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어느날 부터인가 거울에 앉으면 거기 어머니가 있습니다
어머니 ,,가만히 불러보면 아무 대답없이 애잔한 눈빛으로 바라만 보십니다
제가 웃으면 따라 웃으시고 제가 눈물을 흘리면 따라 우십니다
지난 늦가을의 11월 ..
낯선 병동에서 어머니는 이생의 모든 끈을 놓으시고 오실때 처럼 그렇게 혼자 가셨습니다
구년 간의 병수발끝에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훌쩍 기력이 쇠하신 어머니를 어느자식도 선뜻 모셔오지 못했습니다
평생에 폐끼치는걸 유독 싫어하셨던 그 꼿꼿한 자존심으로 혼자 사시기를 당신이 원하신다는 궁색한 변명이
변변치 못한 자식들의 체면유지 였습니다
저 역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아니 맏딸이요 외딸인 제가 오히려 부채질을 했습니다
며느리들 눈치보지마시구 혼자 사세요 혼자 그대신 제가 자주 찾아올게요 ,,
솔직히 처음엔 그럴 맘이었습니다
그러나 한해두해 자주 아프신 어머니 병원 모시고 가는일 시장봐 드리는일
외출하실때마다 시도때도 없이 오는 호출에 은근히 부아가 끓기 시작했습니다
왜 나만 자식인가 왜 나만 의지하는거야 도대채 아들며느리는 뭐하는거야 ...
마음에서 시작한 불만은 눈덩이처럼 커지며 결국 저는 어머니 곁을 도망치듯 떠났습니다
물론 일부러 그런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분명 탈피요 도망임을 누구보다 제 자신은 부인할수가
없습니다
또한 이제부터 어디 너희들 (동생들) 맛좀봐라 ...
이런 치졸스런 생각으로 음흉한 미소까지 남몰래 지으면서 말입니다
결국은 임종도 지키지못한 씻을수 없는 불효자식이 되고 말았습니다
위독하단 소식을 듣고 밤비행기를 타고 달려갔지만 어머닌 눈을 감고 제 얼굴을 보지 않으셧습니다
앙상하게 뻐만 남으신 어머니의 모습 그 살과 그 기운을 일평생 다 자식들을 위해 쏟아 내시고
이생에서 자식 짝사랑만 하시다 떠나신 어머니 ,,,,
어럴적 성탄절에 어머니께서는 늘 못지떡과 단팥죽을 만드시며 늦은밤 새벽송을 도는 찬양대원들을 대접하곤 하셨습니다
올핸 저도 어머니처럼 못지떡을 만들어 성가대원들과 함창단들과 나누어 먹었습니다
깊은밤 어머니 기도소리에 잠이 깨던 날들이 생각나 어머니가 그리울땐 저도 어머니 처럼 무릎을 꿇습니다
거울속에 앉으면 거기 어머니가 있습니다 .속울음을 삼키며 조용히 되네입니다
어머니 용서하세요 ..............................
글마당에 올라왔던 글인데
자유게시판으로 이동했습니다
기온이 올 겨울들어 가장 많이 떨어진 아침입니다.
뼈 속깊이 스며드는 찬 공기를 마셔보며
차분하고 조용하게
그리고
가슴 깊이 솟아오르는 그 무엇인가를
눈을 감고 생각해보게 하는 김일견선배님의 마음입니다.
저도 꼭 3년전 김일견선배님과 똑같은 심정으로 자유게시판에 글을 올렸었죠.
그 때 올렸던 음악을 다시 가져왔습니다.
일견아
우리 모두 다 그러고 살쟎아?
아무리 남보기에는 효도 했어도 후회 안하는 자식이 있겠니?
근데 너 원래 이리 글을 잘 썼니?(이런 분위기에서 나두 참....)
우리가 짝이었는데 왜 그걸 몰랐지?
이게 다 잘못된 입시때문이겠지?
언제 수업말고 자기를 들어내 볼 틈이나 있었어야 말이지.
회원되자마자 아주 대박을 터뜨리네요.
우리 친정은 정말 순리대로 오빠가 곁에서 사시고 모든 부모님 수발을 다 하셔서
뭐 하나 우리 딸들이 나설 필요가 없었어.
아버님 돌아가시고 엄마 혼자 남으셨지만 끝까지 오빠만 믿으면 될테구 우리야 가끔 가서 재롱만 떠는 거지.
나도 지난 7월에 시어머니 돌아가셨거든.
96세셨으니 생애에 당연히 숱한 이야기꺼리가 있지.
근데 난 큰며느리였고 솔직히 그분 덕분에 내 인생은 완전 소모품이었다는 생각을 함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는데)
우리 시집의 형제들은 모두가 자기가 어머니를 돌보았다고 생각들을 한단다.
게다가 우리만 부산이고 다른 4남매가 모두 서울에 살거든.
고령의 노인분께서 한두 달에 한번씩 찾아와서 해드리는 수발로 살아가셨다고 믿는
그 사람들의 상식이 어이없지만 실제상황이 그러니 내가 뭘 어쩌겠어?
사실 우리 어머니는 모든 자식들을 불러 내리기 편하게 하시려고 끝내 혼자 사시길 고집하셨는데
그게 우리에게는 큰 멍에가 된 거야.
평생 이웃에서 이사도 못가고 완전 오분대기조였지.
서울서 온 사람들은 모두 저지르고만 가.
어머니모시고 무리하게 싸돌아다니다가(하루 이틀에 실적 올려야 하니까 ) 감기드셨다고 전화하고 가고
영문모를 물건 사다놓고(돈도 어머니가 내시지) 가버리면
사용법 모른다고 전화 오고 고장도아닌데 고장났다고 전화오고.......................................
(내가 산 게 아니니 나도 모르지)
허지만 그들은 뭐든지 자기가 모시고 가고 자기가 사놓고 갔다고
자신들의 치부책에 가득 기록해놓고는 우리를 하인부리듯 살았단다.
큰오빠나 언니가 뭐 한 게 있느냐고....................................
싸워봐야 남는 게 없고 어머니가 그사람들 편을 드시니 어쩌겠어?
솔직히 내 느낌으로는 그 사람들이 한 건 효도를 빙자한 자기과시였던 것 같았어.
우리가 힘을 합해서 분업을 하면 어머니께서 더 많은 걸 누리실 수가 있는데
너무나 비합리적으로 하고들 갔거든.
내가 항상 의아하게 생각한 건 이 사람들이 자신의 권한을 엄청 과대평가한다는 거였어.
시집식구란 건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졌다고 믿었던 모양인데 좀 많이 웃기더라구.
세상적으로 비교하자면 받은 축복이 뭐하나도 나보다 나은 것이 덜한 사람들이라
그냥 참을 수 있었던 것 같아.
"무식한 것들" 로 다 무시해 버린거지.(잘했다는 건 아니고)
장례식 때 참 시시한 일로 엄청 통쾌했다.
뭐든지 큰아들 다음이 큰며느리 큰손자의 순이더라구.
둘째 아들이 나서려고 하니까 주관하는 분이 탁 막아. "큰며느님 순서예요".
딸들이 또 나서려고 하니까 출가외인이라고 꼴지로 하랜다 ㅎㅎㅎㅎㅎㅎ
딸이 일 다 한 집에서는 그런 형식이 반대로 엄청 열받칠꺼야.
일견이 글이 반가워서 들어왔다가 별 소리를 다 주저리주저리 읊었다.
언제 서울에 나오니?
미리 연락 주면 나도 엄마보러 인천 갈께.
전 싸부.
이 음악 제목이 생각이 안나요.
갈쳐주세요.
어제 인일 홈피 말고 다른 곳에서 오랫만에 글자색갈이랑 크기 좀 바꿔보려고 했더니
새카맣게 다 잊어서 생각이 안나더라구요.
으째야쓰까이~~~~~~~~~~~~~~~~~~~~~~~~~~~~
일견아 감동으로 어머니 글 읽었어.
정말 어찌 글을 그리 감칠 맛나게 잘 쓰니?
몇년전 인일 홈피 들어와
글 잘 쓰는 친구들 보고 너무 놀랬었는데
늦게 들어와 너도 또 대박 터뜨리는구나.
명옥이도 표현력이 참 좋아요.
어른들에 얽힌 이야기들..
거울에 있는 어머니...
우리차례가 점점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일견아~
아침부터 눈물바람 하게 하는구나.
오늘은 특히 우리 아버님 연미사 넣고 새벽미사 하고 오는 길이라 더욱 너의 글이 와 닿는다.
자신을 미화시키지 않고 너무나 진솔하게 쓴 너의 글 감동적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한 사랑은 영원한 짝사랑인거 같아.
오늘 새벽 미사보며 묵상하는데 한번도 제대로 아버님의 말씀을 들어드린것 같지가 않아 후회가 많아.
왜 하신 말'씀 또 하시냐고 퉁박한것도 여러번~
친구들 얘기는 성의껏 잘 들어주면서 말야.
나도 주위에서는 아버님 잘 모셨다고 칭찬했지만 나만이 아는 불효에 양심이 저려 많이 눈물 지었다.
시부모님이야 당연히 모셔야 하지만 친정부모님 모시기는 쉽지가 않아.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말아.
니가 자주 들어오니 너무 좋다.
유명옥선배님
위의 곡은 아일랜드 민요라고 합니다
아일랜드는 지정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한이 많은 나라인만큼
음악에서도 그 정서가 잘 묻어나네요
여러가수들이 불렀던데 저는 이 팀이 부른게 가장 슬프고 마음에 닿아요
제목은 Down bythe sally gardens
가수는 Rankin family
유투브에 가서 Down bythe sally gardens 로 검색하면 다양한 가수들이 부른 동영상목록이 나옵니다
가사가 꼭 우리, 아니 저를 두고 쓴 것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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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견아,
어머님을 잃은 슬픔...
얼마나 힘들까!
거울속의 어머니,
널 위로해 주시고 꿈에서라도 돌보아 주실거야.
난 아직 어머님이 생존해 계시는데
일주일에 한번 전화드리는 것으로 위안을 삼고 사는데...
돌아가시면 엄청 후회할 거 같아.
늘 고맙단 말을 덧붙여야 겠다는 다짐을 내 글을 읽으며 해 보네.
나 이번에 인천 가서 5박 6일이나 했단다.
평생 객지에 살면서 친정에 가서 이리 탱자탱자 놀아본 건 처음이다.
저 살기 바쁘고 힘들다고 푸념만 하고 살던 내가
함께 엄마 고향도 가고 일본 아들집도가고 이리 며칠씩 있게 될 줄 몰랐어.
솔직히 친정에 가면 아직도 어린아이처럼 엄마가 해주시는 밥 얻어먹고
(귀찮다고 손도 못대게 하신다. 마음에 안드시나봐 ㅎㅎㅎ))
죙일 놀러만 다니는데 그것도 엄만 좋으신가 봐?
인천에 와도 갈 곳이 없어 집에만 있던 내가 (30년 이상 누가 어디 사나 모르니까)
늙으막에 인터넷인가 하더니만 인천 바닥이 좁다고 싸돌아다니는 게 다행스러우신 모양이야.
엄마사랑은 그저 끝이 없다니까.
일견아 자주 들어와서 이야기 나누자꾸나.
선배님
이곳 홈피에서 처음으로 인사 드립니다.
11회 백경수이구요.
선배님의 글을 읽고 눈물이 났습니다.
나름대로 위로의 말씀을 드리면요
삶과 죽음이 그리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저의 요즘 생각을 전해 드리고 싶군요.
어머니는 편히 주무시듯 그냥 쉬고 계시는 걸 거예요.
언젠가 우리가 가고,정말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면
천사들처럼 어머니와 딸의 인간적인 경계를 넘어서서 만나게 되겠지요.
우리들의 모든 관계가 참 좋긴하지만,인간사 잠간으로 족하지 않겠어요?
아무튼 감동있는 선배님의 글에 댓글이 쓰고 싶어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