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회 | 포토갤러리 | - 게시판담당 : 박화림
그런 장례식은 처음이었다.
이 나이 되도록 수십번 가본 것 중에 제일 이상하고 초라한.
종이상자 관 속에 누워 있었다.
이제 겨우 46 세의 그녀. 하경희.
사진이라야 스냅사진 한장이 달랑, 장례식장에서 마련한 꽃들 사이에 보였다.
그녀 곁에는 펑펑 울어줄 남편도 자식도 부모도 형제도
아무도 없었다.
그 초라한 관도 부패가 속히 될까 무섭다고
빨리 화장을 하러 예배 전에 가지고 간다고
마지막 인사를 미리하라고 재촉하였다.
자기를 위해 모인 사람들과 단 한 시간도 더 있도록 허락 되지 못한 사연.
아마도 방부제를 사지 못 했겠지.
최근까지 그녀와 함께 지내던 백인 남자도
왠일인지 장례식에 오지 않았다.
나중 들어보니 한국 사람들이 보기 싫다고 니들끼리 하라고 했다던가..
단지 교회를 떠돌며 안면을 익힌 몇사람..삼십명도 못되는 사람이
초라한 장례식장에 앉아 눈시울이 뜨거워져 있었다.
실은 삼십명도 많이 왔다고 느껴지기는 했다.
우리가 그녀를 안 것은
가끔 교회에 그 미국 남자를 대동하고 나와서
점심밥을 먹고 갈때 옆에 앉아 밥을 한번 먹은 것,
먼 발치로 인사한 것이 두어번... 그뿐이었다.
평판이 아주 좋지 않았다.
맨 나중 남자는 그래도 수년간 같이 잘 지냈지만
그전에는 남자를 너무 자주 갈아 치운다.
성질이 멋대로다.
교회에서 음식을 남들이 먹기도 전에 싸가지고 간다. 등등
제일 무서운 것은 삐딱하면 폭언을 뒤집어 쓸 각오를 해야 하는 것.
그래도 우리 부부에게는 항상 웃는 낯이었고
고약한 모습을 보인 적은 한번도 없었다.
도리어 그녀가 떡을 사서 식품점에서 만난 우리 남편에게 준적도 한번 있었단다.
그 받아먹은 떡 생각이 나니 그녀의 장례식에 안가면 안될 것 같다나.
오박육일 잠시 집에 들른 내가 참석할 수있게
마침 공교롭게도 장례식이 있다니 안 가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삼십오 년도 더 된 옛날
간호원으로 이민와서 살다가 자살한 아가씨 생각이 났다.
죽기 전까지 열심히 충성했던 선교센터에서는 그녀를 모른다고 했고
자살했다고 아무도 안 돌아보는 그녀의 시체를 불쌍히 여긴
어느 착한 목회자가 장례를 치뤄주었다는 이야기를
반년 후에서야 들었던 기억.
백인 남자를 사랑하여 결혼하고 싶었는데 선교센터에서 허락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시카고로 이주 시키며 힘들게 해 주어서 미시간 호수에 뛰어 들었다나..
미소가 예쁜 얼굴의 키작고 돌돌해 보였던 그녀가
상사병 혹은 우울증으로 정신이 이상해져 간호원 일도 제대로 못하게 되었던 중 그리 되었다고.
확인되지 않는 소문이 가끔 생각나면 너무도 불쌍해서
알았으면 가 봤을텐데..했던 이야기다.
이 여인도 그보다는 덜 비참해도
어느 목사님도 어느 교회도 그녀의 장례를 치뤄주기를 즐겨하지 않는 점에서 비슷했다.
나중에 교회협의회에서 맡아주기로 했단다.
그래서 별 광고 없이 조촐히 지내게 된 것이었다.
한국에 남아 계시다는 노모에게는 연락도 안했을 것이다.
그래도 그녀는 교육자 집안의 막내 딸이고 상당한 집안에서 자랐다고 한다.
키도 크고 얼굴도 희고 이쁜 편에 속한 여자였다.
그녀의 삶이 꼬이기 시작한 것은 한국에서 미국 사람과 결혼하여 들어왔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혼을 당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당뇨병이 생겼는데 고집스럽게 잘 돌보지 않아서
4 년전에는 발가락을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고
그후로 점점 나빠져서 마지막 보이프렌드가 휠체어에 태우고 다녔다는 것이다.
천애 고아처럼 떠돌아도 그래도 그녀는 교회에 다녔다.
한국사람들을 폄하하는 소리도 거침없이 내 뱉는 그녀를
가까이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 때문일까, 나중에는 미국교회를 다녔다는 것 같았다.
그녀의 외로운 마음 속에는 그래도 주님이 계셨던 모양이었다.
그녀의 상자곽 속에 들어 있는 모습은 그렇게 평온 할 수가 없었다.
옅은 미소를 띄고....
슬프고 구차스런 인생을 떠나는 것을 기뻐하는 것처럼.
별로 반갑지 않은 일을 떠맡은 목사님은 젊은 분이셨는데 아주 정성껏 말씀을 햬 주셔서
큰 감동을 받았다. 한번도 얼굴을 본적이 없으시다면서
잔치나 결혼식은 거절할 수 있더라도 장례식은 거절할 수 없었노라며
그녀의 외론 생활에 함께 하셨을 주님의 사랑을 잘 표현하여 주셨다.
귀치 않은 일을 정성껏 보살핀 그 목사님과 그 교회에 복이 있기를..진심으로 빌어주었다.
그런데 보이 프렌드랑 같이 다니기도 했던 미국 교회 목사님이
미국인으로는 유일하게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이었는데
잠시 할말이 있다면서 짧은 메시지와 함께 그녀의 가는 길에 찬송을 독창으로 하시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녀가 좋아할 거라면서.ㅎ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 우리 맘이 평안 하리니...
그 노래를 들으면서 아, 그녀는 분명히 주님께서 사랑하시던 사람이었구나..하는 믿음이 생겼다.
우리의 판단을 넘어선 주님의 사랑과 은혜..눈물이 핑 돌았다.
가끔 와서 떡을 사먹었던 인연으로 온 떡집 아주머니가 장만한 떡을
한 꾸러미씩 받아 들었고
전 한인회장이 그녀가 선거에 도움을 주었다는 이유로 점심을 사낸다고 해서
심심한 차에 따라가서 이야기를 좀더 들었다.
살벌한 세상에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들 얼굴을 바라보면서
아, 내가 갑자기 쓸쓸히 죽어도 저분들은 소식 들으면 와 줄것 같아 위로가 되었다.
그것은 성공과는 거리가 멀고, 사람들과도 짧은 인연만으로 지내다 가는
외로운 이민자의 장례식에서 느낀 작은 소감이었다.
가지고 간 부의금은 살아있을 때 그사람에게 썼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하는 생각도 해 보면서.
{2011년 10월}
?2004(이 천사) 인선언니의 글이 주일아침, 눈물이 나네요.
돌아가신 분에게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기도드립니다.
쓸쓸함보다는 정이 흘러 넘치는
알찬, 따뜻한 장례식이였네요.
천년도 당신눈에는 하루와도 같은 우리의 삶이,
후회없는 삶이 되도록 열심히 산다고는 하지만
맘만 그렿지, 겉만 보고 판단해 버리는 잘못을
여전히 저지르며 살고 있네요.
그 장례식에 모인 모든분들이
언니처럼 천사의 맘을 지닌 분들이어서
고인도 분명 좋은곳으로 가셨을것 같고
그곳에 함께 했던 모든분들도
?복?많이 받으실꺼예요!!!
젊은 시절 김진홍 목사님께서 자주 하신 말씀 중에도 자살한 처녀의 장례식이야기가 나온다.
아버지는 주정뱅이, 어머니는 정신병자, 이 처녀가 살려고 발버둥 치다가 농약을 마셨는데
다니던 교회에서는 절대로 장례를 못해준다고 해서
교회 청년들이 수소문해서 상관없는 자기에게 부탁이 왔더라고.
양지바른 산자락에 묻어주고 오니 아버지란 사람은 여전히 술에 쩔어있는데
그 순간만은 목사님 마음 속에도 "하나님도 참 저런 걸 데려가시지않고....." 하는 생각이 나더랜다.
그런데 종일 멍하니 앉아 있던 실성한 어머니가 꼬깃꼬깃 접은 잔돈을 주면서 콜라라도 사드시라고 했다고..............................
그 어머니의 눈빛에서 예수님을 읽으셨다는 그 이야기!
기독교에서는 이 자살이라는 문제가 무슨 아킬레스건 같은데
오랜시절 믿음없이 살던 나같은 사람 눈에는 그게 참 안좋아 보여 지금까지도.
창녀도 강도도 다 용서하면서 유독 자살에 대해서는........................................................
우린 인선이의 이야기를 들으면 답답했던 마음이 풀어지곤 한단다.
천사같은 마음이라고 하는 건
언제나 아슬아슬 하리만큼 적극적으로 나서는 인선이나
떼일 꺼 뻔히 알면서도 거절 못하는 화림이 같은
어찌보면 어리숙해보이는 그런 마음을 두고 말하는 거 아닐까?
명옥아 자살했다고, 혹은 어떤 이유로 자기들에게 오는 챈스를 잃어버리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어. 착한 일 할 챈스란 그리 자주 오는 것도 아니고
우리의 일상적인 생활에서는 거의 없다고 볼수 있거든..
자살 운운 하면서 거부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정신에 정 반대로 행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
어떤 법, 자기 잣대에 맞추어 하다보면 자기가 하나님이 되는 거지 뭐.
내가 목사 같으면 그런 사람 장례 치뤄주면서 왜 힘들어도 살아야하는지,
자살하면 안되는지
똑똑히 가르쳐 줄 기회로 삼겠어. 안 그래?
천사 같은 마음이라...가끔은 아주 어리숙해서, 어리석어서, 어려서
순진한 일도 한적이 있었는데 슬프게도
이제 나이가 자꾸 들어가니 그렇지가 못하니...그런말 들을 자격은 없다고요.
아무튼 무조건 좋게 봐주는 친구들이 있어서 행복하다.
얘들아~
그냥 옛날 이야기를 한건데 갑자기 천사가 되서 부끄러워 어쩔줄 모르겠다.
정말 어리석은 일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알면서도 모르고서도 말야.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이제는 아~ 그저 내가 감당할수 있는 만큼만 해줘야 되겠구나~ 그런 결론을 얻었어.
나야말로 그런 칭찬 받을 자격이 없다.
나이가 드니 조금씩 순수를 잃어가고 삶의 때가 묻어 노련해진다고 할까?
자살하는 사람들 오죽하면 자살할까? 그런 생각도 들고~
우리의 지혜로 답이 안나오는 여러가지 모순들이 세상에 지천인데 힘든 세상 어찌 잘 살아내야 할지~
그냥 차한잔의 여유로 행복해 하고, 있는 그대로를 사랑해주는 친구가 있음에 감사하고 그렇게 사는거지 뭐~
인선아 ~
정말 가엾고 초라한 장례식이구나.
종이관에 누워 부패할까봐 쫒기듯 마지막을 고해야하고
어느 누구도 진심으로 애도하지 않는 그저 절차상의 의식뿐...
그래도 이렇게 그녀를 기억해주고 안타까운 삶을 전해주는 인선이가 있어
그녀의 마지막이 큰 위로가 되었을꺼야.
어떤 이유에서든 참석해준 분들께 어디선가 고마운 미소를 보낼것 같애
한번도 본 적 없는 여인이지만
힘든 삶을 떨치고 홀가분하고 편한 안식을 취하길 기도 합니다
영순아 터키 잘 다녀왔구나.
친구들이랑 여행 다니는 것처럼 즐거운 일이 없는 것 같아.
내년 초에 미주 인일 동창회에서 간다는 짧은 여행에 가기로 하고는
미리 즐겁다. 니네들 부러워 하면서 말이야.
사람이 판단하고 보기에 슬프고 불쌍하지,
장례식이, 혹은 그의 삶 전체가 아무리 화려하고 야단법석이라도
하나님과 아무 상관이 없어서 지옥에 간다면
그것은 더 불쌍한 일이라고 믿어.
그래서 내 인생의 마지막 날까지 준비하는
겸손한 영이 되고 싶어.
지옥은..우리가 안 믿는다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성실하고 선하게 살았다며
자신만만하다고 해서 면하는 것도 아니고...
?아아 감명깊어라
그래 인생은 성의있게 최선을 다하고 인내하다가 하늘의 뜻에 따라 최후의 시간을 맞는것 같아
만날 사람은 장례때라도 꼭 만나게 되네
진정한 인연은 세상 끝날 쯤에나 알게 된다는 것이 참 미련한 인간의 단면이지?
낙엽이 보도를 노랗게 덮은 오전에 음악이 더욱 우리의 족적을 돌아 보게한다
의미있는 주변의 일상이야기를 옥석으로 엮어 써주는 벗들이 고맙구나
모두에게 평온과 건강과 평화있길-----
1) 중학교 동기네 얘기를 썼다가 걸맞지 않는가...싶어서 지웠읍니다.
2) 자살은 안돼......라고들 합니다.
그런데 살 힘을 잃은 사람은 잠시 정말...어찌 살아야 할런지
모를 때가 있지요. 그런데 이때 죽어지는 사람도 있고 아무리 죽으려 해도 죽어지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운명이 확실히....있는 듯)
한국은 이제 OECD국가중 자살 1등국이 되었읍니다. 하루 평균 사십여명( 47.몇?)명이라고....
특징은...살 힘을 잃은 사람들이 인터넷으로 만나 함께 집단적으로 거사를 합니다.
인선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세상엔 평범하지만 맘 따듯한 사람이 아직 많다는 사실이 왠지 위안이 되고 감사하게 느껴진다.
떡 한번 얻어먹은 기억으로 장례식까지 참석한 너희 부부도 그렇고, 떡사가는 손님 장례에 떡을 내는 떡집 아줌마도 그렇고 성실하게 주님의 사랑을 보여주신 목사님도 그렇고 다 훌륭하다.
옛날에 누가 돈을 꿔 달랄때 왜 " 너희가 갚을 수 있는 사람에게 꿔주는 것은 누구나 하는 일이다.받을수 없는 사람에게 꿔주는 것이 바로 내게 하는 것이다 " 라는 성경 말씀이 (로마서 였던가?) 생각나는지~
갈등하다가 꿔줬는데 결국 떼인 일이 몇번 있었어.
지금은 꿔줄돈이 없으니까 아예 신간이 편하지만 ㅎㅎ
주님은 우리의 마음을 보시기에 (누가 알아주거나 말거나, 보거나 말거나~) 그때일을 그렇게 후희하진 않아~
쓸쓸한 장례식이었지만 주님이 보시기에 장례식 온 손님들의 따듯한 맘이 읽혀져서 아름다운 장례식 이었을것 같다.
간간히 꽃을 올려놓고 음악까지 어우러져 누군지 모를 그여인의 영혼에 명복을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