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만의 화려한 외출 / 한효순


나를 옭아맸던 이름들.
틀에 집어 넣어 구속했던 모든 것
가을 햇살에 날려 보내고

맨 얼굴에
허름한 바지, 헐렁한 셔츠 차림으로
딩구는 낙엽 밟으며
붉은 잎새 하나 주워 머리에 꽂아 볼까?

날아 보자
접어 두었던 날개 펴고
오직 나만을 위한 여행을 떠나자

낡고 헐어
삐걱대기도 하고 흔들거리기도 하지만
실타래처럼 뒤엉킨 머릿 속은
하늘 아래 어디메 쯤
숨통 트이는 곳에서 실마리를 찾아 보는건 어떨까?

그런대로
아직은 쓸만한 몸뚱이는 가져가야겠지?

떠나자
서른 두해 갇혔던 서류더미에서 풀려난 지금
머뭇거리지 말고 문을 나서자

가슴 팍에 주렁주렁 달린 이름표
몽땅 떼어다
그동안 쌓아 온 탑 아래 묻어두고
휑해진 가슴에서 자유를 끌어내
두 손 가득 채우자

얼마나 기다렸던가

하늘거리는 단풍잎이 가슴 아프도록 고운 날
바람에 몸을 싣고
어서 떠나자
머뭇거리다
빙판길 두려워 주저 앉을라

햇살이 유난히 곱고 눈 부신건
끊어버린 쇠 사슬이 발 뒤축에 채이고
사각의 틀에서 벗어난 해방감이
벅차기 때문일게다

이제
저 문을 열고 나가면
내겐
또 다른 삶이 있겠지

서둘러
문을 연다
이제 화려한 외출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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