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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괜찮아 아버지

 

 

쓸쓸한 늦가을 저녁

단풍이 내다 보이는 창가

호스피스 병상에서

사투(死鬪)를 하고 계신 아버지.

 

그래도 아버지 입에는

아무런 불평도 불만도 없으시다.

90 평생 그러셨던 것처럼.

얼굴을 찡그리셔서 '아프세요?' 여쭈면

괜찮아, 괜찮아 하신다.

지난 사흘간 백 번도 더 듣는 단어,

나는 괜찮아. 

 

환자복 속으로 손을 움직이시니

아버지 가려우셔요?

좀 긁어드릴까 했더니

아냐, 괜찮아.

 

물도 미음도 거의 안 드신지

일주일도 넘었는데

온갖 어려운 병증이 다 달려들어 괴롭히는

90 세 아버지의 애처로운 몸은

삶과 죽음이 비꺽대는 교차로.

 

멀리서 온 손녀 딸을 보고 허허허허

안 와도 되는데 왜 왔어~ 하시고

아침 저녁 들여다 보는 아들, 며느리를 보고 허허허허

새 부인을 보시고 허허허허

바다 건너 온 며느리 전화 목소리에 허허허허

안 나오는 소리로 허허허허

 

발음도 잘 안 되어 입만으로 의사 표시를 하지만

우리는 다 알았다.

아버지는 몹시 미안해 하시면서

여럿에게 누가 될까봐

아무 것도 안 잡숫고 속히 세상을 뜨고 싶으신 것.

 

음식을 삼킬 수 없으니 배에 구멍을 뚫어

음식을 좀 넣어 드릴까요?

동생이 여쭈었더니 아니야..괜찮아.

그럼 금방 가실텐데... 아세요?

알아.

그럼 준비 되셨어요?

으응, 난 괜찮아.

 

그렇게 분명한 의사를 두번이나 밝히신 지 이틀

어제 밤에 들어온 호스피스 병동에서

머리에다 왼팔을 올려 놓으시고 가끔 찡그리며

조용히 주무시기만 하시는데

부은 뇌 속 압력이 높아져서 고통스럽지만

통증약 조차 참고 싶으신 아버지

 

이렇게 되실 줄 아셨을까?

병원에 들어오시기 한달 전

연말로 정해진 급한 손자 결혼 소식에

축하금을 주시고 싶었던 아버지

고민하다가 천불은 적은 것 같아 하시며

천 오백불을 챙겨 주셨다지.

그보다도 더 많이 주고 싶으셨던 마음..

 

차곡차곡 용돈 모아서

정성스런 봉투에 담아 사랑하는 이들에게

시마다 때마다 건네 주시던 아버지의 일생

회상해 볼수록 너무 귀하고 아름다워

감사의 눈물이 절로 흐른다.

 

병상 옆에 하루 밤을 지켜 드리려고

이렇게 앉아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눈물 짓는 것 뿐.

조금의 아픔도 나누어 드릴 수 없는 것이

너무나 죄송하다.

 

사랑하는 아버지 마지막 길

손 붙잡아 주십사, 고통을 감해 주십사

주님께 기도드리는 것 밖에

죽음도 괜찮은 아버지께

해드릴 것이 없네.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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