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회 - 게시판담당 : 권칠화
얘들아 니들도 그러니?
1. 부엌에 들어가서는 내가 왜 여기 와 있는지 생각이 않나서 도로 방으로 들어가기….
내일 아침에 잊지 말고 꼭 들고 나가야 하는 물건이라서 문앞에 놓아두고는 다음날 아침엔 나가면
서…. 이건 뭔데 여기 있지???… 발로 쭉 밀어놓고 나가기…. 그래서 그 다음 부터는 꼭 가지고
나가야 할 물건을 비닐 봉지에 넣어서 가방에 묶어 놓기…
등등… 이런 종류의 일들은 이미 놀라워 하지도, 속상해하지도 않쟎아
근데 말야 얼마전에 이런 일이 있었어
남편한테 열받아서 복수를 해야 할 일이 있기는 분명히 있었는데
무슨 일이었는지 도무지 생각이 않나는 거야 그래서 그냥 나 혼자 씩~ 씩 ~ 대다 말았거든.
잊어버릴게 따로있지 ....이런 참~나~
2. 젊어서는 오밤중에 드라마 보다가 라면 선전 나오면 라면을 끓여먹든지
물말아서 밥이랑 김치랑 먹든지 … 밤참을 먹고 싶은대로 먹고 살아두 살찌는 걸 몰랐는데
슬~슬~ 물 만 마셔도 살이 불어나기 시작하드니 이제는 먹는것 사진 만 봐두 살이 찌는 거 같어.
3. 나이가 들수록 인생의 경륜과 연륜이 붙어서(이렇게 표현하는게 맞는거니? 혜동아?)
무슨일을 당해도 느긋해 지고 상대방이 이해가 되기 때문에
삶이 온화,고요, 풍요, 평화로와 져야 할 것 같은데 말야
왜 나는 날이 갈 수록 승질이 드러워 져서는 도무지 참아내지를 못하고
조금만 날 견드려두 완전 쌈닭이 되어 버리는 거냐구??????
나만 그런거니???????
니들은 어때????????
오늘은 기분이 많이 울적해 ~
그러니깐
니들은 나같지 않드라두
신옥아 ~ 너만 그런거 아니야…. 나두 그래…. 난 너보다 더하단다….
뭐 그런 답글들 달아주길 바래.
칠화는 꽃 일곱송이가 모자라서 봄꽃 더 꺾으러 어딜 갔나?? 왜 이리 우리방이 깜깜한고???????
치라야 난 제작년 된장을 손수 담구었단다
그냥 대강 먹을만하고 간장도 뽑았단다
여기 찐빵을 보내니 먹어 보도록 커피 찐빵은 내가 개발 한것이다
난 앙꼬에다 견과류도 넣는단다 호두가 싸기도 하지만
앙꼬와 함께 씹히는 맛이 환상!!!!
니 오면 독일 정통 요리와 [송아지 고기] 함께 해 줄께~
송호문 선배님,
하얀 찐빵, 커피 찐빵 다 맛있어 뵈는군요.
견과류도 들어가니 건강에도 좋겠구요.
직접 만든 것은 뜨끈뜨끈하고
얼마나 더 맛있을까요..
점심 먹은 지 얼마 안되는데도 침이 넘어갑니다.
선배님! 우선 맛난찐빵 잘 먹었어요.
커피찐빵까지 개발하셨어요?
그 옛날 에델바이스에서 일 하셨었네요.
제가 이번주 내내 한식당에서 써빙하는 알바를 하였답니다.
연변언니보다는 낫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를 들어가면서..
짤리지만 않으면 계속하고 싶어요.
혜동 아우는 인천 부근에 사는가봐
출출할때 와서 먹고 가라구 그리고 방가 !
치라야
니만 몰랐구나 내가 그 독일 식당에서 일 했던것을
그런데 니 코로라도 스프링스에 지난번에 갔었어?
참 아름다운곳이란다 9월말이면 눈이오고
잛은여름 글구 단풍이 환상 환상 !
공군 사관 학교가 가까이에 있고 정문에서부터 노루 사슴이 뛰며 반기는 곳이지
그래 알바를 해서 일석이조 생활을 하거라 아주 좋은 선택을 햇구나
호문언니의 옛기억 창고는
모든 기록의 필림들이 고스란히 보관 되어있는 헐리웃 영화회사 도서관 같으셔요.
어떻게 35년전의 BOSS 이름까지 기억을 하시고 그시절의 임금까지 고스란히 기억을 하시는지요?/
하긴
아주아주 어린시절의 일까지도, 사람이름까지도, 거리이름, 건물이름도 생생하게 기억을 하고 계시니 더 말할 나위가 없기는 하지만 말에요.
기억 뿐 아니라 그 당시의 메뉴까지 보관을 하시는 호문언니는 "걸어다니는 박물관~"이시네요.
에델바이스의 사진은 호문언니께 보여드리려구 찍어온 것 맞아요.
이메일로 보내드리려 했는데
지금껏 못 보내드리고는 이렇게 공개적으로 보여드리게 됬네요
근데..... 그때랑 지금이랑 변한 건 없나요?
작년에 콜로라도 스프링스에는
친구 명희도 만나고
남편이 은퇴한 후 선교본부에서 자원봉사 할 일이 있을까 해서 알아보려구
스프링스에 60 여 개나 있는 선교본부들 중 몇군데를 방문하고 싶었고
공군사관학교에 다니고 있는 손자 ( 제 남편 형님의 손자) 도 볼겸 해서 다녀왔어요.
지금 공군사관학교 3학년인데
그 아이의 형은 작년에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가 있지요..... 형제가 모두 공사엘 갔어요.
작년엔 우리아들 졸업식이랑 공사 졸업식이 2,3일 차이라서 못 갔는데
(그보다는 울엄마가 편쟎으셔서 못 간게 더 맞네요)
작은 아이 공사 졸업식에는 꼭 가려고 해요............. 무지무지 볼 만할것 같아서요......... 자랑스럽기도 하구요.
형은 공사에 들어갈 때 부터 모든 분야에 탁월했어서 동생이 형 덕을 꽤나 보는 모양이드라구요.
에구~ 온갖자랑을 다 하네요.....
어쩌다가 아주, 콜로라도 스프링스 여행후기로 변해 버렸네요.... 아무려면 어떻겠어요 마는....
이왕에 이리된 것 공군사관학교 사진도 몇장 올려 볼께요.
커피찐빵, 하얀찐빵 ~ 구수한 옥수수차랑 먹으면 아주 아주 맛있겠어요.
아, 그리구요
칠화는 몇년전에 명희딸 결혼식 참석차 스프링스 명희네 집에 갔었어요
한국에서 칠화, 혜동이 그외 두 명더, 그리고 미국에서는 영옥, 은미, 저,
.... 꿈 같은 시간이었죠.
사진이 않올라가네요.
여기서 송호문 선배님과 신옥의 글 읽다가
아무래도 추억의 사진을 꺼내 보고파서
어디 깊숙히 들어가 있던 사진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그 사진들 보고 있자니 정말 꿈같은 시간이었어.
꼬리글이 길어지니
새로 사진 올려볼게..
아 !
10기 아우들이 역사 같이 그곳에 명희 딸 결혼에 다녀 왔다구 ?
바로 내가 살았던곳 추억이 어린곳 !!!
정말 미국이 무었인지 모르고 열심히 충성스럽게 일했던곳 [칭찬 받으면서 ]
암튼 그때 내가 오이를 4개 깔때 미국 아이들은 1개를 까드라고 [칭찬 당근이지]
날 위하야 사진을 식당 찍었다니 그 소식에 감탄!
역시 남는건 사진이구먼
내가 그곳에 있을때 1976년 겨울에 그곳에 공사 교관 부인이 울 교우인데
한국 학생들을 무척 사랑한 나머지 공사생들 6인조 배구팀 조성해서
[6명이 모두 한국말을 못함 이유는 양자 혹은 혼혈아 였기에]
글구 상대가 울교회 청년들이였다네 그래서 그때 시합하러 공사에 눈오는 날 갔었다네
생각하니 공사에 인상적인것은 세게에서 젤 큰 체플에 파이프 올간이였지
올간 근처에 가서 대화를 하면 왕왕 울리는것이 인상적이엿고
그 체플을 짓는데 뱅기 만드는 고급 자제를 써서 그 당시 지탄을 엄청 받았다는군
시노가 공사 졸업식 멋 있것다
식당 사진만 보아서는 변한것은 찿지 못하겠네
영자가 스프링스에 가게되면 나 끼여준다고 ㅎㅎㅎ
아니 뫼신다고 했는데 ㅎㅎㅎ
아우들 고마워 즐거운 추억을 살려 주어서
오늘밤 아우들 꿈 꿀께 총총
"그건 아마도 이름이 두개라서 그랬겠지...
미국이름과 한국이름 두개라서.."
사실 나는 서양이름을 갖지 않았거든.
내이름 그대로 은미인데, 미국식으로 하다보니
중간 이름이 짤려나갔어. 그래서 "은"으로 불리우지.
솔직히 지금은 그게 조금 후회가 되는것 같아.
중간이름을 하나 지었더라면 내 이름 그대로 불리울텐데 하고 말야.
요즘 몇일은 내가 하는 업무일을 다른사람에게 가르치고 있는데
가르치는 상대가 한마디로 여우야.
내가 싫어하는 타입의 여자... 앞에서 알랑방구, 뒤로는 호박씨까는..
하지만 업무니까 싫다좋다 할 내처지가 아니지...
노트를 하지 않기에 의아해하는 나에게 하는말이
자기는 Photographic Memory 를 가졌기 때문에 노트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네.
기죽이는 소리....
불뚝 내심에서 Pornographic Memory 가 아니고??? ㅎㅎ (속으로만 한소리)
유치하지만 질투심에서 문득 생각난거라고나 할까?
그래, 어디 두고보자.
실제로 네가 Photographic Memory 를 지녔는지....
일을 빨리 이해하고 배운다는것에는 동의,
하지만 Photographic Memory?
개뿔......
첫날 가르친것 다시 되풀이....
지금은 열심히 노트를 한다.
못된성질이 조금씩 머리를 치고 올라오는데,
한번 싫은 소리 해볼까?
근데, 안했어.
똥밟아봤자, 내 손해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하고.
오늘 있었던 이름 까먹은 에피소드 하나ㅋㅋ
나하고 같이 일하는 마흔살 노총각 닥터 A가
캐나다 약혼녀 집에 다니러 가느라 오늘은
닥터G가 우리 프로그램 환자들을 보기로 되어 있었다.
Medical Director인 그는
우리 나이 또래에 제법 미남이다.
그래선지 쫌 거~만 하신데가 있으시다.
환자들 집에 갈 시간이 다가도록
안 나타나 초조하게 만들더니...
오늘 새로 온 환자가
월요일에 court에 가져갈
letter좀 써 달라고 해
준비 해가지고 닥터 싸인을 부탁했다.
그런데 그만 내가
그 닥터 이름이 Ronald 인걸
까 먹고 Robert라고 타이프를 했지 뭐냐?
싸인을 하며
내이름 Robert아닌데 궁시렁거리며
펜으로 고치더라고.
오메~~ 미안해요 , 미안해요
하면서도 어찌 웃음이 나는지~ㅎ
아무래도 또 억울했는지
나가면서"call me Robert!!" 한번 더 궁시렁.
그 사람의 평소 잘난척 하는 태도를
못마땅해 하던 동료하나가 나보고
야, 이왕 이름을 바꾸려면 Richard 로 바꾸지~~
아무래도 저 사람에겐 Bob 보다는Dick이
훨씬 더 어울리는데~~
이래가지고는 우리 모두 빵 터졌다는 야~~그~ㅋ
ㅎㅎ
Dick....
나는 Dick 다음에 하나 더 붙여서 불러주고 싶은데... ㅎㅎ
모르는 사람에게 못됬지? ㅎ
나도 한 일주일전에 실수했어.
커피한잔 마시러갔다가, 그곳에 Cameron 이라는 남자가
있길래, 아침인사 나누고, 얼굴 본김에 그전날 끝내지 못한 업무
마무리지려고 이래저래 주절댔는데, 한참 듣고 하는말이
나.... Carl 인데...
왜, 내가 Cameron 과 Carl 이 헷갈렸는지.. 지금도 몰라.
어찌나 민망하든지.....
커피 한잔 마시고, 다시 확인하러 올께.
그렇게 둘러치고 돌아섰단다.
어머! 고맙다 마치 날 위하여 찍어 온것 같구나
나 같으면 맨 입으로 올려주지 않을터인데ㅎㅎ
내가 그때 메뉴를 한장 갖고 와서 지금까지 갖고 있단다
그땐 해피타임 이후 정식 디너가 $ 7-8정도 였었단다
내가 시간당 $ 2.25 을 받고 일을 시작했으니깐
한달내내 일을해도 그저$ 300 정도에다
주인이 시간좀 더 주기를 원했었고 말이다
지금은 35년이 흘렀으니 가겪 대단 하겠지 ~
그때 배운 독일 요리 평생 때마다 인용 한단다
특별히 송아지 고기 요리
교포들이 양식은 해도 독일 음식은 대개는 못하니깐
주인 Simon 은 세상 떠났을까 ? 누가 인계했을까? 그때도 50살이 넘었으니깐
난 오늘밤 그곳에 가 있네 추억은 아름답구나 기쁨조 시노가~
그런데 게스 냉장고? 골통품이구나 처음 듣는 야그
그 땐 어른 일인당 200$ 뿐이 더 허용이 안되였지
그래도 이렇케 잘 살고 있구나 감사한 일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