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 갈까 저리 갈까 차라리 돌아 갈까

 

갯골 생태공원을 산책하며

묵은 갈대숲속에 난 갈래길의

여러 개 화살표 사이에서

요절한 옛 가수 배호의 노래가 흥얼거려졌다.

 

얼마만에 다시 보는 풍경인가.

지난 가을에 와보고는

이렇게 해가 바뀌고

봄의 한 복판에 와서야 다시 발을 딪다니

끌끌끌 혀를 찰 노릇이다.

 

영동고속도로를 머리에 이고 가로질러 가는 길

조금은 음침하고 정비되지 않은

썩 기분 좋은 길은 아닌 그 길을 통과해야만 하는

그 느낌 때문일까

 

난 그동안 운치있는 이 곳을  외면하고

멋스럽게 가꾸어진 해안도로를 산책코스로 즐겨왔다.

조금의 불편함을 감수하면

정말 운치있는 장관이 펼쳐지는데

마치 인공 조미료에 인이 배겨

첨가물이 안 들어간 음식은 맛 없어하는 것처럼

편안하고 익숙한 것만 찾는

못된 습성이 있다.

 

산책 나오기 전에 이미 여러가지 일로 많이 걸었더니

그동안 운동을 게을리 했던 터라 금방 발바닥이 아파왔다.

오랫만의 산책에 욕심을 내어

기수습지 담수습지에서 한 폭의 동양화처럼

유유자적 노니는 철새들을 보며

한 발 한 발 유년의 추억을 되씹으며 걸으니

제법 멀리 와 버렸다.

 

 해는 벌써 바다 끝을 향하고

왔던 길을 돌아보니

생태공원 입구가 아득하니 보이고

다리는 아프고

갈 길이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아이고~

빨리가서 밥도 해야는데...

중간 중간 쉬어가는 정자가 있고

여러 개의 화살표가 갈래길 앞에 서 있다.

고민이 생겼다.

어디로 가야 빨리 이 곳을 빠져나갈까.

 

마치 숨은길 찾기처럼

묵은 갈대숲 땜시 길이 안 보이니

다리는 점점 아파오고

참으로 난감했다.

 

담수습지 쪽으로 조금 걸어갔다가

다시 돌아와 풍차가 보이는 쪽으로 조금 갔다가

또 다시 돌아와 반대 편 정자 쪽으로 걸어갔다가

그야말로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차라리 돌아갈까 였다.

 

결국 가장 대각선이라고 여겨지는 방향으로

입구쪽을 바라보고 걸었다.

그래도 길이 구불구불 나있어서 제법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끝까지 걸어나와 보니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질러가는 길이 없을 거라 생각하고

몇번을 생각하다가 포기한 그 방향으로

길이 나 있었던 거다.

 

아~

눈에 안 보인다고 길이 없는 게 아니구나.

무슨 진리를 발견한 사람처럼

갑자기 골똘이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익숙한 것의 편안함

낯 선 것에 대한 두려움 또는 불편함

이런 이유들로 도전 의식도 없이

구태의연한 삶을 살았었구나.

 

내가 보는 것이 다가 아닌데

내가 본 것이 다인양 하는 아집으로

 

다르다는 것과 틀리다는 것을 구분 못하고

나와 다른 것을 틀리다고 말하는

무식을 떨며 살았음을

 

그래서

나의 그 고집스러움으로 인하여

누군가의 가슴에 생채기를 내기도 했겠지.

 

때로는 숲속의 아주 작은 풀 한포기에

눈길을 주는 섬세함으로

또 때로는 대의를 위해 작은 것을 잘라낼 수 있는 결단을

 

때로는 수필을 쓰기도 하고

또 때로는 간결한 시 한 수도 지을 수있는

 

다양함과

유통성과

너그러움을 가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마트에 가서 저녁 찬거리라도 살까하고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저만치에 낯이 익은 노인네가 자전거를 타고 온다.

안녕하세요?

그는 남편과 전도하다가 만났던

은퇴하신 칠순을 훌쩍 점긴 노 목사님이시다.

함께 식사나 하게 교회에 전화해서

목사님 나오시라고 하세요.

 

후배 목사 부부를 격려하고 싶으신

그 맘을 헤아리며

생선구이집으로 가서

너무도 맛난 저녁식사를 했다.

 

사람들의 염려 걱정은 대부분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한 헛 걱정이라는데

나의 저녁밥 걱정은

이렇게 헛 걱정으로 끝이 났다.

 

 

 

갯골 생태공원의 이정표가

오늘 내게 그런 저런 교훈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