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숙

 

저녁에 비누칠해서 손을 닦다보니, 손톱이 어느새 보기싫을 정도로 길게 자라 있었다.

손톱깎기를 찾다가 문뜩 어머니께서 어디 길 떠나기 전날은 절대 손톱을 깎는게 아니라고 하시던 말씀이 떠올라 그냥 화장대 설합을 닫았다.

물론 믿을만한 얘기는 아니지만, 어머니께서 어릴때 해주신 말씀이 머리에 박혀 여행 떠나기 전엔 아무리 보기 흉해도 손톱을 깎지않고 그대로 떠났었다.

어느해인가 '아니, 이런 미신을 믿다니....'하고 손톱을 깎고 가족여행을 갔는데 차가 고장이나서 반나절을 길에서 고생한 뒤로는 손톱의 무게가 느껴질 정도로 길게 자랐어도 그대로 여행을 떠나곤 했었다.

 

오늘은 뉴욕으로 짧은 여행을 떠나는 날.

지난 8에 암진단을 받고, 두번의 대수술과 방사선 치료를 끝낸후, 몸의 다른 곳으로 전이가 되었는가를 알아보기위해 뉴욕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전문의를 찾아가는 날이다.

 

지난 3개월 동안 우리는 폭풍우가 회호리처럼 몰아치는 곳에 내던져서 있었다. MRI, SCAN, ONCOLOGY 등등 우리랑은 아무 상관이 없었던 말들을 하나씩 소개받으며, 또 그것을 급히 정복해 가야할 상황에 우산을 펼 사이도 없이 쏟아지는 비를 그대로 흠뻑 맞고 있는듯한 하루하루였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창밖의 비바람이 거세어지면 질수록 머물고 있는 집안의 온기를 감사할 줄 알게 되듯, 이런 견딜수 없는 상황이 몰려오면 올수록 너무나도 뜨거운 그 무엇이 온몸을 뿌듯하게 감싸고 있음을 느끼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이라는 것일까? 그것은 진단을 받은 주일, 헝크러질대로 헝크러진 마음으로 교회담에 앉았는데, '네 믿음으로 병을 낫게 하라'는 말씀이 들려온 그 다음부터였다.

잠을 안자도 쉬지않아도 해야할 일들이 계속 떠오르며 피곤치 않았다.

문뜩씩 " 아,, 오늘이 어저꼐라면 얼마나 좋을까? 어제는 아무일도 없었는데.... " 하며 일을 끝내고 어둑해진 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혼자 울었지만 그러나 돌이켜보면 "어제는 내가 행복했었나?" 아니였다. 항상 불평, 불만이 있었고 그냥 더 좋은 삶을 포기하고 슬픈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고 자신을 불쌍하게 여기는 나였었다.

결국은 매일매일 새날의 소중함을 가지고 감사하는 것이 우리의 주님을 향한 도리라는 것을 늦게야 깨닫는다.

 

뉴욕가는 기차안에서 남편이 말했다.

"여보 다른데로 전이안됐다는 뉴스를 들었으면 좋겠는데...."

사실 나는 지난 한달을 앉으나서나 그 바램으로 아무일에도 열중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니, 다르게 나와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해야지." 하며 담담하게 말했다.

 

닥터가 우리를 맞았다. 우리가 너무 긴장해서 얼굴과 몸이 다 경직되어 있음에도 그런 사람들만 보아온 탓인지 상관치 않고 상냥하게 한가지씩 그동안의 증상과 어려움등을 물었다.

비서가 우리 chart를 가지고 들어와 의사에게 건네주고 나갔다.

그는 웃으며 " 좋은 소식입니다. 다른 치료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몸이 회복되기 위해 필요한 여러 상항들을 친절하게 지시해 주었다.

남편 얼굴에 오랜만에 환한 웃음이 번졌다.

우리 소식을 기다리시는 목사님과 교인들이 떠올랐다.

지난 석달 동안 모든 분들이 맛있는 음식과 선물과 기도로 우리 옆을 지켜 주셨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가족인가?

의사와 직원들이 서로 안아주며 건강유지할 것을 빌어 주었다.

 

뉴욕거리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 우산도 없는데..." 짜증이 나지않고, 축복의 비로 여겨졌다.

 

돌아오는 길 기차안에서 앞으로의 계획을 얘기했다.

우리는 불완전을 통해 하나님께 가까이 가며 완전함을 얻는 것일까? 해야할 일은 너무 많았다.

역에 내려 택시에 몸을 싣자 피곤이 몰려들었다.

의자에 머리를 기대며 이제 돌아가 손톱을 깎자. 그리고 주를 위해 남은 날을 어떻게 맞을 것인지 묵상하자.

그리고 우선 만나는 사람들이 그 어려움을 겪으시고 우리에게 해주실 수 있는 말씀이 무엇이지요? 물으면 범사에 감사하라 이렇게 대답해야지 .

 

눈을 감았다.

택시는 가볍게 어둑해져가는 언덕을 올라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