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째 파킨슨병 앓고뇌정맥혈전증으로 입원
고문 후유증 때문인 듯 고비 넘겨 빠른 회복중

 

김근태(64) 민주당 상임고문이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을 결성했다는 이유로 구속된 것은 1985년이었다. 그는 고문기술자 이근안씨로부터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전기고문을 받았다.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다. 전두환 정권의 폭압이 기승을 부리던 때였다. 전기고문을 받은 사실이 전세계에 알려지면서 그는 로버트 케네디 인권상을 받았다. 독일 함부르크재단은 그를 ‘세계의 양심수’로 선정했다.

 

정계에 입문한 그는 1996년 국회의원에 당선돼 내리 3선을 지냈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보건복지부 장관, 열린우리당 의장을 했다. 1970~19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 인물로서 세속적인 보상은 받을 만큼 받은 셈이다. 그러나 고문으로 망가진 그의 육체는 보상을 받지 못했다.

 

2006년 어느 날 파킨슨병 권위자인 전범석 박사(서울대병원 신경과)는 텔레비전을 통해 김근태 상임고문을 지켜보고 파킨슨병이라는 것을 알았다. 파킨슨병은 뇌의 흑질에 분포하는 도파민의 신경세포가 점차 소실되어 발생한다. 원인은 알 수 없지만 경직, 느림, 자세 불안정, 손떨림 등이 전형적인 증상이다. 증상이 서서히 악화하는데 개선되지는 않는다.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가 파킨슨병 환자다.

 

김근태 상임고문은 지금까지 파킨슨병 환자라는 것을 숨기고 치료를 받았다. 고문 후유증으로 파킨슨병에 걸린 것으로 추정되지만, 어쨌든 정치인에게 건강 악화는 치명적 약점이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중순부터 증상이 악화됐지만 그냥 파킨슨병 때문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11월25일 정밀진단 결과 뇌정맥에서 혈전이 발견됐다. 입원해서 치료를 받던 중 이번에는 갑자기 출혈이 생겼다. 경련도 일어났다. 다행히 고비를 넘겼고 지금은 빠르게 회복중이다.

 

문제는 김 고문이 누구보다 사랑하는 딸 병민(29)씨의 결혼식이 10일로 잡혀 있다는 사실이었다. 가족들은 어쩔 수 없이 김 고문의 입원과 파킨슨병 환자라는 사실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8일 한반도재단 명의로 짤막한 보도자료가 나왔다.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전기고문 등 심한 고초를 받아온 김근태 한반도재단 이사장이 지난달 29일 뇌정맥혈전증으로 서울대병원에 입원했습니다. 김 이사장은 수년간 파킨슨병 진단을 받아 투병해 왔습니다. 담당 의료진은 김 이사장이 현재 빠르게 회복중이며 예후가 좋다는 소견을 보이고 있습니다.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의료진의 권고가 있어 당분간 면회와 취재를 사양하니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김 고문은 아직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아는 사람의 얼굴이 눈앞에 나타나면 손을 조금 움직여 아는 척을 한다. 딸 병민씨는 아버지의 상태가 악화되자 그의 손을 붙잡고 “아빠, 나한테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라고 울부짖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버지가 회복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차분하게 ‘아버지 없는 결혼식’을 준비하고 있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부인 인재근씨는 하느님에게 “남편을 살려달라”고 기도했다. 인씨는 “‘김근태의 몸이 지금 우리나라의 불편한 민주주의를 말해주고 있는 것’이라고 하느님이 나에게 응답해 주셨고, 지금은 마음이 편안하다”고 말했다. 인씨는 남편의 귀에 “반드시 일어난다. 김근태 파이팅”이라고 외쳤다.

 

 

 

기사 출처: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0929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