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나무처럼


 


   페테르부르크에서 만난 가이드는 피아노를 전공하는 학생이었는데

호리낭창 마른 몸매에 왠지 불쌍해 보이는 표정에다 목소리는 가늘고 말투도 맥이 없는 아가씨였다,

그녀는 우리 일행이 자기 엄마나 이모처럼 편하게 느껴지는지

 버스만 타면 쉴 새 없이 종알거리며 자기 이야기를 했다.

러시아의 물가가 얼마나 천정부지로 올랐는지, 집세는 얼마나 비싼지,

한국 음식은 또 얼마나 먹고 싶은지 등....

 

  한번은 김치 대신 깻잎지라도 먹고 싶어서 큰 맘 먹고 한국에서 들깨를 공수해 왔단다.

여기서 사 먹으려면 너무 비싸니 씨앗을 심어서 이파리를 따 먹겠다는 심산이었다.

마치 남의 둥지에 알을 낳는 뻐꾸기처럼

자기 소유의 다차도 없으면서 농사지을 궁리를 한 것이다.

아무튼 그녀는 그 씨앗을 이웃집 주말 농장에다 뿌려 달라고 부탁을 했고,

마음씨 좋은 러시아 아줌마는 선선히 들어 주었다.

 

  그러고 나서 몇 개월이 지난 어느 날.

그녀의 씨앗에서 소출이 나와서 거두어다 집 앞에 두고 왔으니 가져가라는 연락이 왔단다.

드디어 그리도 먹고 싶었던 깻잎을 먹을 생각에 얼른 나가서 봉투를 열어 봤더니

그 안에는 뿌리를 자르고 이파리도 다 떼어버린 들깨 줄기만 소복하더란다.

생전 처음 보는 그 야채가 줄기를 먹는 것인 줄 알고 아예 잘 다듬어다 준 것이었다.

그녀는 기가 막혀서 봉지를 내던지고 말았다.

먹을 건 다 따버리고 쓰레기만 소복하게 담아오다니....

 

그 씨앗은 잎을 먹는 야채라는 이야기를 안 해 준 것을 후회해도 이미 소용이 없었다.

결국 다시 몇 개월을 더 기다려서야 깻잎을 먹을 수 있었단다.

 이런 이야기를 끝도 없이 쏟아내다 보면

우리 버스는 다음 목적지에 도착을 하곤 했다. (계속)

 

 

* 다차 ; 러시아인들의 교외에 있는 주말 농장