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것에서 있는 것을 만드는데

그림으로 그렸으면 그만이지 무슨 말을 덧붙일까?

세상엔 시인이 많고도 많다지만

그 누가 흩어진 나의 영혼을 불러주리오"

이 시는 17세기 인조때, 연담 김명국이 "죽음의 자화상"이라는 그림속에 쓰여진 시이다.

상복을 입은 채 지팡이를 짚고 어디론가 떠나가는 자의 뒷모습을 그린 것인데

그림 한쪽에 마구 흘려 쓴 시를 보면

저승으로 가는 연담 자신의 모습을 그린 것임을 알 수 있다.

 

연담의 "죽음의 자화상"처럼

우리 모두 저승을 향해 뒷모습을 보이고 떠나는 나그네이지만

한 해가 소리없이 가고 새해가 뜨면

생각없이 무료하게 시간만 죽이다가 갑자기 이런저런 생각에 마음만 바쁘고 심란하다.

날마다 쏟아지는 뉴우스의 홍수속에서

어제의 일은 휙휙 사라져버리고

매듭이 없는 강물은 예전과 변함없이 흐르는데 다시 세상은 시끄럽다. 

세월의 강물속에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세밑이 되면 이 물음이 어김없이 나를 괴롭히고

그때마다 연담의 "그 누가 흩어진 나의 영혼을 불러주리오"를 되뇌인다.

 

내 흩어진 영혼을 불러주고

내 영혼을 가슴 떨게하는 것들이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아닐까 라고 오늘도  내 주변을 둘러본다.

아름다운 사랑을 만나는 설레임에 영혼이 떨리고

아름다운 음악과 책은  감동으로 영혼을 쉬게하고

아름다운 꽃 한송이에도 한숨이 나오는 것은

진흙 속에서 한송이 연꽃이 피듯 순수한 영혼으로 세상을 보고 있음이 아닐까?

 

요즈음 "빠담빠담빠담"이라는 드라마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한다.

주인공 남자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16년을 살다 감옥에서 단두대의 이슬이 된다.

그러나 죽었던 남자는 목에 밧줄에 묶인 흔적을 갖고 태어나 

이승에서 전생의 만난 인연들과 다시 만나  사랑하고 미워하고 서로에게 아픔을 주고 산다는 이야기이다.

밑바닥 인생을 살았지만 맑은 영혼을 소유한 남자와

저런 인간을 동정했을 뿐 사랑을 한 것은 아니라고 믿고싶은 여자의 눈빛연기가 일품인 이 드라마가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는 모르지만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메세지는 확실하다.

현재 우리는 전생의 빚을 갚으며 살고 있으며

언젠가 그 빚을 다 갚아야만  인연의 사슬에서 풀려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싶은 것이 아닐까?

그래서 옛 어른들은

"사랑하는 사람도 가지지 마라. 미워하는 사람도 가지지 마라.

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나서 괴롭고 미워하는 사람은 만나서 괴로우니까"  라고 노래한 것이 아닐까?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흩어진 내 영혼을 떨게 할 그 모든 것들이 돌아보면 내 주변에 널려있는데 왜 평소엔 무심한 것일까?

얼마전 모임에서

친구 수녀님이 사과모양의 예쁜 색깔의 종이를 우리에게 나누어주며 소원을 쓰라고 했다.

성당 앞뜰의 사과나무에 걸어놓겠다고.

다른 친구들은 무슨 말을 썼는지 모르지만

"그리움과 설레임과 기다림 속에서 살게 해주십시오"라고 써서는 건네며 나도 모르게 픽 웃음이 나왔다.

아직도 10대의 순수하고 떨리는 영혼으로 살고싶은 내 자신이 어이가 없어서....

그것도 욕심일까?

그래도 나는 순수한 영혼을 잃고싶지 않다

만약 그런 순수함으로 남의 마음을 울릴 수 있는 시 한 줄 쓸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무엇이 있을까?

 

 

임진년이 밝아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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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잎의 돌기속에 갇혀버린 벌과 나비처럼

     나는 너를 운명이라는 이름으로 가두고싶다.

 

      빠져나가려 애를 쓰면 쓸수록

      더욱 더 빠져드는 돌기의 아우성속에

      꽃은 아스라이 바스러져도

      너를 향한 그리움 하나로 죽어도 좋아

 

      꽃잎의 돌기속에 

      나는 너를 운명이라는 이름으로 가두고싶다. (사진...3회 김혜경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