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톤 챨스 강변에서)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뒤 유품을 정리하고 아파트를 청소하는 것이 급한 일이었다.

동생과 나는 더 급한 일들을 대강 마친 후에 권사님이 혼자 사시게 될 그 아파트..

아버지께서 15년 사시던 곳에 카펫을 샴푸하고 페인트 3 갤론을 사서 칠하기로 했다.

 

아파트가 적다고 그까짖 것쯤..하고 시작했으나 이삼일 노가다 일은 그리 쉽지 않았다.

샤워헤드와 전등갈기, 등등의 일은 재료를 구입하기만 하고 조카에게 부탁했다.

 

이삼일 계속 청소를 하고보니 구닥다리 아파트가 환하고 완전 새 집이 되었다.

왜 아버지 사실때 진작 좀 해 드리지 못하고 이제야 하나..하는 후회가 막급이었지만

아버지께서 지금이라도 권사님을 위해서 해드리는 것을 아주 좋아 하시리라 믿어졌다.

 

은행으로 우체국으로 권사님의 필요한 일도 해드리고

휴가 낸 일주일 동안 새벽마다 픽업하여 허드슨 강변에 함께 뛰러 가기도 했다.

7 개월 밖에 함께 살지 못하셨지만 잠간만에 정이 흠뻑 들어서

마음이 헛헛하신 권사님을 혼자 내버려 둘수 없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면 그것으로 끝이라고 하고 시작한 관계였으니 유품만 정리하면 마지막이겠지 각오 하셨던

권사님은 우리에게 놀라셨던 모양이다. 친구들에게 마구 자랑을 해 대신다.

말이 그렇지, 한번 시작된 인연이 그렇게 칼로 무자르듯 할수는 없지 않은가?

사람 하나 얻기란 얼마나 어려운데...

 

권사님이 우리 아버지를 위해 해드린 일은 우리 자식들 모두가 다 합해서 해드린 것보다

훨씬 더 큰 것이었다는 깨달음.. 진심으로 잘 해드리려고 애썼다는 것을 어찌 모를까?

이야기를 들어볼수록 우리도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우러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권사님은 우리의 노동을 최고의 선물로 생각해서 저녁도 사시고 몹시 고마워 하셨다.

어쩔줄 모르며 좋아하시니까 몸은 고달팠지만 마음이 아주 기뻤다.

남을 기쁘게 해주면 반드시 내가 더 기쁜 것이다.

 

그런데 지난 토요일 우리들을 어디로 데리고 가겠다고 전화를 하셨다.

동생은 김치 국물을 조금 마셨는데 한시간 반쯤이 드는 일이라고 해서

어디 샤핑을 데리고 가서 선물을? ㅎㅎㅎ 하며 희희덕였다.

그랬더니 우리를 데리고 간 곳은 엉뚱하게도 지압하는 곳.

 

딸 덕분에 얼굴 마사지를 꼭 한번 받아본 적이 기억에 가물하나

흔한 발지압 한번도 받아 본 적 없고 전신지압은 물론 들어 본 적도 없었다.

 

 

난 아픈데가 하나도 없고 손가락이 좀 아파요..

남자 지압사에게 계면쩍어서 그렇게 말하고 엎드렸다.

실은 양쪽 손가락이 두개씩 늘 아파서 며칠전 한의사에게 부탁을 했는데

엉뚱한 데 침을 놓고 손가락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나올때 용기내서 또 물어보니 파라핀 물이나 뜨거운 물에 손을 넣고 찜질을 하라고 하여서

아, 내 손은 이제 못 고치나 보다. 이제 이 손가지고 사는 수 밖에 없나보다.. 절망을 했던 차였다.

 

그런데 그 지압사는 관절이 서로 붙어서 그렇다고 하며 정성을 다하여 손과 팔을 지압하고 마사지를 해 주었다.

내 손과 손가락.. 너무 오래된 아픔...이 약한 손으로 일을 너무 많이 했다.

손가락이 아파요..라는 말을 할 때마다 미국와서 고생한 생각이 나면서 눈물이 공연히 흐르는 이 바보.

그런데 모르는 사람이 내 몸을 정성껏 온힘을 다해 지압을 해주니

얼마나 송구스럽고 고마운지, 진짜 눈물이 흐를 정도로 감격이 되었다.

연변에서 온 사람들이라는데 그렇게나 겸손한 자세로 해줄수가 있을까 정말 놀랐다.

 

지압으로 허리와 오른팔 쩌귀에 나도 잊고 산 아픔이 다 드러났다.

온전치 않은 곳을 지압하면 아주 많이 아팠는데 그런 곳이 지압이 필요하고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 그래 언젠가 거기 아팠었어. 기억이 났다.

저절로 흐르는 신음.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옆 지압대에서도 그 옆에서도 들린다.

 

한시간을 쉬지않고 온힘을 다해 지압을 해주는 것이 끝이 나고

일어나 보니 손가락의 아픔이 아주 간데 온데가 없다. 날아갈 듯 가볍다. 

정확히 말하면 95프로의 고통이 없어졌다.

이럴수가?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결과였다.

오른 팔을 돌리면 우두둑 하던 소리도 단번에 없어졌다.

그리고 오늘까지 닷새 지났는데 그 아픔이 아직도 돌아 오지 않고 있다.

 

동생도 올캐도 권사님도 모두 대단히 흡족한 지압이었다고.

각자에게 용케 아픈 것을 집어내고 고쳐주었다고 한다.

너무나 감사해서 돈이 있으면 팁을 두둑히 주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었다.

 

권사님은 10 번에 400불을 내고, 두번은 무료로 해주는 표가 있어서

그것으로 우리 모두를 위해 지불하셨다.

나는 지압이 비싸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어서 좋이 일인당 백불은 달랠텐데...

이 정도라면 백불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 밖에 안 받다다니.

그는 맥도 집을 줄 알고 침도 놓을 줄 알고 한약도 지을줄 안다 하던가?

실력가의 솜씨를 너무나 적은 돈을 주고 받았는가 싶어 미안하기까지 했다.

 

지압 받은 직후 뉴저지 동창을 만나는 약속이 있었는데 친구들에게 단단히 자랑도 하고 소개도 해 주었다.

실은 둘다 데리고 가서 지압을 선물로 줄까 했는데 한 친구는 바쁘다며 가 버리고

한 친구만 가능하여 데리고 가서 한시간을 지압을 시켜주었다.

나도 거저 받았으니 친구도...

 

지압사는 내게 와서 친구는 좀 더 길게 지압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몸이 너무 굳어서 자주 몸이 저릴 것이라고. 

친구 말에 정말 그런 문제가 있어서 밤에 잘때 힘들었다는 것.

이틀후 확인 한 바에 의하면 그날 다녀 온 뒤로 저리는 증상이 현저히 줄었다는 것이다.

 

좋은 것이 있으면 알리는 데 못말리는 내 동생도 또 친구들을 데리고 가서 받았는데

정말 좋다고 모두들 난리들이다.

우리 나이 여자들이 허리며 어깨며 통증이 왜 없겠는가?

마라톤이며 지압이며...그 동네 사는 사람들이 참 부럽기까지 했다.

 

연변에서 오신 지압사님들께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이것을 알게 해 준 권사님에게도 최고의 선물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올해 받은 최고의 선물은 권사님과의 만남일 것이라고.

(2011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