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한나의 공연을 보러 가는 마음이 그렇게 가볍지 않았다.

너무 매스컴에 이름이 많이 오르내린다는 생각이었고, 씨디로 음악을 들을 때는 실상 내가 갖고 있는 귀가 신통치 않아서인지 모든 연주자의 연주가 다 좋게 들려서 특별히 차별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마음이 울적했던 이유는 이 공연을 보게 해 준 아이 때문이었다.

중학교에서 가르친 아이인데, 3년 내내 전교 10등 정도를 유지하던 무척 총명하고 성실한 아이였음에도 집안이 너무 어려워서 상고를 갔다.

미칠 것 같은 인문학에 대한 욕구로 다시 인문계 고등학교로 옮겼지만 그런 과정에서 시기적으로 밀렸고, 또 밀어주는 힘도 없고 집안은 더욱 어려워져서 결국은 원치도 않는 2년제 전문대로 진학을 하게 되었다.

한동안 연락을 안 하더니 회사에 다닌다는 연락이 오랜만에 왔다.

티켓팅 하는 회사를 알바 형식으로 다닌다고 했다.

알바로 시작했지만 애가 워낙 총명하니까 정직원으로 뽑혔고 그만둬야지 그만둬야지 하면서 지금까지 다니고 있다.

연말에 선물을 하나 하고 싶었다며 장한나 첼로 리사이틀 티켓을 보내 온 것이다.

그애가 직접 사지는 않았겠지만 좋은 좌석의 티켓을 확보하기 위해서 마음을 얼마나 썼을 것인가

 

초대권 받는 곳에서  피곤한 낯빛으로 서 있다가 반갑게 웃는 아이를 보니 장한나고 뭐고 자꾸 가슴이 먹먹하기만 했다.

게다가 그 아이는 그 공연을 보지도 못한다.

선생님 끝나고 이리 오세요, 여기 있을게요

아무 말도 못하고 들어가는데 아! 정말~~~~

 

그런데 그러고 들어가 본 장한나는 뭐라고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했고, 완벽했다.

음악의 신이 그녀의 몸에 강림한 것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 바로 일주일 전에도 예술의 전당에서 비교적 안정된 첼로 연주회를 보았는데 오늘의 연주는 완전히 달랐다.

득도한 노인 하나가 그녀의 안에 들어 있는 것 같았다.

아~~~~~아아아 아아아 아아아~ 이렇게 이어지는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를 시작으로 라흐마니노프의 첼로 소나타, 그리고 파야의 7개의 스페인 무곡, 마지막으로 피아졸라의 그랜드 탱고를 연주했다.

완벽한 음색이었다. 악기도 소리 자체가 다른 느낌이었는데 무엇이었을까?

완벽, 완숙, 안정, 깊이, 한몸, 음악 속의 기쁨, 음악 그 자체 이런 것을 갖고 있었다.

최고의 연주자였던 로스트로포비치가 연주하는 어린 그녀를 보고 놀라서 소리쳤다고 한다.

<그녀는 천재다! 천재는 천재를 알아본다!>고.

그랬을 것 같았다.

정말 놀라웠다.

우리가 잘 아는 앵콜곡을 할 때 그녀의 연주는 더욱 빛났다.

자연스럽고 친절한 자세로 앵콜 연주를 하는 그녀의 안정된 모습을 보고 참 훌륭한 사람이구나, 열심히 자기 발전을 위하여 공부를 열심히 하는 사람이구나 하는 것을 아주 잘 느낄 수 있었다.

좀 충격이 컸다.

타고난 능력이 있는 사람이 그 능력을 인식하고 끊임없이 노력하면 이런 경지에 이를 수 있구나 하는 생각.

정말 이런 연주를 볼  수 있다는 건 영광이고 너무나 큰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연주회가 끝나고 다소 상기된 얼굴로 나오니 그 아이가 텅빈 초대권 교환처 앞에 추운 듯 창백한 얼굴로 서있었다.

ㅂㅈ아~ 나 너무나 훌륭한 공연을 봤어. 상상 이상이야. 정말 고마워~~ 근데 추운데 집에 가지 그랬어~

활짝 웃으며 그 아이가 말했다.

와~! 선생님 공연이 좋으셨다니 너무나 기뻐요.

(너 건강해진 거니? 다시 힘이 생긴 거냐구? 우리 만나자. 영화도 보고 맛있는 것도 먹고 네 이야기 좀 듣자.

너 연기하고 싶다며? 같이 이야기 하고 방향을 잡아 보자 무조건)

말하고 싶었으나 그냥 그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그리고 동료들 있는 곳으로 가볍게 뛰어가는 아이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