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절임 배추 때문에 속을 끓이면서도, 편한 것 밝히는 나는 올해도 30K를 주문하고 말았다.


아예 맘을 느긋하게 먹고, 시장을 당일 아침에 봐다가 다듬고 씻고썰고 갈고 다지며 시간을 흘려 보낸다.

무채는 택배회사에서 전화 오면 썰리라 결심하고, 턱 괴고 기다린다.
점심도 일찌감치 먹고 '혹시나?'했더니, '에이,역시나'다.


웬걸?, 3시가 지나도록 전화조차 없다.
아마 미리 연락하면 재촉들 하니 아예 배달 시간 맞춰 전화 주려나 보다.
그래, 기다리자.
..........

5시가 넘어 해남에 전화.
안 받는다.
주문할 때도 문자 남겼더니 밤 11시쯤, 죄송하다며 일이 지금 끝났노라고 했다.
나는 그때 왜 전화 너머로 그분의 진실함과 성실함이 느껴졌는지 모른다.
첫 느낌 때문일까?
아직도 일하고 있구나. 택배가 잘못이지 어쩌겠냐. 으이구 기다리자, 기다리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남편이 졸고 있다. ㅋㅋ

저녁을 먹고있는데 전화가 온다.
'앗싸, 택배다!' 

궁둥이도 가볍게 받고 보니 S후배다.
반가워야 할 그녀의 전화가 오늘은 나를 김빠지게 한다.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가 애교스럽게 묻는다.
 "언니, 배추 왔어요? 생새우는 샀어요?"

 "안왔어, 생새우는 신포시장엔 아예 없어. 너무 비싸서 주문받은 것만 사온 데."

 

어쩌고 저쩌고 하다가, 글쎄 지가 다른 시장에 가서 생새우를 사오겠단다.
배추도 없는데 무슨 생새우냐고 해도 알았다며 빨리 끊으란다.

 

몇 시간 있다가 배추 왔냐고 또 전화가 왔다.

안 왔다니까 잘 됐다며,직장에서 근무 마치고 이제 새우를 사가지고 오는 길이니 버스 정거장으로 나오란다. 

기막혀라.

 

고맙고 미안함에,

 "넌 왜 그렇게 바보 같으냐?"

밤 늦도록 근무를 하고 버스를 타고 가서 장을 봐서 들고 온 그녀에게 못난 내가 한 말이 고작 그거다.

눈을 흘기면서도 받아올 건 날름 받아 챙긴다.

 

아, 내가 이런 사랑을 받아도 되는지 집으로 오는 내내 코끝이 찡하다.

 

대답없는 문자와 씨름하다가,

아, 이건 뭔가 이상하다.

부랴사랴 배추 홈피에 들어가 보니,

앗 뿔 싸! 일이 터졌단다.

 

비가 와서 어쩌고저쩌고, 종이박스가  어쩌고저쩌고, 핸폰이 어쩌고저쩌고......

그래서 육두문자가 난무하고 고소 운운하며 아수라장이다.

그 홈피를 보면서 내뱉은 말,

 "이 사람 얼마나 당황스럽고 힘들까?"

 

남편이 한심한 듯 날 보며 하는 말.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아마 유옥순이 밖에 없을 거다. 천당 가겠다." ㅎㅎ

 

아직도 배추는 오지 않고

생각다 못해 미리 버무려 놓은 배추속이 김치 냉장고 속에서 홀로 익어가고 있다.ㅠ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