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회 - 게시판담당 : 윤순영
화가들의 그림은 화가 본인의 의도한 바대로 보아주면 금상첨화겠지만
화가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그 주제가 마음을 끌게 하여주고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 준다면 큰 이론은 불필요하다는 생각도 든다.
예술이라고 지칭되어 지는 미술속에 그림만이라도 어떤 개념에 묶이거나 하는데서 자유로우면 어떨가싶다.
시각적으로 보는 예술인 미술에서 특히 그림은 개념없이 자기의 상상의 나래를 활짝 피고
거기다 한발 더 다가가서 무심한 시선으로 보면 더 가깝게 느낄 수가 있지 않을가
설 세고 문득 생각이나서 궤변이지만 첫머리에 올려놓고
그래도 이 그림을 그린 마티스가 어떤 사람이며 작품을 만들면서 어떤과정이 있었는지
후세에 사람들이 또 편리한대로 만든 그의 이야기를 한것을 가져와 봅니다.
알고싶어하는 몇몇의 사람들을 위하여.........................
마티스는 1869년12월31일 프랑스 북쪽 르 카토에서 곡물상을 하는 부친과 아마추어 화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렇다 할 특징이 없는 소년인 마티스는 아버지의 희망에 따라 법률을 공부하고 파리의 법률사무소에 근무했다.
그러나 20세가 된 마티스는 맹장염이 터져 긴 요양생활에 들어가면서 병원에서 그림 그리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어머니는 그를 위해 그림물감 한 상자를 주었는데 이것이 마티스를 한 사람의 위대한 화가로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한것이다.
기분을 달래려고 시작한 마티스는 그림에 마음을 빼앗겼다.
아버지는 반대했지만, 법률을 포기하고 파리에서 푸쌩과 샤르댕 등의 작품을 모사하는 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드디어 그는 미술학교에서 입학하면서 구스타프 모로의 눈에 띄어 그의 화실에서 그림을 시 시작했다.
여기서 마티스는 동료화가인 루오와 마르케 등을 만나면서,
스승 모로의 가르침대로 색채화가로서의 천부적 재질을 나타내기 시작 했다.
그의 스승 모로는 '너는 회화를 단순화 시킬 것이다'라고 예언 했고
마치 그 예언처럼 마티스는 1896년 봄 살롱전에 "독서하는 여인"이 주목을 받았다.
다음 해에 출품한 인상파 화풍의 "식탁"이 다른 화가들로부터 혹독하게 비난 받았다.
너무 그들과 달랐기 때문이다.
그는 인상파의 대가 피사로의 지도로 세잔느나 고갱에게 이끌렸으며,
신인상파 시냐크의 영향으로 점묘법 스타일을 보여주었다.
살롱전에서 주목을 받았다는 "독서하는 여인"
혹독한 비난의 화살을 맞았다는 인상파풍의 "식탁"
마티스의 작품들을 초기그림서부터 후기 그림까지 망라한 동영상을보면서
전체적인 화풍의 흐름을 재미있고 화려하게 보는 즐거움을 가졌었기에
동영상도 올려봅니다.
마티스의 노년의 온화한 모습과 함께 작업하는 실제상황을 곁에서 지켜보는듯
현란하게 움직이는 붓질하는 또는 선 하나 하나도 섬세하게 조심스러운 손놀림으로
그려 나가는 노화가의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혜경이 집으로 돌아온거야요~!
어제 순영이 전화 받고 해외지부에가서
재미있는 장면을 찍은 혜경이 수고도 알았고 모자쓴 본인모습도 보고
많이 반가웠네..........
미국가서 만나본 얼굴들도 보여 또 반가웠고요.
포샾으로 장난을 칠 만큼 댄스도 그렇고 저 작품의 문양이
1930년 이후에 작품에 많이 등장하는 주제이더라구요
<폴리네시아 바다> 란 작품에 등장한 저 잎사귀 문양이
타이티 여행에서 받은 영감을 10년후에 등장 시킨것이라는데
참으로 천재들에게 내재된 실력은 반짝이면서도 끊기지를 않는다는 생각이지요.
방스의 교회 스테인드 글라스도 저 문양이고
친구가 그려준 그림속에 잎사귀도 그렇고...........음표같은 느낌이랄까
여러동영상중에 꼭 올려보고싶었는데.........실제로 혜경이가
접하고 사진까지 찍은걸 보니....무언가 통했는지 신기해요!!!.....ㅎㅎㅎ
마티스의 작품중 그림의 변화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묶어놓은
중요한 작품들이 많이 보여 재미있는 동영상이지요.
푸른색누드가 동영상에서는 더욱 뚜렷하게 클로즈업 되는 느낌인데요.
??은희야!!!!
바쁜 구정 쇠고 어느 틈에 이렇게 앙리 마티스를 올렸니?
공부 열심히 하고 있다.
내가 모르던 세계의 공부 이구나.
혜경이는 좋은 작품을 자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복 받은 여인 같다.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성공한 인생이야.
오손 도손 은희와 이야기 나누면서 내가 모르는 것을 많이 가르쳐 줘라.
오늘 하루도 행복 하기를.....................
은희야!!!
우리집 구정날 풍경 봄날에 올렸다.
봄날에서 수다 떨다가 올려서 2기에는 못 올렸어.
대문글에서도 피력했지만 마티스의 화가로서의 작품의 변화와
과정을 알고싶은 친구들과 후배들에게 그동안 모아놓은 스크랩한 글중에서
가져와 찾아다니는 수고를 덜어주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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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스는 인상파의 대가 피사로의 지도로 세잔느나 고갱에게 이끌렸으며,
신인상파 시냐크의 영향으로 점묘법 스타일을 보여주었다.
마티스는 예술가는 최선의 자아를 오직 그림 속에 쏟아 부어야 하며
그렇지 못한 경우는 비극일 뿐이라고 그림에 몰두했다.
그만의 독창적인 순수한 색채의 노력이 여기서 출발한다.
평론가 루이 보셀이 도나텔로에 갇힌 야수라는 말에 의하여 붙여지기 시작한
강렬하고 원색적인 작품들은 마티스를 더욱 유명하게 했다.
바로 포비즘 운동은 어디까지나 표현수단의 순수한 것을 재발견하는 용기가 된것이다.
야수파의 출현으로 주목 받은 마티스는
미국인 콜렉터 스타인과 러시아의 컬렉터 슈추킨, 모로조프 등이 그의 작품을 앞 다투어 구입하면서
경제적 안정과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의 작품들은 격렬한 색조의 특징으로 새로운 화풍의 작품을 내놓았고
1906년에 완성된 야수파 시대의 기념비적인 대작 <삶의 기쁨>이 그것이었다.
물론 이 때 제작한 <푸른 누드>는 세잔느 녹색의 깊은 영향을 보여준다.
1906년 고갱에게 영향을 받고 그의 야수파시대의 문을 활짝연 <삶의 기쁨>
1907년 세잔느에게 영향을 받아 그린 <푸른 누드>....
이후의 여러 장르의 변화로 보여주는 푸른누드의 연작이 계속된다.
점묘법(분할주의)의 신인상주의 화가 폴 시냑에게 영향을 받은 !904년 작<"Luxury, Calm and Pleasure">
다시한번 마음에 드는 글과 더불어 나자신도 다시 정리하는 마음으로 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