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날 | 포토갤러리 | - 게시판담당 : 12.김춘선
삶의 수레바퀴 앞에서
비겔란 조각공원은 해마다 200만 명 이상의 국내외 관광객이 찾아오는 오슬로의 관광명소다.
오슬로 시에서 제공한 약 10만평의 부지에다 비겔란의 작품만으로 조성한 이 조각공원은
연중 매일 24시간 동안 방문객에게 무료로 개방을 하고 있는데,
조각 작품을 구경하러 오는 관광객은 물론 운동과 휴식을 취하러 오는 시민들도 많다.
총 212점의 조각품 배치는 물론 가로수와 화단의 위치까지
모두 비겔란이 기획을 하였다고 하는 이 공원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한 사람의 조각가가 한 가지 주제에 집중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각 공원에 있는 비겔란의 작품 중 하이라이트는
중앙에 우뚝 서 있는 모노리스 석탑이다.
이것은 높이 17.3미터, 총 무게 180톤의 거대한 돌에다
121명의 사람들이 뒤엉켜 있는 형상을 새겨 놓은, 세계에서 그 유례를 보기 힘든 작품이다.
이 석탑의 돌은 노르웨이 동남쪽 해안의 산에서 캐서
오슬로의 피요르 협만을 통해 운반을 해 왔다.
비겔란은 이 거대한 화강암과 똑같은 크기의 석고 모형에다 작품을 만들었고,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힘든 돌을 쪼는 작업은 당대의 솜씨 좋은 석공들에게 시켰단다.
1927년에 지금의 조각 공원 현장에 도착한 돌에다 직접
3명의 석공이 1929년부터 14년간 작업을 하였고,
비겔란이 죽기 바로 직전인 1943년에 완성하여 다음해에 일반에게 공개했단다.
모노리스에 대한 작품 해석도 분분한데,
혹자는 이것이 남근을 형상화 한 것이라 하고.
혹자는 삶의 투쟁,
혹자는 영혼세계에 대한 인간의 동경 내지는 인간의 부활을 내포하고 있다고 보기도 한단다.
가까이서 꼭대기를 올려다보기 힘들만치 높은 석탑의 원통 표면에는
수 없이 많은 인간들이 벌거벗은 채로 뒤엉켜 빙 둘러 있었다.
숨 쉴 공간조차 없이 차곡차곡 포개어진 나신(裸身)들은
하나같이 화가 나고 지친 표정이었다.
그들의 분노와 절망과 절실함, 슬픔 같은 감정들이
여과 없이 내게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했다.
아마 나는 이 작품이 우리네 삶의 현장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치열한 투쟁의 순간을 표현한 것이라는 해석에 동의하는 모양이다. (계속)
(위에서 계속)
나는 그의 작품 ‘삶의 수레바퀴’ 앞에 한참이나 멍하니 서 있었다.
이것은 몇 안 되는 제목이 달린 작품 중 하나로 공원의 후문 쪽에 있었는데,
척 보는 순간 무슨 의미를 지닌 것인지 알 것 같고 가슴으로 전해지는 느낌이 강했다.
이 작품은 네 명의 어른과 세 명의 어린이가 한데 뒤엉켜 있는 모습의
직경 3미터짜리 원형 조각품이었다.
바퀴가 연상되는 원의 형상은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공존의 의미와 삶의 영원성,
요람에서 무덤까지 연결되는 인간의 삶과
계속 돌고 돌아 이어지는 윤회사상까지 내포하는 것 같았다. (계속)
(위에서 계속)
사실 이러한 수레바퀴 이미지는 조각 공원 중앙에 위치한 청동 분수대에도 있었다.
조각공원에서의 첫 작품인 이 분수대를 만들면서
그는 공원에 전시할 모든 작품의 주제를 통일하기로 결심한 듯했다.
이 분수대는 여기서 제일 오래된 작품이면서 작가가 가장 심혈을 기울인 역작이라고 했다.
분수대 중앙엔 6명의 건장한 남자가 거대한 물 쟁반을 받치고 있는데
모두들 하나같이 온 힘을 다하고 있는 표정이었다.
또 분수대 테두리 위에다 사람과 나무가 어우러져 있는 모습을 20여개나 따로 조각해서 올려놓았는데,
내용은 인간의 탄생에서 죽음까지 이어지는 삶의 여정이었다.
그 뿐만 아니라 테두리 옆면도 칸으로 나누고 작은 액자처럼 만들어
인간이 거쳐 가는 생로병사의 과정을 순차적으로 생동감 있게 표현해 이야기를 만들어 놓았다.
칸칸이 나뉘어 있는 작은 액자들 속에는
조상들의 유골을 줍는 어린아이부터
즐겁고 고달프고 꿈에 부풀어 사는 청 장년기의 모습,
그리고 쓸쓸한 노년을 지나
결국은 죽음에 이르러 유골로 돌아가는 과정이 조각되어 생생하게 담겨 있었다.
즉 그림을 따라 한 바퀴를 빙 돌다 보면
한바탕 꿈을 꾼 것같이 한 사람의 인생이 끝나는데
그 마지막 지점이 바로 또 다른 출발점이 되었다.
완벽한 순환이었다. (계속)
(위에서 계속)
구스타프 비겔란은 ‘인간의 삶’에 대해 골똘히 연구한 철학자 같은 조각가로
평생토록 여러 종교들과 성경, 신화를 깊이 연구하였다고 했다.
그는 거의 모든 작품에다 이렇게 순환하는 인생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이는 다분히 기독교적인 사상과 불교사상이 합쳐진 듯 보이는 내용이었다.
줄거리는 분명 성경 이야기를 토대로 한 작품인데
대미는 죽음이 아니라 또 다른 생을 시작하는 것으로 장식을 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보노라면 자연스레 윤회설이 떠올랐다.
그 바람에 나도 덩달아 해답을 찾기 힘든 생각 속으로 빠져 들게 되었다.
나는 어떤 운명의 힘에 이끌려서
이렇게 먼 곳에 있는 ‘삶의 수레바퀴’ 앞에 까지 오게 되었을까?
도대체 산다는 것이 무엇이며 죽는다는 것은 또 무엇일까.
우리의 삶은 결국 죽음을 향해 가는 여정에 불과한 것인가,
아님 죽음 뒤에 펼쳐질 어떤 세상과 맞물려 있는 걸까?
하지만 내 머릿속에서는 생각만 계속 헛돌 뿐 시원한 답을 찾을 수가 없다. (계속)
(위에서 계속)
- 엄마,
만일 내가 이 세상에 꼭 태어나야 할 영혼이었다면 말예요.
설령 엄마를 못 만났어도 누군가 다른 사람의 자식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을까요?
그럴 경우에도 그 사람을 저라고 말할 수 있나요?
비록 겉모습은 지금과 전혀 다르겠지만 제 영혼은 같은 것이니까요.
그런데 제 영혼은 세상에 오기 전에 어디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엄마에게로 왔을까요?
사람이 죽으면 천국에 가서 영원히 산다고 했는데.
인간의 영혼은 계속 새로 생겨나는 것 인지
천국에 있던 영혼 중에서 다시 골라서 세상에 보내는 것인지 궁금해요.
언젠가 갓 대학생이 된 작은 아이가 내게 이렇게 물었었다.
나는 그 때 딱 부러지게 대답을 못하고 우물우물 넘기고 말았다.
아들이 말하는 꼭 태어날 영혼이란 것과
잉태되기 전의 씨앗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우리 영혼은 하나님께로부터 와서 살다가
때가 되면 육신을 헌 옷처럼 벗어 버리고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
영원히 사는 거라고만 생각하던 내게
아들의 질문은 기습이었다.
그래서 나는 한동안 그 물음의 답을 생각하느라
자료도 찾아보고 묵상도 하며 혼자 끙끙거렸지만
여태 명쾌한 답은 얻지 못하고 있었다. (계속)
(위에서 계속)
비겔란도 여러 생각 끝에 이와 비슷한 질문에 봉착을 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기독교 사상의 근간에다가
끊임없이 돌고 도는 윤회사상을 접목시켜
자기 나름대로 삶의 수레바퀴를 만들어 보인 것은 아니었을까?
만약 비겔란의 생각처럼
인생이란 한 사이클을 다 돌고 난 후에 새로운 사이클을 또 시작하는 것이라면
그 다음 생에 날 생명의 씨앗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냥 야생화처럼 자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인간의 삶이 너무도 존엄하다.
누군가 생명씨앗을 가지고 있다가 새로 싹을 틔워 주는 것이라면
씨앗 창고가 따로 있을까?
정말 모르겠다.
더 생각한다 해도 답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끝)
이 또한 작품집에 실으려고 정리한 원고에요.
봄날에서 초고를 쓴 여행기에서 발췌해 건진 작품이라
여기에다 먼저 올려야 될거 같아서 올렸어요.
미리미리 일을 해 놓지 않고
시한에 쫓겨서 벼락치기로 하느라
많이 힘들고 지치네요.
암튼...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사랑하는 님들 앞에 공개합니다.
참 같은 조각품을 보고 이리도 길게 쓸수 있다니....
새삼 현장에 있었던 때가 떠오르네.
부끄럽긴,
진을 뽑고 썼을터.....
기운 내시게
우리들이 많이 기대하고
사랑하고 있다는걸 잊지 말고.....
춘선아.
나 이 글 처음 읽는 것 같은데 내가 다 잊어먹은거니?
여행기 중에서 발췌해서 다시 쓴 거야?
암튼 수고가 많다.
글 하나 쓰는 게 보통 일 이니?
아~ 어쩜........하며
오늘도 행여 어느것 한땀 놓칠세라 열심히 읽고 또 읽고 있다우
여행기 글 올림에 망설이지 마셔요
감명 깊게 읽는 독자 아주 많다우
???춘선아!!!!
정말 같은 사물을 보고도 느낌을 어떻게 이렇게 다르게
표현 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한다.
난 다시한번 말하지만 후배들이 너무 똑똑해서
기가 죽을 지경이다.
너희들의 글을 읽다보면 난 너무 인생을 가볍게 살아온 것 같아서 부끄럽단다.
수노 온니 ~
이 사진들을 찾아오셨군요.
저도 보니 새삼스럽네요.
역쉬...
울 언니 최고.
순영 언니 ~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언니가 살아오신 삶이 얼마나 진지하고
그 삶에서 거두어 들인 열매가 얼마나 아름답고 풍성한지
저는 이미 눈치를 다 채고 있거든요.
그런데 부끄럽다 하시니 차암내....
언니처럼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부러워하고 있는데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는 어찌하라고요 ~~ 히잉잉 ~
그나저나 언니들은 우리 작은 아이의 질문에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아직도 그걸 풀지 못했어요.
기독교적인 사상이 골수에 박혀 있어서 이 물음이 더 어려운 것인가요?
모르겠어요. 정말....
사진이 올라오니
선배님 글이 더 선명하게 와 닿네요.
아들의 질문에 선배님의 기독교적 사상이 박혀서
대답이 더 어렵더라 하시는데
선배님의 사상을 지배하는 건 지식이 아닌
주님이 주신 은혜의 선물이라 생각합니다.
우리의 육은 이땅에서 고뇌하고 살지만
주님의 말씀처럼
인생의 연 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지만
그 삶은 수고와 고통뿐 이라구요.
그러나 이땅의 나그네 여정을 끝내면
멋진 인생 2 막이 펼쳐짐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이땅에서의 삶도 수고로이 여기지 않고
천국을 누리며 살게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선배님에게 그러한 믿음이 있기에
다른 대답을 할 수 없으신 것이지요.
그래.
천국에서의 멋진 삶은 아들도 잘 알지.
그애야말로 내 복중에서부터 각인된 기독교인이니까.
그런데 그애가 궁금해 하는건
태어날 사람의 영혼은 어디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이 세상에 오는거냐는 것이였어.
불교적으로 해석을 한다면야
돌고 돌아서 다시 오는 거라고 하겠지만
기독교적인 생각은 다르짆아.
기독교를 바탕에 깔고 생각을 해 보는거지.
이 땅에서 돌아간 영혼들은 천국에서 영생을 누릴텐데
그렇다먄 새로 태어날 영혼들은 따로 씨앗처럼 저장이 되어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때 그때 하나님께서 새로 만드시는 것인지
그도 아니라면 천국에 간 영혼들 중에서 골라서 다시 보내시는 것인지
그게 궁금하다는 거지.
목사님들의 해석은 어떠실지...
답 좀 가르쳐 주세요.
그런 셈이지요.
아직도 답은 못 찾고 생각의 수레바퀴만 뱅뱅 헛돌고 있지만서두....
민우가 저보다 훨씬 논리적인 모양이에요.
저는 무조건 믿었는데 걔는 궁금한 게 많은걸 보니....
오늘 저녁 식탁에서도 이걸 화제로 삼았는데
남편의 생각은 새로운 영혼이 계속 생겨난다는 것이더군요.
하나님께서 사람이 잉태되는 순간,
그 몸에 어울리는 영혼을 보내주신다고 생각한대요.
그 방법이 무엇인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우리 생각으로 잴 수 없음을 인정하면
그냥 심플하게 답을 얻을 수 있지 않겠냐고 말예요.
문과 이과 적성의 차이가 이건가요?
차암나.....
그래도 내게는 흡족하지 않은 대답이니 원..
난 그런 문제는 그리 심각하지않게 끝내는 단무지형이다.
따지지않고 그냥 믿어유!
어차피 보이지않는 세계 아닌감요?
그냥 세상의 부모와 자식처럼 생각한다오.
글쎄 음악이란 분야도 실체가 확실하지않아도 되는 것이라서리.................................
저도 그런 생각 한번도 안 하고 살았는데
이 아침에 잠시 생각하게 되네요.
제 짧은 생각엔
아담을 창조하실 때 행하신 것처럼
그 창조의 능력으로 생명의 씨앗에
영혼의 생기를 불어넣으시는 게 아닐런지...
선배님 말씀대로 미물같은 인생이
어찌 그 광대하심을 다 측량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생각을 다 파해쳐보겠다고 하는 것은
우리의 지식을 하나님 위치에 두려는 교만한 맘이 될지도 모르지요.
그저 겸손한 맘으로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주권앞에 무릎꿇는게
인생의 도리겠지요.
주재넘는 후배의 생각 용서하세요.
춘선아~
여행에서 돌아와서 좀 쉬느라 이제야 이 글을 읽었다.
우리 천주교 교리에 윤회란 없지만 난 종교는 아니지만 깨달음의 진리를 전파하는 곳을 기웃거려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윤회설을 믿게 되었어.
그리고 살면서 윤회설이 더 합리적이란 생각이 들더라.
예를 들어 나를 너무 힘들게 하는 사람은 계속 미워하기 보다는 내가 전생에 그 사람에게 빚이 많았나보다 라고 생각함 훨씬 편해졌으니까~
그리고 우리가 이 세상에 온 목적이 영혼의 완성이라는데 (단학선원의 이론) 득도나 깨달음 없이 완성되지 못한 영혼은 다시 세상에 태어나고
아기의 몸으로) 완성하고 가는 영혼은 다시 오지 않고 우주의 큰 힘이 되어 하늘나라에 함께 하는것이 아닐까?
다시말해 완성되지 못한 영혼은 기다리고 있다가 다시 태어나고 완성된 영혼은 다시 올 필요없이 주님과 함께 한다는거지.
그리고 새로운 영혼은 어차피 하느님이 만드신거니까 때에따라 만드시기도 하겠지 ㅎㅎ
난 이번 생에서 살기 급급하고 영혼을 완성시키지 못해서 아마 다시 태어날꺼야~
"신과 나눈 이야기"라는 책이 1,2, 3권이 있는데 좀 도움이 될까?
아님 계속 의문으로 남아있고 풀리지 않을까?
기독교 교리와 혼돈되어 더욱 헷갈릴까?
시간되면 한번 읽어봐.
이런 나눔의 시간도 좋다.
그러게요.
이런 나눔은 여기가 아니면 할 수 없어요.
자칫하면 종교적인 논쟁이 되기 쉬우니까요.
언니도 비겔란이랑 생각이 비슷하신거 같네요.
역시 작가들끼리는 통하는 모양 ~ ㅎㅎ
가만 보면 저는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관심이 참 많은거 같아요.
이것도 날 때부터 타고난 성품이겠죠?
어릴 때부터 그랬으니....
종교적인 논쟁이 되기전에 끝냅시다.
더 얘기 하고 싶으면 쪽지로 ,,,이멜로,,,종교방으로,,,
어때요?
기독교인이나 천주교인이 아닌 사람들도 많으니....
(위에서 계속)
사실 나는 여기에 오기 전까지 비겔란이란 조각가의 이름조차 몰랐다.
하지만 그게 오히려 아무런 선입견 없이 그의 작품들을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서 좋았다.
공원에 전시된 작품엔 제목도 거의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 작품들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다 알 것만 같았다.
그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인생에 대한 성찰과 삶에 대한 깊은 고뇌에 공감이 갔고,
단단한 돌과 청동을 가지고 살아 숨 쉬는 인체를 만들어 낸 그의 솜씨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
젊은이의 힘줄과 근육은 물론
기름기가 다 빠진 늙은이의 쭈글쭈글한 피부와 주름까지도
그는 뛰어난 관찰력을 토대로 생동감 있게 표현해 놓았다.
어떤 것은 차가운 돌에서 따뜻한 온기마저 느껴지기도 했다.
그의 작품에 나오는 사람들 모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외설스럽거나 보기 민망하지도 않았다.
정말 대단한 솜씨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