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회 - 게시판담당 : 윤순영
?올 추석에는 모처럼 프라하에서 돌아온 큰 딸아이가 추석차례에도 참석했다.
시집 작은집에 아이들 당숙들이 찾아오고 부쩍 자란 우리집 손녀의 모습을 보고는
당숙들이 하나밖에 없는 고모인 큰딸아이와 아기때 모습이 흡사 하다고 하는 바람에
본인도 신기한냥 낡은 앨범속에 어릴적 제 사진을 찾아 보았던 모양이다.
백일 사진서부터 돌 지난 모습의 사진들과 어릴적 제모습이 찍혀진 사진들을 소중히 간직한 덕분에
까마득히 잊고있던 이 사진 두장도 발견하고 내게 이 두장의 사진속의 스토리를 이야기 해 달란다
자기가 알고있는 기억의 사실과 일치하는가 확인하고 싶은가보았다.
사진속에 두 분은 미당 서정주 시인이시고 그 옆은 사모님이신 방 옥숙 여사이시다.
때는 1975년 늦가을 인듯싶고 장소는 지금 살고있는 김포에 있는 옛 대명포구 바닷가 방둑이고
김포가 고향인 남편의 바닷가 이야기를 들으시곤 고향인 고창이 생각나신다 하시며
우리집 두남매 까지 대동하고 함께 망둥어 낚시를 하고 사모님은 망둥어 매운탕을 끓여주시고
좁은 방둑에 앉아 맛있게 먹었던 기억속에 모습들이다.
그 시절 워낙 음식솜씨가 뛰어나신 사모님은 일년 사시절 찾아오는 식객들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대접을 해서 그 후덕하신 인품은 문단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었다
사진속에 두 분은 그때 육십세 전후 이셨던것 같고 나는 갓 삼십이 넘은 때 였고
큰 딸아이는 다섯살 큰 아들아이는 두살 그리고 막내는 아직 태어나지 않아서 두 남매의 모습만 보인다.
사모님 돌아가시고 곡기 끊으시고 곧 뒤따라 가신 미당선생님의 2000년 그해에 일은
잊고 있다가도 선생님과 관련있는 이야기가 거론되면 가슴아프게 다가오곤한다.
자유게시판에 올려진 도산학 후배의 글을 읽고 얼마전 사진속에 두 분이 생각이 나서 올려봅니다.
미당 서정주 시 <푸르른 날> 노래 송창식
선배님들 방에 와서 이렇게 먼저 댓글을 달아도 될지 조금 염려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너무 반가와서 그냥 쓰렵니다.
은희언니 요즘 손님 치르시느라 무척이나 바쁘실텐데 건강은 괜찮으신가요?
음악회에서 동문님들끼리 반가워 하시는 것 보니까 새삼
저도 저렇게 인천사람들 모임에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따님이 맨 위군요.
전 착각을 해서 둘째가 따님인 줄 알았어요.
내년에는 따님따라 프라하에 가신다고 하셨지요?
공연히 부럽습니다.
몸으로 마음으로 힘드신 일이 수도 없이 많겠지만
저희는 이렇게 보여지는 것만 보니까요.ㅎㅎㅎ
날씨가 차가워졌는데 이제는 언니 편찮으시다는 이야기는 절대로 안들릴 것으로 믿습니다
(완전 위문편지 버전)
?명옥아 ~
말 그대로 오랜만이다
엎어진김에 쉬어간다고 손녀본다는 핑계낌에 게시판지기도 폐업하고
홈피에서도 오랜동안 쉴가 했었는데 말야................
컴 중독증에서 헤어나질 못하네그려
그래도 이렇게 불러주는 후배들 동기들이 있어서
못 이기는척 또 너스레를 떠네
내가 아픈가 걱정 해 주는 그 누군가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싶고
두어달 손녀하고 같이 두살이 되어있는 시간이 평화로워서
힘들면서도 좋았었네..........
위문편지 ............지금이 바로 그 시점이다싶어 고맙네
명옥아~~~
기쁜마음이면서 아주 슬픈마음이 상존하는 그런상태거든....
김은희 선배님!
참으로 귀한 사진을 찾으셨네요.
벌써 저 세상으로 먼길 떠나신 분들이니 보고싶다고 달려갈 수도 없고 말입니다.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다 가신 미당 선생님의 詩가 다시금 한귀절 한귀절 떠오릅니다.
우리는 여고시절 "선생님의 시를 누가 더 많이 외우나" 하면서 다투어 경쟁하기도 했습니다.
하기는 지금이 바로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라고 노래하시던 국화의 계절이기도 하네요.
특히 곁에 가까이 하던 제자들이
돌아가시자마자 "친일"이라고 몰아세웠으니
세상이 참 무섭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아는 사람이 더 무섭다" 라는 불변의 법칙이 예나 지금이나 서글픕니다.
그나저나
선배님께서 기쁘면서도 슬프다니 괜시리 걱정이 앞섭니다.
세월이 약이라 했으니
힘든 시간도 곧 지나가지 않을까요?
아참!
축하드린다는 말을 깜빡했네요.
프라하에서 공부하고 있는 따님이 이번 대박을 친 "닭장을 나온 암닭"인가요?
에니메이션에 공동작업을 하셨다고요.
대박 덕분에 집에 붙어있을 시간이 별로 없었다고 불만을 하셨다지요?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김은희 선배님
이제나 저제나 소식이 있나 가만이 기다렸지요.
미당 서정주 의 아름다운글 감사합니다.
선배님께서 혹시 아프신가 혼자 걱정 했지요. 제가 할매가 되면서도 선배님의 안부가 궁금 했지요.
여러가지로 분주 하셨군요. 건강하시기를 빕니다.
???은희야!!!!
35년전에 너의 모습이 참 풋풋하구나.
우리에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
나는 네가 집안일에 너무 힘들까봐 걱정이다.
몸 생각 하면서 일해라.
우리들 쇠뭉치가 아닌데도 가족들은 무엇이든 척척해내면
엄마는 힘 안든줄 아는게 문제란다.
?그러게........순영아~
어느새 이리도 빠른 세월이 흘렀는지
저 사진속에 두분보다 나이가 훨 많아졌으니 말야
지금은 손주들이 저 사진속에 아이들 바로 그 나이이네그려
그제 어제 옥녀네 행사로 십여년만에 만난 반가운 지인들
우리집에서 만나 밤을 지새우기도 하고
그다음날 또 만나서 십년의 공백이 있었나싶게 어제 헤어졌던 것처럼
포구서 장을 보고 점심에 저녁까지 이십년 십여년전 처럼
즐거웠네.................................................
힘들어도 즐거우면 힘드는줄도 모르는게 ......순수한 정의 힘인가벼
늘 푸근하신 모습으로 남 대접하길 좋아하시는 은희언니.......
요즘 옥녀언니랑 노봉식선생님 모시느라 수고가 많으시지요?
아프시지 마세요.
이젠 몸도 좀 아끼시구요~~
내 늙은 아내 / 미당 서정주.
내 늙은 아내는 아침저녁으로
내 담배 재떨이를 부시어다 주는데,
내가
"야 이건 양귀비 얼굴보다 곱네,
양귀비 얼굴엔 분 때라도 묻었을 텐데?"
하면,
꼭 대여섯 살 먹은 계집아이처럼
좋아라고 소리쳐 웃는다.
그래 나는 천국이나 극락에 가더라도
그녀와 함께 가볼 생각이다.
(사모님이 세상을 떠나기 약2년 전인
98년 1월 현대문학지에 발표되었던
미당선생님의 시이다.
사모님이 2000년10월에 별세한 후,
미당선생님은 곡기를 끊고 맥주로 연명하시다가
2000년12월24일 별세(85세)하셨다.)
?스승이신 선생님의 마지막 모습을 그린 산이할아버지의 시도
생각나 올려본다.
.........미당(未堂)의 휘네스 꽁초............
김 정웅
짝 잃고
곡기 끊고
천장만 올려다보다가
어쩌다 한 번씩
외톨박이 황새 모이 찍듯이
맥주 한 모금
고추장에 마늘쫑 한 번 찍고
연기 두어 모금 하고 눌러끄고..........
미당은
그 꽁초에 찌그러진 델
다시 곱게 매만지고 재털이에 놓아두고
또 그렇게
새 담배에 불붙여서
놓고, 놓고, 놓고, 놓고............
쌓고, 쌓고, 또 쌓고.............
재떨이에 가지런히 산만큼 쌓이는
미당의 그 휘네스 꽁초는
짝 잃고
곡기 끊고
천정만 올려다보다가
어쩌다 한 번씩
외톨박이 황새 모이 찍듯이
맥주 한 모금
고추장에 마늘쫑 한 번 찍고
연기 두어 모금 하고 눌러끄고
참 눈물겹더군
참 아름답더군
이승의 쇠그물 속 졸업한
말이 그냥
시가되는 사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