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그녀를 TV에서 보면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여자로서 정치판에서 오만가지 상황을 겪으면서도 굳굳이 견디어내고

반대파의 강공에도 위기를 이겨내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화면에 보이는 그녀의 얼굴표정에서 그것이 내공이지? 싶다.

그런 그녀는 분명한 정치적 목표가 있기에  직면한 상황을 자기식으로 풀어갈 것이다.

정치를 비롯한 대외적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은 속마음을 직접적으로 표출하지 않는 내공이 있어야 가능할 것이다.

 

비교하기엔 차이가 있지만

그런면에서 보면 나는 화가 나면 화도 내고, 기쁘면 호들갑을 피우며 기쁨을 표현하고 있으니

성격이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사람들은(가까운 동문들은) 나에게 정치인과 같은 많은 인내를 요구한다.

인터넷이라는 공개된 매체에 전영희라는 이름이 오랜시간  노출되어있다보면

대단한 유명인도 아니면서  내가 겪는 개인적 고충도 당연히 존재하고 있다.

연예인도 아니면서 연예인들이 겪는 각종 루머, 험담, 뒷담화의 대상이 되어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들어오는 소리들을 들으면 그냥 껄껄 웃고 넘긴 경우가 많다면 많다.

그걸 내공이 생겼다고 하더라.

 

인터넷의 속성을 잘 알고 있는 내가 2003년 이 공간을 만들 때 개인적 갈등이 있었다.

표면에 등장하면 내 얼굴을 비롯한 개인의 여러가지가 동문사회를 비롯해 대외적으로 공개될 것인데

과연 이것을 내가 감내할 수 있을까 고민한 적이 있다.

현실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도있게 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상황에 많이 좌충우돌했었다.

 

학교시절에도 특출나지 않았고, 동문사회에서 이름석자도 존재치 않던 사람이 어느날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통해

표면에 등장했을 때 기존 동창회를 이끌던 분들은 나의 존재에 적지 않은 경계?심을 가진 듯했다.

내가 가진 노하우로서 동문사회에 기여를 하며 나 또한 개인적으로 더불어 성장할 수 있는 win win의

40대 중후반 젊었던 시절 왕성한 의욕은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세월은 흘렀다.

 

역사적으로 산업혁명으로 세상이 뒤바뀌었고, 인터넷 혁명으로 또 한번 바뀌었다 평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인일동창회는 2003년을 기점으로 홈페이지라는 매체를 이용해 열린 공간으로 변화되기 시작해

멀리 살고 있는 동문들도 동창회에 대한 정보를 쉽게 얻고 함께 참여하는 소통의 마당이 되었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문화로 변천하는 시점에 인일동문들은 차츰차츰 동참하여 오늘날에 이르렀다.

 

사람이 오기와 자존심이라는게 있어 일단 만들어 놓은 홈페이지이니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위해

그렇게 되기까지 정말 발이 부르트게 여기저기 쫒아다니고  손가락이 부르트게 타자를 치며 홍보를 했고, 참여를 부탁했었다.

노력한 만큼  결과는 성공적이었으나  나의 운영방식에 불만을 가진 안티그룹들이 생겨나

한동안 나는 이 공간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요즘들어 부쩍 그 때 떠난 후 다시 돌아오지 말걸 그랬나 싶은 후회감이 밀려올 때가 문득문득 있다.

사람들은 나에게 무한의 봉사와 희생을 동창회를 위한 일이라고 요구한다.

큰사람이니 네가 참아라 등의 나와 전혀 상관없는 말들로 위로와 격려를 한다.

박근혜는 정치적 목적이 있어 괴한으로부터 얼굴에 피습을 당하면서도 험난한 정치판에서 굿굿이 버티지만

나는 무슨 목적으로 처음에 가졌던 의욕과 목적은 온데간데 없이 여기서 선배님 후배님하며 방긋방긋

내 감정에 충실치 못하고 성인군자 흉내를 내고 있나 싶다.

 

가장 힘든 것 중 하나는  선후배 서열을 내세워 특정 사안에 대해 무시하려는 경우이다.
일반적인 관계는 당연이 서열대로 관계유지가 되어야 하나
홈피에 관한 업무적인 것에서 서열로만  의사결정이 되어서는 아니되기에
이러한 상황에서 내 나름대로의 전문가적 의견이랍시고 내면 후배가 건방지다는 결론으로 귀결되어질 때였다.
그건 내가 사람을 설득시키는 능력이 부족해서 였을 것이라고 스스로 혁신의식을 고취시키며 극복하곤 했다.

 

또 한가지는 운영방식이 본인이 생각하는 바와 다르다 생각해서 전영희 개인을 보고 공격할 때이다.

책임자로서 회칙에 의거 나름대로 객관성을 가지고 형평의 원칙에 의거하여 운영한다고는 하지만

법률해석도 판사마다 다르듯이  사람마다 홈피운영 회칙을 해석하는 것도 제각각이이서

의견이라고 보기엔 무례한 단어로 게시판에 앞뒤없이 툭툭 내뱉는 불만의 소리도

그 역시 내가 스스로 감내해야 했던 어려움 중 하나였다.

 

아~ 하면 아에 , 어~ 하면 어에 각종 단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전혀 엉뚱한 말로 변신해 동문사회에 둥둥 떠다닌다.

이모티콘 하나 조차도 너무도 다양하게 해석하여 둥둥 떠다니기에

사이버는 참으로 무섭고 조심스러워 글하나 말하나 조심해야 함을 알고 있다.

혹자는 그런다. 전영희가 돈 안들이고 인생공부 많이 했다고.

그럴지 모르겠다. 이제는 어지간한 루머나 비방에는 면역이 많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10가지 중 9가지 잘하는 것은 당연지사로 여기며  1가지 마음에 안들면 온갖 비방의 소리에

아직도 인생공부를 더 해야 될 것같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여기까지 오는데 있어 나를 지탱해준 동문들의 격려와 응원의 소리가 더 컸지 싶다.

기왕지사 시작한 일이니 하는 날까지 동문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싶었고

내가 가진 지식을 나누어 주고 싶었고

그리고 함께 즐겁고 기쁘게 나이들어가고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본문글과 댓글에서  점점 드라이하게 스스로 도태되어 가고 있음을 보게된다.

그런 갈등과 조화를 이루며

세어보니 햇수로 10년의 세월이 그렇게 흘렀다

이제는 내가 직접 뛰지 않아도 동문들 스스로 자발적으로 이 곳에 참여하고 홈페이지는 잘 소통되고 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세월을 이 곳에 머물며 정말 다양한 경험을 하며 이제는 흰머리 소녀가 되었다.

여러 동창회장님들 가까이서 그분들의 리더십을 지켜보며 내 인생 58년 중 10년이 인일 동창회에  남아있다.

 

그간 드라이한 글을 많이 올렸었는데

모처럼 이런저런  머릿 속의 잡념을 써본다.

갈등, 조화...

이런 것은 오히려 사람사는 냄새가 흠씬 나는 것이니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고 일어서서 인간사회를 떠나 자연 속으로 달려나간다.

인생공부하러 간다.

자연은 항상 정직하고 나를 있는 그대로 보아주기에 좋더라.

참고 인내하라고 했는데 이런 글 썼다고 또 한소리 듣는건 아닌가 모르겠다 ㅎ ^^

잠시 머리 식히고 오자!!

면역력을 키우자. 아자!!

전영희 아자!!!! 얍!!!

I can Do It !!!

너~ 아직 58세 밖에 안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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