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날 | 포토갤러리 | - 게시판담당 : 12.김춘선
자작나무처럼
페테르부르크에서 만난 가이드는 피아노를 전공하는 학생이었는데
호리낭창 마른 몸매에 왠지 불쌍해 보이는 표정에다 목소리는 가늘고 말투도 맥이 없는 아가씨였다,
그녀는 우리 일행이 자기 엄마나 이모처럼 편하게 느껴지는지
버스만 타면 쉴 새 없이 종알거리며 자기 이야기를 했다.
러시아의 물가가 얼마나 천정부지로 올랐는지, 집세는 얼마나 비싼지,
한국 음식은 또 얼마나 먹고 싶은지 등....
한번은 김치 대신 깻잎지라도 먹고 싶어서 큰 맘 먹고 한국에서 들깨를 공수해 왔단다.
여기서 사 먹으려면 너무 비싸니 씨앗을 심어서 이파리를 따 먹겠다는 심산이었다.
마치 남의 둥지에 알을 낳는 뻐꾸기처럼
자기 소유의 다차도 없으면서 농사지을 궁리를 한 것이다.
아무튼 그녀는 그 씨앗을 이웃집 주말 농장에다 뿌려 달라고 부탁을 했고,
마음씨 좋은 러시아 아줌마는 선선히 들어 주었다.
그러고 나서 몇 개월이 지난 어느 날.
그녀의 씨앗에서 소출이 나와서 거두어다 집 앞에 두고 왔으니 가져가라는 연락이 왔단다.
드디어 그리도 먹고 싶었던 깻잎을 먹을 생각에 얼른 나가서 봉투를 열어 봤더니
그 안에는 뿌리를 자르고 이파리도 다 떼어버린 들깨 줄기만 소복하더란다.
생전 처음 보는 그 야채가 줄기를 먹는 것인 줄 알고 아예 잘 다듬어다 준 것이었다.
그녀는 기가 막혀서 봉지를 내던지고 말았다.
먹을 건 다 따버리고 쓰레기만 소복하게 담아오다니....
그 씨앗은 잎을 먹는 야채라는 이야기를 안 해 준 것을 후회해도 이미 소용이 없었다.
결국 다시 몇 개월을 더 기다려서야 깻잎을 먹을 수 있었단다.
이런 이야기를 끝도 없이 쏟아내다 보면
우리 버스는 다음 목적지에 도착을 하곤 했다. (계속)
* 다차 ; 러시아인들의 교외에 있는 주말 농장
(위에서 계속)
사람 사이에는 보이지 않게 흐르는 강물이 있는 게 분명하다.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마음이
그 강물을 타고 흘러 사람들 속으로 스며드니 말이다.
우리를 향해 간간히 웃으며 손을 흔들던 그녀가
슬그머니 돌아서서 슬쩍 눈물을 훔친다.
그러다가 기차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자 애써 활짝 웃는 표정을 지으며
모자를 벗어 들고 두 손을 크게 흔들었다.
우리도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가 보이는 창에다 손을 흔들어 주었다.
마치 어린 딸을 두고 가는 것처럼 마음이 짠하고 눈물이 핑 돌았다.
이렇게 멀고 낯선 곳에서 눈물로 배웅해 주는 따뜻한 이를 만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이럴 줄 알았으면 용돈이라도 한 푼 슬쩍 쥐어줄 것을,
가난한 유학 생활이 힘들어도 잘 참고 견디라고 등을 토닥이며
한 번 더 따뜻하게 안아줄 것을.... (계속)
(위에서 계속)
페테르부르크에서 핀란드로 가는 길은 끝도 없이 이어지는 자작나무 숲이었다.
나무의 껍질이 희끗희끗하고 쭉쭉 뻗어 곧게 자라는 자작나무 숲은
내가 이번 여행길에 꼭 보고 싶었던 것 중 하나였다.
많은 문학 작품과 영화 속에 단골 엑스트라처럼 자주 등장하면서
동토 대륙의 추위와 눈에도 끄떡없는 강한 생명력을 자랑하는 러시아의 자작나무.
추운 밤 내내 페치카에서 자작자작 소리를 내며 탄다는 그 나무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광활한 대지와 나무 위에 소복이 쌓인 눈과
밤새 달리는 기차가 떠오르곤 했다.
내 오랜 상상 속의 자작나무 숲을
이렇게 기차를 타고 달리고 있다는 사실이 꿈만 같다.
비록 지금은 7월이라 추운 밤도 아니고 더욱이 눈은 내리고 있지 않지만,
내가 오래도록 간직해 온 버킷리스트에서 한 줄을 지우기에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
지금 나는 백야를 만끽하며 기차 여행을 하는 중이니 말이다.
저녁 9시가 넘었는데도 여전히 오후 3시처럼 느껴지는
강렬한 태양이 창밖에 있다.
5월부터 해가 길어지기 시작해서 6월에 피크를 이룬다는 백야는
밤 12시가 되어도 초저녁 어스름 같은 어둠만 깔릴 뿐
칠흑 같은 밤은 아니라고 했다.
책 속에 백야 이야기가 나올 때면 그게 어떤 느낌일까 늘 궁금했었다.
특히 내 유년기에 러시아는 건널 수 없는 강 저편에 있는 갈 수 없는 나라였고
백야를 보러 여행을 떠난다는 것 자체가 그저 막연한 꿈이었다.
그러니 백야에 자작나무 숲을 기차를 타고 달리는 지금 내 심정은
굳이 설명할 필요조차 없는 감동과 감격 그 자체일 수밖에 없다. (계속)
(위에서 계속)
에어컨 시설이 아예 없는 기차 안으로 햇볕이 쏟아져 드니 덥다.
창문도 활짝 열 수 없게 만들어 놓은 기차가
북쪽에서 남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달리느라
왼쪽 오른쪽 가리지 않고 해가 드는 바람에
잠을 청할 수도 없고
아주 덥다.
바깥 풍경은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자작나무 숲이었다.
어느덧 기차는 러시아 국경을 넘어 핀란드에 들어선 듯했다.
여전히 창 밖에는 자일리톨 껌 포장지 사진 같은 자작나무 숲의 풍경이 계속 이어진다.
이 나무들은 러시아가 핀란드를 점령하고
식민통치를 하는 동안 가져다 심어준 것이란다.
그 식민통치 덕분에
핀란드는 지금의 울창한 자작나무숲을 지니게 되었다니
역사는 정말로 아이러니다. (계속)
(위에서 계속)
러시아의 자작나무.
러시아인들에게 있어서 자작나무는 그야말로 ‘아낌없이 주는 나무’다.
껍질은 벗겨서 바구니나 소쿠리를 만들고,
몸통은 잘라서 곱게 다듬어 마트료시카(일명 알까기) 인형을 비롯한 공예품을 만들고,
뿌리로는 묵직하고 고급스런 가구를 만들고,
자일리톨이라 부르는 몸에 좋은 수액은 여러 가지 용도로 가공해서 먹는다.
어디 그 뿐인가?
모든 것이 다 얼어붙는 추운 겨울날에 페치카에 넣고 불을 지피면
나무는 자작자작 소리를 내며 제 몸을 불살라
모두에게 따뜻함을 선사한다.
만일 러시아에 자작나무가 없었다면 아무도 겨울을 나지 못해서
나라 자체가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말도 과장이 아니다.
이렇게 무엇 하나 버릴 것 없이 요긴하고 멋진 이 나무는
아낌없이 자신을 다 내주고는 다만 한 줌의 재가 되어 땅으로 돌아간다.
문득 내게 의지가 되어주고 아낌없이 자신을 다 내어 주었던,
이미 그루터기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린
나의 자작나무들에 생각이 미치자 울컥 목이 메었다.
하기야 나도 이미
받기 보다는 아낌없이 주어야 하는 입장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이왕이면 러시아 자작나무처럼
내가 지닌 모든 것을 다 내주고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기차는 그림 같은 뭉게구름과 자작나무 숲이 어우러진 길을 계속 달린다.
여전히 해가 너무 눈부셔서 잠도 못 들고,
생각에 지친 몸은 주체할 수 없이 피곤하다.
한국은 지금 새벽 세시가 넘었을 게다. (끝)
올해 나올 작품집에 내려고 정리한 원고라
분량이 조금 많기에 잘라서 올렸어요.
원래 여기에다 썼던 여행기 중 일부라 다 보신 내용이에요.
그래도 신입들이 많이 계시고
수필로 정리를 해 놓은 거니까 그냥 보아 주세요.
에고....
눈이 빠질라 그려요.
하도 화면을 들여다 봤더니만서두....
원고 교정을 하는 것이 사람 골병드는 일이구만유.
자작나무라고 해서 나도 좀 의아했는데 역시나 본 거구랴.
암튼 다시봐도 재미있다.
앞으로 작가들은 좀 작품들을 많이 쓰도록 부탁해요.
제가 마치 러시아행에 동행한듯이 푹 빠져서
읽어 내려갔어요.
자작나무의 이낌없이 주는 입장을
지금의 선배님에게로의 이입은
아직은 부족하지만 제게도 깊은
동감을 불러일으키네요.
아낌없이 주는 나무...
이렇게 마음 깊이 박히는 단어인줄은 몰랐습니다.
잉그릿트버그만이 나오는 영화에서 봤던
그런 모습이던가요?
하얀 입김 내품으며 삐그덕 삐그덕 소리를 내며
전쟁의 상흔을 가슴에 새긴 자들을 싣고
자작나무숲 사이로 떠나는
그런 풍경이 떠오르네요.
함께 여행할 수 있는 시간을 주셔서 감사드려요.
저희처럼 새내기들이 있으니 이렇게 글 올려주시면
더 없이 감사하지요.
선배님의 프로필이 궁금하네요.
전문으로 글쓰는 분인줄 몰랐습니다.
어줍잖은 후배의 글에 친히 답글도 주시고...
저는 한글이 너무 어려워 글 쓰기가 넘 힘들거든요.
야심한 시간에 보내느라 주향이 밑에 꼬리글을 달아버렸네요.
김춘선 선배님께 드리는 글인데...
춘선언니...인사드려여...
지난번 인일 50주년에서 저를 알아봐주셔서 넘 감사드립니다...
저도 선배님들께... 그리고 가끔 글속에서 뵈었지만
가까이서 손잡는 영광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배님들께서 칭찬을 아끼지 않으시는분이라 더더욱 친근감이 갑니다...
인애는 춘선이랑 만난 적이 없었구나.
하긴 춘선이가 대전사니까 .................................
암튼 그대들은 내가 사랑하는 동생들이니까 무조건 친해야 하는 겨!
황금 연휴를 황망히 보내고 오니
이렇게 과분한 글들이 저를 반기며 위로하고 있네요.
감사합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가까운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속 깊고 생각이 반듯한 후배들이 내 글을 좋다해 주고
혈육보다 더 깊이 정이 든 언니들이 칭찬해 주시니
더 할 나위 없이 행복하고 감사합니다.
인애 후배 ~
너무도 예쁜 그대를 직접 만나고 같이 사진도 찍은 것이
내게 얼마나 큰 기쁨이요 영광이었는지 모른다오.
멀리 살지만 늘 함께 있는 것 같은 느낌.
처음 만났지만 항상 보았던 것 같은 친숙함.
그게 내게 각인되어 있는 인애에 대한 생각이라오.
앞으로 자주 만났으면 좋겠소.
명자랑 주향이는 늘 세트로 부르게 될거 같네.
마치 봄날 초창기에 언니들이
옥규랑 춘서니를 세트로 불러 주셨던 것처럼 말야.
안그냐? 옥규야.
(위에서 계속)
우리는 러시아 일정을 모두 마치고 기차 시간에 맞추어 핀란드 역으로 갔다.
거기서 4시 40분에 출발하는 기차를 타고 핀란드로 갈 것이다.
페테르부르크에서 핀란드의 헬싱키까지는 기차로 약 6시간이 걸린단다.
특이하게도 러시아의 모든 기차역들은
출발하는 도시가 아닌 목적지의 이름을 붙여 놓았다.
예를 들면, 페테르부르크에서 모스크바로 가는 역은 ‘모스크바 역’,
페테르부르크에서 핀란드로 가는 역은 ‘핀란드 역’이다.
이런 것을 모르면 엉뚱한 곳에서 헤맬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제대로 실감하며
우리는 진작부터 와서 대기하고 있는 기차에 올랐다.
장거리 여행객들이라 모두들 짐이 커서
기차가 연결되는 곳마다 가방이 산처럼 쌓였다.
러시아 국경을 넘어 핀란드로 가는 기차는 우리나라 무궁화호보다도 낡고 비좁았다.
우리들 말고도 한국인 단체가 여러 팀이 있는지
기차 안이 온통 한국말로 시끌벅적하다.
자리를 잡고 내다보니 텅 빈 플랫폼에 여태껏 혼자 서 있는
가이드 아가씨가 보인다.
차에서 먹을 도시락과 짐도 다 실었고
가이드 팁도 받았으니 그만 가도 되는데
그녀는 쉽게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 며칠 새 정이 들었나 보다.
아니, 가난한 유학생에다 외로움에 심신이 지친 그녀를
우리 모두가 애처로워하고 있음을 아는 모양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