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십년 쯤 전에 어느 강연회에 가서 들었던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이 역시 너무 오래 전 일이라 생생하게 전달할 수야 없지만

간단히 요약하면

'달걀은 세울 수 있다.' 가  그날  강연의 주제를 위한 중요한 소재였다.

'달걀'하면 떠오르는 너무  뻔한 이야기가 있어서 모두들 당장 콜럼부스를 떠올릴 것이다.

그렇다 너무 뻔한 이야기다.  그 강연을 맡았던 김현수 박사도 달걀 이야기를 꺼내면서 곧  콜럼부스를 거론했다.

공교롭게도 우리 3동의 친구 김현수와 동명이인이신 김현수 박사는 

당시 한국조기교육연구회 회장과  한국인간과학연구회 이사장직을 맡고 계셨다.

 

박사는 콜럼부스가 달걀의 뾰족한 부분을 조금 깨뜨려서 세운 방법에 대해,

그것은 달걀은 깨뜨리지 않고는 결코 세울 수가 없다는 전제를 깔고 있는 것이라서

그것으로 달걀을 세웠노라고 말하기에는 충분치 못한 부분이 분명 있다고 말했다.  

 

박사는 콜럼부스의 달걀에 의문을 품고 자신의 손으로 직접 달걀을 세워볼 결심을 했다는 것이다.

달걀을 실제로 세워도 좋고 못 세워도 그만, 다만 한 번 해보기는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도전을 했는데

(너무 빨리 결과를 알려드리는 것인감)

댤걀과의 장시간의 씨름 끝에 김박사의 손을 빌어  깨뜨리지 않은 달걀이  맨 바닥에 오뚝하게 섰다는 것이다.

박사는 만일 자신의 경험담이 거짓말로 들리면 가서 직접 해보라고 하셨다.

 

나는 그날로 집에 돌아온 즉시 냉장고에서 달걀을 꺼냈다.

그날 강연은 '경험은 많을수록 좋다' 는 내용이 주제였던 것 같은데

나는 가슴에 달걀을 하나 품고 돌아왔던 것이다.

 

나도 달걀과 장시간의 씨름을 했다.

사흘째 되던 날 나도 식탁위에 오똑하게 달걀을 세울 수 있었다.

박사의 말은  사실이었고 나는 그 말이 사실 임을 실증을 한 것이다.

 

매끄러운 바닥 위에 중심을 잡고 오뚝 서 있는 달걀을 바라보며

나는 꿈을 꾸는가 싶었다.  

시도도 안해보고  달걀을 깨뜨려야만 세울 수 있다고 굳게 믿은 콜럼부스도

그자리에 있던 보통의 사람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고정관념의 틀에 매어 있었던 것이다.

 

어렵사리 세워놓은 달걀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며

나는 달걀이 서 있게 된 원리를 곰곰 생각해 보았다.

 

김박사님의 강연을 듣고 달걀을 세워봤다는 어떤 사람들은, 

달걀을 들고 마구 흔들어 계란의 내부에서 흰자와 노른자가 섞이게 하면

내부의 질량이 고르게 되고 그러면 달걀 세우기가 쉬워진다고 그 방법을 설명한다.

그 방법은 결국 달걀을 죽여서 세우는 셈이다.

 

나는 노른자와 흰자를 마구 흔들고 섞어서 마침내 내부가 파괴된  달걀을 가지고

세우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흔들지도 삶지도 않은 그냥 그대로의 달걀을 세워보고 싶었고, 마챔내 세웠다.

노른자와 흰자가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며 살아 있는 그대로

달걀을 세울 수 있음에 나는 참 기뻤다.

 

살아 있는 달걀을 세운 나의 방법은

사전에 흔들거나 섞거나의 과정 없이  

그냥 달걀의 뾰족한 부분을 밑으로 가게 하고

두 손으로 가만히 달걀을 잡고 

달걀이, 되도록 곧게 서도록 조심조심 지지해주는 것이었고

(여기까지는 대개 같은 방법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마지막 단계는

달걀 내부의 노른자와 흰자가  스스로 중심을 잡을 때까지

오래  기다려 주는 것이었다.

달걀의 내부에서 노른자와 흰자가 서로의 경계를 허물지 않고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중심을 잡고 곧게 선다는 것!

 

둥근 달걀의 맨 밑바닥 어느 한 점에 달걀의 중심이 잡히면

그 중심이 지구의 중심과  일치가 되면서

콜럼부스처럼 깨뜨리지 않고도 둥근 몸으로 곧게 설 수 있다는 것!

참으로 경이로웠다.

 

중심이 흔들리거나 생각이 많아지면 

나는 요즘도 마음 속의 달걀을 세워본다.

 

오늘 초파일(휴일)인데

나는 어디 놀러도 못(안)가고 심심하고 외롭네.

그래서 시방 달걀을 꺼내 세우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