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서울 순화동 중앙일보 인력개발원에서 열린 ‘중앙비즈니스(JB) 포럼’에서다. 포럼은 중앙일보 산업부 기자들의 학술모임이다. 안 원장은 또 “이대로 가다간 삼성 같은 대기업도 망한다”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안 원장의 ‘대기업 패망론’은 전 세계에 불고 있는 정보기술(IT)기업 창업열풍에서 왜 한국만 비켜 있는지를 설명하는 도중 나왔다. 우리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문화’가 한국이 경쟁국보다 먼저 치고 나가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되는 데 발목을 잡고 있으며 삼성 같은 대기업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다.
-요즘 한국이 IT 창업 열풍과 괴리돼 있는 이유는.
“네 가지다. ▶창업자의 실력 부족 ▶열악한 창업 인프라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불공정거래 관행 ▶좀비(죽지 않고 살아있는 시체) 이코노미다(그는 좀비 이코노미 설명에 시간을 많이 할애했다. 한국에서는 벤처투자가 부진하다 보니 대표이사가 연대보증으로 은행 빚을 얻어 사업을 시작하고, 사업이 부진해도 빚 때문에 접지 않는다. 그 대신 덤핑을 하고, 정부의 눈먼 돈을 지원받아 가며 일종의 ‘좀비 기업’이 돼 생명을 연명해 간다는 것이다).
대기업들의 행태도 좀비 이코노미에 한몫한다. 괜찮은 벤처가 있으면 인수합병(M&A)을 해야 벤처투자자가 돈을 회수할 수 있는데, 그냥 그 기업과 독점계약을 맺고 소위 ‘삼성 동물원’ ‘LG동물원’ 식으로 동물원에 가두니까 벤처투자가 일어나지 않는다.”
- 그래도 안 원장 창업 시절(안철수연구소 창업시점이 1995년)보다 여건이 좋은 것 아닌가.
“사회 인센티브 시스템이 굉장히 나빠졌다. 젊은이들이 98년 외환위기 전에는 공대에 가려 했는데, 이젠 완전히 돌아섰다. 요즘은 똑똑한 사람들이 리스크를 더 감수하지 않고 안전지향적으로 간다. 50년 전에 우린 꼴찌에서 3등이었다. 그때 우리 생존방식은 가진 게 없으니 남들이 해놓은 거 열심히 쫓아가서 싹수가 있으면 올인했다. 그래서 성공했다.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 전략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부터다. 중국이 우리보다 빠르기 때문에 이젠 퍼스트 무버가 돼야 한다.”
-대기업이 퍼스트 무버가 되려면.
“기업문화를 바꿔야 하는데 지금으로선 불가능하다. 기업 생태계를 만들어서 벤처기업이 다양한 실험을 하게 하고, 그중에서 성공한 벤처를 인수하면 삼성전자도 혁신적인 기업이 된다. 대기업은 장기적인 생존을 위해 ‘동물원’을 만들지 않는 게 맞다.”
-교수로서 무엇을 가르치나.
“세상이 안 바뀌는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친다. 그래서 창업을 권한다. KAIST 교수였을 때 한 학기당 세 명꼴로 창업했다. 교수가 돼서 제일 좋은 게 사람을 바꿀 수 있어서다.”
-창업에서 성공하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 좋은 사람이 모여서, 좋은 제품을 만들고, 점진적으로 실행하는 것이다. 혼자서 창업하기보다 두 명 이상이 창업하는 것이 성공확률이 훨씬 높다. 2~4명이 제일 좋다. 성공확률을 높이려면 창업자들의 만장일치가 좋은데, 사회학적으로 보면 5명부터는 그게 잘 안 된다.”
-안 원장 자신은 창업 초기 어려움을 어떻게 이겨냈나.
“어느 날, 친구들은 다들 교수 하는데 나는 뭐 하고 있나 싶더라. 그런데 헤어나오는 노하우가 생겼다. 동기동창과 비교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위를 쳐다보면 힘들지만 아래를 보면 내가 회사를 만들어 매출도 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제일 어려웠던 점은.
“사업 초기 직원들 월급 줄 길이 없어 은행 직원들에게 싹싹 빌어서 어음 깡(할인)을 해 마련했다. 그때 경험 때문인지 지금도 월 초만 되면 괜히 불안하다.”
-어떤 인재를 선호하나.
“사람을 뽑을 때 딱 하나만 본다. ‘나는 틀릴 수 있다(I may be wrong)’고 말하는 사람이 좋다. 다른 사항은 볼 필요도 없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자신감을 갖고 있고, 다른 사람과 합의를 이뤄낼 수 있다. 실패 확률을 10분의 1로 낮출 수 있는 사람이다.”
-한국 교육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나.
“지금 한국 대학들은 교육기관이 아니라 공부기관이다. 목표가 연구성과에 집약돼 있다. 좋은 대학일수록 학생들을 방목한다. 학생 교육에 신경을 많이 쓰는 교수는 바보가 되고 있다. 대학이 교육기관으로 자리 잡아야 희망이 있다. 얼마 전 KAIST의 자살 사태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가 KAIST라는 조그만 창을 통해 터진 거다. 자살이 멈춘 것은 가족·친지들이 안부 묻고 관심 보이니까 그런 거다. 실질적인 조치가 없었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지 않고 학교에만 맡겨둬선 안 된다.”
-정치참여 제의를 많이 받는다. 세상을 바꾸려면 참여해서 해야지 피하는 것은 비겁한 행동 아닌가.
“정치는 체질에 안 맞는다. 내겐 권력 욕심이 없다. 영향력을 행사하는 게 쾌감이 아니고 짐이다. 괜찮은 분들이 (정치판에) 가서 그냥 나온다. 혼자서는 절대로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여러 사람이 동시에 함께 바꿀 수 있으면 제일 좋은데 그런 때가 올까.”
- 그냥 메시지만 던지겠다는 건가.
“메시지도 던지지만, (그냥 메시지만 던지고 있자니) 화도 조금씩 나고 있다. 나 자신을 보면 정치인과 안 맞는 게 확실한데, 현실을 보고 있자니 점점 화가 난다.”
정리=권희진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안철수 대학원장은
▶1962년 부산 출생
▶86년 서울대 의대 졸업
▶95년 안철수연구소 설립
▶97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공학 석사
▶2008년 미국 와튼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
▶2008년 5월~2011년 5월 KAIST 석좌교수
▶2011년 6월~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
[[머니위크 커버]특허 전쟁/ 국내 기업 vs 외국 기업]
“제3차 세계 대전이 시작됐다!"
미국 IT전문지 <컴퓨터월드>는 스마트폰을 둘러싼 최근의 특허 전쟁을 이렇게 표현했다. 스마트폰 특허 전쟁을 펼치는 진영은 크게 4파. 즉 애플, 노키아·MS, 안드로이드 진영(구글·삼성전자·HTC·모토로라 등), 기술특허 전문기업 진영인데 이들 업체간 물고 물리는 형국이 마치 세계 대전을 방불케한다는 묘사다.
◆삼성-애플, 통신기술 vs 디자인 놓고 ‘세계대전’
시선을 대한민국의 특허전쟁터로 돌려본다면 지난 4월15일 발발한 애플과 삼성간의 ‘특허공방’이 최고의 격전지로 꼽힌다.
애플은 삼성전자의 ‘갤럭시S’가 ‘아이폰’의 디자인과 특허를 침해했다는 이유로 특허권침해금지 청구소송을 냈고, 이에 맞서 삼성전자는 애플의 제소 6일 만에 맞고소로 대응하면서 양사간 특허전쟁이 이제는 미국, 한국을 떠나 일본, 유럽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양사의 특허전략과 전술은 애플이 철저히 디자인 표절을 앞세워 삼성 진영을 공격한데 반해, 삼성측은 애플의 휴대폰 통신기술을 공격하는 모양새다.
즉 삼성전자는 ▲데이터 전송 시 전력소모는 감소시키고 전송효율을 높이는 고속패킷전송방식(HSPA) 통신표준 ▲데이터 전송 시 수신 오류를 감소시키는 WCDMA 통신표준 ▲휴대폰을 데이터 케이블로 PC와 연결해 PC로 무선 데이터 통신이 가능케 하는 기술 등을 애플이 침해했다는 것이다.
반면 애플은 삼성이 ▲갤럭시S의 둥근 모서리 디자인 ▲한손가락으로 화면을 넘기는 멀티터치 방식 ▲외쪽에 볼륨버튼 탑재 ▲통화와 사진 등에 대한 아이콘 등을 베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애플의 최고경영자인 스티브 잡스까지 나서 삼성전자의 갤럭시탭에 대해 ‘모방꾼(copycat)’이라며 독설을 퍼부을 만큼 당분간 삼성과 애플간의 특허소송은 쉽게 결판이 나지 않을 전망이다.
하지만 삼성과 애플의 관계를 살펴보면 양사의 대립이 선뜻 이해가지 않는 구석도 있다.
작년 한해 애플은 소니에 이은 삼성전자의 2대 제품구매처로, 삼성의 반도체 등 전자부품을 6조1900억원어치나 샀다. 올해의 경우 지난 1분기, 소니를 제치고 삼성전자의 최대 제품구매자(2조1500억원어치 제품 구입)로까지 떠올랐다. 애플 역시 그동안 삼성전자의 핵심부부품을 기반으로 스마트폰을 제조, 판매해온 터라 삼성과의 협력관계를 쉽게 깨버릴 수 있는 처지는 아니다.
그럼에도 삼성과 애플의 사례에서 보듯 기업간 특허공방은 서로 협력관계이지만 경쟁관계에 속한 기업들 사이에서 최근 많이 벌어진다.
◆특허? `방어’아닌 ‘공격’…특허괴물 ‘위협’
특허공방의 주체를 대기업으로 좁혀보면 기업간 특허논쟁 유형은 과거 ‘방어형’에서, 현재는 ‘공격형’이나 ‘수익창출형’ 으로 급진전되고 있다. 과거의 특허가 단순히 사업보호 측면이 강했다면 이제는 지식 재산권에 대한 인식이 높아져 특허가 새로운 수익의 원천이 되거나 아예 새로운 사업모델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2월 IBM과 특허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지난 수십년간 반도체, 통신, 소프트웨어 등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협력관계를 유지해온 두 회사가 ‘특허 공동 활용’으로 협력을 더욱 확대하기로 한 것. 이는 최대 글로벌 IT기업인 두 회사의 결합이 새로운 IT 트렌드의 등장에 선제적으로 대응한다는 공통의 목적도 갖고 있다. 즉 삼성전자로서는 특허 포트폴리오를 보강함으로써 시장변화에 보다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공격력’을 키우게 된 격이다.
특허 시장의 파이가 커져가고 있는 만큼 특허분쟁에 있어 염려스러운 대목도 있다. 제조는 하지 않으면서 기업의 특허권을 대량으로 사들인 뒤, 이를 또다른 기업에 특허권 소송을 걸어 거액의 수익을 챙기는 ‘특허괴물’의 존재가 그것이다. 이들은 특허전문관리회사(NPE·Non Practicing Entity)로 불린다.
우리나라의 경우 전자, IT분야를 중심으로 이미 상당수 대기업들이 NPE로부터 집중적인 특허침해 공세에 휘말리고 있다. 이러다 보니 일부 기업들은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며 특허괴물에 회원으로 가입하고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미국 특허조사회사인 페이턴트프리덤의 조사에서도 삼성전자는 지난해 NPE로부터 12건의 소송을 당해 전년(6건) 대비 두배 늘어난 소송건수를 기록했고, LG전자 역시 지난해 NPE들로부터 15건의 소송을 당해 지난 2009년 7건에 비해 두배 이상 소송건이 증가했다.
특허청 관계자는 “수많은 특허를 다뤄야 하는 대기업일수록 NPE들로부터 공격의 대상이 되기 쉽다”며 “과거에는 NPE들을 특허괴물이라고 부르며 인식이 좋지 않았으나, 중립적인 관점에서 보면 특허를 활용한 수익모델이라고 볼 수도 있어 국제 NPE에 대한 정보수집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조언했다.
◆삼성, LG ‘필두’ 동국제강 등도 속속 ‘특허시스템’
삼성전자가 애플과 ‘전쟁’을 벌이는 사이 공교롭게 LG전자도 소니와 특허분쟁을 진행 중이다.
LG전자와 소니 간 갈등은 지난해 말 소니가 LG를 상대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와 LA연방법원에 휴대전화 기술 특허권 소송을 제기하면서부터 비롯됐는데 당시 소니는 “LG가 자사의 특허권을 무단 도용해 휴대전화를 생산했다”고 발끈했다. 그러나 LG는 지난 2월 "소니가 블루레이 표준기술과 신호수신 및 처리에 관한 기술 등 8가지 특허기술을 부당하게 사용했다"며 오히려 ITC에 2건의 소송으로 맞대응했다.
이후 소니는 같은 달 또다시 미국 LA 연방법원에 LG전자를 상대로 LCD TV 기술을 포함한 2건의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LG는 지난해 5월 설립돼 특허분쟁에서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고 있는 ‘LG특허협의회’를 중심으로 향후 소니의 전방위 공세에 적극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한국의 대표기업인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이처럼 각각 애플-소니와 특허공방을 벌이고 있는 사이, 다른 대기업들 사이에선 특허전략에 속속 전문성을 채워나가고 있다.
실제 몇몇 대기업들은 특허 및 법무 관리에 대한 프로세스 효율화를 추진하면서 동시에 관련 패키지 솔루션을 도입하는 등 본격적인 ‘특허관리 시스템’ 장착에 나섰다.
동국제강그룹과 일진그룹의 주력 계열사들을 비롯해 한국타이어, 두산인프라코어, 만도, LG이노텍 등이 앞다퉈 연구개발(R&D)과 연계된 특허관리시스템을 도입했고 이어 LG패션, 아모레퍼시픽 등 대리점 및 해외에서의 계약 건수가 많은 의류, 생활소비재(CPG)기업들도 특허관리 시스템 도입에 적극성을 띠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여전히 한국은 ‘특허 출원 규모 세계 4위’라는 명성과 달리, 기업들의 특허관리 시스템이 미약하다는 전문가들의 평가도 잇따른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임영모 수석연구원은 “한국 기업이 많은 특허를 보유한 데 비해, 수익 창출과 방어 역량은 취약하다”면서 "지난해 미국 특허 등록 건수 1, 2위를 차지한 IBM(5860건)과 삼성전자(4551건)가 특허로 벌어들인 수익을 비교해보면 IBM은 특허로 연간 1조원이 넘는 수익을 올렸지만, 삼성전자는 아직 미미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돈 많이 버는 회사가 특허공격 대상된다”
`국내 1호` 특허전문기업 아이피큐브파트너스 민승욱 대표
-‘특허전쟁’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산업분야는.
▶주로 IT기업들 간에 많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돈을 많이 버는 회사’가 특허공격의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애플만 봐도 그렇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주요 특허 소송의 진원지가 애플이 아닌가. 향후 페이스북 등으로 특허공격의 대상체가 옮겨갈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중소기업과 대기업에 있어 특허전략의 차이가 있다면.
▶아무래도 특허소송이라는 게 기본적으로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다. 수십억원 단위의 돈을 갖고 있어야 특허소송을 진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기업에 비해 중소기업들의 특허전략은 상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단적인 예로 ‘로열티를 달라’고 요구하는 중소기업들에 대기업들이 취할 수 있는 액션은 크게 두 가지다. 로열티 비용이 소송비용보다 싸면 중소기업에 로열티를 지급할 것이고, 해당 중소기업이 특허소송을 진행할 만큼 많은 돈을 갖고 있지 못하다면 그들의 요구를 아예 무시할 것이다.
-국내 대기업들의 특허전략 수준은 어느정도인가.
▶국내 기업들 중 주로 해외수출에 중심을 두는 기업들은 글로벌기업과의 거래가 많기 때문에 특허에 대해 많은 전략과 판단력을 갖추고있어 자기회사에 맞게 잘 대응하는 편이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내수 위주의 기업들은 아직도 특허에 대한 개념조차 정립이 안된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