠자리 잡으러 가라 송사리 잡으러 가라
체력단련을 위해 달리기 해라 축구해라 등등
남편은 열심히 딸의 지시사항에 맞춰 노력하기 시작했습니다
군소리는 커녕 스스로 좋은 아이디어까지 제출하며 몸으로 뛰는 남편의
결코 예전에 볼수 없었던 놀라운 모습으로 인해 저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참으로 간사하고 알수 없는것이 사람의 마음인가 봅니다
어느날 부터 딸년의 말에 은근히 비위가 틀리기 시작 햇습니다
그러던 중 드디어 사단이 나고 말았습니다
잠자리를 잡으러 달려가던 손주녀석이 그만 연못에 미끌어지며 돌에 다친겁니다
나중에 달려 온 딸 내외가 호들갑을 떨면서 지 아빠 안부는 묻지도 않고 지 아들녀석만
이리 까뒤집고 저리 까뒤집고 하는데 속에서 불이 치솟아 오른 겁니다
아니 이 년놈들좀 봐라
제 얼굴이 헐크로 변하기 오분전 참고 집으로 오자 마자 그 화가 다 남편한테 가고 말았습니다
낼부터 손자 보는것 하지 말고 보따리 사서 돌아가자고 소리를 질러댓습니다
남편이 하는 말이 아이구 난 재밋구 좋은데 ,,,
손주녀석한테 온 마음을 다 빼앗겨 새 인생을 살고 잇는것 같았습니다
그애만 바라보면 그냥 행복하다니 이노릇을 참,,,,,,
지금 그 손주녀석이 9살이 되어 지 할애비 개인 통역비서가 되었습니다
둘이서 다니는 모습을 보면 마치 심청이 눈먼 심봉사 모시고 다니는것 같습니다
지팽이 하나 들면 영락없는 심봉사 행색입니다
그 모습을 볼라치면 ,,,마음에 이상한 슬픈 감정이 싸하게 지나갑니다
아,,,,너의 그 젊음과 패기는 다 어디로 갔느냐,,
월남서 뱁잡아 먹엇다는 너의 그 해병대 야성은 도데채 어디로 가고 잠자리채만
휘드르느냐
섹스피어를 논하던 너의 그 지성은 다 어디로 가고 심봉사가 되엇느냐...
남편에게 물으면 이렇게 답하겟지요 ,,사돈 남 말하고 있네그려 ..
틀린말도 아닙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의 동거는 북경에서 또 다시 6번째의 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김일견선배님~
단숨에 끝까지 읽었어요.
선배님의 글은 엔돌핀을 솟게 하는 매력이 있어요
글 속에 숨은 뜻 이외에
미소를 짓게하는 유머스런 필체가 그것이 아닐까 합니다.
정말 잘 읽었습니다.
일견후배,
너무 재미있어서,무작정 들어와 버렸읍니다.
이젠 중국특파원 까지 생겨서 해외지부가 더욱더 번창할것 같습니다.
내년에 만나면 더 즐거울것 같아요.(미국에서 36 년째 나그네 에서 이젠 이곳이 나의고향이려니 하고 살고있음)
계속 올려주세요.
Thank You,
김일견 후배의 글 넘 재믿게 잘 읽었습니다.
북경생활을 책으로 엮으면 엄청 인기가 있을듯 하네요.
벌써 6번째의 봄을 맞는다면 이제 언어며 음식이며
타향보다는 점점 고향처럼 느껴 질테지요.
일견아,
"남 말하고 있네그려"
제목도 서두도, 뭔가 있겠다 싶더니...
넘 재밌단 표현 이상 더 뭐 없을까?
나그네 5년이면 그럭 저럭 "살만하네"로 변한다더니
사람 사는 예기 많이 들려주라마.
북경에서 온 편지 특유의 냄새가 넘 맛갈스러워.
중국 선배님,
뉴욕에서도 무쟈 재밋게 읽었습니다.
꾸밈없는 글솜씨가 입가에는 미소 흘리게 하고, 고개는 연신 끄덕끄덕, 가슴 속엔 편안한 공감대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짝꿍 얘기라면 지도 박사학위 서네개 쯤 받을 수 있는 수준인데,
선배님 한 말씀에 압도 되었습니다.
"사돈 남 말하네 그려!"
할 말이 없지요, 뭐.
짝꿍의 모습이 바로 내 모습이 투사된 것이라니
뭔 말을 하겠어요? 헉
일견아~
니가 5기 라는 것이 왜 이리 으쓱하니? ㅎㅎ
글을 너무 재미있게 쓰는 ~ 뿐만 아니라 그 속에서 느껴지는 삶에 대한 내공까지 ~ 또 부부간의 잠재된 사랑까지~ 암튼
계속 써서 수필가로 데뷔해도 손색이 없을것 같아.
인생 이모작 화이팅이다.
일견아 ~
어쩜 그리 속마음을 잘 풀어내니 ?
어찌나 재미있던지 남편하고 또 한번 읽었잖니.
마치 우리들 얘기 보는것 같아 둘이 크게 한번 웃었단다.
계속~~ 기대할께.
늘~웃는얼굴로 밝고 명랑하더니
글도 시원하게 잘썼네.
쌓인것 담아 두지 말고 계속 내뿜어라.
너의 한마디 한마디가 늘적지근한
삶의 청량제가 되는것 같다.
중국땅에서 잘난 인일출신 김일견의
좌충우돌 삶의 얘기 들어보자.
???일견씨!!!!!
너무 재밌다.
아무리 바쁘고 시간 없어도 댓글은 남겨야 겠네.
극한 체험의 한계가 20일이라는 문장이 너무 실감나서 옆지기에게
얘기 했더니 자기는 한계가 일주일이라고 하드군요.ㅎㅎ
내가 '한 이주일로 해요' 하고 말했지.
하도 잘 돌아 다니니까 일주일 이상은 여행가지 말라는 뜻이 내포 되어 있는건데...........ㅋㅋ
삼식이 시리즈를 너무 잘 알아서
절대로 삼식이는 안할께 하고 애교 피는 수준까지 왔답니다.
젊었을 때는 상상도 못할 변화이지요.
그나 저나 5기는 무슨 띤데 이렇게 글 잘쓰는 사람들이 많지?
아마도 문필가가 나오는 해에 태어 났나봐.
김 순호. 이 인선. 이 수인. 김 일견. 임 경선.유 명옥. 박 화림. ...............기타 등등
그리고 일견이 처럼 어디 숨었다 나오는 사람이 또 있을지도 몰라.
대단한 5기 동생들 화이팅!!!!!!!!!!!!!!!!!!!!!
에구 댓글 달아주신 선후배님들 고맙습니다 재밋게 읽으셧다니;ㅎㅎ
아마두 우리 모두 조금씩 비슷한 경험들이 있으실껄요 ㅎ
그리구 정다운 우리 동기들아 ,,
시공간을 초월해서 우리가 이렇게 도란도란 얘길 나누니 참 좋지??
근데 정말 내가 글솜씨가 있는거니 ?? 괜히 그러는거지??
난 순진해서 진짠줄 안단말야 킥킥킥
글솜씨로 말하면 정통파 국문과 졸업한 박화림이랑 내 기억에 이수인이 아마
문예반 이엇든것 같든데,,,,
나야 맨날 까불구 댕기느라 무슨 글솜씨가 잇겟니 ㅎㅎ
걍 주저리 주저리 줏어 섬기는거지 뭐
어제는 새로생긴 서울의 쇼핑몰의 한 음식점에서 정보위원회 회의가 있었는데
거대한 쇼핑몰은 복잡한 뇌구조 만큼이나 미로처럼 이러저리 얽혀
입구 출구를 찾아가는 것도 쉽지는 않더군요.
슬렁슬렁 목적지를 찾아 걸으며 선배님의 글에 대해 이야기를 했어요.
제가 말주변이 변변찮아 대충 전달을 했는데도
모두들 깔깔깔 웃으며 집에가면 글을 꼭 보시겠다고 했습니다.
오늘 아침 선배님글을 보고 또보고 읽고 또 읽어도
왜 이리 재미있는지 모르겠어요.
저를 포함한 댓글다신 분들 모두 공감하는 바가 있으신가봐요.
제가 꽁트작가로 작가협회에 회원이예요 ㅎㅎ
아주 오래전에 선배님처럼 신바람나게 글을 썼었죠.
해서 더더욱 신나고 즐겁게 글을 읽고 또 읽으며
꽁트 쓰고 싶은 욕구가 솟아오릅니다.
그런데 지금은 머릿 속이 시멘트처럼 굳어서 쓸 수가 없기에...현실이 슬퍼요 흑
그냥 얼굴에 저절로 미소를 머금고 읽게 되는 글이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부분에선 나도 몰래 웃음이 팍 터지곤 했지요.
삶의 현장 현장들이 실로 눈에 선하게 그려지도록 물흐르듯 써내려간 글이
어쩜 그리 공감이 되고 이해가 되는지 감미롭기까지 했습니다.^^
근데 한국생활은 어찌 덮어두고 결코 잛지 않은 6년이란 세월을 보낼수 있었는지
은근히 궁금해 지네요.^^
일견아.
너무재미있어.
그냥 엔돌핀이 철철 나온다.
사실 요즘에는 한국에 살아도 너희집 비숫하게 변하더라.
내 경우에는 나이 훨씬 어린 내가 수술을 하는 바람에 남편이 놀라서 자진 변신을 하기 시작하더라구.
처음에는 그 편이 홀아비로 사는 것보다는 나을 꺼라는 얄팍한 계산이었던 모양인데
하다 보니 가사노동 힘든 것도 알게 됬고
스스로 할 줄 아는 게 많아지니 여러가지 안심도 되고
무엇보다 자신을 바라보는 나의 눈빛이 따뜻해졌다는 게 엄청 큰 보람이 된 모양이더라. ㅎㅎㅎ
이번에도 4박5일 친정을 다녀 왔는데 요즘에는 있는 거 찾아 먹는 건 전혀 힘들지 않댄다.
일이 되어가는 게 내년에 미국에 가도 되겠더라구.
일견아.
너 너무 잘 들어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