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날 | 포토갤러리 | - 게시판담당 : 12.김춘선
?어제는 12 기 연옥 선배님 딸의 결혼 감사 번개에 갔다.
딸의 결혼을 축하 해준 몸날 식구들에게 감사의 자리를 만드신
연옥 신배님의 마음이 고스란이 녹아 든 정성스런 오찬에
아침 밥도 못 얻어 먹은 내 배는 만복감에 행복해했다.
2 차로 유순애 선배님이 영화티켓팅을 해주셔서
우리를 위한 영화인 양 여고시절의 추억을 다룬 써니란 영화로
우리 모두의 상상의 나래는 금방 전동 언덕의 교정으로 펼치며 날아갔다.
교회란 울타를 벗어나지 못하고 살았던 내게
요즘 너무 큰 변화들이 생겼다.
30여 년 만에 잊혀졌던 내 이름도 되 찾고
애기들도 한 번 콧구멍에 바람 들어가면
집 안에 안 있으려 하는데
지난 4월 첨으로 콧구멍에 새로운 바람을 들이킨 이후
자꾸만 그 상쾌한 바람결을 느끼고 싶어진다.
딸을 잘 키워 혼사를 치룬 선배님을 보며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최근 목하 열애중인 막냉이 딸래미 생각이 났다.
나도 머지 않아 이런 시간을 갖게 되겠지.
모든 사람에게 축복받는 아름다운 결혼을 했음 좋겠다.
그리고는 나즉이
"딸아! 참 고맙다" 혼자말을 중얼거렸다.
늦깍이 신학도가 되어 7년간의 기숙사 생활을 한 아빠.
그 아빠를 대신해서 갑자기 직장인이 된 엄마.
두 딸은 어둡도록 돌아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며
TV 로터리체널을 붙들고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그 덕에 작은 애는 심한 난시가 되어 여섯 살 부터 안경을 써야만 했다.
그 때가 큰 아이 여섯 살 작은 애 네 살 때다.
내가 혼수로 사왔던 티비가 리모콘도 안되는 로터리 체널이었다.
유아용 비디오 맨 처음에 호환 마마보다 더 무서운 것이 유해 비디오라는 광고성 화면이 나온다.
조금이라도 유아교육에 관심이 있는 엄마라면 애들이 무방비로 각종 유해 영상에 노출되는 것을
신경쓰고 영제교육 조기교육에 열을 올리는데
난 그럴 만한 여유도 시간도 없었다.
그렇다고 무조건 티비를 못 보게 할 수도 없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기도뿐 이었다.
"주님! 저는 이 애들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네요.
알아도 되는 건 알게 해주시고 알아서 안 될 거면 잊게 해주세요.
이 아이들을 주님께 부탁합니다."
교육적 철학이 있다라기 보다는 어쩔 수 없이
방목을 하게 되었고 남들은 하기 좋은 말로
독립심이 강한 아이들로 키웠다며 칭찬 아닌 칭찬을 했다.
그렇게 누구에게 구속받지 않고 모든 걸 스스로 하며 자라서 그런지
제도권 교육을 힘들어 해서 때론 다루기 힘든 문제 학생 취급을 받기도 했다.
경제적 여유도 별로 없긴 했지만 구속 받는 걸 싫어하니
학원도 적응을 못해서 고3 졸업 때까지 불과 총 1년도 안 다녔던 거 같다.
입시 준비를 하면서도 학습실에 앉아 한 밤중까지 야자 하는 게 싫다며
선생님을 기어코 설득해서 5시면 집에 와서 괴상한 자기만의 자세로 앉아
그렇게 수험생 노릇을 했다.
어느정도 두뇌 회전은 되는지 기타 과목은 꽤 좋은 성적을 받는데
영어 수학은 사교육을 안 받으니 중2 때까지 반토막 밖엔 동그라미가 없었다.
선생님 왈 너는 변두리 과목만 잘 한다고 하더란다.
고집이 세서 내 충고는 아랑 곳도 안 하던 애가
어느 날부터 공부를 시작하더니 단 번에 전교 석차 백등을 끌어올렸다.
수학 정석을 펴 놓고 밤 새 혼자 씨름을 해서 몇 문제 풀고
영어 듣기는 인터넷으로 유아 수준의 영어 동화를 듣고
그렇게 공부하더니 수학은 수능 1등급
영어는 내신은 1,2등 까지 했지만
히어링이나 회화는 역부족이었는지
자기가 원하던 대학 영어 면접에서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수시 원서를 내긴 했지만 썩 내키지 않던 학교에
차라리 떨어지길 바라며 성의없이 면접을 봤는데
그만 붙어버려 지금 졸업반이 되었다.
장난감 자동차도 만저본 일이 없던 여자아이에게
자동차공학과란 낮선 학과에는
남학생 2백명에 여자 10명이었단다.
그렇게 시작한 학교생활
(코라)라는 자동차 연구회 동아리 활동을 통해
더 즐거운 대학생활을 이어갔다.
방학도 반납하고 온통 학교 수업과 동아리 활동으로
밤낮없는 생활을 했다.
그런데 그 수고의 열매를
그것도 아주 탐스러운 열매를 며칠 전에 수확했다.
F-SAE 란 미국 자동차공학회에서 주최하는
세계 대학생 자작 자동차 대회에서
코스트라는 경비보고서 제작과 발표에서 1등을 했단다.
전 번에는 영어 잘하는 학생을 데려가서 대신 프리젠테이션를 했는데
이번에는 딸이 직접 했단다.
2009년도에 대회를 위해 휴학을 하고 첨으로 출전해서
국내 역대 성적 최초 3위를 했다.
여러 항목의 평가를 하는데 그 전까지 종합 성적
아시아 2위 세계 13위가 최고 기록이었는데
그 해에 우리 딸의 선전에 힘 입어 종합성적
세계 10위라는 쾌거를 이루었었다.
그리고 지난 해 한국자동차공학회 주최F-SEA 대회
UCC 공모전에서도 대상을 탔다.
방금 한국자동차공학회 홈피에 들어가니
이번 8월에 있을 국내대회 공고를 하며
딸이 출품했던 동영상이 메인화면에 여전히 떠있는 걸 봤다.
(이 글 읽는 선배님들 꼭 한번 들어가 보세요. 화면 속의 유일한 여학생이 제 딸이랍니다.)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작업을 해야하고
수업을 열흘 이상 빼먹어야 하니
대부분 군 입대를 앞두거나 전역을 한
복학생 위주로 팀을 짜는데
졸업반인 딸이 출전을 하게 되었다.
8명의 맴버중 홍일점으로
한 기수 후배가 갈 차례인데 좀더 좋은 성적을 원하는 학교측의 욕심과
유일한 팀 내의 크리스챤으로 한 번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단 딸의 열망이 합세를 해서
두 번째로 참석을 하게 되었다.
그 학교를 소개할 때 자랑하는 간판 동아리라 학교의 전폭적 지원을 받는 모임이다.
전화요금 비싸다고 전화도 못하게 하고
달랑 문자 두번 주고는 넘 바빠서 메일 줄 시간도 없다더니
지난 주일 딸의 그녀석이 와서 그 기쁜 소식을 전해주었다.
아들놈만 말짱꽝이 아니구나
잠 잘 시간도 없다고 엄살 피더니 지 남친한테 그 소식을 듣게 하냐?
좀 섭하지만 기분 좋으니 그래 봐주마!
학사일정으로 종합성적 나오기도 전에
잠시의 휴식도 여행도 못하고 교수님 대학원생 포함 15명의 일행중
재학생 세명과 교수님 한 분만 화요일에 미리 돌아왔다.
집에도 못 들르고 학교로 바로 갈거 같아
아빠랑 기습적으로 공항에 가서 축하해주려고
공항버스를 타고 인천대교를 건넜다.
가는 도중 착륙했다는 딸의 전화를 받고
지금 공항으로 가고 있다고 하니
그 까칠한 성질머리 또 발작이다.
"왜 말도 안하고 오는데~
학교에서 마중나올건데~ 만날 시간도 없는데~
주말에 가서 보면 되지~"하며 앙탈이다.
니가 이 에미 에비의 맘을 아니.
그래도 장하다고 잠깐이라도 얼굴 보고싶어 그러는데...고얀 거
벌써 가버렸으면 어쩌나 하고
어느 출구로 나오는지도 모르고 동동거리며
달려가서 직감적으로 한 출구앞에 서니
꼭 동남아 오지에서 오는 사람 같은 쬐그만 녀석이 민낯의 부시시한 몰골로 걸어나온다.
하마터면 내 딸을 못 알아볼 뻔했다.
미술을 하고 싶어했던 꽤나 화려한 패션을 추구하는 녀석이
지 좋아하는 일을 할 때는 저런 몰골을 하는구나.
그렇게 퉁명을 떨더니만 그래도 좋긴 하나보다.
공항 바닥에 케리어를 눕혀놓고 지퍼를 열고는
빨래감 속에 묻혀있던 트로피를 꺼내 보여준다.
학교에 영구 보관을 할거라며 도로 집어넣는다.
교수님이 "은혜가 수고를 많이 했습니다"한다.
잘 했다고 두 교수님이 엄마 아빠 신발을 한켤레씩 사줬다며
나이키 운동화 두 켤레를 주었다.
다행이 학교에서 마중나오는 차가 좀 늦어서
함께 온 학생들에게 생과일쥬스 한 잔씩 사주고는
그 작은 입으로 조잘거리는 승질쟁이 딸년의 이야기에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마중나온 차에 짐을 실어주고는
우리는 딸래미 가방에서 나온 빨래감과
나이키 운동화 두 켤레를 들고
일몰의 서해바다를 건너는 버스에 몸을 싣고
두 손 깍지끼고 핻복한 데이트를 즐겼다
딸아!!!
너무도 해준 것이 없는데...
정말 정말 고맙다.
그리고 하나님!!!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나 보다 더 잘 키워주셔서
정말로 정말로 감사합니다.
우리 부부는 말 안해도
서로의 체온을 통해서 그렇게 말하고 있음을 느꼈다.
글을 쓰면서도 혹 내자랑이 될까 조심스러웠습니다.
선배님 말씀처럼 할 말 없는 사람들이 꼭 오지도 않을 다음 생을 말하지요.
더 깨어 내 앞가림에 연연하지 않고
손을 펴서 나눌 수 있는 삶이 되기를 소원해봅니다.
꼭 지 아빠 성격을 닮아 까칠하지만
그 모난 구석도 하나님이 다듬어 쓰심을 느낍니다.
환경 탓만 하며 젊음을 소진했던
지난 날의 내가 한 없이 부끄럽습니다.
이렇게 봄날에 들락거리는 것도 내깐엔
이제부터라도 열심히 살아봐야지 하는 모부림이랍니다.
멋쟁이 선배님의 축하 넘 감사드려요.
순영어니가 너무 자상히 답글 써 주셨네요.
언니 말에 동감~
난 애들 키우는데 내가 뭐가 부족했나 생각하면 기도가 부족했던것 같아.
이 글 읽고 느끼는게 많다.
정말 잘 키웠네.
나도 축하해.
저는 야행성이라 밤은 샐 수 있는데
사모가 된 지금도 새벽에 일어나는게 힘든
지가 연예인도 아니면서 밤낮이 바껴서리...
오전엔 좀처럼 컨디션 조절이 안 되는데
선배님들은 어찌나 부지런하신지
신 새멱부터 댓글을 다셨군요.
진정어린 축하 감사드려요.
저는 빈 구석이 참 많은 사람입니다.
오히려 그 여백으로 더 자유롭게
자기를 발산하는 창조적인 아이가 된 것도 같으니
그도 감사하네요.
너 나 없이 한 둘밖에 없는 자녀들에게
목숨 걸고 자녀교육에 매진하는 우리나라의 독특한 풍토가
오히려 자녀들의 창조성을 저해하는 것도 같습니다.
그저 어느정도 욕심을 내려놓고
가이드 라인만 만들어주면
그 안에서 맘껏 자유를 구가할 수 있지요.
그래서 저는 똥고가 보일정도로 핫팬츠를 입고 돌아다녀도
몸매가 되니 그렇게 하지 하며
다 한 때다 하고 넘어갑니다.
그 까칠한 성질머리에도 일일이 맞대응 안 하고 넘어가지요.
천성이 낙천적이라 그렇게 살게 되네요.
우와 ~
명자 딸 대단하구나.
정말 축하한다.
멋져요 ~
앞으로 더욱 자기 길에 긍지를 갖고 정진해 나가기를 기원할게.
장한 명자 딸내미~!
나라를 위해 애국하고,
부모에게 효도 했네 그랴 ~!
자식이 잘되는 것 만큼 좋은일이 어디있을까.....!
딸아 ~!
나도 고맙다.
무조건 축하 축하다.
그리고 네게 큰 박수 보낸다, 친구야.
내 모든 거 다 내주어도
애들이 웃으면 아깝지 않다는
우리 대한민국 어머니들의 쾌승이리.
그리고 너의
"나보다 더 잘 키워주셔서...."라는
하나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에
비록 종교적인 동참은 못하지만
깊은 동감을 한다, 스승의 날이 있는
오월을 보내며.
나처럼 사연 많게 세 아이를 낳아서
카우다 보면 내 애들에게
나는 생명을 주었지만 키우는데는
주위의 많은 분들이 계시다는 걸
아니 느낄 수 없더구나.
많은 분들 중에서도 오늘은 아이들의
선생님들이 떠오른다.
교권이 땅에 떨어졌느니 아무리
부정적인 시선과 평가가 있어도
에미인 내가 할 수 없었던 역할을
제때에 제대로 해주신 고마운 기억들이
생각해 보니 많더구나
그래서인지 우리집 애들은
사내 녀석들인데도 맛난거 있으면
선생님 갖다 드리고 싶다고 해서
우리 집에는 각종 포장용기가
구비되어 있다 ㅎ ㅎ
그림자도 밟지 않는 것 까지는 못해도
내 아이들을 가르쳐주시는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은 잃지 말아야지
잎새에 지는 바람에도 다짐한다 ㅋ ㅋ
명자의 자랑스런 둘째덕에
쑥스러워 못했던 감사의 마음도
내보이고
비오는 오전이 좋다.
친구야
부럽다!
난, 하나라도 졸업시켜나 봤음 싶다.
뻥튀기 아저씨 오시나 봐야지!
하도 모난 구석이 많은 애라
성장기에 나의 기도 제목은
인생의 구비구비에 만날 자를 만나게 하시고
선생님에게 좋은 제자가 되게 해주세요 였단다.
진짜로 돌아보니
그 모난 이면의 보석을 발견하고
북돋우어 주었던 선생님들이 계셨기에
오늘에 이른 것이 아닌가 한다.
나도 키우기 힘들었던 애를
선생님들은 얼마나 힘들었겠니?
특히 영어에 대해서는 공포가 있던 아이인데
고 3 담임이 아주 유능한 영어선생님이었고
그 분을 잘 따르고 많은 도전을 받았던 거 같다.
그러니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포를 벗어버리고 발표를 할 수 있었겠지.
너는 선생님이란 좋은 직업을 가져 행복하고 보람있겠다.
니처럼 귀품있고 사랑 많은 선생님이 흔하지는 않을 터이니...그쟈?
니네 아이들도 분명 좋은 제자이고 훈륭한 인제가 됨은 자명한 일이다.
근디 오늘은 날이 궂어져 뻥튀기 장수가 안 나올 거 같은데....
명자사모~~~~~
그대의 딸의 쾌거는 우리 전 대한여인들의 자랑인것을.......
내사 그동안 열심히 못산 댓가를 톡톡히 치루고 있는데....
내대신 살아주는것 같은 봄날 동생들의 삶의 승리가 나의 몫도 되는 듯 기쁘기 짝이 없네!!~~~
축하하오!!
명자사모!!~~~
모든 감사를 높은곳에 계신 그 분께 돌리는 겸손~~`
사모 답구려..
따님의 무궁한 발전과 건강을 기원해 본다오!!
에고, 피리 불러왔는데 너무 좋은 소식 들어 좋아요.
인일나온 엄마를 둬서 머리가 명석하구먼~!
너무 자랑스럽다 얘~!
명자사모!!
인일동문의 딸, 아들이 국위 선양을 하는 쾌거를 들을때마다
마치 내 친딸 , 친아들인양 어깨가 으쓱해지며,
"과연 인일 동문은 머리가 좋아 그에미에 그 자식이지....." 흐음!
내일인양 자부심까지 갖게 됩니다.
명자사모! 고생 많았어요.
애들 혼자 TV보며 , 엄마 기다릴때 얼마나 가슴이 아렸을가?
숨은 노력 , 기도, 다 하느님께서 몇 배의 축복으로 되돌려 주셨군요.
얼마든지 스피커 대고 자랑해도 우리 동문은 다 같이 기뻐 할거예요.
진심으로 뜨거운 박수를 보냅니다
.
아이구, 인일 딸들은 참 대단하네요.
명자 후배, 입사동기님 축하해요.
혹시 따님에게 <톱 기어>란 잡지에서 인터뷰 요청 오거든 응해주라고 하세요.
대단한 일이어서...입이 다물어지질 않습니다.
반에서 1등도 못해본 처지의 우리들은 세계1등을 어느정도 선망해야 하는지
얼마동안 박수를 쳐야 하는가 짐작이 어렵네요.
아무튼
즐거운 연구가 이어지길 바라고요.
따님의 땀이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에 큰 기여를 하리라 믿어요.
입국장 문을 나서는 그 아이의 모습이 그려지네요.
축하합니다.
자기가 착한 줄도 모르고 착한 명자에게
총동창회때 딸이 미국 간다는 말 들었는데 이렇게 좋은 일이 있을 줄 몰랐네.
엄마가 펼치지 못한 꿈을 딸이 대신 충분히 이루어 주었구나.
남들은 돈이 있어 자식 학원에 보낼 때
넌 사느라 바빠 학원도 못보낸 네 심정 생각해 보면
네가 딸아이들 생각에 얼마나 안타깝고 속상했을지......
그런데 이렇게 엄청난 일을 해 낸 딸이
어찌 자랑스럽지 않겠니?
마음 놓고 자랑해라. 명자야.
나는 네 글을 두 번이나 읽으며 눈물이 핑 돌았단다.
자랑스런 네 딸과 그 어미 명자에게 무한한 박수를 보낸다.
명자의 전성시대구나!
왜 이러십니까, 명자씨!
그러시면 나는 어쩌라구.
니가 이런저런 말들에 힘겨워할 때
해주었던 말
아직도 소중하게 지니고 힘이 되는데,
우리기의 전달자 역할에서 낑낑대는 내게는.
더구나 이렇듯 너의 풀어내는 이야기들에
나도 기운 up되어 괜히 실실 웃게 되는데
그리고 곡해보다는 이해를
흉보기 보다는 감싸려는 마음으로
가득한 온니들속에서 하는
재롱인데 뭔들 어떠리 싶다.
우리가 빽이 좀 크냐!
내 배가 부르고 왜 이렇게 기분이 좋은지......
정말 딸아 고맙다는 말이 절로 나오네요~
가까이 있으면 등 두드리고 싶은 마음!
딸에게, 특히 엄마에게~
살다 보면 어깨에 후까시 넣을 수 있는 날 그리 많지 않다오.
마음껏 힘주고 자랑해요.
진짜 마음에 와닿았어요.
우리도 남편 뒷바라지만 하다가 겨우 돌아오니 집도 절도 없는데
일단 직장이야 얻었지만 남들은 그 때부터 학원이니 과외니~~~~~~~~~~~~~~~~~~~~~~
결국 스스로 최면을 거는 거지요.
지금의 교육은 잘못된 거라고!
더구나 부산에 산다는 건 공부만 아니고 어느정도는 재력이 있어야 서울 유학을 보낼 수 있쟎아요?
허지만 예상대로 별 노력도 하지않던 큰 애가 원하지않던 대학으로 갔을 때는 억장이 무너지더라구요.
주위분들은 저보고 그러더라구요.
"그런 거 전연 연연해 하시지않쟎아요?" 래요.
남의 속도 모르고.................................
형제들 아이들이 좋은 대학 척척 들어갔을 때 얼마나 속이 상하던지?
우리 동서말이 아들에게 제가 해준 게 뭐 있느냐고 그래요.
요즘 세상에 그리 내버려두면 안되는 거라고!
애들 작은 엄마는 안타까워서 한 소리지요.
하긴 그 사람은 애들 입시에 목을 맸어요. ㅎㅎㅎㅎ
사실은 이 일이 계기가 되서 전 교회로 돌아왔지요.
대학에 들어간 후로 자신의 정체성에 회의하던 아이가
군대에 갔다 와서 공부를 하겠다고 선언했을 때도 전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지요.
맘에 들던 안들던 고교 시절에 별로 뛰어나지도 않았는데.....싶어서...............................
그저 내버려두었는데 부산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하더니 결국 그 대학 학술상을 타고 학위 받고
포닥으로 일본의 연구소에 들어가더니 거기서 정식 직원이 됬고(결코 흔하지 않는 일이래요)
지방대학출신이라는 게 아직도 한국땅에서는 약점이라고 고군분투해서
이 번에 동경대학에서 논문 박사학위를받게됬어요.
아직 증서는 안받았지만 100% 확정 됬어요.
논문박사라는 건 그 학교에 다니지않고 (물론 지도교수님은 계시지만)
당연히 등록금도 한 푼 내지않고 논문만으로 주는 거라
일반 학위에 비해서 몇 배 까다롭고 어렵다고 하네요.
자기 말에 의하면 뭐든지 "절실"해야 이룰 수가 있더라고!
사실 이 과정에서 연구소분들이 협조해주시지 않았으면 불가능했지요.
연구소가 쯔꾸바에 있으니 아무리 가끔이라고 해도 동경대 갈 때마다 한나절이라도 쉬고 가야하고.................
그 분들은 학위가 있는데 또 만드는 걸 이해하시지 못한대요.
우리나라하고 정서가 좀 다른 모양이에요..
언젠가는 돌아 갈 사람인데 지네나라에서 필요하다니 그냥 묵인한 거지요.
정직원이기때문에 터놓고 돌아간다는 걸 강조할 수도 없다더라구요.
사실 돌아 갈 사람을 뭐하러 뽑아서 가르치겠어요?
그냥 아껴주시는 몇몇 분들이 그리 생각해주시는 거지요.
외국인으로서는 일의 한계가 있으니까요.
아들도 벌써 그걸 실감하고 있어서 어쨌거나 돌아와야한대요.
암튼 이 덕분에 아들은 2년 여동안 잠을 거의 제대로 자지 못하고 버텼는데(밤에만 준비해야 하니까)
지진 일어난 덕분(? )에 어쩔 수 없이 가족 데리고 피난 와서 2주 편하게 쉬다가 갔답니다.
그 때 피로를 안풀었으면 긴장 풀린 지금 아마 크게 아팠을 것 같아요.
잠깐 출장 올 때마다 보약 지어 보내곤 했지만
단골 한의사 선생님께서 진맥하시고는"아이구 50대네"하시다가
얼마 전에는 "완전 70대다" 하셨었거든요.
솔직히 이 에미 심정은 논문이고 뭐고 두아이의 아빠가 그저 아프지않는 게 제일 큰 기도제목이었지요.
사실 우리가 일본 갔을 때 연구소의 웃분들 만났는데
아직까지 한국의 좋은 대학 출신들 많이 왔지만 이렇게 우수한 사람 처음이라고 그러시더라구요.
일본 사람들은 공적으로는 절대로 입에 발린 소리 안해요.
남편이 혼자 듣고 왔으면 전 안믿었을 꺼에요.
내가 아는 아들과는 좀 달라서요.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제가 보기에는 그 애가 중고교에서 대학까지 공부로 진을 빼지않은 게 가장 중요했던 것 같아요.
목표가 확실하지않은 상태에서의 노력이란 큰 효과가 없더라구요.
물론 전력투구란 것도 없었겠고요.
대학시절부터는 어떤 계획이 섰는지 헬스로 몸관리를 열심히 하더라구요.
건강이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한다고!
그 때도 제 맘 속으로는 "그 시간에 공부나 하지" 하는 바보같은 생각이 많았다는 거 이제사 고백합니다.
아마 우리집도 경제적인 여유가 있었다면 아들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 헛수고 많이 했을 꺼에요.
그만큼 간섭도 했을 테고요.
우리도 어쩔 수 없이 환경에 맞춰 산 것이 마치 열린 교육을 한 것 같은 결과가 됬어요.
그리고 보니 역시 스스로 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게 끔 해주는 게 가장 중요하더라구요.
게다가 목표를 함께 해주는 좋은 반려자를 만난 게 그 애가 받은 축복이지요.
아이고 명자후배 말에 동조하다 보니 아들자랑이 팔불출을 넘어버렸네요.
암튼 뒷바라지 잘 못해줘도 괜찮다는 말 하려고 했어유
선배님 말씀이 절절이 공감이 되네요.
생명부지의 부산으로 시집가서
그 곳서 괜찮은 직장다니는 남편이랑 살다가
한 번 삶의 소용돌이를 겪고
결국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모든 걸 내려놓고
신학생 아내가 되어
나의 고향 인천으로 돌아왔지요.
돌아보면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가시는
주님의 손길을 느끼게 됩니다.
이제사 남친의 축하 꽃다발을 한 아름 안고
들어오는 딸을 맞이하여
스테이크에 물린 입맛 돋아주려
김치찌개로 저녁상을 차려줬네요.
태의 열매는 부모의 면류관이라는 말씀이
새록 새록 마음에 다가옵니다.
선배님이 제가 살던 부산에 사신다니 더 정감이 가네요.
울 막내시누이는 영도제일교회 장로 권사 부부랍니다.
딸은 고신의대 올해 졸업하고...
저도 선배님께 정말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아이고 언니! 축하드려요~~~
그리 좋은 얘기를 왜 이제사 하시남요?
정말 기쁜 이야기네요~ ㅉㅉㅉㅉㅉㅉ
중 고교에서 대학까지 공부로 진을 빼지않은 게 가장 중요했던 것 같다는 언니 말 의미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남들은 어떤지 잘 모르지만 난 나이 들수록 뭐 배우는 게 더 재밌고 좋던데요.
음악 듣기도 어릴 때랑은 확실히 다르고, 책을 봐도 내 마음 자세가 많이 바뀌었구나 하는 것을 많이 느껴요.
어려운 과제 열심히 풀어 보려 노력하는 일도 수고롭지 않고 그저 재밌던데요. 쓸 데 없는 서류 장난 말고요.
원하는 일이면 말이죠.
각자 자기의 행복을 위해 길을 찾아야 할 것 같아요.
정해진 게 있는 건 아니니까요.
소집 해제가 얼마 남지 않은 우리학교 공익은 끝나면 4학년으로 복학을 하는데.
남들이 보면 온통 부러운 것 투성이의 조건을 가진 아이인데 본인은 별로 행복해 보이지 않더군요.
마음 속 또아리를 틀고 있는 욕심 -남들보다 잘 해야 한다, 잘 하는 사람이란 것을 보여야 한다- 때문이죠.
그런데 연구실에 앉아 종일 <움직이지 않고> 공부만 하는 것을 좋아할 것 같지 않다고도 하고, 재벌 기업에 들어가면 자신의 능력이 돋보이지 않을 것 같아서 가고 싶지 않다고도 하고..........
얘기를 들으며 바라보는데 웬지 마음이 허전하달까 안타깝달까......
어릴 적부터 한 번도 져 본 적이 없는 아이라선지 그런지.
똑똑하고 성실하고 예민한 감성까지 갖춘 아이인데, 뭐랄까 아주 중요한 무엇을 놓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 아이를 바라보며 행복해야 할 텐데...... 그래야 주위 사람도 행복할 텐데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어쨋든 언니, 유쾌한 소식 아주 즐겁습니다!
음악회에서 뵙겠습니다.
난 컴 껐다가 아무래도 공연한 거 썼다 싶어서 지우러 왔는데 한 발 늦었네요.
으째야쓰까이~~~~~~~~~~~~~~~~~~~~~~~~~~~~~~~~~~~~~~~~~~~~~~
???명옥아!!!!
지우긴 왜 지워.
누구나 자식 기를 때의 심정은 똑 같은데...
아주 공감 가는 글이다.
우리 봄님들 미사여구 빼고, 허세 빼구
진실하게 말함이 느껴져서 참 좋다.
진실은 항상 통하는 거잖아.
그 아들이 바로 양지 아빠이구나.
동경 대학 박사는 힘들기로 소문 났던데
그곳에서 박사 학위를 받는다고?
축하!!!! 축하!!!!
우리 아들 딸들 참 장하다.
이렇게 결과만 들으면 뭐 같아 보이지만 그로 인해서 집안은 참 힘이 들더라.
애가 둘 아니니?
한창 손이 많이 가는 데 도와주기는 커녕 자기 한 몸도 쩔쩔 매고 있지.
토씨 하나 고치겠다고 밤샘하는 꼴은 정말 남산골 샌님 저리가라란다.ㅎㅎㅎㅎ
맞벌이가 아니다보니 이래저래 쪼들리는데 아빠에게 경비가 많이 들어가고
등록금은 안내도 심사료에서 논문 제본비며 동경까지의 차비도 만만챦고~~~~~~~~~~~~~
공부 뒷바라지는 해본 사람 아니면 몰라유.
그래서 우린 늘 양희에미 편이야.
고맙고 미안하고 안쓰럽고 그렇다.
애들이 풍족하게 산다면 아마 자랑 안했을 꺼야.
세상에 모든 게 다 좋을 수는 없다는 말 하려고 썼지.
가장 중요한 한가지를 위해서 두번 째 세번 째로 중요한 것들은 잘라내는 걸 용기라고 한대.
암튼 명자후배 곁다리로 끼어서 축하 많이 받았네.
고마워요.
와하하하하~~
1) 자동차공학회 대학생 자작자동차 대회 동영상... 봤어요. 안경끼고 머리 노랗고 뒤로 묶은...
아이고, 인일인들 자녀들은 다- 그 정도 합니다! 하여간 대단들 해요. 명옥언니댁 아드님도 역쉬~~
우리7회도 아이들 얘기 꺼내봐요....다 한가닥지 한다니까, 들~~ (엄마가 '인일'이라면... 무조건 데려가야 함다, 높은 평점!!으로)
2) 그런데... 17최명자 후배는 나랑 秘史가 비슷해요. 20여년전 실험실에서 밤늦게 내려 가면 유치원 딸래미가... 쪽지에 뽀뽀
그려놓고(=빨간입술) 엄마, 수고했지? 내가 이불 펴놨으니까 잘 쉬어. 써놓고는 자고 있는 겁니다. 이게 에미에요? 바꿔 되었죠?
딸의 꿈은 본래 미술인데
그건 돈 벌어서 취미로 하겠다고 공학도의 길을 택했죠.
지금도 맘은 공부를 더 하고 싶지만
일단 취업을 하고
다시 길이 열리면 공부를 더 하겠답니다.
선배님이 동영상을 보셨군요.
대회 한번 준비하는 것도 힘든데
끝나고 돌아와서 다시 동영상 만든다고 밤잠을 설치더니
공모전에서 다시 대상을 탔더라구요,
동아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상금은 몽땅 동아리 기금으로 내놓구요.
아빠가 자기 공부 할때는 아내고 자식이고 아무 생각이 안나더랍니다.
그저 하고싶은 일 하니까 7 년이 수 일같이 지나가더라나요?
혼자 쩔쩔매며 사는 나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인데...
요즘에사 가족들이 얼마나 자신을 위해 희생했는지 감지가 된다고
엄청 잘 해줍니다.
부모가 소흘하면 오히려 애들이 더 철이 빨리 드는 것 같아요.
선배님 자녀 처럼...
한마디 더.
제가 얼마전에 케임브리지에서 1년 지날 때 만났던 교수님들과 <서울성곽 둘레길 걷기>를 했는데요...
그때 설대 농대 교수님이 오셨어요. 학교 얘길 하다가... 우연히 제가 그랬어요
설대 학생들은 <정답>만 찾으니 이노베이션을 못해요!
우리 배재의 학생 중에 이노베이션 하는 사람들이 나오더군요~~ 했는데
이 말이........... 나중에 생각해도 일리가 있어요. 설대 대학원생 시절, 제가 정답 알아맞춰야, 그래야 칭찬들을거 같아서
무지 고민스러웠던 기억이 있는데요, 지금 내 연구실에서는....... 정답 요구를 안해요
학생들의 사고가 자연스럽게 발전하면 그대로 언제나 이노베이션이니까
맨날 내가 하는 말이 {우리 사는 동안 함께 큰사고치자}...ㅎㅎ...얹힐려고 ㅎㅎ
명자야~ 너 에게 먼저
정말 축하할 일이네.
대단한 딸 자랑 서슴치말고 해야지.
얼마나 뿌듯할꼬
추카추카!!!!!
명옥언니에게도 축하축하드려요.
이러한 경사가 어딨담!!!
봄날 경사났네 경사났네요.
왜 내가 이리 좋을꼬!!!!
명자 ~
진심으로 많이많이 축하해요, 이렇게 좋은 일을 함께 기뻐할 수 있게 해 주어 고마워요.
우리애들이건 다른 댁 자녀들이건
자녀들 잘 되었다는 말 들으면 참 신바람이 나요.
그들이 살아내야 할 세상에서 혼자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나누며 살 수있는 "재료"가 또 한가지 준비 되었다는 것 때문에 신나고 즐거운걸 꺼에요.
은혜도 은혜의 작품도 보고 싶은데 어느 웹사이트엘 가봐야 하는지 조금 자세히 알려 줄래요??
명옥언니~
얼마나 뿌듯하실까..... 양지엄마랑 양지 외가댁에서도 언니댁 못지 않게 기쁘시겠네요
고생끝에 낙이란 것이 항상있는 건 아닌데\
참 감사한 일이고 자랑스런일이네요.
축하드려요.
이제야 이글을 읽었는데 댓글들은 띄엄띄엄 만 읽었어요.
혹시 다른 분들께 축하드려야 할 일이있는데 못읽은게 있다면 나중에 다시 읽고 지각축하라도 드릴께요
제 바로 위에 계신 광숙언니, 억수로 반갑다요~
???명자야!!!!!
내가 처음 댓글 다는구나.
어제 저녁 피곤하여 9시경 잠이 들었더니
그만 3시에 눈이 떠졌어.
6시간 잤으니 충분하다 라고 생각하며 일어났지.
너는 신새벽 2시가 넘도록 안자고 이글 썼구나.
엄마의 마음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글이다.
그제 본 써니 생각이 잠시 났다.
딸래미가 엄마에게 까칠 떠는 모습이.......
우리 딸래미들은 엄마에게 만은 한없이 어리광을 부릴 수 있는
특권이 있는거 같다.ㅋㅋㅋ
정말 네 딸 장하다.
자랑할 만하다.
우리 나라 젊은이 들이 이렇게 열심히 노력들하니
우리나라는 희망이 있는거야.
내가 다시 태어나면 정말 열심히 살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든다.
저렇게 열심히 사는 친구들을 보면 난 너무 부럽다.
다시 태어났을 때 하고 생각말고 지금 열심히 살아야 하겠지?
그래 우리 자손들이 열심히 사는 모습으로 대리 만족 해야겠다.
축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