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회 - 게시판담당 : 구창임
보고픈 엄마!
엄마가 세상 떠난지 바로 30년 되는 오늘이에요.
1982년 2월 7일 주일 아침 ...
전화로 소천 소식을 듣고 달려가니 아직도 엄마는 따뜻했어요.
그때의 감촉이 오늘 따라 너무나 생생히 떠오르네요.
요즘 여기는 학기 방학이에요.
외할머니 손 한번도 만져보지 못한 손녀딸이
방학동안 집에 있으면서
한국음식 중 쉽게 바로 못하는 것들만 이것 저것을 먹고 싶다하고
마침 대보름이라 겸사 겸사
엄마가 해주셨던 음식맛을 더듬어서 만들어 주었어요.
그런데,엄마!
음식을 만들면서 엄마 생각이 너무 많이 났어요.
엄마가 떠난후
아버지가 가족 모임 때마다 내가 만든 음식을 찬찬히 맛보시며 이래라, 저래라 지도해 주셨거던요.
엄마가 살았을때 그렇게 빨리 떠나실줄 모르고 제가 일일히 배워 두지 않았었잖아요.
그렇게 음식만드는중 맛보면서 차차로 엄마가 해주셨던 맛을 기억해냈어요.
신기하죠?
딸애가 묻더라고요.
"엄마, 할머니가 가르쳐주셨어?"
그래서 사실그대로 얘기 해주었더니
" 히히히, 그럼 나도 엄마가 만든 음식 자주먹으면서 그 맛 기억해두면
나중에 엄마처럼 맛을 낸다 이말이지? 그래 엄마?"
그래, 그냥 맛있게 먹기만 해, 그러면 나중에 다 만들수 있어 ..라고 해주었어요.
엄마!
사실은 요즘 엄마가 너무 너무 보고파서
나 스스로 음식해 놓고 엄마가 직접해준 양... 먹은거에요.
그러면서 같이 맛있게 먹는 딸애에게 강조를 했지요.
" 얘야, 할머니 못 보았다고 섭섭해 하지말어,
이 음식이 바로 할머니가 해주시던 것 하고 똑같거던..
그러니까 너는 할머니 음식맛으로 할머니와 사귀는 유일한 손녀딸이란다"
" 알았어. 엄마~.. 그럼 자주 해주셔요. 할머니 더 많이 사귀게 ㅎㅎㅎ"
엄마!
하늘에서 철부지들 같은 우리 모녀 보여요?
엄마는 아버지랑 오빠랑 할아버지랑 재미있게 지내세요?
하늘 나라에서도 한가족이 같이 지내나요?
오늘 밤,
꿈에서 엄마를 꼭 한번만이라도 보고싶어요.
엄마 보여주세요.
밤새도록 눈이 내리는 비엔나에서
2012년 2월 7일을 맞으며
엄마딸 옥인이가 올려요.
선화야!
오늘 밤도 눈이 소리없이 내리는 구나.
선화가 저번에 복을 지니고 사는 방법에서
슬픈음악듣지 말고 즐거운 음악을 들어야 한다고 했었는데..
내가 올린 곡이 그냥 가볍게 즐겁지는 않지?
위의 음악은 너도 잘아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해 CESAR FRANCK가 작곡한 곡이야. 그런데 나에게 추억이 있는 곡이라 부연 설명하자면, 비엔나에서 우리 딸애의 바이올린 선생님 연주회에서 처음 실연주를 들었었어. 그때 내가슴이 어떠했을지 너는 상상이 될거야. 우리애는 초등 일학년 들어가자 마자였으니까 저곡을 치려면 한참걸리겠지 생각이 들긴 들었지만 다음날 당장 악보를 샀어.우선 나만이라도 피아노부분 연습하려고 ㅎㅎ그런 시절이 있었어. 바이올린선생님 제자들 정기 연주회때면 딸애 피아노 반주는 내가 했었지. BACH, VIVALDI 등등...저절로 행복했었는데. 이런 행복을 느낄 때마다 엄마생각이 났었어. 엄마도 내가 피아노 치면 참으로 좋아하셨거든. 언젠가, 파리에 갔었을 때 몽파르나쓰 묘지에 갔었어. 나는 여행중에 종종 묘지를 잘 찾아다녀. 죽은 자들의 남겨논 흔적에서 역사랄까? 하여튼 나만의 그 무엇이 있어. 파리에는 세군대 지역으로 나누어서 큰 묘역이 세곳이 있는데, 여기 몽파르나쓰지역에는 많은 예술가들이 모여 살던시절이 있어서 이 묘지에도 대분분 예술가들이 묻혀있어. 지금 다 열거하려면 시간걸리니까 생략 ^^ 요 아래에 불어로 몽파르나쓰 시메트리라고 쓴게 보이지? 파리의 역사적 기념되는 곳엔 이런 표지가 붙어 있더라고. 거 기에서 CESAR FRANCK 묘지도 찾었었어. 한국 살때부터 " 생명의 양식"이라는 그사람 곡을 좋아했었거든. (아래 유선애 답글 다음칸에 음악 동영상 따로 올릴께.) 선화야~ 어제는 그리움이 차고 넘쳐서 글을 적었었는데, 하루종일 내리는 눈을 보니까 마음이 가라 앉더구나. 너의 댓글 고마워. 큰 위로가 되었어. 마지막 기승 부리는 겨울 잘 지내고 ... 또 보자.
스키장 다녀온 후 감기가 덧나서 오늘까지도 집에서 딩딩대다가~
옥인이의 글을 읽고 감전이 되었네~
내어머님 가신지 몇해인가 따져보니 24년전 ㅜㅜ
많이 잊고 살았구나
먼곳에서 맞은 어머님 기일 마음이 어찌 짠하지 않겠니?
내리사랑이라지 어머님께 받은 사랑 딸내미에게 쏟아부으며 행복해야
하늘나라에 계신 어머님이 기뻐하실꺼야
내사랑은 딸을 넘어 손주에게 몽땅 쏟아붓고 있는중 ㅎㅎ
이게 순리인것 같아 아래로 아래로~~
선애야!
손주랑 스키도 타러 가고 정말 멋장이 할머니구나.
아그~ 나는 무릎이 시원 찮으니 너처럼 스키타는 할머니되기는 힘들겠네.
엄마를 그리는 맘을
한밤중에 ( 여기서는) 어설프게 올려놓고
아침에 일어나서 다시 내릴까 했더니 그사이 너랑 선화의 댓글이 보여서 그냥 놔두었어.
내가 엄마얘기를 쓰다 보면 장편소설쯤 되는 분량의 글이 될거야 ㅎㅎ
친구들이 부담스러워 할 까봐 그만 둘까?.
나중에 기회가 되면 즐거운 얘기만 추려 보던가... ^^
본문에 엄마사진 들어간 것도
추도 기념으로 준비했던 수선화로 바꾸었어.
'수선화'는 내가 좋아 하는 꽃이야.
잘 했지? 방장아.
하여튼 그 어떤 기념일도 그냥 있는게 아닌 것 같아. 생일,기일, 각종 기념일 등등
며칠동안 엄마 생각하면서 내 남은 인생도 다시 또 점검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니 말이야.
선애야 몸살 조리 잘하고 씩씩하게.. 알았쟈?
옥인아 그동안 눈팅만 하고 답글을 못올려 많이 미안하다.
나도 네 글 보고 돌아가신 지 10년이 되어 오는 엄마를 떠올렸다.
옥인이도 선애도 엄마 돌아가신 지가 오래 되었구나.
그래서 더욱 씩씩하게 잘 사는 것 같다.
본래 난 아버지를 좋아했기에 엄마보다는 아버지 생각을 많이 했는데
엄마 생각에 눈물이 찔끔 나왔어.
아버지보다는 엄마가 해 준 일이 더 많았고 더 힘들었음에도 난 좀 이상한 아이다.
아버지가 요즘 말로 딸바보였거든
그런데 엄마 돌아가신 후에는 우리 엄마를 재조명 하고 있다.
좋은 아빠를 갖게 된 것은 엄마의 희생 때문이었다고......
우리 엄마는 그 당시 빠듯한 아버지 월급으로 자식 넷을 다 사립학교에 보내고
음식도 신경 써서 해주시고 옷도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교 직장생활 할 때가지 무척 신경 써주셨다.
그런데 아들딸의 효도를 못 보셨다.
크게 못한 것도 없지만 잘한 게 기억이 안난다.
막내인 나를 의지하고 싶어하셨는데 외아들과 결혼한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그만 얘기해야지.
아무튼 그렇다.
부모는 나중에 자식을 깨닫게 하는 존재인가 보다.
옥인아 어머니에게 보여준 짧지만 애틋한 시절이 더욱 값진거야.
그때 보여준 것이 엄마를 행복하게 해주었을거야.
그러니 엄마에게 못한 사랑을 딸에게 베풀고 이 다음에 태어날 손자손녀에게 보여줘야지?
좋은 사진과 음악으로 위로해 주는 네게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나도 생명의 양식 좋아해.
그런데 몸의 양식을 더 좋아해서 살이 더 찐다.
그럼 그동안 소식 못전해 미안하다 친구들아!
새해 더욱 건강하길......
정인아 ~!
오랫만이야 반가워~
특히, 너의 개성있는 문체에 매료되어 단숨에 읽었어.
우리가 여기서 글을 나누면서 한발씩 가까워 가는 느낌에
온몸이 따뜻해 진다.
네가 막내구나.
내 막내 여동생은 10년전,8년전까지 같이 살던 아버지, 오빠를 차례로 떠나 보내고
너무 힘들어 하더라고. 아직도 그 허전함에서 풀려나지 못하고 ..
멀리 해외에 나와 살다, 가끔 한국 가면 아버지 사랑 내가 독차지했던 것 같아
막내 동생에게 정말 많이 많이 미안해.
지금도 한밤중에 전화가 울리면 가슴이 철컹해.
혹시 막내에게 뭔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하고.
하늘에 계신 분들에게 부탁하는 게
제발 막내동생 건강하게 해달라는 게야.
정인아 너의 댓글 고마웠어
열심히 살아 갈께.
너도 건강하게 지내~~
옥인아 , 넌 딸래미를 위해서라도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살아야지 ?
해외에서 사는 삶이 쉽지않았지만 , 그래도 이렇게 살수있다는것이 놀랍다.
어렷을적엔 부모 떨어지면 못살줄 알았는데...
나도 한밤중에 전화오면 가슴이 철렁하는데 , 이제는 부모님 때문이 아니라
늙으시고 아파서 고생하시는 언니들 때문에.
언젠가는 우리 차례가 올테지만 , 나머지 삶을 씩씩하게 ! 살자 !
그리고
김명옥이 엄마 ! 명옥이를 위해서 오래 오래 살아주세요 !! ! 알았쬬 ?
안타까운 思母曲~~~~!
나 그 때 알았더라면.....
좀 더 잘 하고 살갑게 해드릴 껄!
사느라 힘들었던 시절이라서 고생하셨던 생각만 나서 마음 아프네...
우리도 머지 않아
엄마의 모습을 그대로 하고 있을 텐데......
옥인~!
맘이 쨘해 며칠동안 음미만 했습니다.
넘치도록 엄마사랑에 치인 나는 할말이 없습니다.
아버지,엄마,오빠몫까지 건강하게 누리세요.
이쁜딸 가슴에 못 안박히게 몸관리 잘하시구요.
딸이 다컷어도 구미구미 손갈데가 많습니다.
사위,딸,손주들 양쪽에 거느리고 옛말하며 사시게 되길 빕니다.
김순호 선배님, 안녕하세요
여행 다녀오느라 답글이 늦어졌어요.
이번 여행은 오래된 역사와 문화를 마음에 꼭꼭 채우는데 집중하려고
인터넷 연결을 일부러 피하고 지냈어요.
현대 인터넷으로의 서로 연결되는 체제가
가끔은 생각의 신빙성과 깊이를 느끼기전에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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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다컷어도 구미구미 손갈데가 많습니다.
사위,딸,손주들 양쪽에 거느리고 옛말하며 사시게 되길 빕니다."
라는 선배님 말씀 고마워요,
엄마기일쯤에는 '내가 언제까지 살아있을까?'.. 겁이 나기도 했어요.
위에 말씀하신데로 되는 날을 희망삼아 열심히 살께요.
선배님 건강하세요~
사랑하는 옥인아!
이 음악안에 어머니를 향한 너의 애틋함이 흐른다~~
왜 우리는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 이런 간절함을 느끼지 못하는 걸까?
눈 내리는 밤에 사랑하는 어머니를 추억하며 그리는 네 모습이 떠오르네.
아마도 어머니는 항상 네곁에서 너를 응원하시며, 사랑스런 네 딸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계실것 같아.
어머니의 많은 것 들을 물려받아 항상 밝고, 씩씩하며 , 열정적인 . 네 모습을
대견하게 여기실꺼야~~~
어머니는 너에게로
너는 사랑스런 딸에게로
각인 되며 ,
우리는 이렇듯 흘러가는게 아닐까?
너의 음악과 글을 읽으며 나에게도 아픈 추억이 떠오른다.
8년전 추운 12월에 가신 우리 아버지가~~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나로서는
천국에 가신 것을 확신함에도 아픈 마음을 가눌 수가 없었거든~~
옥인!!
그리움을 함께 나누게 됨을 감사하며~~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